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유년의 그윽한 해우소 / 최민자
소꿉장난 짝지였던 한 살 아래 경록이가 어느 날 내게 가만히 말했다.
“너 곱돌 만드는 법 가르쳐 줄까?”
벽이나 땅바닥에 대고 그으면 분필처럼 하얗게 자국을 남기는 활석을 그 때 우리는 곱돌이라 불렀다. 어디서 구했는지 그 애는 늘 곱돌 한 조각을 주머니에 넣고 다니며 흙벽이며 땅바닥에 낙서를 해댔다. 분필도 크레용도 귀하던 시절, 나는 그것이 갖고 싶었다.
바지 주머니에서 하얗고 맨송맨송한 차돌 하나를 꺼내 든 경록이가 동그란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이걸 땅에 묻어두고 오줌을 백 번 누면 곱돌이 된다.”
“정말?”
차돌 같이 야문 여섯 살짜리 경록이와 어떤 거래로 그것을 얻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어쨌건 나는 그것을 받아왔다. 그리고는, 누설해서는 안 될 중대한 비밀을 간직한 비장함으로 장독대 뒤 담장 아래에 곱돌씨앗을 심었다.
잘 닦인 항아리들이 줄줄이 늘어서 있던 우리 집 장독대는 어머니의 자랑거리였다. 키가 크고 우람한 장항아리는 맨 뒷줄에, 그 다음이 된장과 소금항아리, 이어 고추장단지, 새우젓을 담는 길쭉한 독과 온갖 옹배기와 자배기, 켜켜이 엎어 둔 오모가리들까지, 키를 맞추어 늘어서 있는 모양이 대형 합창단을 방불케 하였다. 어머니는 기분이 좀 심란하다 싶을 때면 커다란 바가지로 물을 좍좍 끼얹으며 장독 청소부터 하셨다. 식성 까다로운 아버지 흉이며 시집살이 신세 한탄까지, 시원스런 물세례로 씻어 내렸다. 툇마루에 걸터앉아 말갛게 닦인 항아리들을 바라보며 찬물 한 사발을 들이키는 시간이 바쁜 어머니에게 유일한 망중한이었을지 모른다.
담장과 장독대 사이에는 어른 한 사람이 지나갈 만큼 작은 틈새가 나 있었는데, 그곳은 일찍부터 내 비밀장소였다. 차돌을 묻어두기 전에도 나는 가끔 작은 볼일을 볼 때면 뒷마당 으슥한 곳에 있는‘변소’까지 가지 않고 그쯤에서 일을 해결하곤 하였다. 장독 청소를 할 때에나 담장 밖을 내다 볼 때 어머니가 가끔 서성거릴 뿐, 늘 그늘진 그곳은 뾰루지 하나 없는 여인의 피부처럼 곱고 윤습한 흙으로 덮여 있었다. 담장 밑으로는 장독나물이나 꽃다지, 벼룩이자리 같은 풀들이 새파랗게 돋아나곤 하였는데, 내가 해우(解憂)를 하는 대왕항아리 뒤에도 애기똥풀 두어 포기가 더펄더펄 자라났다.
경록이가 길섶에서 괭이밥이며 토끼풀 같은 것을 뜯어오면 벽돌가루를 빨갛게 빻아 김치를 버무려내는 건 내 일이었다. 내가 양식 타령을 하면 경록이는 금세 모래를 파 왔고 내가 그릇타령을 하면 경록이는 또 어디에선가 '福’자가 선명한 사금파리 조각을 주워들고 달려오곤 하였다. 꽃그림이 잔잔한 얇은 접시조각을 찾아낸 날에는 밥상 차리기가 더 신이 났다. 그런 날의 경록이는 자전거 짐칸에 새 항아리를 싣고 오던 아버지처럼 기분이 썩 좋아보였다.
감나무 밑 바윗돌 위에 한 상 떡 벌어지게 챙겨놓고 앉아 맛나게 먹는 시늉을 하다가도 경록이는 가끔 우물가 토란 밭쪽으로 달음박질을 치곤했다. 길가에 서서 토란 이파리 위에 시원하게 오줌줄기를 내지르는 경록이를 나는 언제나 멀찌거니 서서 바라보곤 했다. 우산처럼 널따란 이파리 위에 알른알른한 수정 구슬을 둥글리다가 휘청 쏟아내 버리는 경록이가 부럽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하였다.
