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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에서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는 맨 처음에 올 뿐만 아니라 그 중요성도 으뜸이다.
이 책들은 하나의 민족으로서 이스라엘의 기원과 처음 그 민족을 만드시고 율법을 통해서 그들의 전체 생활방식을 결정하신 하나님의 계시를 기술하고 있다.
이 다섯 권의 책은 히브리 성경의 첫 부분을 구성하며,
신약에서(예를 들어, 눅24:44) 간단하게 '율법'이라고 언급된다.
이것은 오늘날도 여전히 유대인들이 사용하는 명칭이다.
헬리어인 Pentateuch(오경)는 '다섯 권의 두루마리'(문자적으로)를 뜻한다.
여기서 오경의 구조와 그 중심 주제를 설명하고,
각 권이 그 주제에 독특하게 기여하는 점들을 약술하며,
마지막으로 오경의 역사적 기원과 자료들,
배경 및 저작성의 문제들을 검토하고자 한다.
데이비드 클라인스(David Clines)는 오경의 주제를
'족장들이 받은 약속, 또는 그들이 받을 복에 대한 부분적인 성취'(이것은 또한 부분적으로 성취되지 못했다는 점을 함축하고 있다)로 적절하 요약하고 있다.
[The Them of the Pentateuch(JSOT press, 1978].
족장들에게 땅과 자손과 언약 관계와 열국의 복을 주겠다는 약속은
맨 처음 창세기 12:1-3에서 선언된다.
여호와는 아브라함에게 그분이 그에게 보여 줄 땅을 향해서 가족을 두고
떠나라고 부르셨다.
이어지는 창세기의 많은 신적 메시지는 이 약속들을 정교하고 풍성하게 만든다.
예를 들어,
가나안 땅이 약속된 땅이었고 그 땅이 계속해서 아브라함 자손들의 소유가 된다는 사실이 서서히 드러나고 있다(예를들어, 창13:14-17,17:8).
자손에 대한 약속도, 이 자손들의 첫째가 롯도 아니고(13징),
엘리에셀도 아니고(15장),
이스마엘도 아니고(13장),
아브라함의 늙은 아내 사라의 유일한 아들 이삭이라는 점이 분명해지면서 더 구체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오경의 주제를 형성하는 것은 그저 약속만이 아니다.
역사의 모든 일화와 율법의 모든 계명이 그 주제를 전개하는 데 기여한다.
예를 들어, 거룩하라는 긴급한 요구는 그 약속의 두 측면,
즉 땅의 선물과 언약 관계와 연관이 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처럼 거룩하라는 명령을 받는다.
이는 거룩함이 하나님 성품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호와의 언약 상대자로서 이스라엘은 자신의 하나님을 닮아야만 한다
(레 11:45).
또한 약속의 땅 안에서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지속적인 관계는 이스라렝의 의로운 품행에 달려있다. 흉악한 죄악들은 그 땅을 오염시켜서 여호와가 그 곳에 거할 수 없도록 하며, 그 땅이 그 주민들을 토해 내도록 만든다(레18:25-28).
창세기 1장이 온 세상을 만들고 다스리는 전능한 창조주로서 하나님을 나타내지만,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의 성취는 결코 오경 안에서 완성되지 않고 있다.
아브라함의 손자 야곱이 가나안 땅을 떠났을 때,
총 70여 명이던 (창46:27) 아브라함의 자손은 몇 세대가 지나자 애굽의 바로가 우려할 정도로 많아졌다(출1:10).
그러나 여전히 신명기 7:17-22에 따르면,
모세 시절에 가나안 땅에 자리자고 살기에는 극히 적은 수였다.
마찬가지로, 비록 그 땅 전체가 아브라함에게 약속된 땅이었지만,
그가 얻을 수 있었던 땅은 사라를 묻을 수 있을 만한 정도에 불과했다.(창23장).
야곱이 좀더 구입했지만(창33:19),
오경은 모세가 모압에 있는 한 산꼭대기에 올라가 그 땅 전체을 바라보고 있고,
그 백성이 가나안에 들어가기 위해 요단 강을 건널 준비를 마친 것으로 끝난다(신34장). 그 약속들은 오경 안에서 오직 일부만 성취되고 있다.
다석 권의 책은 그 약속이 궁극적으로 성취될 미래를 바라본다.
오경을 관통하는 것은 현재 성취된 '지금'과 장래에 완전히 성취될 것이라는 의미에서 '아직'사이의 긴장이다.
창세기 1-2장은 창조주의 손으로 완전하게 된 창조 세계를 그리고 있다.
인간의 모든 필요가 제공되었다.
남자와 여자 그리고 하나님이 완벽한 조화 속에서 함께 살았다.
각자는 서로 신뢰하였으며,
상대방과 함께하는 것을 즐거워하고 서늘한 한낮에 녹음이 우거진 에덴 동산을 거닐었다. 이 황금 시대는 아담과 하와가 금지된 열매를 먹는 불순종으로 갑자기 끝이 났다. 그들이 동산에서 추방된 일은 한 시대가 끝났으믕ㄹ 알렸다.
그 시대는 인간의 노력으로 결코 회복 될 수 없는 시대였다.
그렇지만 오경은 하나님의 주도로 이 이상적인 시대가 부분적으로 회복되리라 기대한다. 가나안 땅은, 에덴에서처럼 하나님이 자기 백성들과 함께 살 곳이었다.
실제로 성막이나 성전에서 여호와 하나님은,
마치 에덴 동산에서 거니셨듯이 그들 가운데서 '거니실'것이었다)레26:12, 민35:34).
아브라함에게 주신 허다한 자손에 대한 약속은,
신적인 권능으로 아브라함이 에덴 동산의 첫 부부에게 주어졌던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명령을 성취할 것이라는 확신이다.
창세기 2장에 있는 아담과 하와의 원형적인 결혼은 레위기 18장과 20장 및 신명기 22장, 24장에 있는 율법에 전제된 이상이며, 예수님과 바울은 그 결혼을 그리스도가 오심으로 막을 여는 새시대의 결혼과 남녀 관계에 대한 하나님의 모형으로 분명하게 제시한다(마19:-12, 엡 5:22-23).
에덴 동산의 시대는 또한 하나님이 땅 위에서 거니시던 시대였다.
그러나 오경과 마찬가지로 신약은 새 예루살렘 안에서 이루어질 완전한 성취를 바라본다. 그 때는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며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리니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그들과 함께 계시는'(계21:3)때다.
각 책 내용과 주제
오경의 전반적인 주제로서 족장들이 받은 약속들의 부분적인 성취를 간략하게 살펴보았기 때문에, 이제는 창세기에서 신명기에 이르는 각 권에서 그 주제가 어떻게 펼쳐지는지를 살펴볼 차례다.
1. 창세기
창세기(Genesis,기원)는 이 세계와 이 세계에서 이스라엘이 갖는 위상의 기원을 설명한다. 서두의 장들을 고찰하려면, 오늘날의 독자는 고대 근동에서 3천년 전에 살던 사람의 입장이 되어야만 한다.
그런 사람이라면 바벨론과 애굽에서 유래한 세계의 기원들에 관련된 많은 이야기에 익숙할 것이다. 고대 가나안 사람이나 바벨론 사람이 처음 창세기를 읽으면 깜짝 놀랄 것이다. 왜냐하면, 창세기 1-11장의 전반적인 줄거리는 다른 고대의 본문들과 유사하지만, 창세기에 나타난 전능한 한 분 하나님의 권능과 도적적 관심사에 대한 묘사는 시시하고 무능한 다수의 남신과 여신을 믿도록 교육받으며 성장했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놀라움을 금치 못하였을 것이다.
창세기와 그 다음에 이어지는 네 권의 책이 가지고 있는 중심 주제는 하나님이 족장들에게 주셨던 약속들의 성취다. 창세기 12:13에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땅과 수많은 자손과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언약)을 맺게 되고 아브라함을 통해서 모든 민족이 복을 받을 것이라고 약속하셨다.
창세기의 나머지는 이 약속들을 확대하고 정교하게 만든다(특히 15,17,28,46장).
그러나 그이상으로, 창세는 이 약속들이 서서히 부분적으로 성취되고 있음을 보여 준다. 아들을 기다리며 많은 세월이 흐른 뒤에, 아브라함과 사라에게 이삭이 태어났다(21:1-7). 사라가 죽자, 아브라함은 그 기회에 자기 아내를 묻기 위해 가나안에 있는 작은 딸을 구입하였다(23장). 아브라함을 통해서 멜기 세덱과 아비멜렉이 복을 받았다(14,20장).그리고 요셉을 통해서 애굽과 그 주변의 많은 민족이 기근을 면했다(42-47장).
그러나 무엇보자도, 여호와 하나님은 자신이 아브라함의 하나님이 되며 그를 보호하겠다고 약속하셨다. 그리고 아브라함의 믿음이 약해지고 어리석게 처신했던 많은 경우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렇게 하셨다.(예를들어 12:10-20, 16장, 20장, ).
