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스카우트 생활
나는 고등학교 때 특별 활동으로 보이스카웃 활동을 열심히 하였다.
보이스카웃을 소년단이라고 하였으며 단복이 있다.
카키색 상하의에 목에는 스카프를 둘렀다.
국가와 사회에 봉사하겠다는 3대의 선서가 있으며 소년단원들은 이 삼대선서의 의미로 3개의 손가락으로 인사를 한다.
군인들은 인사를 할 때 5개의 손가락을 펴서 이마에 대고 거수경례를 한다.
보이스카웃 단원들은 엄지와 새끼손가락을 꾸부리고 가운데 세 손가락만 펴서 이마에 대고 거수경례를 한다.
악수를 할 때도 손을 펴서 가운데 세 손가락은 모으고 엄지와 새끼손가락은 띠워서 상대의 엄지와 새끼손가락이 자기 엄지와 새끼손가락 사이로 끼게 해서 악수를 한다.
그래서 각 소속대인 학교 소년단 대표들이 모여서 결성한 것이 삼지회다.
뺏지는 백합꽃 세 갈래인 것 같이 균형을 잡고 있다.
보이스카웃 영조장 시절
중학교 소년단 대표를 도반장이라고 하고 고등학교 소년단 대표를 영조장이라고 한다.
나는 막바지 공부하는 고3때에 영조장을 하는 바람에 공부를 등한히 하는 우를 범했다.
학교 소년단을 지도하는 선생님을 대장이라고 하고 덕수는 구창모 선생님이시다.
당시는 각 학교마다 거의 소년단이 결성되어 있고 덕수는 48대다.
내가 48대 영조장으로 있을 때가 덕수 보이스카웃 전성기 시절인 것 같다.
소년단원은 1일 1선을 모토로 세워 하루에 한 가지씩 좋은 일을 하라고 교육을 한다.
소년단원은 봉사정신을 기본으로 하며 체력단련과 단합을 위하여 하이킹 캠핑 등산을 한다.
국내 캠핑대회를 켐보리(camporee) 국제 캠핑 대회를 쨈보리 (Jamboree)대회라고 한다.
켐보리는 1년에 한 번씩 쨈보리는 4년에 한 번씩 각 나라를 순회하며 열린다.
우리는 학교 등교시간보다 1시간 정도 일찍 등교하여 소년단복으로 갈아입고 오간수다리 앞과 동대문 네거리에서 교통정리를 하였다.
중학교의 조그만 소년단원이 호각을 불면서 자동차를 통제하며 교통정리를 하는 것을 보면 일반인은 신기하게 바라보며 신호에 잘 따라준다.
청소도 하는데 흥인지문인 동대문을 청소 할 때는 성을 타고 지붕까지 올라갔다.
동대문을 하도 관리를 하지 않아 흙이 문이진 것은 물론 기와장도 깨져 있었으니 우리나라 문화재 관리가 얼마나 허술한 시기인지 알만 하다.
1950년대 당시는 우리나라가 세계의 최빈국이니 살기 힘든 시절에 문화재를 돌본다는 것은 사치에 속했다.
캠핑은 토요일 오후에 배낭을 지고 1박2일이 전부다.
배낭은 사각 군인 배낭에 담요를 두르고 그 위에 텐트 한 짝을 감아서 메고 가는데 군인 야영할 때 지고 가는 배낭과 똑같다,
2인 1조의 텐트는 A 텐트인데 두 쪽을 연결하여 가운데 폴을 바치고 옆에서 보면 A 자모양이라 A 텐트라고 부른다.
이 텐트가 두꺼운 천으로 방수가 되게 만들었는데 어찌나 무거운지 대원들에게는 큰 짐이다.
지금은 나일론으로 만든 얇은 자동 텐트와 비교하면 격세지감을 느낀다.
항고와 추라이 판 코펠 등 거의 다 미제물건이다.
항고로 밥을 짓는데 예상외로 밥이 잘되고 맛있다.
물론 삼층밥도 짖고 태우기도 하지만 야외에서 밥 짓고 협동심도 배우는 것이 큰 몫시다.
야외에서 마른나무 가져다가 밥 짓는 것이 시간도 많이 가고 구진일이라 싫어하는 일중에 하나다.
