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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91 편
기도의 진화
. 유란시아 중도자의 우두머리
. 1934년
91:0.1 기도는 종교의 수단으로서 진화해 왔으며, 이전의 비종교적인 독백과 대화 표현에서 유래했다. 원시인이 자의식을 얻으면서 사회적 대응과 하나님 인식의 이중잠재력이 불가피하게 발생했다.
가장 초기의 기도 형태는 신(Deity)에게 향하는 것이 아니었다. 이러한 표현들은 중요한 일에 착수할 때 친구에게 "행운을 빌어줘." 하는 말과 유사했다. 원시인은 마법에 빠져 있었다; 운, 행운과 불운은 모든 삶의 사건에 관여했다. 처음에 이러한 운을 비는 기원은 독백이었고, 그저 마법사가 속으로 속삭이는 것과 같았다. 다음으로, 운을 믿는 이들은 친구와 가족의 지원을 받게 되고, 곧 전체 씨족이나 부족이 참여하는 어떤 형태의 의식이 행해지게 되었다.
귀신과 영의 개념이 진화했을 때, 이 간청은 초인간적인 것이 되었고, 신들(gods)에 대한 의식과 함께, 그러한 표현은 진정한 기도의 수준에 도달했다. 이것의 한 예로서, 어떤 호주 부족들 중에는 원시적 종교의 기도가 영들(spirits)과 초인간 성격자들을 믿기 전에 먼저 존재했다.
인도의 토다 부족은 종교적 의식행위 이전의 초기 민족들처럼, 아무에게나 기도하는 이 관행을 지금도 지키고 있다. 오직 토다 부족 사람들에게 그들의 사라지고 있는 종교는 원시적 수준으로 후퇴하는 것을 나타낸다. 오늘날 토다인 낙농 사제들이 행하는 의식행위에서 행해지는 비성격(impersonal) 기도는 사회적, 도덕적, 영적 가치를 보존하거나 높이는 데 전혀 기여하지 않기 때문에 종교 의식으로 간주되지 않는다.
☞ 비성격 기도 : 인간의 의지가 반영되어 있지 않은 무의미한 기도
종교가 생기기 이전의 기도는 멜라네시아인의 마나[1] 관습, 아프리카 피그미족의 우다[2] 신앙, 북 아메리카 인디안의 마니토우[3] 미신의 일부였다. 아프리카의 바간다 부족은 겨우 요즈음에야 마나 수준의 기도를 벗어났다. 이 초기 진화의 혼란 속에서 사람들은―지역 및 민족의―신들(gods)에게, 주물ㆍ부적ㆍ귀신ㆍ통치자에게, 그리고 보통 사람에게 기도를 올렸다. ☞ [1] 멜라네시아인들이 믿는 땅ㆍ물ㆍ불ㆍ바람의 힘. [2] 피그미 족이 믿는 일종의 악마. 재난이나 갑작스런 죽음을 일으킨다고 믿는다. [3] 북 아메리카의알곤킨 부족이 믿는 신령.
1. 원시적인 기도
91:1.1 초기 진화적 종교의 기능은 천천히 형성되는 필수적인 사회적, 도덕적, 영적 가치를 보존하고 증대시키는 것이다. 종교의 이러한 사명은 인류에 의해 의식적으로 관찰되지는 않지만, 주로 기도의 기능을 통해 영향을 받는다. 기도의 실천은 어떤 집단이 고차원 가치의 보존을 확보하려는(실현하려는) 의도하지 않은 개인적이고 집단적 노력을 상징한다. 기도가 보호되지 않는다면, 모든 성스러운 날들은 단순한 휴일로 빠르게 전환될 것이다.
가장 주된 것이 기도인, 종교와 그 기관들은 일반적인 사회적 인식, 집단의 승인을 받은 가치들과만 연합한다. 그러므로 원시인이 순전히 이기적인 야망을 성취하거나 기초적인 감정을 만족시키고 싶을 때, 그는 종교의 위안과 기도의 도움을 얻지 못했다. 개인이 어떤 비사회적인 것을 성취하려고 한다면, 그는 비종교적인 마법의 도움을 구해야 하고, 마술사에게 의존해야 하며, 따라서 기도의 도움을 빼앗기게 된다. 따라서 기도는 아주 일찍부터 사회적 진화, 도덕적 진보, 영적 달성의 강력한 촉진자가 되었다.