하나님은 아브라함, 이삭, 야곱과 함께 하시면서(예를 들어, 26:3, 28:15, 39:2,21) 그들을 보호하고 번성하게 하셨다.
창세를 관통하는 것은 은혜라는 주제, 즉 인간의 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베푸시는 자비다. 이 책의 처음 장들은 에덴 동산에서 완전한 환경르 창조하시는 하나님을 보여 준다. 인간의 반역으로 인간은 그 동산에서 추방되었다. 더 흉악한 죄가 더 광범위하게 퍼지자 홍수가 임하여 모든 인류가 멸망했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의로운 노아를 출발점으로 해서 새로운 인류를 다시 창조하셨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노아는 실족했으며, 그의 아들 함도 죄를 범하였다(9:20-27). 그리하여 인류를 집어삼키는 죄의 진행이 다시 시작되었고 바벨에서 민족들이 흩어짐으로 절정에 달하였다(11:1-9).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조상 아브라함과 함께 다시 출발하셨다.
그래서 창세기는 하나님이 어떻게 아브라함과 그의 자손들을 통해서 인류를 회복할 계획을 세우셨는지를 보여준다. 그러나 창세기 끝에서도 여전히 하나님의 프로그램은 분명히 미완성으로서, 과연 하나님의 의도하신 목적이 마침내 어떻게 성취되는지를 찾기 위해서 더 읽어 가도록 이끌고 있다.
2.출애굽기
출애굽(Exodus, 나감)는 이스라엘 백성이 어떻게 애굽에서 나와 시내 산으로 이동했는지를 전해준다. 시내 산에서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나타나, 그분이 그들의 하나님이 되겠다는 언약을 맺고 율법을 계시하셨다.
이스라엘의 선조들은 주전 약1700년에 요셉의 초청을 받아들여 애굽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애굽왕조가 바뀌면서 이스라엘 족속에 대한 핍박과 예속이 이어졌다.
모세의 지도 아래 그들은 주전 1300년경이나 아니면 한 세기 전에(고고학적으로 결정적인 증거가 없다. ) 애굽에서 탈출하였다. 오경에 속한 다른 책들의 경우도 마찬가지지만, 출애굽기에 대한 이해를 위해서는 주로 외부 자료들이 아니라 그 자체를 읽을 수밖에 없다.
출애굽기는 창세기에서 이미 나온 주제들을 발전시킨다.
이 책은 이스라엘 족속이 크게 불어났다는 사실을 명기하면서 시작한다(1:7).
이 말은 그들이 곧 창세기 12장이 약속했던 대로 큰 민족이 될 것이라는 말이다.
얼마나 지나서 하나님은 불타오르는 떨기나무 앞에서 모세를 만나 이스라엘을 이끌어 아브라함에게 약속했던 가나안 땅으로 데리고 갈 것이라는 확신을 주셨다.
그러나 출애굽기의 초점은 시내 산에서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에 이루어진 언약의 수립에 있다. 이 책의 전반부는 이 언약의 수립을 내다보며, 후반부는 그것을 돌아보고 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이 언약의 수립은 여호아께서 그 자신과 아브라함의 후손들 사이에 영원한 언약을 세우게 될 것이라는 아브라함에게 했던 약속(창17:7)의 확인이다. 그렇게 해서, 하나님은 단지 그분이 한 약속에 충실하다는 사실만을 드러낸 것이 아니라 그분의 전능하신 권능과 도덕적인 거룩함과 용서하는 사랑도 드러내셨다.
출애굽기 1-15장에서 하나님과 모세는 당시 고대 근동 지방의 초강대국이었던 애굽의 바로와 겨룬다. 여호와의 지시를 받은 모세는, 거룩한 산에 가서 예배하기 위해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나가도록 바로의 허락을 요청하였다. 바로는 몸서리 나는 열 번의 재앙을 차례로 당했지만 계속해서 고집스럽게 거절하였다. 마지막 재앙을 당하자 바로는 이스라엘이 나가도록 허락하였다. 하지만 곧 다시 마음을 바꾸어 홍해까지 이스라엘 백성들을 추격하였다. 그리고 애굽인들은 홍해에서 수장되고, 인간 세상에서 가장 강한 자를 압도하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권능이 널리 드러났다.
출애굽기 19-24장은 시내 산에서 이루어진 숨막힐 듯이 두려운 율법 수여에 초점을 맞춘다. 하나님의 무시무시한 임재는 산꼭대기의 불과 연기와 천둥으로 상징되었으며, 이스라엘 백성들이 범접하지 못하게 했다. 그래서 모세가 십계명(출20장)과 기타 많은 법들(출21-23장)을 포함한 언약의 조건들을 그 백성들이 받아들였기 때문에 (출24장)하나님의 성막 혹은 장막에서 그들 가운데 영구히 거하실 수 있었을 것이다(출25-31장).
그러나 이러한 영예를 누리기에는 이스라엘이 전혀 자격이 없다는 사실이 즉시 입증되었다(32장). 그들은 금송아지 하나를 만들어 그것을 예배했던 것이다. 그렇게 해서 십계명 가운데 처음 두 계명을 어겼다. 이렇게 뻔뻔하게 언약을 무시한 것은 그 민족을 멸절을 초래할 만했다. 그러나 모세의 뜨거운 중보로 여호와는 노여움을 푸셨다. 모세는 여호와가 조상들에게 했던 그분의 약속들을 상기하시도록 요청했다. 충성스런 레위인들을 통해 언약을 깨뜨린 사람들을 본보기로 참살한 뒤에, 언약은 다시 회복되었다. 출애굽기는 새로 세워진 장막안에 여호와의 영광이 충만하여 하나님의 자비가 눈으로 볼 수 있게 드러난 일로 끝맺고 있다(40:34-35).
3. 레위기
레위기(Leviticus,레위인들에 관해서)는 주로 성막이라고 불렸던 장막의 성소에서 제사장과 레위인과 일반인이 어떻게 예배를 집행해야 하는지를 다룬다.
이 책은 본질적으로 출애굽기에 전개된 이야기와 법들을 계속 이어가고 있다.
레위기에 언급된 모든 사건은 그 민족이 시내 산에 도착한 후에 곧 발생했다.
레위기는 희생제사들과 여러 의식들을 기술하는데 많은 부분을 할애한다.
그 때문에 레위기는 이해와 해석이 어려운 책이 되고 있다.
오늘날의 독자들은 대부분 희생 제사를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이 장들을 흔히 모호하고 별 상관없는 것으로 치부한다.
그러나 문화 인류학자들은 의식이 한 사회의 가장 깊은 가치관을 이해하는 열쇠라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레위기는 있는 내용을 생생하게 느끼고 그 내용이 옛날에 끼쳣을 파급력을 음미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단순히 그 책의 본문을 읽기보다는 그 의식들을 실연해 보도록 시도해야 한다.
레위기는 족장들에게 주신 하나님 약속들의 성취를 계속해서 입증한다.
이 약속들의 중심은 여호와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되실 것과
그들이 여호와의 백성이 될 것이라는 확신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금송아지를 만들면서 이 관계가 무산될 위험에 빠졌고
가까스로 모세의 중보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다시 제 지위를 얻게 되었다.
하나님의 복은 성막에 가득 찬 여호와의 영광을 통해서(출40장),
또 아론과 그의 아들들이 제사장으로 임명되었을때
다시 발현된 하나님의 영광을 통해서 (레9:23) 나타났다.
26장은 그 땅 전역이 큰 수확과 평화와 번영으로 흘러넘치는 복을 그리고 있다.
그러나 이 모든 물질적인 혜택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이스라엘 가운데 계시는 하나님의 임재였다(26:11).
그러나 거룩하신 하나님이 죄인들을 멸하지 않으면서 그들과 함께 지내신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 사실은 새롭게 임명되었던 아론의 아들들이 허락 없이 성소에 들어간 벌로 급사한 일이 생생하게 예시되어 있다(10장). 그러므로 레위기의 법은 이스라엘의 죄성에도 불구하고 여호와와 이스라엘 사이에 지속적인 사귐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다.
레위기는 다섯 가지 서로 다른 희생 제사의 유형을 설명하며 시작된다.
각 희생 제사는 제단과 불로 상징되는 하나님과, 바쳐지는 짐승으로 상징되는 이스라엘 백성이 서로 사귐의 관계에 들어가는 것을 그리고 있다.
그래서 예를 들어, 하나님께 드리는 완전한 헌신은 짐승을 전체로 온전히 하나님께 바치는 번제로 표현된다(1장).
죄 씻음과 죄의 용서는 속죄 제사로 달성된다(4장).
이런 방식으로 희생 제사는 하나님이 계속해서 이스라엘과 함께 하시는 것을 가능케 했다.
