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희 선생 영당지
1. 황희가 청백리 중 으뜸이었다고요?
준비물: 물, 사진기, 운동화
* 음식물을 가지고 갈 수 없으니, 물 정도만 준비해요.
* 유적지를 돌아보려면 운동화나 편한 신발을 신는 게 좋아요.
청백리는 관직에서 양심에 어긋나는 짓을 하지 않고, 부지런하며 검소한 사람을 말해요. 조선 시대에는 관직 수행 능력이 뛰어나고 근검 절약하는 등 우러러볼 만한 인물을 뽑아 청백리라 부르며 그 후손들에게까지 관직의 길을 열어 주었어요. 황희, 맹사성, 이황, 최만리, 이원익 등이 청백리로 뽑혔다고 해요.
황희는 청백리의 대표적인 인물이에요. 세종 대왕의 태평성대1)를 함께 이룬 뛰어난 재상이었어요. 어진 정책으로 백성을 도왔고, 원리와 원칙을 지키며 재상으로서 책임을 다했지요. 평생 검소하게 생활한 황희의 삶은 많은 사람들의 귀감2)이 되었어요. 은퇴 후에는 고향에 ‘반구정’이라는 이름의 작은 정자를 짓고 살았어요. 반구정에 올라 강을 바라보면 ‘세상의 시름을 잊기에 이 작은 정자 하나면 족하다.’라고 말했던 황희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거예요. 후손들은 황희의 정신을 기리기 위해 반구정 주변에 사당과 기념관을 세웠답니다. 황희 선생 유적지에서는 재상으로서 활약한 황희의 업적과 청렴한 삶의 교훈을 배울 수 있어요. 세종 대왕의 태평성대에 황희는 어떤 일을 했나요? 세종 대왕은 아버지 태종 때 귀양 간 황희를 불러 영의정이라는 벼슬을 내렸어요. 황희는 18년 동안이나 세종 대왕을 도와 세종 대왕이 많은 업적을 남기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지요. 외교와 문물 제도를 정비하고, 불교를 들인 세종 대왕과 유교를 고집하는 신하들 간의 마찰도 해결했어요. 명나라의 예법을 보완하여 조선 시대의 예법을 바르게 잡는 데도 공을 세웠지요.
▲황희 선생 영당지 전경
2. 황희를 존경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황희는 원칙과 소신을 지키며 정치를 했고, 백성을 돌보고 나라를 부강하게 하는 데에는 앞장섰지만, 자신은 누추한 집에서 낡은 옷을 입고 살았답니다.
1) 원칙을 지키는 소신 있는 행동
태종이 왕으로 있을 때 세자를 폐하는 문제로 조정이 시끄러웠어요. 태종은 맏아들인 양녕 대군이 세자의 자질이 부족해 셋째인 충녕 대군을 세자에 올리려고 했지요. 황희는 맏아들 대신 아랫사람을 세자로 세우는 것은 큰 화를 부를 수 있다면서 태종을 설득했어요. 충녕 대군이 세자에 오르자 황희는 남원으로 귀양을 떠나야 했어요. 충녕 대군은 나중에 세종 대왕이 되었지요. 세종 대왕은 임금이 되자마자, 원칙을 굽히지 않은 황희를 다시 불러들였어요. 소신 있게 원칙을 지키는 황희의 인물됨을 알았기 때문이지요.
2) 엄하게 다스리면서 배려하는 마음
황희는 김종서 장군의 인품3)을 잘 알았고, 그가 더 큰 인물이 될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도 황희는 김종서를 자주 호되게 꾸짖었지요. 맹사성이 황희에게 김종서를 자주 혼내는 이유를 묻자, 황희는 이렇게 말했어요. “종서는 성질이 거만하고 너무 과감하게 일을 해서 일을 그르칠 수 있어요. 후일 재상의 자리에 앉았을 때, 신중하게 일하고 경솔하지 않도록 깨우쳐 주고자 함이지요.” 황희는 정승 자리에서 물러나면서 자신의 뒤를 이을 사람으로 김종서를 추천했어요. 이렇게 황희는 엄하게 다스리면서도 배려하는 마음을 갖고 있었답니다.
3) 청렴한 재상
거친 잠자리, 누추한 집, 낡은 옷. 이것이 한 나라의 재상 황희의 모습이었어요. 백성을 돌보고 나라를 부강하게 하는 일에는 앞장섰지만, 집에 돌아오면 평범한 백성들과 다를 바가 없었어요. 황희는 ‘우리들 몸이 없어진 뒤의 일은 단지 ‘청렴4) 렴(廉)’자 하나를 지키는 것이다.’라고 말했답니다. 청렴을 생활신조로 삼고 원칙대로 살아온 삶의 자세를 엿볼 수 있지요.ㅡ 87세에 관직에서 물러난 황희는 파주에 작은 정자를 짓고 ‘반구정’이라는 이름을 붙였어요. 갈매기와 벗 삼아 지낸다는 뜻의 이름이지요. 소박하게 일생을 마무리하고자 했던 황희의 바람을 알 수 있어요.
3. 진정한 선비의 길, 함께 걸어 볼까요?
추천 체험 학습 코스
방촌 기념관 → 반구정 → 앙지대 → 방촌 영당과 경모재
1) 방촌 기념관
재상으로서 일구어 온 황희의 업적을 살펴볼 수 있는 곳이에요. 황희의 유품과 서책, 글씨도 전시되어 있어요. 나랏일에는 엄정하고 남들에게는 온유하며 자신에게는 엄격했던 황희의 발자취를 찾아볼 수 있어요.
2) 반구정
반구정은 황희가 관직에서 물러난 후, 갈매기를 벗 삼아 여생을 보내고자 세운 정자예요. 사각형 지붕의 정자는 단정한 느낌을 주지요. 임진각이 내려다보이는 강가의 기암절벽5) 위에 있어요. 잔잔한 강물을 보며 마음을 가다듬을 수 있는 장소랍니다.
3) 앙지대
원래 반구정이 있던 자리가 바로 이곳이에요. 반구정을 옮기면서 원래의 자리를 기념하기 위해 앙지대라는 정자를 세웠어요. 정자 모양이 육각형이라서 좀 더 화려해 보여요. 앙지대와 반구정에서 보는 풍경이 어떻게 다른지 감상해 보세요.
4) 방촌 영당과 경모재
방촌 영당은 황희를 기리기 위해 후손들이 황희의 호를 따서 영정을 모신 사당이에요. 해마다 황희가 태어난 음력 2월 10일에 후손들과 지역 유림들이 제사를 지내지요. 문중의 큰 제사는 경모재에서 지내요. 방촌 영당에는 글씨가 멋진 현판이 걸려 있어요. 그 안에 황희의 영정이 걸려 있지요.
▲황희 선생 영당지
출처:(천재학습백과 초등 창의적 체험활동)
2025-02-02 작성자 명사십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