그러나 원시인들의 mind(지성, 마음)는 논리성이나 일관성이 없었다. 초기 인간은 물질적인 것들이 기도의 영역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했다. 이러한 단순한 지성을 가진 혼들은 음식, 안식처, 비, 사냥 등 물질적 재화가 사회 복지를 높인다고 추론했고, 그래서 이러한 물질적 축복을 구하기 위해 기도하기 시작했다. 이는 기도의 왜곡이었지만, 사회적이고 윤리적 행동을 통해 이러한 물질적 목표를 실현하려는 노력을 장려했다. 기도의 이런 왜곡은 사람들의 영적 가치를 저하시키지만, 그런데도 그들의 경제적, 사회적, 윤리적 풍토를 직접적으로 향상시켰다.
기도는 가장 원시적인 mind에서 독백일 뿐이다. 기도는 초기에 대화로 발전하여 빠르게 집단 예배의 수준으로 확장된다. 기도는 먼저 행해지던 원시 종교의 마법 주문이 발전하여 인간 mind가 사회적 가치를 증진시키고 도덕적 이상을 증대시킬 수 있는 이익을 주는 힘이나 존재의 실체를 인식하는 수준으로 진화한 것을 나타낸다. 더 나아가, 이러한 영향들은 초인간과 자기 중심의 자의식 인간과 그의 동료 필사자와는 구별되는 것을 나타낸다. 그러므로 참된 기도는 종교 사역의 주체가 개인적인 것으로 시각화될 때까지 나타나지 않는다.
기도는 애니미즘과 거의 관련이 없지만, 그러한 믿음은 싹트는 종교적 감정과 함께 존재할 수 있다. 종교와 애니미즘은 완전히 별개의 기원을 가지고 있다.
91:1.6 원시적인 공포의 속박에서 벗어나지 못한 필사자들 사이에는, 모든 기도가 실제이든 공상이든 간에 병적인 죄의식, 정당화되지 않은 죄책감으로 이어질 수 있는 실제 위험이 있다. 그러나 현대에는 많은 사람이 그들의 가치없는 죄책감이나 죄악에 대해 해로운 우울감을 조장하려고 기도하는데 충분한 시간을 보낼 것 같지 않다. 기도의 왜곡과 왜곡에 따른 위험은 무지, 미신, 형식의 고정화, 활력 상실, 물질주의, 그리고 광신주의에 있다.
2. 진화하는 기도
91:2.1 처음 기도는 단지 소망을 말로 표현한 것, 진지한 욕구를 표현한 것에 불과했다. 다음에 기도는 영적 협동을 이루는 기술이 되었다. 그런 다음 기도는 모든 가치-가치를 보존하는데 있어 종교를 돕는 더 높은 기능에 이르렀다.
기도와 마법은 모두 유란시아 환경에 대한 인간의 적응적 반응의 결과로 생겨났다. 이런 일반적인 관계 외에는, 이 둘은 공통점이 거의 없다. 기도는 항상 기도하는 자기 중심의 적극적인 행동을 나타낸다; 기도는 언제나 정신적이었고, 때때로 영적인 것이었다. 마법은 보통, 시행자, 마법을 행하는 사람의 자아에 영향을 주지 않고 현실을 조종하려는 시도를 의미한다. 기원을 따로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마법과 기도는 후일의 발전 단계에서 서로 관련되었다. 마법은 공식적으로 의식과 주문을 거쳐, 참된 기도의 문턱까지 목표를 높임으로 발전되었다. 기도는 때때로 너무 물질주의적이 되어, 유란시아 문제들을 해결하는데 필요한 노력을 피하기 위한 마법과 유사한 기법으로 퇴화되었다.
기도가 신들(gods)을 강요할 수 없다는 것을 사람이 깨달았을 때, 기도는 오히려 구하는 것, 간청이 되었다. 그러나 가장 진정한 기도는 사람과 창조주(Maker) 사이에서 실제로 소통하는 것이다.
어떤 종교에서도 희생물 개념의 출현은,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는 자신의 거룩한 뜻을 드리는 대신에, 인간이 물질적 소유의 제물로 바치려고 한다는 점에서 참된 기도의 높은 효과를 어김없이 떨어뜨린다.