이스라엘 편에서는 죄를 거부하고 하나님처럼 거룩하기를 목표로 해야 했다(참고11:45). 그러므로 레위기는 이스라엘의 순결을 지키기 위해 만든 많은 법을 포함하고 있다. 어떤 음식물들은 금했으며,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들은 어떤 질병이나 상태를 피해야만 했다(11-15장).
이러한 규례들의 배후에 정확히 어떤 개념이 있었는지를 알기란 어렵지만,
한가지 중심 사상은 이 부정한 많은 상태는 생명의 반대인 죽음을 제시하며,
하나님은 완전한 생명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가까이 가기를 원하는 자들은 그러한 것들을 멀리해야 한다.
레위기의 종결부는 거룩함이 단지 거룩하지 못한 상태들을 피하고 금하는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처럼 행동하는 것, 즉 행함을 포함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러므로 18-25장 은 빚을 진 가난한 사람을 돌보는 일(25장), 큰 절기들을 경축하는 일(23장), 이민자들과 시각 장애인들과 청각 장애인들과 고아들을 돌보는 일에 대한 일련의 긍정적인 가르침은 모두 '네 이웃을 사랑하기를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19:18)는 말로 정리되는 계명들을 포함한다. 그렇게 하여 이스라엘 백성은 억압받고 기본적인 인권도 보장받지 못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낸다. 그러므로 거룩함은 하나님을 닮는다는 의미다.
4. 민수기
민수기는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가나안(이스라엘 땅)을 이주한 이야기를 계속한다.
민수기는 보통 받아들이는 출애굽의 추정 연대에 따라 주전 1290-1250년에 이르는 약 40년의 기간을 다룬다. 따라서 이 책은 출애굽기와 레위기에 이어지는 속편이다.
출애굽기가 애굽에서 시내 산까지의 여정에 초점을 맞추고,
레위기가 시내 산에서 받은 율법에 초점을 맞추는 데 비해서,
민수기는 시내 산에서 가나안에 이르는 여정에 관심을 기울인다.
민수기는 이 여정을 세 개의 주요 단계로 구분한다.
1-14장은 시내 산의 첫 번째 여행을 다루면서 이스라엘이 가나안 접경 지대에 도착했을때 드러낸 치명적인 믿음의 결여를 보여 주고 있다.
15-19장은 시내 산 반도 지역에서 배회하였던 40년을 대략적으로 다루고 있다. 이 배회는 그들이 믿음이 없기 때문에 임한 일종의 심판이었다.
20-36장은 요단 건너편 지역을 경유해서 가나안의 뒷 관문에 그들이 성공적으로 도달한 일을 서술한다. 민수기는 약속의 땅에 진입하고 요단 강을 건널 태세를 갖추고 있는 이스라엘의 모습으로 끝을 맺는다.
민수기의 내용은 오경의 주제, 즉 족장들에게 했던 약속들의 부분적 성취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과거 창세기 12:1-3에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자손들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고 그들에게 가나안 땅을 주신다고 약속하셨다. 하지만 이 약속들을 성취하기까지는 긴 시간이 걸렸다. 그러나 민수기에서 그 약속들이 바야흐로 성취될 순가넹 이른 것처럼 보인다. 이스라엘은 크고 강한 민족이 되어, 모압 왕이 그 시대의 가장 큰 예언자였던 발람을 불러서 이스라엘을 저주할 것을 명할 정도로 모압 왕을 겁에 질리게 만들었다. 하지만 발람은 마침내 그 민족을 축복하였고, 장차 그 민족이 더 큰 권능을 받고 그들 가운데 승리하는 왕들이 일어날 것이라고 예언하였다(22-24장).
더욱 의미심장한 것은 그 땅이다.
1-9장은 이스라엘이 시내 산에서 가나안으로 진군하기 위해서 조직되는 것을 기술하고 있다. 그들은 계수되었고, 이 책의 이름은 1장과 26장에 언급된 인구 조사를 따서 붙여졌다. 변경에 도착하였을때, 모든 가나안 일대를 조사하기 위해서 열두 정탐꾼이 파견되었다. 그들은 그 땅이 비옥하다고 흥분할 만한 보고를 했지만, 그 땅에 사는 거주민들의 힘 때문에 난공불락이라고 말했다. 이것은 출애굽기 32장에 있는 금송아지 사건에 비할 만한 불순종하는 불신앙 행위였다. 다시 그 민족을 멸절에서 구한 것은 모세의 중보였다. 그러나 정복은 휠씬 뒤로 연기되었고, 그 반역자들은 그 땅에 들어가는 대신 광야에서 40년을 방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모세의 권위에 대한 반역이 몇 차례 더 일어난 후에,
마침내 그들은 앞으로 움직여 나갔다.
요단강 건너편 땅에 살던 민족들은 패배를 당했다(21-31장).
그런 다음에 모든 이스라엘이 요단 강을 건너 성읍들을 점령하기 위해 조직을 정비하였다. 요단강 건너편 땅에 남기 원했던 르우벤, 갓, 므낫세 지파는 가나안과의 전투에서 싸울 부대들을 판견한다는 조건하에, 거기 남도록 허락을 받았다(32장).
민수기는 가나안의 경계선들을 규정하는 일련의 법들과 그 땅이 일반 지파들과 제사장 지파인 레위 지파 사에서 어떻게 분배되어야 하는지륵 규정하는 법들로 끝난다(34-35장). 살인 죄인들을 위한 도피성을 세우는 일에 특별히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 땅은 이스라엘의 단순한 정착지가 아니라 하나님이 거하겠다고 택하신 땅이었다.
그래서 그 땅은 거룩했으며,
특히 살인으로 비롯된 부정에서 깨끗하게 유지되어야 했다(35장).
또한 그 땅은 영원히 이스라엘의 땅이어야 했다.
그래서 민수기는 각 자파의 땅이 해당 지파 안에서 확고하게 유지되는 법규들로 끝나고 있다.
5. 신명기
신명기(Deuteronomy, 두번째 율법)는 이스라엘 민족에게 주어진 모세의 고별사다.
이 책은 모세가 죽기 전에 했던 세편의 설교와 두편의 시와 한번의 간단한 사망 언급으로 구성되어 있다. 어떤 점에서 신명기는 앞선 모든 것을 정리하고 있다.
그래서 그 이름이 '두 번째 율법'이다.
출애굽기에서 민수기까지는 하나님의 법을 이스라엘에 주어진 대로 기록하는 반면,
이 신명기는 그 법에 대해서 모세가 설교하고 이스라엘이 바야흐로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경험하게 될 상황에 적용하고 있다.
그러나 신명기는 단순히 과거에 대한 요약 정리가 아니다.
이 책은 장래를 내다보고 있다.
이 책은 예언적인 책이다.
이 책은 이스라엘의 예언자들 가운데 가장 큰 예언자인 모세가 가나안 땅에 들어갈 이스라엘의 향후 전망을 어떻게 내다보고 있는지를 기술하는 책이다.
모세는 그들에게 하나님의 법을 따라서 번영과 복락의 길로 가든지,
아니면 그들의 변덕과 성향을 따라 재앙의 길로 가든지 선택하라고 요청하였다.
신명기는 여러 신학적 사상의 풍성한 주제를 담고 있다.
첫째로,
신명기는 관대한 하나님의 은혜를 강조한다.
이 점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하셨던 약속들이 성취되면서 드러난다.
이스라엘은 애굽에서 나오게 되었고,
시내 산에서 생생하게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였으며,
이제 젖과 꿀이 흐르고 있는 땅,
즉 그들이 살게 될 좋은 집으로 가득찬 땅에 바야흐로 들어갈 순간에 있었다.
이 땅은 그들이 받을 자격이 있었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이 자신의 약속들을 지키시기 때문에 그들이 하나님에게서 받게 된 땅이었다(7-8장).
둘째로,
신명기는 이스라엘의 부적합, 다시 말해서 끈질긴 죄성을 강조한다.
그들은 금송아지를 만들었으며,
정참꾼들이 그들을 낙심하게 하자 그 땅에 들어가기를 거절했다.
그들은 음식과 물 때문에 불평을 늘어놓았다.
모세조차 자기 성질을 이기지 못해서 여호와 하나님께 불순종하여 가나안 땅에 들어갈 권리를 상실하기도 하였다. 그래서 모세는 그들에게 이런 일이 다시 일어나,
그들이 여황르 버리고 가나안 신들에게 절하게 될 것을 우려하였다.
그래서 만일 그런 일이 생긴다면,
가나안 족속들과 마찬가지로 그들 또한 바로 그 땅에서 내쫓기게 될 것이었다(9-11장).
셋째로,
이스라엘은 전심으로 언약을 지켜야 했다.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화를 사랑하라'(6:5)는 말씀은 모세의 메시지 전체를 요약한다. 이것은 시내산에서 주신 하나님의 십계명을 지킨다는 의미였다(5장).
