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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비전 인생 (4) / 기쁨의 삶을 살라!"
+ 본 문 : 요한복음 3장 28절 - 30절 (신약성경 146쪽)
28 나의 말한바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요.
그의 앞에 보내심을 받은 자라고 한 것을 증거할 자는 너희니라.
29 신부를 취하는 자는 신랑이나 서서 신랑의 음성을 듣는 친구가 크게 기뻐하나니
나는 이러한 기쁨이 충만하였노라.
30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하니라. 아멘!
여러분! 지금 마음에 기쁨이 충만하십니까? 지금 의례적인 대답으로 '아멘!' 하셨겠지만,
속으로는 그럴 것입니다. "아니, 기쁜 일이 있어야 기쁨이 충만하지요?" - 제 말이 맞습니까?
어떤 식당에를 갔더니 종업원들이 가슴에 스마일 뺏지를 달고, 생글생글 환한 웃음을 웃으면서,
서빙을 합니다. 음식 한 그릇을 팔기 위해서도, 그 얼굴에 기쁨을 잃지 않으려고 그토록 애쓰는데,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았다고 고백하는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는 우리는, 지금 어떻게 살고 있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에게 다시 묻습니다. 여러분! 지금 마음에 기쁨이 충만하십니까?
지금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았다는 여러분의 마음에, 기쁨이 넘치는 삶을 살아가고 계십니까?
한 성도가 생업 때문에 살던 곳에서 멀리 떨어진 다른 지방으로 이사를 했습니다.
부득불 지금까지 다니던 교회를 옮길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처음 이사 온 동네라 어떤 교회가,
좋은 교회인지를 알 길이 없어서, 걱정, 걱정만 하다가 마침내 주일 아침을 맞고 말았습니다.
그 성도는 성경 찬송을 들고 나왔는데, 어느 교회를 가야 할지를 몰라 무작정 택시를 탔습니다.
그리고 택시 기사님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동네 교회 중에 좋은 교회로 데려다 주세요?”
그랬더니 그 택시 기사는 알았다고 하면서, 조금 멀리 떨어진 교회 정문에 내려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왜 동네 가까운 교회도 있을텐데, 굳이 멀리 떨어진 이 교회로 데려다 주었냐?” 고 묻자,
그 택시 기사님이 이렇게 말합니다. “예, 저는 교회를 안 다녀 봐서 어떤 교회가 좋은 교회인지,
잘 모릅니다. 저는 단지 이 교회에서 예배드리고 나오는 사람들의 얼굴이 항상 너무 평화롭고,
기쁨이 가득 차 보여서 이 교회가 좋은 교회라고 생각하고, 손님을 이 교회로 모셔다 드린 것입니다.
사실 저도 교회를 다닐 맘이 생기면 언젠가 이 교회에 꼭 다녀봐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거든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얼굴 모습이 얼마나 중요한지 아셨습니까?
그래서 우리 그리스도인의 얼굴은 움직이는 전도지라고 말합니다. 여러분의 얼굴은 어떤 전도지입니까?
옆 사람 얼굴 한 번씩 쳐다봅시다. 그리고 “내 얼굴이 전도지 같습니까?” 하고 물어 보십시오.
그리고 “내 얼굴 전도지 한 번 보십시오.” 하는 의미로 환하게 한 번 웃어보시기를 바랍니다.
웃으니 참 보기 좋습니다. 하지만 기쁨은 내면적이기에 억지로 웃는다고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 얼굴에 기쁨으로 가득 차려면, 우리 마음속에 날 구원하신 주님이 주신 기쁨이 넘쳐야 합니다.
마음에 기쁨이 넘쳐야 얼굴에 기쁨이 나타납니다. 바로 그 얼굴이 “내가 다니는 교회는,
이렇게 우리에게 기쁨을 주는 교회입니다.” 하는 메시지를 담은 전도지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리스도인 된 우리가 어떻게 해야 기쁨이 넘치는 삶을 살 수 있습니까?
1단계입니다. 기쁨이 넘치는 삶을 살려면, 경쟁심이나 시기 질투가 없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 29절 말씀을 다함께 봉독하겠습니다. “신부를 취하는 자는 신랑이나,
서서 신랑의 음성을 듣는 친구가 크게 기뻐하나니, 나는 이러한 기쁨이 충만하였노라.“ 아멘!
이 말씀은 세례 요한의 말씀선포입니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에 대해 크게 기뻐했습니다.
그러나 환경적으로 보면, 질투가 날만한 상황입니다. 예수님보다 세례 요한 자신이 나이도 많습니다.
또 예수님보다 천국복음 사역을 먼저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에게 세례까지 주었습니다.