종교가 personal 하나님을 벗어버릴 때, 그 기도는 신학과 철학 수준으로 해석된다. 한 종교에서 가장 높은 하나님 개념이, 범신론적 이상주의에서 보는 것 같은 impersonal 신(Deity) 개념일 때, 비록 어떤 형태의 신비스러운 교감의 근거를 마련해 주기는 해도, 이것은 인간이 항상 최상인 personal 존재와의 소통을 나타내는 진정한 기도의 힘에 치명적이라는 것이 증명되었다.
91:2.6 종족 진화의 초기에, 그리고 심지어 현재에도, 보통 필사자의 일상 체험에서 기도는 사람이 자신의 잠재의식과 교제하는 현상일 경우가 매우 많다. 그러나 지적으로 기민하고 영적으로 진보하는 개인이 인간 mind의 초의식 수준, 깃드는 생각 조절자의 영역과 어느 정도 접촉하는, 기도의 영역도 있다. 게다가, 진정한 기도의 확실한 영적 단계는, 모든 인간과의 지적 연합으로부터 완전히 구별되는 우주의 영적인 힘들을 받아들이고 인식하는데 있다.
기도는 진화하는 인간 mind의 종교적 감각을 기르는 데 크게 기여한다. 기도는 성격의 고립을 막는데 큰 영향을 끼친다.
기도는 종족 진화의 자연 종교와 관련된 한 기술을 나타내며, 동시에 윤리적 탁월성을 지닌 높은 종교, 즉 계시 종교의 체험적 가치의 일부를 형성합니다.
3. 기도와 타아
91:3.1 아이들은, 언어를 처음 배울 때 자신의 생각을 들어주는 사람이 없어도, 생각을 말로 해보는, 말로 자기 생각을 표현하는 경향이 있다. 창조적 상상력이 싹이 트면서, 아이들은 상상의 동무들과 이야기하는 경향을 나타낸다. 이 방법으로 싹트는 자아가 가상하는 타아와 소통하기를 추구한다. 이 기법으로 아이는 일찍 부터 자신의 독백적인 대화를 가상의 대화로 바꾸어, 이 내면의 다른 자아가 그의 생각과 의도를 표현한 것에 대답 한다. 어른들의 생각 대부분은 정신적인 대화 형식으로 이어진다.
초기 원시 형태의 기도는 오늘날 토다 부족의 반 마법적 암송, 특별히 어느 누구에게 드리는 것이 아닌 기도문과 아주 비슷했다. 그러나 그러한 기도법은 타아의 관념이 태어남으로, 대화 형태의 교통으로 진화하는 경향이 있다. 시간이 지나면, 타아 개념은 신성한 위엄을 가진 우월한 지위로 격상되었고, 종교의 매체로서 기도가 나타났다. 많은 단계와 오랜 세월 동안 이 원시 형태의 기도는 지적이고 진정으로 윤리 있는 기도의 수준에 이르기까지, 진화하도록 정해져 있다.
기도하는 필사자들의 연속되는 세대에 의해 인식되는 것처럼, 타아는 귀신ㆍ주물ㆍ영들을 거쳐서 다신교의 신들(gods), 궁극에는 유일한 하나님 곧 기도하는 자아의 가장 높은 이상과 가장 고귀한 소망을 구현하는 신성에 이르기까지 진화한다. 따라서 기도는 기도하는 사람들의 가장 높은 가치와 이상을 보존하는 종교의 가장 강력한 매체로 작용한다. 타아를 생각하는 그 순간부터 하늘에 계신 신성한 아버지 개념이 나타나기까지, 기도는 언제나 사회화, 도덕화, 영성화(靈性化)하면서 실행된다.
믿음으로 드리는 단순한 기도는 인간의 체험에서 힘찬 진화를 입증하고, 이렇게 함으로 원시 종교에서 가상의 상징인 타아와 함께 가졌던 옛날의 대화는 무한자의 영과 교통하는 수준, 그리고 모든 지적 창조의 영원한 하나님이자 파라다이스 아버지의 실체를 진정하게 의식하는 수준까지 높아졌다.
기도 체험에서 초월 자아인 모든 것을 제외하고라도 윤리적인 기도는 더 나은 삶과 더 높은 성취를 위해 자신의 자아를 높이고 자아를 강화하는 훌륭한 방법임을 기억해야 한다. 기도는 인간의 자아가 도움을 얻기 위한 두 가지 길을 모두 찾도록 유도한다: 필사 체험의 잠재의식 속에 저장된 물질적 도움을 위한 것, 신비의 훈계자와 같이 영적인 것과 물질이 접촉의 초의식의 경계에 이르는 영감과 안내를 위한 것이다.