즉, 십계명을 생활의 각 영역에 적용하라는 뜻이었다.
두 번째이며 가장 긴 모세의 설교는,
가나안에서 이스라엘의 모든 삶의 영역에 그 계명들을 확대 적용하라는 명령과 그 뒤에 역사에 대한 회고로 구성되어 있다.
12-25장에 나오는 율법들은 대략 십계명의 순설르 따르고 있으며,
그 계명들을 확대하여 설명한다.
이스라엘은 여호아 하나님이 그들엑 그 땅과 율법을 주시면서 스스로 보여 주신 것처럼, 율법에 대해 따스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반등을 보여 주어야 했다.
넷째로,
이스라엘의 장래 운명은 율법에 대한 이스라엘의 반응에 달려 있었다.
계명에 순종하면 가족과 땅과 민족이 막대한 번영을 이루지만,
불순종하면 그 땅에서 내쫓기어 극에 달하는 재난을 초래할 것이었다(28장).
그러나 모세가 우려하듯이 이런 불순종이 일어난다고 해도,
그 일로 이스라엘이 하나님과 맺은 관계가 끝났다고는 말할수 없을 것이다.
회개는 언약의 축복을 갱신하도록 이끌 것이며
그리하여 민족의 변잉 회복될 것이기때문이었다(29-30,32장).
***오경의 작성***
앞서 대략 살펴본 대로, 오경의 주제에 대해서는 많은 학자 사이에 폭넓은 의견의 일치가 있지만, 오경의 작성에 대해서는 매우 깊은 견해 차이가 있다. 그러나 항상 그랬던 것은 아니다. 실제로 거의 2천년 동안 모세가 오경 전체의 주 저자였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보편적인 일치가 있었다. 그래서 세사지 제목으로 오경의 작성과 관련된 쟁점을 다루는 것이 최선인 것같다.
첫째는,
모세 저작이라는 전통적 이론이다.
둘째는,
합의된 비평적 견해로서 1880년부터 1980년대까지 거의 아무런 도전없이 지배적이었던 문서설이다.
셋째는,
최신 이론들이다.
①전통적 견해
기독교 시대 이전부터 19세기 초까지 모세가 오경의 거의 모든 부분의 저자라는 사실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았다.
이것은 창세기부터 신명기까지 죽 읽고 나서 이끌어내는 자연스런 결론이다.
출애굽기 2장부터 모세는 그 이야기의 중심 인물로 등장한다.
여호아 하나님은 불붙은 떨기나무에서 자신을 모세게 나타내셨다(출3장).
그런 다음에 모세는 이스라엘을 풀어 주는 일로 바로와 협상을 벌여,
홍해를 통과하여 그 백성을 시내 산으로 인도했다.
그 곳에서 모세는 모소 십계명과 다른 법들과 성막을 세울 지침을 받았다.
그 내러티브는 많은 법이 그 민족 전체에게 공개적으로 선포되지 않았음을 강조한다.
이는 그 산꼭대기에서 일어난 여호와의 출현이 너무나도 무시무시했기 때문이다.
대신에 그 법은 모세 혼자 받게 되었고 (출20:19-21: 신5:5),
모세는 다시 그 법을 백성에게 전달했다.
모세의 중재자 역할은 오경 전체에 두루 강조된다.
법들은 '그리하여 여호와께서 모세엑 말씀하셨다'는 진술로 여러 번 소개된다.
이 말은 하나님과의 특별한 친밀함을 함축하고 있으며,
하나님이 그법의 궁극적인 원천이라면,
모세가 그 법을 쓴 인간 저자는 아니라 하더라도
분명히 그 통로였다는 사실을 시사한다.
이러한 인산은 신명기에서 더욱 강화된다.
거기서 모세는 자신의 말로 민족에게 연설하면서
시내 산에서 주어진 법들을 설명하고
약속의 땅에 들어갈 때 그 법들을 지키라고 권면한다.
신명기는 모세가 죽기 전,
이스라엘에게 전했던 마지막 말을 담고 있다.
모세는 1인칭으로 '내가 그 말을 좋게 여겨'(1:23) 그리했다고 말한다.
그리고 때때로 그는 자신을 이스라엘과 동일시하면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명령하신 대로 우리가 호렙 산을 떠나...'(1:19)라고 말한다. 또 다른 경우에서 그는 백성과 자신을 서로 대비해 놓고 말한다.
'내가 너희에게 말하였으나 너희가 듣지 아니하고...'(1:43).
1-11장은 출애굽기에서 민수기까지의 책들처럼 출애굽부터 요단 강 건너편을 정복하기까지 동일한 사건들을 대부분 기술한다.
그러나 이책들이 그 상황 바깥에 있는 해설자의 관점에서 기술하는 데 비해서,
신명기는 모세가 그 사건들을 겪은 것처럼 사건들을 기술한다.
신명기에서는 모세가 직접 말하는 자라는 주장을 피할 수가 없다.
만일 신명기가 31:8에서 끝난다면, 모세가 그 법에 대해 설교는 했으나 다른 누군가가 훨씬 후대에 그의 사상들로 글로 기록했다고 가정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31:9의 '모세가 이 율법을 써서 여호와의 언약궤를 메는 레위 자손 제사장들과 이스라엘 모든 장로에게 주고'라는 말과 31:24의 '모세가 이 율법의 말씀을 다 책에 써서 마친 후에'라는 말은 모세 저작성에 대한 그와 같은 막연한 견해를 배제하는 것 같다.
만일 그 때 모세가 신명기를 썼다면,
출애북기부터 민수기까지는 모세가 생애 초기에 작성했고,
다른 책들과 관련해서 필수불가결한 도입부는 창세기도 당연히 모세가 작정했다고 볼 수 있다.
이상이 초기 유대 저자들과 신약의 저자들 그리고 약 1800년까지 성경을 연구했던 거의 모든 사람들이 모세가 오경의 저자였다고 결론을 내린 과정이다.
그 결과, 창세기는 흔히 모세의 첫 번째 책으로 일컬어졌고,
나머지도 마찬가지로 순서대로 불리게 되었다.
그러나 19세기에 들어와서 이 예전의 합의는 무너지기 시작했다.
이제 이 접근 방법의 변화를 살펴보도록 하자.
②문서설
이 모든 것은 프랑스의 의사 장 아스티릭(J.Astruc)이 1753년에 쓴 한 흥미로운 책으로 시작되었다.
아스티릭은 창세가 앞 장들에서 하나님이 때때로 하나님이라 지칭되고,
다른 때는 '여호와'라고 지칭된다는 사실을 관찰하였다.
그가 볼때 이 사실은,
모세가 창세기를 쓸 때 최소한 두가지 자료를 가지고 썼다는 점을 시사했다.
이 점은 창세기 내에 주제가 중복된다
(예를 들어, 1장과 2장에 있는 두개의 창조 기사)는 관찰로 지지를 받았다.
아스트릭은 오경의 모세 저작성을 부인하려는 의도는 전혀 없었다.
그는 단순히 모세가 사용했을 자료들이 무엇인지를 탐구했을 뿐이었다.
그렇지만 그의 자료 분석은 나중에 비평의 핵심 요소가 되었다.
19세기를 지나면서 그의 분석은 정교해졌고,
어떤 학자들은 이 자료들이 모세 이후의 것이었다고 주장하였다.
아스티릭 이후에 50여 년이 지나서,
드 베테(W.M.L.de Wette)가 훨씬 더 급진적인 제안을 했다.
그는 자신의 1805년 논문과 다른 저작에서 (1806-1807),
신명기가 요시야의 시대에 기록되었으며 (즉 모세가 죽은 후 주전7세기에),
역대기의 이스라엘 예배의 역사에 대한 진술은 신빙성이 없다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두 가지 생각은 모두 19세기 후반에 부상하게 된 오경의 기원에 관한 중심 견해가 되었다.
따라서 어떻게 드 베테가 그러한 결론에 이르게 되었는지에 주목하는 것이 적절하다.
왜냐하면 그 결론이 흔히 문서설이라고 알려진 새로운 비평적 합의의 근본이기 때문이다.
드 베테는 열왕기와 역대기 모두 동일한 역사기를 다루고 있긴 하지만,
역대기가 열왕기보다는 예배에 해서 훨씬 더 많이 언급한다고 지적하였다.
그 때까지는 학자들이 역대기의 상세한 부분들을 열왕기에 있는 묘사에 대한 정확한 보완으로 여기고 있었다.
그러나 드 베테는 역대기가 열왕기 뒤에 저술되었기 때문에,
이 사실은 신뢰할 수 없다고 주장하였다.
이런 식으로 역대기의 증거를 간단히 처리해 버림으로써 더욱 쉽게 신명기 역시 후대의 작품이었다고 주장할 수 있었다.
