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자 양식
임승유
이런 식으로는 안 되겠어. 되게 하려면 뭘 먹어야 하는데, 도통 뭘 먹는 법이 없는 여자가 등장하는 소설은 언제 끝날지 모르고 그녀는 자꾸만 음식 생각을 한다. 문장과 문장 사이에 음식 생각이 끼어들면 이야기가 진행되지 않는다. 생각을 몰아내고 문장에 몰입하기 위해 얼른 음식을 만들어 먹고 시작하자. 가장 손쉬운 건 감자. 수돗물에 감자를 씻어서 냄비에 넣고 기다렸다가 익으면 젓가락으로 푹 찔러서 먹는 거야. 문제는 바구니의 감자가 오래됐다는 것. 오래돼서 싹이 나서 벌써 이파리까지 상상해 버렸네. 그렇다면 껍질 벗긴 후에 채 썰어서 감자채전을 해 먹는 것도 방법. 스며드는 기름 감각. 하지만 그녀는 벌써 여러 번 감자채 썰다가 손톱까지 썰었기 때 문에 그녀에게 썰게 할 수는 없다. 감자 써는 사람을 바꿀까. 아직 감자를 썰다가 손톱을 썬 적 없는 사람으로. 그로 하여금 껍질 벗긴 감자를 채칼에 대고 문지르게 하다가 위험해진다 싶으면 쥐고 있던 부분을 쓰레기통에 던지고 그다음 감자, 그다음 감자, 그렇게 하다가 감자채가 쌓이면 쌓인 감자채에 물을 부어 전분이 빠지도록 해 놓은 다음에
물 묻은 손을 티셔츠 자락에 문지르며 책상 앞에 그가 앉는다. 앉아서 문장을 적어 나간다. 아까 뒤로 빠져 있던 그녀가 이왕 이렇게 된 거 이 모든 과정을 문장으로 적어야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더 뒤로 빠져 있던 나는 그녀로 하여금 읽던 소설을 마저 읽게 하고 싶지만
그녀는 허기진 상태라서 이 문장이 끝나기 전에 전분이 빠진 감자채에 소금과 튀김가루 약간을 섞어 기름에 부치기 위해 일어나 부엌으로 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