그런데 사역을 하고 있는 세례 요한에게 어떤 사람이 찾아와서 이렇게 말합니다.(요한복음 3:26)
“그들이 요한에게 와서 이르되 랍비여, 선생님과 함께 요단 강 저편에 있던 자, 곧 선생님이,
증언하시던 자가 세례를 주매, 사람이 다 그에게로 가더이다.“ - 세례 요한의 입장에서 보면,
분명 질투가 날만한 일입니다. 하지만 세례 요한은 예수님에 대해 전혀 질투하지 않았습니다.
아니 오히려 자신에게 오던 사람들이 다 예수님에게로 가자, 세례 요한은 크게 기뻐했습니다.
여러분! 세례 요한처럼 기쁨이 넘치는 삶을 살려면, 우리 마음에 시기 질투가 없어야 합니다.
시기 질투가 많은 사람은 기뻐할 수 없습니다. 늘 마음에 시기 질투가 끊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친구의 잘 됨을 진정으로 기뻐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의 잘 됨을 진정으로 기뻐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게 잘 안됩니다. 옛말에 “거지는 거지를 시기하고, 시인은 시인을 시기한다.” 고 했습니다.
“가제는 게 편” 이란 말이 있습니다. 하지만 가제는 게 편은 될 수 있지만, 게가 게 편은 안 됩니다.
게를 담은 바구니에는 특별히 뚜껑이 필요 없습니다. 왜냐하면 어떤 게 한 마리가 바구니를,
기어오르면 다른 게가 쫓아와서 반드시 끌어내리기 때문에, 게들은 바구니 바깥으로 나오지 못합니다.
이처럼 시기 질투는 자신은 물론, 자신이 속한 집단에게도 막대한 피해를 주는 것을 보게 됩니다.
시기 질투가 많은 사람은 다른 사람이 잘 되는 꼴을 못 봅니다. 그래서 자꾸 끌어내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더 무서운 것은 시기 질투는 사람의 마음을 썩게 만듭니다. 자기 자신을 파괴시킵니다.
또한 시기 질투는 아내를 죽이고, 남편을 죽이고, 친구를 죽이고, 의인을 죽입니다. 다 죽입니다.
오스카 와일드라는 사람은 시기 질투의 위력에 대해서 이렇게 잘 설명합니다.
어느 날 마귀는 리비안 사막을 지니다, 성자가 되기 위해 길을 떠난 순례자 한 사람을 보았습니다.
마귀는 이 성자 후보에게 세상의 아름다움을 보여주기도 하고, 이성의 쾌락을 연상시키기도 하며,
모든 수단 방법을 다 동원했으나, 그 성자 후보의 발걸음을 돌이키는 일에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그 사정을 마귀 대장에게 보고하자, 마귀 대장은 그 부하들에게 "잠자코 나를 따르라." 하더니,
길을 가던 그 성자 후보에게 접근하여, 그 귀에다 대고 은근한 목소리로 뭐라고 속삭였습니다.
그러자 갑자기 그 성자 후보자는 얼굴을 일그러뜨리면서, 발걸음을 돌이키는 것이었습니다.
마귀의 부하들은 신기하여 마귀 대장에게 도대체 어떻게 하여 그가 돌이키게 했느냐고 묻자,
마귀 대장은 웃으며 "그거야 간단하지 네 동생이 방금 알렉산드리아의 대 주교가 되었다고 했지"
마귀 대장은 계속하여 이렇게 설명을 했습니다. "인간들은 시기 질투하게만 만들어 놓으면,
손쉽게 우리 손에 들어올 수 있게 되지!" 그래서 야고보서 3장 14절에 "시기와 다툼은 위로부터,
내려온 것이 아니요. 세상적이요. 정욕적이요. 마귀적이라." 고 했습니다. 이렇게 시기 질투는,
마귀가 심어놓은 것이기에, 시기 질투의 뿌리가 깊습니다. 그래서 기도로만 뽑아내야 합니다.
오직 우리 하나님의 말씀으로 수술해야 합니다. 보혜사 성령으로 불태워 죽여 버려야 합니다.
이렇게 시기 질투를 뽑아내고 나면, 비전 있는 인생은 늘 기쁘고 즐거운 행복한 인생이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의 기쁨이 넘치는 삶을 살려면, 경쟁심, 시기 질투가 없어야 합니다.
2 단계로, 기쁨이 넘치는 삶을 살려면, 우리가 항상 주님 안에 있어야만 합니다.
빌립보서 4장 4절 말씀입니다.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아멘!
기쁨이라는 단어가 있는 복음찬송이 참 많습니다. 찬송가에도 많은데, 무려 148곡이나 됩니다.
찬송가든 복음찬송가든 기쁨이 있는 찬양은, 우리가 받은 구원의 기쁨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 오! 이 기쁨 주님 주신 것, 오 이 기쁨 주님 주신 것, 오 이 기쁨 주님 주신 것,
주께 영광 할렐루야 주만 찬양해!
♬ 예수 나의 기쁨 아 - - - 멘! 아 - - - 멘! 아 - - - 멘! 아멘! 아멘!