91:3.6 기도는 인간의 이중적 체험이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영적 기술과 연관된 심리적 과정이다. 그리고 기도의 이 두 기능은 결코 완전히 분리될 수 없다.
깨우침을 얻은 기도는 바깥에 계신 personal 하나님(God) 뿐 아니라, 또한 안에 계시고 impersonal 신성인, 깃드는 조절자를 인식해야 한다. 사람이 기도할 때 파라다이스에 계신 우주의 아버지 개념을 붙잡으려고 애쓰는 것은 전적으로 적절하다; 그러나 가장 실용적 목적을 위한 가장 효과적인 기법은, 원시적 mind가 늘 버릇처럼 한 것과 똑같이, 가까이 있는 타아의 개념으로 돌아가고, 다음에 이 타아의 개념이 단순한 상상으로부터 조절자의 사실적 계심 속에서 하나님이 필사 인간에 깃든다는 진리에 이르기까지 진화했음을 인식하는 것이다. 그래서 인간은 자기 속에 깃들고, 살아 계시는 하나님, 우주 아버지의 바로 그 존재이면서 알맹이인 타아, 실재하고 진정하고 신성한 타아와 함께, 말하자면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할 수 있다.
4. 윤리적인 기도
91:4.1 간청하는 사람이 동료들보다 이기적인 이익을 추구할 때 어떤 기도도 윤리적일 수 없다. 이기적이고 물질적인 기도는 이타적이고 신성한 사랑에 기반을 둔 윤리적 종교와 양립할 수 없다. 그러한 모든 비윤리적인 기도는 사이비 마법의 원시 수준으로 되돌아가며 진보하는 문명과 깨우친 종교에 부합하지 않는다. 이기적인 기도는 사랑과 공정에 기반을 둔 모든 윤리의 정신을 위배한다.
기도가 행동을 대신할 정도로 타락해서는 안 된다. 모든 윤리적 기도는 행동을 이끄는 자극이자 초자아적 성취의 이상적 목표를 향한 진보적 노력의 길잡이가 되어야 한다.
네가 기도하는 모든 것에서 공평하라; 하나님이 편애를 보이고, 다른 자녀들과 너의 친구와 이웃, 아니 적보다도 더 너를 사랑하기를 기대하지 말라. 그러나 자연 종교, 즉 진화된 종교에서 드리는 기도는, 후일에 계시된 종교처럼 처음에는 윤리적인 것이 아니었다. 모든 기도는, 개별로 하든 공동으로 하든, 이기적이거나 이타적일 수 있다. 다시 말해서, 기도는 자아 또는 남을 중심으로 드릴 수 있다. 기도가 기도하는 자를 위해서나 그의 동료를 위해서 아무것도 구하지 않을 때, 혼의 그러한 태도는 진정한 예배의 수준으로 향한다. 자기 본위의 기도는 고백과 부탁을 포함하고, 흔히 물질적 은혜를 부탁하는 것이다. 기도는 용서를 다루고 자제력을 높이는 지혜를 찾을 때, 어느 정도 더 윤리적이다.
이기심 없는 형태의 기도는 힘을 주고 위로가 되는 반면, 물질주의적인 기도는 진보하는 과학적 발견이 인간이 법과 질서가 있는 물리적 우주에서 산다는 것을 보여줌에 따라서, 실망을 주고 사람이 환상에서 깨어나게 만들도록 정해져 있다. 한 개인이나 민족이 미숙할 때에는 원시적, 이기적, 물질적 기도로 특징 지어진다. 어느 정도까지 모든 그러한 간구는, 변함없이 그러한 기도에 대한 응답을 얻는 데 기여하는 노력으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어느 정도 효과적이다. 참된 신앙의 기도는 비록 그러한 청원이 영적인 인정을 받을 가치가 없을지라도 언제나 삶의 기술을 향상시키는 데 기여한다. 그러나 영적으로 발달한 사람은 그러한 기도에 관해 원시적이거나 미성숙한 mind를 낙담시키려는 시도에 큰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기도가 하나님을 바꾸지 않더라도, 믿음과 확신에 찬 기대로 기도하는 사람에게는 기도가 종종 크고 지속적인 변화를 가져온다는 것을 기억하라. 기도는 진화하는 인류의 남성과 여성들에게 마음의 평화, 쾌활함, 평온함, 용기, 극기, 공정한 마음의 근원이 되어 왔다.