차돌을 묻어둔 날부터 나는 더 자주 장독 뒤를 들락거렸다. 밖에서 놀다가도 일이 급해지면 서둘러 대문 안으로 달려들곤 하였다. 누군가 마루에 나와 앉아 있으면 장독대 옆 꽃밭에서 슬그머니 딴전을 부리는 체 하거나, 샛노란 애기똥풀 꽃 모가지를 한 두 줄기 분질러 나오면 그뿐이었다. 졸지에 목이 부러진 꽃들은 아무래도 억울하다는 듯, 노랗고 진한 눈물 같은 즙액을 종아리며 치맛자락에 뚝뚝 떨어뜨리곤 하였다.
백 번을 다 채울 때까지는 절대로 파 보아서는 안 된다고, 경록이가 여러 번 주의를 주었다. 그러겠다고 대답이야 했지만 내 인내심은 당연히 오래가지 못했다. 씨감자를 묻어놓고 싹트기를 기다리는 농부의 아낙처럼, 조바심이 나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때 겨우 일곱 살이던 내가 숫자를 제대로 셀 줄이나 알았을까. 더러 빼먹기는 하였겠지만 쉰 몇 번까지는 세었던 것도 같다.
장독대 옆 화단가에서 나뭇가지 하나를 집어 들고서 나는 조심스레 흙을 헤집었다. 조금만 아주 잠깐만, 얼른 보고 얼른 덮을 생각이었다.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래도 괜히 가슴이 뛰었다.
빠끔 얼굴을 내민 차돌은 처음보다 조금 누래진 것 같았다. 냉큼 꺼내어 흙을 털고 마른바닥에 금도 그어보고 싶었지만 다시 덮어 두고 말았다. 그러고도 금세 후회했다. 이제 곱돌이 되지 않는다 해서 경록이를 몰아세울 수는 없는 일이었다.
깨어진 금기는 금기가 아닌 법. 며칠 후 나는 또 나뭇가지 끝으로 축축해진 흙을 후벼보고 있었다. 쌀뜨물을 부으면 더 빨리 곱돌이 된다는 말을 듣고 엄마 몰래 쌀뜨물을 퍼다 부은 다음날이었을 것이다. 이제 정말 곱돌이 되었을까. 애기똥풀 노란 꽃이 저 혼자 흔들거렸다.
그날, 나무 꼬챙이 끝에 걸려나온 것은 하얗고 야무진 곱돌이 아니었다. 허옇고 퉁퉁한 지렁이 한마리가 흙 속에서 꿈틀, 몸을 틀다가, 놀라 내팽개친 막대기와 함께 허공에서 한차례 곤두박질을 쳤다. 헉, 소리조차 내지르지 못하고 마당 귀 꽃밭 쪽으로 달려 나온 나는 그날 밤 꿈결에 이불을 적셨다. 축축한 그놈의 살갗이 내 살에 닿은 듯, 꿈속에서도 몸서리를 쳤던 것이다.
망할 놈의 지렁이. 그때 그놈이 나타나지만 않았어도 곱돌과 경록이와 애기똥풀의 기억은 조금 더 이어질 수 있었을지 모르겠다. 그 전에도 그 후에도, 나는 그렇게 커다랗고 징그러운 지렁이 놈은 만난 적이 없었다. 어쩌면 그놈은 성소를 오염시킨 무엄함을 벌주려고 흉물스러운 지룡(地龍)으로 현신하여 나타난 우리 집 장독 신이었는지도 모른다.
꽃밭 가장이 맨드라미 옆에 엉거주춤 얼어붙어 서 있던 그날, 하늘은 맑았고 햇살은 밝았다. 맨드라미꽃은 크고도 붉었다. 바람도 잠든 늦여름 오후, 내 유년의 해우소는 그날 그렇게 빗장을 닫아걸었다. 내 빛나는 일곱 살도 막을 내렸다.
첫댓글 옛날에 이 글이 최민자 선생님 글 맞나 하면서 하면서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유년의 서정이 잘 묻어난 글이지요.
제게도 비슷한 경험이 있습니다.
잠시 어린 날로 돌아가 행복한 아침이었습니다.
항상 고마워요. 오늘도 보람 있는 시간 엮으세요.
잘 읽었습니다. 읽는 내내 미소가 피어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