캠프 화이어(Camp fire)는 밤에 모닥불을 피워야 하는데 불을 피울 화목을 구하는 게 쉽지 않아 잠시 모였다 노래나 부르고 헤어져 텐트로 가서 잔다.
겨울에는 야외 텐트에서 자는 게 보통 힘든게 아니라 하이킹으로 대체도 한다.
미8군에 해리 벗살(Harry Birdsal) 이란 민간 고위 고문관이 있는데 우리에게 매우 협조적이라 이분이 캠핑을 갈 때 미군 트럭을 빌려주면 우리에게는 큰 행운이다.
50대의 이분은 총각으로 우리나라 고아들을 4명이나 입양하여 같이 살며 학교를 보내준다. 그런 고아 중에 우리학교 중학생도 있다.
절대로 권위주의적이지 않으며 친화적이라 다 큰 양자들이 때디 때디 하며 목을 감고 뒹굴며 같이 노는 것을 보면 우리나라 부모들의 엄한 가부장적 형태와는 너무나도 다르다.
내가 영조장 때에 미사리에서 전국 캠보리 대회가 일주일간 열렸다.
누가 잘 뛰어서 1등을 하는 것이 아니라 각 대의 협동심과 친화력을 평가하는 것이라 친목경기라고 하는 것이 더 맞다.
캠보리 기간 중 일요일에 천주교 기독교 불교에서 유명한 분이 와서 싸인을 해 주는데 세 줄로 길게 늘어서서 싸인을 해 준다.
천주교 기독교 줄은 계속 줄어드는데 불교 줄은 줄어들지를 않으니 불교 줄에 서 있던 단원들이 천주교 기독교로 계속 빠져 나간다.
나는 계속 불교 줄에 서서 끈질기게 기다렸다.
내 차례가 오니 스님 세분 중 두 사람은 보좌를 하고 혼자 싸인을 하는데 만년필로 싸인을 해 주는 것이 아니라 붓으로 써준다,
다른 단원들은 종이 노트로 싸인을 받는데 나는 새로 산 스카프를 내밀었다.
붓으로 天上天下唯我獨尊(천상천하유아독존) 이라고 쓰고 설명까지 해 주시니 시간이 많이 갈 수밖에 없다.
세상에 자기 혼자라니, 참 뜻을 모르고 지나치다가 신문에 큰스님 청담이라고 쓰여 있어 보던 이름 같아 스카프를 얼른 꺼내보니 靑潭(청담) 이라고 선명하게 쓰여 있는 것이 아니가....
우이동 도선사에 있는 큰 동상이 청담스님 동상이다.
청담스님 친필
대한 소년단이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한 5년 후에 1966년 한국 보이 스카우트 연맹으로 바뀌었다
소년단을 척후병이라고도 했고 개척정신(후론티어 Frontier)정신을 강조했다.
우리나라는 1922년 조철호의 조선 소년군과, 정성채의 소년 척후단이 대한 소년단의 모체다.
보이스카웃은 영국의 베이든 파월경(Baden Powell)이 1908년에 최초로 창시했다.
걸스카웃은 베이든 파월 경의 동생 아그네스가 1910년에 창시했다.
보이스카웃이 생기게 된 배경에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에 먼저 이주한 네덜란드인 보어 족과 영국이주민 사이에 벌어진 보어전쟁이었다.
영국군 수비대장 베이든 파월소장은 숫적으로 열세이고 불리한 상황에서 타개책으로 소년들을 모아 척후병으로 활용을 하여보니 너머 잘하고 효과도 좋았다.
베이든 파월은 영국으로 귀국 후에 소년들을 모아 체계적으로 청소년에 맞는 교육을 시켜 최초의 보이스카웃을 창시한 것이다.
우리나라는 세계 쨈버리 대회를 1991년 강원도 고성에 이어 2023년 전북 부안 새만금에서 연다.
옛날에는 학교마다 소년단이 결성되어 있었으나 현재는 보이스카웃이 있는 학교를 찾아보기 힘들고 단원수도 현저히 줄어든 상태다.
학생들이 과외하기도 바빠 보이스카웃이 있는지도 모르는 형편이다.
이런 상태에서 새만금 세계 쨈보리가 얼마나 성공할지는 두고 볼 일이다.
나는 평생스카웃인 라이프스카웃(Life Scout)의 명예를 갖고 있으며 스카웃 활동은 청소년으로서 바람직 한 특별활동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