신명기의 언어와 분위기는 그 앞에 있는 책들과 다르다.
그러나 신명기가 언제 작성되었는지를 결정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드 베테가 단단히 붙잡은 것으 여호와가 선택할 장소에서 모든 예배가 집행되어야 한다는 신명기의 주장이었다.
신명기는 신골의 산당이나 산 위의 푸른 나무 밑에 만든 제단 위에서 예배드리는 것을 금하고, 대신 희생 제사들 특히 유월절과 오순절과 장막절이라는 민족적 절기들을 여호와가 선택한 중앙 성소에서 지켜야 한다고 주장한다(신16장).
사무엘과 열왕기를 읽어 보면,
그와 같은 엄격한 규칙들은 주전 7세기이후에야 비로서 도입되었다고 시사한다.
그러다가 주전 622년 요시야 왕이 시골의 모든 산당을 폐지하였고,
오직 예배는 예루살렘에서만 드리도록 요구하였다(왕하22-23장).
만일 예배에 대한 신명기의 원칙들이 요시야 시대까지 강제로 시행되지 않았다고 한다면, 신명기의 법들이 모세 시대부터 내려온 죽은 문자였다고 가정하기보다는 그 원칙들이 요시야 당시에 고안되었다고 가정하는 것이 더 쉽지 않을까?
신명기를 요시야 시대에 강조된 예배의 중앙화와 연결하는 이 주장은, 19세기 말 '벨하우젠 종합명제'(Wellhausen synthesis)의 주요 토대의 하나가 되었다.
벨 하우젠 사상은 대부분 다른 사람들이 예견한 것들이었다.
그러나 그는 1878년에 출판한 책에서 오경 기원에 관한 전통적인 견해들을 일소해 버리고 구약 학계를 뒤바꾸어 버렸다.
비록 그의 사상은 새로운 것이 거의 없었지만,
벨하우젠이 그 사상을 제시한 방식은 탁월하였으며,
진화론이 새롭게 등장하여 많은 사람이 단지 생물학적인 변호만이 아니라 다른 많은 역사상의 발전까지도 설명해 주리라고 믿었던 시대에 매우 강하게 호소하였다.
벨하우젠은 기적이나 신적 계시의 필요성이 없이도
자연스럽고 불가피하게 보이는 이스라엘 종교의 발전상을 그려냈다.
그는 가장 초기 단계에서 이스라엘의 종교는 비교적 규제되지 않은 상태였다고 주장하였다. 사람들은 어떠한 제사장의 간섭없이도 원할 때 원하는 장소에서 희생 제사를 드렸다.
벨하우젠은 이것이 사무엘과 열왕기에 반영된 상황이라고 보았다.
왕정 시대 말에, 요사야 왕이 개입해서 모든 예배를 예루살렘을 제한했으며,
그러므로 제사장들의 권한이 크게 증대하여 제사장들은 예배를 일일이 통체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일단 제사장들이 이 권한을 갖게 되자,
그들은 이 권한을 규합하여 포로 생활 동안(주전587-537)에 예배의 세부 사항들,
제사장의 지위, 십일조와 희생제물의 일부분에 대한 제사장의 권리 등 온갖 규칙과 법규를 고안해 냈다는 것이다.
그런다음에,
벨하우젠은 이스라엘의 종교가 진화된 이러한 그림이 맨 처음 아스티릭이 확인했던 오경의 자료들과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보여 주고자 시도하였다.
벨하우젠은 네가지 주 자료들이 확인된다고 인정하고는,
그 자료들을 J.E.P.D라는 글자로 지칭하였다.
여호와 자료인 J는 '여호와'(Yahweh)라는 신명을 사용한다.
그 자료는 창세기의 절반과 출애굽기 및 민수기의 작은 부분을 이루고 있다.
엘로힘 자료는 E는 오직 일반적인 용어인 '하나님'(엘로힘,Elohim)만 사용한다.
그 자료는 창세기의 3분의 1과 출애굽기와 민수기의 작은 부분들을 이루고 있다.
제사장 자료인 P는 E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이라는 일반 명칭을 사용한다.
그 자료는 창세기의 6분의 1(주로1,17,23장과 여러 족보들)을,
그리고 출애굽기 25장에서 민수기 36장까지의 대부분을 이루고 있다.
D는 신명기다.
벨하우젠은 신명기(D)가 J와 E에서 발견되는 자료만을 알고 있을 뿐이며,
P는 J와 E와 D에 있는 내용을 알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이것은 오경에 있는 자료에 J-E-D-P라는 상대적인 순설를 제시한다
그 다음에 그는 J와 E에 있는 예배에 대한 묘사가 평민들이 언제 어디서나 자기들이 원하는 대로 제사를 드릴 수 있었던, 왕정 시대의 예배 관례와 부합한다고 주장하였다.
D(신명기)의 묘사는 요시야 왕의 중앙 집중화 개혁의 목적에 들어맞으며,
예배의 미세한 규정들에 대한 P의 관심사는 제사장 계급의 절대 권위에 부합하는데,
벨하우젠은 이 자료가 포로기나 그 후 에 발전했다고 추측했다.
그리하여, 그는 J가 주전 850년경, E가 주전 750년경, D가 주전 622년 경, P가 주전 500년으로 연대를 잡아야 한다고 제시하였다. 이러한 자료들은 일단 작성된 후 이것저것이 서로 합쳐졌고, 그리하여 마침내 에스라 시대(주전 5세기)에 현재 우리 손에 들린 이 오경이 등장하게 되었다고 한다.
오경에 대한 이러한 접근 방식이 가진 함의는 광범위한 것이었다.
만일 가장 이른 자료들인 J와 E가 모세 이후인 6세기경에 작성되었다면,
족상 시대는 말할 것도 없고, 그 시대에 대한 정확한 모습을 제공한다고 믿기가 거의 어려울 것이다. 만일 J와 E가 믿을 만하지 못하다면, 하물며 더 나중의 자료들인 D와 P는 얼마나 믿기 어렵겠는가. 벨하우젠 자신은 자신의 비평적 입장의 결과에 대해서 아주 명확히 알고 있었다. J와 E는 우리에게 족장 시대에 과한 역사상의 정보를 전혀 제공하지 안흔다. 대신에 그 문서들은 왕정 시대의 종교 상황을 '영광스러운 신기루'와 같이 고풍적인 고대 세계 안으로 투영하고 ㅇㅆ다.
마찬가지로 D와 P자료는 모세시대가 아니라 그 문서들이 작성되던 시대의 관심사를 반영한다.
오경의 역사적 가치에 대한 벨하우젠의 부정적인 판단은 처음에는 매우 적대적인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그럼에도 곧 비평적인 개신교 학계에서는 그의 접근 방식을 폭넓게 수용했다. 그 접근 방식이 로마 가톨릭 학자들이나 유대 학자들에게 수용되기까지 훨씬 더 긴 시간이 걸렸다.
이 이론의 수용은 여러가지 요소의 도움으로 이루어졌다.
첫째로,
그 이론은 드라이버(S.R.Driver)와 같은 학자들이 받아들이고 옹호했다.
드라이버는 벨하우젠과는 달리 성경의 영감을 믿었으며,
오경 자료들이 후대에 저작되었다는 연대 추정이 그 자료들의 영적인 가치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주장하였다. 기독교 신앙을 배신하거나 무신론자가 되지 않으면서도 벨하우젠의 비평 이론들을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이다.
둘째로,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궁켈(Gunkel), 알트(Alt), 노트(Noth), 폰 라트(Von Rad)의 양식 비평이 문서설에 가한 교정이었다. 상대적으로 후대의 자료들(J.E.D.P)의 배후에 옛 전승들이 있다고 주장함으로써(어떤 학자는 모세까지, 혹은 심지어 모세 이전까지 소급했다), 이 문학 비평학파는 오경의 역사적 가치에 대한 신뢰를 어느 정도 회복했다.
오경은 궁극적으로 말하려고 의도한 그 시대들에 대해서 무너가를 말하고 있을 것이다. 어쩌면 그다지 많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 가치를 무효화시킨 벨하우젠의 주장보다는 틀림없이 훨씬 더 많을 것이다. 예를 들어, 궁켈은 자신의 창세기 주석(1901년)에서 족장 이야기들의 가장 초기의 형태가 그 땅에 이스라엘이 정착하기 이전 시대에서나왔다고 제시한다. 마찬가지로 그레이스만(H.Gressmann)은 십계명의 원시 형태는 모세 시대에서 나왔다고 주장하였다(1913)
문서설의 수용이 족장 시대에 대한 어떠한 지식과도 분리 되지 않는다는 인상을 심어 주는 데 더욱 중요한 역할을 했던 책이 바로 알트의 작품(1929년)이었다.