5. 기도의 사회적 영향
91:5.1 조상 숭배에서 기도는 조상의 이상을 추구하는 길로 이끈다. 그러나 신(Deity)을 예배하는 한 모습으로서 기도는 모든 다른 그러한 관습을 뛰어넘는데, 이는 기도가 신성한 이상을 추구하도록 이끌기 때문이다. 기도에서 타아의 개념이 지극히 높아지고 신성하게 되면서, 사람의 이상도 따라서 단지 인간의 수준에서 하늘 같고 신성한 수준을 향하여 올라가며, 모든 그러한 기도의 결과는 성품을 높이고 인간 personality의 깊은 통일을 이룬다.
그러나 기도가 항상 개인적일 필요는 없다. 집단이나 집회에서 하는 기도는 그 영향이 상당히 사회에 퍼지므로 아주 효과가 있다. 한 무리가 도덕적 향상과 영적 진보를 위하여 공동체의 기도에 참여할 때, 그러한 예배는 그 집단을 구성하는 개인에게 반응을 일으킨다; 그들 모두 참여하기 때문에 더 좋아진다. 한 도시 전체나 한 나라 전부조차 그렇게 기도하는 예배로부터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신앙고백, 회개, 기도는 개인과 도시, 나라와 온 민족이 힘찬 개혁의 노력과 과감한 성취를 향하여 용감하게 행동하도록 이끌어 왔다.
너희가 어떤 친구를 비난하는 버릇을 참으로 고치고 싶다면, 그러한 태도의 변화를 가져오는 데 가장 빠르고 확실한 방법은 일생에 날마다 그 사람을 위하여 기도하는 습관을 길들이는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기도가 사회에 미치는 영향은 대체로 두 가지 조건에 의존한다:
1. 기도를 받는 사람은, 자신이 기도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2. 기도하는 사람은 누구를 위하여 기도하든, 그 사람과 가까운 사회적 접촉을 가져야 한다.
91:5.6 기도는 기법이며, 조만간에 그것으로 모든 종교는 제도화된다. 시간이 되면 기도는 수많은 2차적 매체와 결합되는데, 사제, 신성한 책, 예배 의식, 예식과 같이, 일부는 유익하고 일부는 확실히 해롭다.
그러나 영적 빛을 더 크게 받은 지성들(minds)은, 자기의 연약한 영적 통찰력을 동원하기 위하여 상징적 개념을 갈망하는 지적 자질이 부족한 자들에게 인내하고 관대해야 한다. 강한 자가 약한 자를 업신여겨서는 안 된다. 상징적 개념 없이 하나님을 의식하는 자들은 신(Deity)을 경배하기 어려워하는 자들에게, 그리고 형식과 의식 없이 진(眞), 미(美) 선(善)을 존중하는 사람들에게 상징적 은혜-사역을 부정해서는 안 된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예배하는 가운데 대부분의 필사자는 그들이 헌신하는 대상-목표의 어떤 상징을 떠올린다.
6. 기도의 범위
91:6.1 기도는 한 영역의 personal 영적 세력과 물질적 감독자들의 뜻과 행동과 연결되지 않으면, 자신의 물리적 환경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없다. 기도의 간청 영역에는 명확한 한계가 있지만, 기도하는 사람들의 믿음에는 그런 한계가 동일하게 적용되지 않는다.
기도는 실질적이고 유기체의 질병을 치료하는 기술은 아니지만, 튼튼한 건강을 즐기고, 수많은 정신적, 감정적, 신경적 질환의 치료에도 기여했다. 또한 실제 세균성 질병에서도 기도는 다른 치료 절차의 효능을 더했던 많은 사례가 있다. 기도는 쉽게 성내고 투덜거리는 많은 병자들이 인내의 귀감이 되게 하였고, 다른 모든 고통받는 사람에게 영감을 주었다.
기도의 효력에 관한 과학적 의심, 그리고 신성한 근원으로부터 도움과 안내를 받으려 하는 늘 있는 욕구, 이 두 가지를 절충하기가 아무리 어렵더라도, 믿음으로 드리는 성실한 기도는 개인의 행복, 개인의 자제, 사회적 조화, 도덕적 진보, 영적 달성을 증진하는 데 막강한 힘이라는 것을 결코 잊지 말라.
