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님, 역사가 아니라 말이 문제랍니다
-‘남침’ 뜻 몰랐다고 역사 의식이 무너졌다니...
오마이뉴스 13.06.18 l이무완(nami2001)
초등학교 아이도 알 만한 문제 하나 내겠다. 우리에게 익숙한 '객관식 선다형' 문제이니 주눅 들지 마시라. 정답은 몇 개라고도 미리 말하지 않겠다. 다음 보기 가운데 낱말의 뜻을 잘못 설명한 것은 무엇인가?
① 남풍: 북쪽으로 불어오는 바람.
② 북벌: 남쪽에서 북쪽을 치러 감.
③ 북침: 남쪽 나라가 북쪽 나라를 침략하는 것.
④ 북풍: 북쪽에서 남쪽으로 불어가는 바람.
⑤ 남침: 북쪽에서 남쪽을 침범함.
어떤가, 답을 쉽게 찾았는가? 정답을 말하기 앞서 하나씩 톺아보겠다.
바람의 방향을 가리키는 말은 우리나라 사람치고 안 들어본 사람은 없을 거다. 일테면 북풍, 남풍, 북동풍, 남동풍 같은 말은 초등학교 3학년 1학기 4단원에서 배우는 말이고, 텔레비전 뉴스 끝 무렵에 기상캐스터가 몸매가 드러나는 옷차림으로 나와 날씨 예보를 해줄 때도 곧잘 듣는 말이기도 하다.
그러면 북풍은 북쪽으로 불어가는 바람인가, 북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인가? 초등학교 과학 교과서에 보면 바람이 불어오는 쪽 이름을 붙여 '○풍'하고 붙인다고 배운다. 그러니 '북풍'은 북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이고, '남풍'은 남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이다. 바람이 불어가는 방향이 아니라 바람이 시작한 곳을 나타낸다.
그런데 '남침'과 '북침', '북벌'은 풍향하고는 다르다. 시작점을 말하는 게 아니라 나아가는 방향을 말한다. 북침은 북으로, 남침은 남으로, 북벌은 북으로 쳐들어가는 것이다.
초등학교 5학년 사회 2학기 '대한민국의 발전과 오늘의 우리' 단원에서는 '1950년 6월 25일 북한은 남한을 무력으로 통일하기 위해 북위 38도선을 넘어 침략해 왔다'고 배운다. 이어 국제연합은 북한을 침략자로 규정해서 유엔군과 국군이 반격한다고도 배운다. 그러니 정답은 ⑤번이다.
말이 길어졌지만, 앞서 6월 11일치 <서울신문>에 "고교생 69% "한국 전쟁은 북침" 무너지는 우리 청소년 역사인식"이라는 자극스런 제목을 단 기사가 실렸다. 충격스럽다고 했다. 이 기사를 본 박근혜 대통령은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 자리에서 "학생들의 약 70%가 6·25를 북침이라고 한다는 것은 교육현장의 교육이 잘못된 것을 보여주는 단면"이라며, "교사의 교육 방법에 차이가 있고 다양하게 가르치는 것이 아이들에게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지만, 진실을 왜곡하거나 역사를 왜곡하는 것은 절대로 있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고 한다. 역사 왜곡의 주체를 교사 탓으로 돌리고 역사교육을 바로 해야한다고 했다.
교사로서 괜히 뜨끔하고 주눅부터 들었는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뭔가 이상하고 찜찜하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가? 어떻게 초등학교 5학년 사회 시간에도 배우는 6·25 전쟁을 고교생 70%가 북한의 남침으로 일어난 줄 몰랐다니 어찌 이럴 수 있나. 하지만 근본 원인은 역사 사실을 묻는 물음에 있다. 6·25전쟁을 일으킨 '북한'을 쏙 빼고 남침이냐 북침이냐 물으면 누구라도 헛갈릴 수 있다.
다시 본줄기로 돌아가보자. 모름지기 물음은 쉬워야 한다. 듣는 사람이 알아먹게 물어야 제대로 묻는 거다. 그게 상식이다. 듣는 사람이 헛갈리게 묻는 건 끝이 빤히 내다보인다. 묻는 사람의 의도가 무엇인가? 남침이니 북침이니 하는 말뜻인가, 아니면 6·25전쟁을 누가 일으킨 것인가를 알고 싶은 것인가? 그러니 '6·25는 남침인가, 북침인가?' 하는 물음을 '6·25전쟁은 북한이 남침하면서 일어난 일인가?' 하고 고쳐 물었어야 한다. 그런데도 70% 가까운 학생이 잘못 알았다면 비로소 역사 교육을 잘잘못을 따져야 한다. 결국 남침이니 북침이니 논란은 역사 문제가 아니라 말의 문제인 것이다.