알트는 창세기의 몇 구절에 들어 있는 족장들의 종교적 모습(31:5, 53:46, 49:25)이 족장들의 유목식 생활 양식과 맞고, 부족이 떠돌 때 그들을 보호하고 자식에게 복을 주는 부족 신에 대한 핵심적인 사상과도 맞는다고 주장하였다. 비록 알트가 매우 협소한 범위의 본문들에 의지하긴 했지만, 족장들의 종교에 대한 알트의 묘사는 좀더 전통적인 독자가 구성할 만한 그림과 대략 비슷하다.
마찬가지로 J와 E 자료의 공통적인 요소들에 초점을 맞춘 마틴 노트는 언약으로 서로 묶여 있고, 거룩한 전쟁들을 치르며 한 중앙 성소에서 제사를 드리는 지파들의 동맹으로 구성되었던, 왕정 이전의 이스라엘의 모습을 구축할 수 있었다(1930년).
비록 오경 자체에서 역사를 찾아내는 일과는 거리가 아주 멀었지만, 다시 한 번 그는 이스라엘의 종교 성립에 대한 윤곽을 그리고 있었다. 노트의 그림은 출애굽기에서 사시기에 이르는 무비평적인 읽기와 다르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게하르트 폰 라트는 신명기 26장에 있는 성경 최고(最古)의 신앙 고백문이 점점 발전해서 현재 우리의 손에 들려 있는 오경이 되었다고 주장하였다(1938년).
오경 안에 가장 오래된 요소들과 현존하는 저작 사이의 연속성을 확증하고, 오경 안에서 미묘한 역사적 핵심을 찾아냄으로써, 이 학자들은 문서설을 더욱 받아들이기 좋게 만들었다.
미국의 올브라이트(W.F.Albright)와 그 학파의 고고학적 접근 방법은, 비록 오경을 이루는 자료들이 매우 후대의 것이라 하더라도 오경이 신뢰할 만하다는 인상을 한층 강화했다. 그들은 족장들의 이름이 주전 2000년대의 전형적인 이름이고, 족장들의 이주와 반(半)유목적 생활 양식 또한 이 시기에 부합하며, 창세기에 언급된 많은 법적 의식과 가족들의 풍습(예를들어, 지참금을 주는 행위)이 옛날의 성경 이외의 본문들 속에서 검증되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이 모든 것은 창세기의 본질적인 역사적 신빙성을 보여 주었다.
롤랑 드 보(Roland de Vaux)의 [이스라엘의 초기 역사](The Early History of Israel.1971)는 이 접근 방법의 가장 위대한 기념비적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이 책은 고고학의 통찰들과 알트, 노트, 벨하우젠의 비평 방법들을 신중하게 엮어서 이스라엘의 역사 발전에 대한 아주 긍정적인 견해를 낳았다.
따라서 학계는 오경에 네가지의 주 자료 (J,E,D,P)가 있으며, 그 자료들 대부분은 주전 1000년이후에 작성되었고, 그 작성 시기에도 불구하고 그 자료들은 주전 2000년에서 주전 1300년 사이의 이스라엘 역사에 대해 훌륭한 통찰을 제공한다는 합의를 이루었다.
③합의의 붕괴
1970년대에는 오경 연구에 큰 동요을 일으켰던 몇 개의 배아적인 작품이 출간되었다.
1974년에 톰슨(T.L.Thompson)은 족장 내러티브들의 역사적 성격에 대해서 흔히 인용되었던 고고학적 주장들을 철저히 검토하자고 주장하였다.
톰슨은 많은 주장이 그 내용을 잘 입증하지 못하고 있으며,
실제로 성경이나 병행되는 성경 이외 자료들이 창세기에 대한 믿음을
강화하기 위해서 잘못 해석되었음을 보여 주었다.
예를 들어,
족장들의 이름처럼 이전의 것으로 보이는 요소들이 있었다.
만일 창세기가 주후 1000년 이후에 작성되었다고 믿는다면,
이러한 요소들도 아주 다르게 설명될 수 있었다.
반 시터스(J.Van Seters,1975)는 비평적 합의에 의문을 제기하며 한 걸음 더 나갔다.
그는 족장의 이야기들이 톰슨이 주장한 것처럼
저작 연대의추정이 불가능하지 않다고 주장하면서,
그 이야기들은 실질적으로 주전 6세기의 조건들과 법률 제도들과 부합한다고 했다.
또한 그는 하나님의 이름들이 이리저리 변형되어 나타나는 것
('여호와'/'하나님')이나 병행되는 이야기들(참고, 창12장/창20장)은 반드시
다른 저자나 자료에서 나왔다는 표시라는 200년 동안의 신념을 검토하였다.
실제로 반 시터스는 창세기 12-26장에서 E자료가 일관성 없는 실제가 아니라
이부분의 주 저자였던 J에 의해서 합쳐진 초기 요소들일 뿐이라고 주장하였다.
반 시터스와 마찬가지로,
렌도르프(R.Rendtorff)는 자료들을 구별하는 많은 표준적 기준을 제거해 버렸으며,
문서설의 분석을 선호하는 학자들이 제시한 여러 주장에 대해서 냉소를 퍼부었다.(1977).
그는 창세기가 아주 다른 형태로 등장하게 되었다고 주장하였다.
아브라함에 대한 일군의 이야기가 있었고,
야곱 그리고 요셉에 대한 일군의 이야기가 있었다.
이 이야기들은 오랫동안 따로 분리되어 있다가,
아들을 연결하여 일관성 있는 긴 내러티브로 만든 한 편집자에 의해서
서로 연결되었다는 것이다.
마침내 1968년에서 1982년 사이에 분할해서 출간된 클라우스 베스터만(Claus Westermann)의 창세기에 대한 대 주석이 나오게 되었다.
톰슨과 반시터스와 렌도르프가 젊은 급진주의자들이었던 반면에,
베스터만은 드 보와 비슷한 입장과 전망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아마도 베스터만의 작품이 그들의 작품들보다 더 의미심장 할 것이다.
그렇지만 베스터만은 J자료의 저작 연대를 (반 시터스가 주장하는 주전6세기가 아니라) 주전 10세기로 굳게 잡으면서 E자료를 다소 제거학 있다.
베스터만은 족장 이야기들을 실질적으로 J의 손으로 구성된 통일체로 보았다.
때때로 휠씬 후대의 P자료에 삽입된 것이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성경 연구에서 1970년대에 그 자취를 남기기 시작한 또 다른 방식을 통해 학자들은 오경을 하나의 통일성 있는 작품으로 읽게 되었다.
새로운 문학 비평은 저작의 작성이나 구성 과정이 아니라, 주로 그 저작들을 현존하는 형태 속에서 이해하는 데 관심을 기울인다.
새로운 문학 비평은 작품들의 전체 배열, 주제, 해설자가 반복이나 미메시스(현실에 대한 묘사), 대화와 같은 수사 기법들을 활용하는 방식, 즉 내러티브 안에서의 인물과 동기 묘사에 관심을 기울인다.
반면에 옛 지평은 저자 문제, 저작 연대, 자료 및 본문 저술을 둘러싼 역사적 상황들에 집중되었다. 새로운 문학 비평은 히브리 저자들의 기술들을 훨씬 잘 음미하고 인식하도록 했고, 그 결과 자료들을 구분하는 데 자주 사용되던 기준들을 배격하도록 했다. 예를 들어, 옛 비평학자들에게는 반복이 다중적인 자료들의 표시로 비쳐지는 경향이 있었지만, 새로운 비평학자들은 그것을 극적인 효과를 위해서 단일 저자가 활용할 수 있는 중요한 내러티브의 기법으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다.
새로운 문학 비평 학자들 편에서 문서설에 대한 전면적인 공격은 아직 없었지만, 예를 덜어, 로버트 알터와 마이클 스터버그 같은 학자들로부터 은근한 언급들이 많이 나오고 있다. 그들은 표준적인 자료 비평에 대한 불만을 표시한다. 그리고 데이비드 클라인즈와 와이브레이가 제공한 오경의 통합적 읽기는 새로운 비평에 많은 덕을 보고 있다.
오경 연구의 이러한 새로운 방향들은 100년을 지배해 왔던 옛 비평학적의 합의를 깨뜨렸다. 그러나 그 방향들은 새로운 정통성을 확립되지 못하고 있다.
그 방향들은 아마도 목소리를 내는 소수파의 견해를 대변할 것이다.
반면에 침묵하고 있는 다수는 여전히 드 보가 옹호했던 것과 같은 온건한 형태의 문서설을 유지하고 있다.
그 주요 비평학적 입장들은 아래와 같이 도표로 나타낼수 있다.
옛 문서설 | 새로운 비평학적 견해 | ||
J 주전10세기 | 모세와 족장들의 진정한 반영 | 주전 6세기 | 후기 왕조나 포로 상황을 반영 |
E 주전 8세기 | 실제로는 구별된 자료가 아님 | ||
D 주전 7세기 | 주전 7세기 | ||
P 주전 6세기나 더 후대 | 주전 6세기나 더 후대 |
새로운 비평학적 견해는 옛 문서설의 Dd와 P의 후대 저작설을 유지하지만
J와 E 사이의 구분은 배격한다.