기도가 순전히 인간적인 행위 일지라도, 사람의 또 다른 자아인 자신과 가지는 대화로서, 기도는 인간 mind의 무의식 영역에 쌓아 두고 보존된, 인간 본성에 비축된 힘을 실현하는 데 가장 효과 있게 접근하는 기법이다. 기도의 종교적 함축성과 영적 중요성은 별도로 하고, 기도는 건전한 심리학적 실천이다. 충분히 곤경에 빠지면, 대부분의 사람은 어떤 방법으로든 어떤 도움의 근원에게 기도를 드리고 싶어 한다는 것이 인간의 체험에서 사실이다.
하나님께 자신의 어려움을 해결해 달라고 부탁할 정도로 너무 게으르지 말고, 너희 자신이 단호하고 용기있게 당면한 문제에 달려들면서, 너희를 인도하고 지탱할 영적 힘을 달라고 하나님께 주저하지 말고 요청하라.
91:6.6 기도는 종교 문명의 진보와 보존에 필수 요소였고, 기도하는 자가 오로지 과학적 사실, 철학적 지혜, 지적 성실성, 영적 믿음에 비추어 기도한다면, 사회를 더욱 향상시키고 영답게 변화시키는 데 여전히 큰 기여를 할 것이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가르친대로―정직하게, 사심 없이, 공평함으로, 그리고 의심하지 말고―기도하라.
그러나 기도하는 자가 개인적으로 영적 체험을 겪으면서 드리는 기도의 효력은, 어떤 면에서도 그러한 예배자의 지적 이해력, 철학적 총명, 사회적 수준, 문화적 지위, 또는 필사자의 기타 성취에 달려있지 않다. 마음과 영을 동반한 믿음의 기도는 즉각적이며, 개인적이고, 체험적이다. 모든 다른 필사자의 성취들과 상관없이, 누구나 창조주와 소통할 수 있고, 사람이 창조자의 실체인 깃드는 생각 조절자와 접촉하는 바로 그 영역의 문턱에 그렇게 효과적으로 즉시 다가갈 수 있는 다른 기법은 하나도 없다.
7. 신비주의, 황홀감, 영감
91:7.1 신비주의는 하나님(God)의 존재에 대한 의식을 배양하는 기술로서 전적으로 칭찬할 만한 것이지만, 그러한 관행이 사회적 고립으로 이어지고 종교적 광신주의로 절정에 이른다면 거의 비난 받아 마땅하다. 지나치게 흥분한 신비주의자가 신성한 영감이라고 평가하는 것은, 전적으로 너무나 흔히 자신의 깊은 mind에서 우러나온 것이다. 필사 mind와 깃드는 조절자와의 접촉은 종종 헌신적인 묵상으로 유리하게 되지만, 동료 생명존재에 대한 사심없는 사역에서 온 마음을 다해 사랑의 봉사를 함으로써 더 자주 촉진된다.
지난 시대에 나타났던 위대한 종교 스승과 선지자들은 극단적 신비주의자가 아니었다. 그들은 하나님을 아는 남녀였고, 동료 필사자에 대한 사심없는 사역으로 하나님을 최선으로 섬겼다. 예수는 자주 사도들만 외딴곳으로 데리고 가서 잠시동안 명상과 기도에 잠기게 했지만, 대체로 사도들이 군중과 함께 봉사하는 접촉을 하게 했다. 사람의 혼은 영적 영양뿐 아니라 영적 운동이 필요하다.
종교적 환희는 정상적인 정신 상태에서 일어날때 괜찮을 수 있지만, 그러한 체험도 종종 감정적인 영향의 결과일 뿐 깊은 영적 특징의 표현은 아닐 수 있다. 종교적인 사람들은 매우 강렬한 심리적 예감이나 감정적 체험을 모두 신성한 계시나 영적인 소통으로 여겨서는 안된다. 진정한 영적 환희는 보통 외적으로 나타나는 평온함과 거의 완벽한 감정적 통제와 관련되어 있다. 그러나 진정한 예언적 환상은 심적인 것을 초월한 예감이다. 이런 방문은 거짓 환각도 아니며, 몽롱한 환희도 아니다.