북침이나 남침이라는 말을 몰라서 그렇지 6·25전쟁을 북한이 남한을 쳐들어온 역사 사실로 바르게 알고 있다고 장담한다. 내가 아는 많은 교사들은 온 힘을 다해 역사 사실을 올바르게, 제대로 가르치려고 애쓰고 있다.
사실 우리 역사를 왜곡하고 아이들을 왜곡하는 사람은 따로 있다. 새삼스런 일도 아니다. 교사와 학생을 교육 주체로 보기는커녕 힘 있는 쪽 입맛대로 학교를 길들이려고 교사한테 가르치고 애먼 학생을 싸잡아 다그친다. 이런 어려운 형편 속에서도 입술이 부르트면서까지 뭐라도 하나 더 주려고 안간힘을 쓰는 교사들의 마음을 알랑가몰라.
>>이 글을 읽고 어느 독자가 물었다
기사 잘 읽어보았습니다. 뭐 저도 남침이 이제까지 알아온 지식인데요 이번의 일로 조금은 헷갈리더군요. 이건..한자의 해석문제가 아닌가 하구요.
궁금한게 있는데요 기사를 읽어보니 북침이나 남침은 시작점이 아니라 나아가는 방향이라고 했는데요 그렇다면 왜침(倭侵)과 일침(日侵)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우리가 왜구(일본)로 침략한게 아닌데 기사내용대로 이해하면 침략한게 되더군요 모두 같은 주어와 술어로 됐는데 해석하는것에 따라 바뀌니 일반사람들도 오해하지않을까 하네요.
>>그래서 다음과 같이 답변했다.
제가 쓴 기사를 관심있게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먼저 말씀드리는 건 제가 한문을 공부한 사람이 아니라 한문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에 대해선 얼마든지 논란이 있음을 전제로 합니다.
제가 보기에 ‘남풍’, ‘북풍’할 때는 바람의 시작점을 말합니다. 그래서 ‘남풍은 남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뜻합니다. 그 다음 ‘남침(南侵), 북침(北侵), 북벌(北伐), 남벌(南伐)’할 때는 그 방향으로 나아간다는 뜻이라고 기사에 썼습니다. 이때 ‘북’이나 ‘남’은 ‘북한’이나 ‘남한’ 같은 임자말을 가리키는 게 아니라 ‘남으로’ ‘북으로’처럼 어찌말로 여겨집니다.
그런데 질문하신 내용은, ‘왜침’, ‘일침’은 나아가는 방향으로 보면 안 된다는 뜻이시죠? 그렇지요. 그렇게 보면 침략 전쟁을 일으킨 주체가 아주 달라지겠지요. 우리 말 사전을 찾아보니, ‘왜침’이나 ‘일침’이라는 말은 올림말이 아닙니다. 그러니 일상으로 흔하게 쓰는 말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때는 ‘방향’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므로, ‘왜(倭)가 쳐들어온다’, ‘일본(日本)이 쳐들어온다’는 뜻으로 보아야겠지요. ‘왜’나 ‘일’은 임자말(주어)이 됩니다.
제가 기사로 말하고 싶었던 건, 남침이니 북침이니 하는 말보다 ‘북한이 남한을 쳐들어와 6·25전쟁이 일어났다’ 하는 식으로 배우는데, 한자말로 쓴 말을 몰랐다고 해서 청소년 대부분이 우리 역사 사실을 모르는 무지렁이로 몰라가선 안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물을 때는 듣는 사람이 알아듣도록 묻는 게 설문이든 평가 문항이 갖춰야할 기본 요건이지요. 그런데 알아먹지 못하게 묻고는 그걸 몰랐다고 부풀려 말하는 건 문제가 있다는 뜻으로 말한 겁니다.
말난 김에, ‘왜침’이나 ‘일침’ 같은 말은 되도록 쓰지 말아야겠지요.. ‘왜가 쳐들어온다’,‘일본이 침략해왔다’ 하는 식으로 풀어 쓰는 게 좋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