그 견해는 확대된 J(심하게 말하면 예전의 J+E)가 초기 시대들 (즉 족장 시대, 모세 혹은 사사들)에 대한 역사적인 통찰은 제공하지 않지만, 오히려 유배지에 있는 유대인들의 신념에 대한 통찰을 제공한다고 주장한다.
지금까지 우리는 주류을 이루는 비평적인 학자들의 견해만을 살펴보았다. 최근 들어서 비평적인 유대 학자들이 대게 P자로라고 명명되는 오경의 의식법에 대한 본문들(즉, 출25장-민36장)을 연구하는 일에 가장 큰 기여를 했다.
예를 들어, 밀롬(Milgrom)은 P를 포로기에 저술된 것으로 보는 주장은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레위기에 있는 제사법들은 포로기 이후에 성전이 재건되었을 때 성전에서 행하던 것과 일치하지 않는다. 만일 레위기가 그 시기에 쓰였다면 그 법들도 당연히 일치애햐 하는데 말이다.
이 책들(P)의 언어는 주전 600년경에 설교했던 제사장 겸 예언자인 에스겔의 언어보다 훨씬 더 고풍스럽다. 출애굽기에서 민수기까지 기술된 예배의 형식, 예배에 사용된 장비들 그리고 제사장의 의무드르은 주전 2000년대에 고대 근동의 다른 지역들에서 드려졌던 예배(제사)에서 알려진것과 많은 유사점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이 학자들에게 P(출25장-민36장)가 적어도 포로기 이전이며, 첫 성전과 어쩌면 성막의 예배에서 일어났던 것을 기술하고 있음을 제시한다.
그러나 이러한 논의에 주목하는 학자들은 거의 없다. 그래서 대부분은 여전히 P를 포로기나 포로기 이후의 저작으로 간주하는 듯하다.
④한가지 보수적 답변
오경에 대한 현재의 비평학적인 혼란에 비춰 볼때, 오경의 기원에 대해서 무엇을 긍정할 수 있는가?
모세와 족장들의 시대에 대해서 오경이 하는 말을 정말 신뢰할 수 있는가?
아니면, 그 이야기와 법률들은 포로 생활을 하던 사람들이 장래에 대한 자신들의 소망을 표현하기 위해서 만든 것인가?
오경은 실절적으로 통일된 작품인가?
아니면 서로 충돌을 일으키는 다양한 자료들로 구성되어 있는가?
오경이 일으키는 현재의 논란에 대해 다음과 같이 반응할 수도 있을 것이다.
'비평학자들은 자기들끼리 너무나 불열되어 있기 때문에, 그들은 아무것도 입중할 수없다. 그러므로 다시 오경이 그자체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바로 되돌아가서 모세가 주 저자였음을 받아들이도록 하자.'
그러나 이러한 대응은 그 논쟁의 진지함과 그 속에서 제기된 진짜 쟁점들을 다루는 데 공정하지 못한 처사다.
그 논쟁에 대한 분별력 있는 보수적인 성찰을 전개하고자 시도하면서 네 가지 쟁점을 개진할 필요가 있다.
첫째,
오경에서 얼마나 많은 자료가 확인될 수 있는가?
자료들을 구별하는 전통적인 기준들은 타당한가?
둘째로,
J자료는 그 작성 연대가 포로기(주전550년경)인가,
왕정 초기(주전950년경)인가,
아니면 모세 시대(주전 1250년경)인가?
특히 족장 이야기들 안에 어떤 역사가 존재하는가?
그리고 언제 창세기의 처음 장들이 작성되었는가?
셋째로,
P 와 J는 얼마나 예리하게 규정될 수 있는가?
제사장 자료는 언제 작성되었는가?
마지막으로,
신명기는 실제로 주전 622년에 있었던 요시야의 개혁들을 선전하고
혹은 정당화하기 위해서 작성되었는가?
물론 이런한 쟁점들은 너무 복잡해서 엄청나게 많은 책을 살펴보아야 한다.
그래서 여기서는 단지 한 가지 방향의 생각만을 약술 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 자료분석이다.
'하나님'이라는 이름과 '여호와'라는 이름(Elohim/Yahweh)이 서로 엇갈리면서 나타나는 것은 다른 자료들을 표시한다고 제시했던 사람은 바로 장 아스틱이다.
오늘날 이 기준은 J자료와 E자료를 구분하는 데 도움이 안된다는 사실이 널리 인정되고 있다.
그래서 많은 학자은 사실상 E자료라는 것이 없다고 결론을 내린다.
그러나 P와 J자료 사이의 구별은 흔히 신의 명칭이라는 기준과
그 자료들이 가지고 있다고 주장되는 형태의 차이점 때문에 유지된다.
이 기반 위에서 홍수 이야기(창6-9장)는 자주 J설과 P로 나누어진다.
그렇지만 여기서도 최근의 여러 학자는 그러한 경우는 증명되지 않았다고 인정한다.
다른 학자들은 다른 고대 본문들도 같은 신에게 다양한 이름들을 사용하고 있음을 지적했다.
그러므로 왜 히브리 성경에 있는 이 현상이 다중적인 자료들을 암시해야 한단 말인가?
창세기에서 호칭을 선택할 때는 종종 신학적 이유가 분명히 드러났다.
하나님이 세계의 보편적인 창조주이며,
이스라엘 족속만이 아니라 외국인들의 하나님이신 곳에서는 '하나님'(엘로힘)이 선호되는 명칭이다.
그렇지만 하나님이 언약의 상대자, 특히 이스라엘과 맺은 언약의 상대자일 경우는 '여호와'가 빈번히 사용된다.
따라서 신을 부르는 기준이 과연 다른 자료들을 가리키는 표시인가 하는 점은 의심스럽다. 그렇다고 해서 창세기가 한 저자의 생각에서 완전히 참신하게 흘러나온 완벽한 통일체라는 말은 아니다.
그 저자가 자기의 작품을 만들면서 다양한 자료와 계보, 시와 내러티브를 사용한 것은 확실하다. 그러나 하나님의 이름들은 그 자체만으로는 자료들을 구분할 수 있는 믿을 만한 안내자가 아니다.
두번째 주된 쟁점은 J자료의 범위와 저작 연대다.
논의를 간단히 하기 위해서 여기에서는 창세기에 국한해서 보자.
창세기 이후의 책들에 있는 J자료의 단편적인 성경은 그 책들 속에서 J자ㅣ료의 존재를 더욱 문젯거리로 만들고 있다.
그러나 창세기에서 J자료는 전통적인 문서설에 따르면,
창세기 본문의 약 50%를 이룬다.
만일 현대의 학자들을 따라 E자료를 별개의 것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면,
약 80%를 이루며,
만일 P자료와 J자료보다 앞서 작성되었고,
J자료의 작성 과정에 들어오게 되었다면,
거의 100%를 이루게 된다.
따라서 J자료의 범위는 논란거리로 남아 있고 J자료의 저작 연대도 마찬가지다.
문서설은 J자료가 왕정 초기의 이상을 반영한다고 주장했다.
예를 들어,
약속된 땅의 경계선(창15:18-21),
다윗 왕조의 출현에 대한 암시(창38장; 49:10)등이 그렇다.
반 시스터스와 같은 최근의 더욱 급진적인 비평학자들은 J자료가 가나안 땅으로의 복귀를 희망하는 포로지 사람들의 염원에서 나온 관심사들을 반영한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창세기 아브라함과 그의 자손들에게 그 땅을 주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에 집착한다는 것이다.
J자료의 관시사들에 대한 이러한 관찰은 확실히 다양한 시기와 그 자료가 연관성을 가진다는 점을 보여 주기는 하지만, J자료가 그 시기에 기원을 둔다는 사실을 반드시 입증하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창세기의 '원시 역사'(1-11장), 족장이야기 (12-35장), 요셉 이야기(37-50장)라는 세개의 주요 부분은 각각 일찍 나왔을 수도 있다. 창세기 1-11장과 가장 밀접한 고대 근동의 유사 자료들인 아트라하시스 서사시(Atrahasis epic). 길가메쉬 서사시 11서판(Gilgamesh epic tablet 11),수메르 홍수 이야기, 수머르 왕의 목록은 모두 그 연대가 주전 2000년대 초로 소급된다.
마찬가지로 창세기 12-25장에 나오는 족장들의 생활과 종교에 대한 묘사는 모세 시대나 그 이후ㅠ의 시대에 대한 묘사와 같지 않다. 창세기의 이 장들에서 확인되는 이름들과 종교상의 관행과 법적인 관습들은 주전 2000년대에서 유사한 것드을 발견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요셉 이야기에 있는 특징들은 그 이야기가 아마도 람세스 시대, 즉 모세 시대 즈음에 비롯되었을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그렇지만 창세기가 왕정시대보다 훨씬 이전에 비롯되었다고 하더라도, 최소한 왕정 시대에 개정되었다는 사실을 보여 주는 충분한 암시들이 창세기 전체에 산재해 있다.