인간 mind는 잠재의식에서 떠오르는 것이나 초의식의 자극에 반응할 때, 소위 영감에 반응할 수 있다. 어느 경우든 의식 내용의 그러한 확대는 그 개인에게는 다소 이질적인 것처럼 보인다. 제한되지 않은 신비주의적 열정과 만연한 종교적 황홀감은 영감받은 것이 증명된 것도 아니며, 추정하건대 신성한 자격을 갖춘 것도 아니다.
91:7.5 신비주의ㆍ황홀감ㆍ영감과 같은 이 모든 이상한 종교적 체험들에 대한 실제적인 검증은 이러한 현상들이 개인을 어떻게 만드는지 관찰하는 것이다:
1. 더 나은 완전한 육체적 건강을 누리게 하는가.
2. 개인의 정신생활에서 더 효과 있게, 실용적으로 활동하게 하는가.
3. 개인의 종교적 체험을 더욱 충만하고 즐겁게 사회와 연결 짓는가.
4. 일상적인 인간 존재의 평범한 의무를 충실히 이행하면서 그의 하루하루의 삶을 더 완전하게 영적으로 만들어가고 있는가.
5. 진리ㆍ아름다움ㆍ선에 대하여 개인이 더욱 사랑하고 감사를 강화하는가.
6. 현재 인정된 사회적ㆍ도덕적ㆍ윤리적ㆍ영적 가치 기준을 보존하는가.
7. 개인의 영적 통찰력―하나님 의식을 키우는가.
91:7.13 그러나 기도는 이러한 예외적인 종교적 체험과 실질적인 관련이 없다. 기도가 지나치게 미학적이 되고, 거의 전적으로 천국의 아름답고 행복한 깊은 명상으로만 이루어질 때, 기도는 사회적인 영향력을 많이 상실하고 신비주의와 신자들을 고립시키는 경향으로 향하게 한다. 지나칠 정도의 과도한 개인적 기도에는 분명한 위험이 있으며, 이는 집단 기도, 공동 기도로 교정되고 예방될 수 있다.
8. 개인적 체험으로서의 기도
91:8.1 기도에는 정말로 자발적인 면이 있는데, 원시인은 하나님에 대한 명확한 개념이 없었던 시기에도 기도하는 자신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초기 인간은 두 가지 상황에서 기도를 하곤 했다: 괴로움에 처했을 때는 도움을 청하는 충동을 느꼈고; 기뻐할 때는 기쁨의 충동적인 표현에 빠졌다.
기도는 마법이 진화된 것이 아니다; 이 둘은 따로 생겨났다. 마법은 신(Deity)을 상황에 맞게 조절하려는 시도였고, 기도는 성격자가 신(Deity)의 뜻에 맞게 조정하려는 노력이다. 진정한 기도는 도덕과 종교성이 있다; 마법은 이 중에 어느 것도 없다.
기도는 확립된 관습이 될 수 있다; 많은 사람은 다른 사람들이 그렇게 기도하기 때문에 기도한다. 그러나 또 다른 사람들은 정기적인 간청을 드리지 않으면 끔찍한 일이 일어날까 봐 기도한다.
어떤 개인에게 기도는 고요한 감사의 표현이다; 다른 개인에게는 사회적 헌신인 집단의 찬미를 표현한 것이다; 때로는 다른 종교의 모방이기도 하지만, 참된 기도는 어디에나 존재하는 창조주 영(spirit)과 가지는 생명존재 영적 본성의 신실하고 신뢰하는 소통이다.
기도는 하나님 의식의 자발적 표현이 될 수도 있고, 신학적 공식의 무의미한 암송일 수도 있다. 하나님을-앎으로써 즐거워하는 혼의 환상적 찬양이 될 수도 있고, 공포에 사로잡힌 필사자의 노예적 복종일 수도 있다. 때로는 영적 열망의 애절한 표현이 될 수도 있고, 경건한 구절들의 외침일 수도 있다. 기도는 기쁜 찬양이나 용서를 구하는 겸손한 간구일 수도 있다.
91:8.6 기도는 불가능한 것을 바라는 어린아이 같은 부탁이든지, 아니면 도덕적 성장과 영적 힘을 얻으려는 성숙한 탄원일 수도 있다. 간구는 날마다 먹는 빵을 얻기 위하거나, 하나님을 찾고 그의 뜻을 행하려는, 마음을 다하는 소망을 담을 수도 있다. 기도는 온통 이기적 요청일 수도 있고, 사심 없는 형제 사랑을 실현하기 위한 참되고 훌륭한 손짓일 수도 있다.
기도는 복수하려는 성난 외침일 수도 있고, 자기의 적을 위한 자비로운 중재일 수도 있다. 기도는 하나님의 생각을 바꾸려는 희망을 표현한 것일 수도 있고, 사람의 자아를 변화시키는 강력한 기법일 수도 있다. 기도는 엄격하다고 생각되는 재판관 앞에서 길 잃은 죄인이 움츠러들어 드리는 탄원이든지, 또는 살아 계신 자비로운 하늘 아버지의 해방된 아들이 기쁨에 넘쳐 표현하는 말일 수도 있다.
현대인은 순전히 개인적 방법으로 하나님과 여러 가지를 의논한다는 생각에 당혹스러워한다. 많은 사람이 규칙적인 기도를 포기했다; 그들은 특별한 압력을 받아야―비상시에―만 기도한다. 인간은 하나님과 대화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하지만, 오직 영적 어린이가 하나님을 설득하려고 나서거나, 그의 생각을 주제넘게 바꾸려 할 것이다.
그러나 진정한 기도는 실체에 이른다. 공기가 올라가고 있을때에도, 어떤 새든지 날개를 펴지 않고는 날아오를 수 없다. 기도가 사람을 높여 주는 것은 기도가 우주의 올라가는 영적 기류를 이용하여 진보하는 기법이기 때문이다.
진정한 기도는 영적 성장에 보탬이 되고, 태도를 고치며, 신과 소통함으로부터 생기는 만족을 낳는다. 그 기도는 하나님-의식이 저절로 터져 나오는 것이다.
91:8.11 하나님은 사람에게 진리를 더 계시해 주고, 아름다움을 더 헤아리게 만들고, 확대된 선 개념을 줌으로 사람의 기도에 응답한다. 기도는 주관적 손짓이지만, 인간 체험의 영적 수준에서 막강한 객관적 실체들과 접촉한다. 기도는 인간을 초월하는 가치를 얻으려고 인간이 뜻깊게 손을 뻗는 것이다. 기도는 가장 효력 있는 영적 성장 자극제이다.
말은 기도와 상관이 없다. 말은 다만 영적 간청의 강물이 어쩌다 흘러가는 지적 경로일 뿐이다. 기도에 쓰이는 낱말의 가치는 사사롭게 드리는 예배에서 순전히 자신에게 암시하며, 집단 예배에서는 사회에게 암시한다. 하나님은 혼의 태도에 응답하고, 말에 응답하지 않는다.
기도는 갈등에서 도피하는 기술이 아니라, 오히려 갈등의 직면에서 성장을 자극하는 도구이다. 어떤 것이 아니라 가치를 위해 기도하고, 만족이 아니라 성장을 위해 기도하라.
9. 효과 있는 기도의 요건들
91:9.1 만일 너희가 효과적인 기도를 드리고 싶다면, 너는 널리 적용되는 간구의 법칙을 mind 안에 새겨야 한다:
1. 너는 우주 실체의 문제에 성실하고 용기 있게 맞서면서 강력한 기도자로서 자격을 갖추어야 한다. 너는 우주적인 생명력을 가져야 한다.
2. 너는 인간으로서 적응하는 인간적 능력을 정직하게 다 소모했어야 한다. 너희는 부지런해야 한다.
3. 너는 mind의 모든 소망과 혼의 모든 갈망을 영적 성장의 변화된 포용속에 굴복시켜야 한다. 너는 의미의 향상과 가치의 향상을 체험해야 한다.
4. 너는 신성한 의지를 온맘으로 선택해야 한다. 우유부단한 죽은 중심을 없애야 한다.
5. 너는 아버지의 뜻을 인식할 뿐만 아니라 그것을 하기로 선택하고, 아버지의 뜻을 실제로 실행하는데 조건없이 거룩하게, 역동적으로 헌신하는데 영향을 미쳐야 한다.
6. 너의 기도는 파라다이스 상승에서 마주하는―신성한 완전을 달성하는―길에서 오직 구체적인 인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신성한 지혜를 얻도록 독점적으로 지도받게 될 것이다.
7. 그리고 너는 믿음―살아있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
[유란시아 중도자 우두머리가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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