단)14:14), 갈대아 우르(15:7), 블레셋 족속(21:32,34)과 같은 이름들, 그리고 ' 그 온 집의 주'라는 요셉의 칭호(45:8)는 그 이야기들을 왕정 시대의 독자들이 좀더 쉽게 이해하도록 만들었던 현대화 작업으로 보인다. 마찬가지로 족장들의 종교도 더 후대의 관점에서 기술되고 있다. 여호와(주)라는 이름이 처음으로 계시된 것은 바로 모세에게였다. 족장들은 하나님을 엘 샤다이(전능하신 하나님)로 경배하였다(출3:13-14, 6:3).
그렇지만 창세기는 모세에게 말씀하셨던 하나님이 족장들이 알었던 그 하나님이심을 인정하면서 그 용어들을 번갈아 사용하고 있다. 하나님이 하시는 말씀들을 옛 용어들(엘 샤다이, 엘, 엘로힘)을 사용하는 경향을 보이지만, 해설자는 빈번하게 '여호와'라는 후대의 용어로 하나님을 지칭하고 있다.
P자료는, 옛 문서설과 새로운 급진 비평학자들에 의해 아무리 빨라도 포로기로 그 연대가 추정된다. 여기서 P자료에 속한다는 창세기의 단편들(예를들어17,23장)은 다루지 않겠지만, 비평학적 합의와는 반대로 이 구절들을 창세기의 더 고대에 속하는 부분에 등장한다. 출애굽기 25장과 민수기 36장 사이에 있는 제사에 대한 큰 덩어리의 법률들이 여기서 우리의 관심사다. 이 부분들의 언어와 내용은 P자료가 포로기보다 훨씬 전에 속한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실제로 밀그롬은 그것이 첫 성전,
즉 솔로몬의 성전에서 있었던 예배를 반영한다고 믿는다.
하란(Haran)은 심지어 더 초기의 성막 예배에 속하는 몇몇 요소들을 추적하고 있다.
이것은 그 자료가 모세로부터 기원했다는 가능성을 의미한다.
밀그롬과 맥콘빌이 행한 신명기에 대한 자세한 연구는 신명기가 P자료를 알았음을 입증한다.
벨하우젠과 그의 문서설과 반대로,
신명기는 성경의 순서 자체가 제시하듯이,
P자료 다음에 작성되었다.
이 사실은 마지막 문제,
즉 신명기의 저작 연대의 문제로 이끌어 간다.
거의 100년이 넘는 동안,
신명기의 저작 연대는 비평학적 논의에서 고정된 사항으로 취굽되어 왔다.
그리하여 오경의 다른 부분들은 신명기에 비추어서 작성 연대를 추정했다.
현재의 비평학적 논의도 이 전제를 거의 살피지 않는다.
자료 분석에 대해서는 몇몇 학자들이 의문을 젝하고 있고,
J와 P도 다른 학자들이 작성 연대를 다시 추정할 수 있겠지만,
신명기가 주전 7세기 후반에 나왔다는 사실은 거의 의심의 대상이 되지 않고 있다.
신명기의 문체가 예레미야서와 열왕기의 문체와 유사하고
그 안에 요시야의 개혁이 포함되어 있다는 점에서,
신명기가 그 시대에 작성되었음을 증명한다는 사실은 단순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다시한번 말하지만,
이러한 주장들은 여기서 적절하게 다룰 수 없다.
그러나 그 주장들의 불확실성만큼은 지적할 수 잇을 것이다.
첫째로,
히브리어 문체의 유사성이 신명기와 예레미야서와 열왕기의 비슷한 작성 연대를 입증하지는 않는다. 고대 근동 지역에서 문학 양식들은 서서히 변화하였다. 차라리 예레미야서와 열왕기가 자체의 메시지에 믿음을 주기 위해서 더 앞서 작성된 신명기를 인용하거나 암시한다고 보는 것이 더 가능성이 크다.
예레미야서는 신명기의 거의 모든 부분을 인용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지만, 소위 신명기 역사(즉,여호수아부터 열왕기하까지)에서는 전혀 인용하지 않고 있다.
둘째로,
신명기는 모든 제사를 예루살렘에 국한시킴으로써 요시야의 개혁 목표를 촉진하지 않는다. 오히려 신명기는 요시야라면 그곳을 '산당'(high place)이라고 불렀을 에발 산 위에 제단을 세워 그곳에서 제사를 지내라고 요구한다(신27:5-7).
이 사실은 신명기를 요시야의 개혁 프로그램이나 그 개혁에 대한 정당화로 여기는 것이 부적절함을 보여 준다.
셋째로,
신명기는 왕조시대 후기의 커다란 종교 정치적 쟁점들을 모르는 것으로 보인다.
신명기는 그 나라가 두 왕국으로 나뉜 것도 의식하지 못한다.
신명기는 바알 숭배와 가나안 방식의 제사를 전혀 기술하지 않으며,
그저 일반적인 말로만 정죄하고 있다.
한편으로 신명기는 가나안 사람들의 멸절을 요구하는 있는데,
그들은 주전 7세기 경에는 사라진 지가 오래되어서 확인할 만한 존재가 아니었다.
이러한 관찰들은 신명기에 대한 주전 7세기 저작 연대의 입장을 약하게 만들고 있다.
오히려 신명기 안에는 더 이른 작성연대가 더 개연성이 있음을 보여 주는 특징들이 존재한다.
첫째로,
신명기는 주전 8세기에 가장 이른 문서를 기록한 예언자들인 아모스와 호세아에 의해서 인용되는 것 같다.
둘째로,
신명기는 주전 1000년대의 조약과는 달리,
주전 16세기에서 13세기의 히타이트 조약들과 더 오래된 법인 함무라비 법전(약 주전 1750년)처럼 배열되어 있다.
셋째로,
신명기에 나오는 결혼법의 몇 가지 내용은 주전 1000년대의 문헌들에 나오는 법률보다는 주전 2000년대의 문헌들에 나오는 법률에 더 근접해 보인다.
이러한 사실들이 모세의 저작성을 요구하는 것은 아니지만,
신명기의 조기 기원이 가능하다는 점을 제시하고 있다.
⑤결론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들이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라는 것이 그 때의 무정부 상태에 대한 사사기의 씁씁한 논평이다.
오늘날 오경에 관한 논의들에서도 그와 비슷하게 합의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
학문적인 주장들은 찬반으로 왔다갔다 하지만,
그 논쟁의 배후에는 드러나지 않은 많은 전제가 깔려 있다.
예를 들어,
우리는 본문들을 일관성 있는 통일된 작품이라고 기대해야 하는가,
아지면 단편들의 수집물로 기대해야 하는가?
성경은 오루가 발견되기까지는 완전한 것인가,
아니면 완전함이 입증되기 전까지는 오류인가?
예수님과 사도들의 가르침이 오경의 영감과 저자에 대한 우리의 견해를 결정하는가?
이러한 질문들에 학자들은 저마다 다르게 대답한다.
그리고 그에 대한 성실한 대답들은 존중되어야 한다.
흔히 자료 비평학자들이 주장하는 것보다 오경 안에서 훨씬 더 큰 통일성을 인정해야 하고, 이책들의 기본적인 역사적 진실성을 받아들여야 할 이유들이 위에서 제시되었다. 그러나 본문의 본질적인 일관성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나 본문의 오류를 전제로 하고 시작하는 사람들은, 거의 아무런 곤란도 없이 이러한 주장들을 배제해 버릴 수 있다. 그래서 말할 필요도 없이, 논란은 앞으로도 오랫동안 계속될 것이다.
그러나 구약을 읽는 그리스도인 독자들은 '(오경을 포함해서) 무엇이든지... 우리의 교훈을 위하여 기록된 것'이며, 우리에게 저자에게 관한 이론들이 아니라, '소망'을 주려고 기독되었다는 점(롬15:4)을 기억해야 한다.
그 소망은 맨 처음에 아브라함에게 나타났고, 부분적으로 모세 시대에 성취되었으며, 그 이후로 점점 더 충만하게 성취된 소망이다.
만일 우리가 성경이 가진 신적인 목적('의로 교육함', 딤후3:16)을 최고 관심사로 삼고자 한다면, 비평학적 논쟁들에 대해 적절한 관점을 가져야 할 것이다.
고든 웬함(G.J.Wenham)
IVP 성경주석 中
여호와의 자료 =J= 여호와'Yahweh'
엘로힘의 자료 =E=엘로힘'Elohim'
제사장의 자료 =P
신명기=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