♬ 1. 나 주님의 기쁨 되기 원하네. 내 마음을 새롭게 하소서! 새 부대가 되게 하여 주사,
주님의 빛 비추게 하소서! 내가 원하는 한 가지 주님의 기쁨이 되는 것,
내가 원하는 한 가지 주님의 기쁨이 되는 것,
2. 겸손히 내 마음 드립니다. 나의 모든 것 받으소서! 나의 맘 깨끗게 씻어 주사,
주의 길로 행하게 하소서! 내가 원하는 한 가지 주님의 기쁨이 되는 것,
내가 원하는 한 가지 주님의 기쁨이 되는 것.
♬ 289장 1. 주 예수 내 맘에 들어와 계신 후 변하여 새 사람 되고, 내가 늘 바라던 참 빛을,
찾음도 주 예수 내 맘에 오심, (후렴) 주 예수 내 맘에 오심, 주 예수 내 맘에 오심,
물밀 듯 내 맘에 기쁨이 넘침은 주 예수 내 맘에 오심.
여러분! 여러분에게 이런 구원의 은혜가 여러분의 삶 가운데 늘 넘치기를 진심으로 원합니다.
옛날 영국 황제 루이스가 민정을 살피기 위하여 국내를 순시하는 도중에,
어떤 동리에 있는 물방앗간을 지나게 되었습니다. 그때 물방앗간에서 기뻐 부르는 노래가 들리는데,
황제는 기뻐 부르는 그 노래 소리에 도취되어, 발길을 멈추고 물방앗간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들어 가보니, 물방앗간 노인이 너무너무 행복한 표정으로, 기쁨이 넘치는 목소리로 너무 즐겁게,
노래를 부르는 것이었습니다. 영국 황제 루이스는 그 물방앗간 노인에게 다시 노래를 청하니,
그 노인은 거절하지 않고, 또 다시 기쁨이 넘치는 노래를 부르기 시작합니다.
♬ 세상 사람 날 부러워 아니하여도, 나도 역시 세상사람 부럽지 않네.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할 때에, 할렐루야. 찬송이 저절로 나네.
그 노래를 듣던 황제는 그 노인에게 말하기를 그러면 둘째 절은 이렇게 부르라고 하였습니다.
♬ 세상 사람 날 부러워 아니하여도 영국 황제 루이스가 부러워하네.
십자가의 사랑을 생각할 때에, 할렐루야! 찬송이 저절로 나네.
무엇이든지 다른 사람에게는 있는데, 내게 없는 것을 바라보면 기쁨이 사라집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에게 있든지 없든지 전혀 상관하지 않고, 내게 있는 것을 바라볼 때 반드시,
내게 기쁨은 찾아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광야는 하나님을 바라보는 훈련장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바라보기보다는 광야에서 없는 것만 골라서 바라보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늘 이것도 저것도 없다고만 불평했습니다. “물도 없고, 고기도 없고, 파도 없고,
마늘도 없고, 수박도 없고... 이 만나 외에는 보이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고 불평했습니다.(민 11:6)
그리고 저들은 “애굽에 있었을 때가 좋았다.” 고 그러면서 참 기쁨을 놓쳐 버렸습니다.(출11:18)
여러분! 재미는 기쁨의 유사품입니다. 유사품에 속아 기쁨을 잃는 사람 아무도 없기를 바랍니다.
우리 하나님은 저들에게 없어서 못 주시거나, 능력이 없어서 안 주신 것이 아니라, 있는 것,
이미 우리에게 주신 것에 먼저 감사하기를 원했습니다. 세상 재미보다는 기쁨으로 사는 법을,
가르쳐주시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러나 저들은 감사보다 불평했고, 기쁨보다 재미를 원했습니다.
그러나 이와는 정반대로 하박국 선지자는 하나님이 이미 주신 것, 지금 있는 것을,
바라보는 훈련이 되어 있었습니다. 하박국 선지자가 남들보다 많은 것을 소유한 것은 아닙니다.
오직 자신과 함께 하신 하나님만을 바라본 것입니다. 지금 자기에게 많은 것이 없었을지라도,
하나님이 지금 나와 함께 계시기에 그 하나님을 통해 만족할 수 있었고, 기뻐할 수 있었습니다.
하박국 3장 17절, 18절 말씀입니다. /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고,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해 기뻐하리라.“ 아멘! 아멘입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있다고 다 기뻐하는 것이 아닙니다. 부자라고 다 기뻐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내게 주신 것, 지금 내게 있는 것으로 감사하지 않으면, 많은 것을 가져도 기쁨이 없습니다.
어떤 부자 집 노인이 말을 타고 가다가, 앞길에서 한쪽 다리를 못 쓰는 거지 차림의 사람이,
기뻐 뛰면서 춤을 추는 것을 보았습니다. 참으로 이상하다 싶었습니다. ‘나는 이렇게 돈이 많아도,
춤출 일이 전혀 없는데, 저 거지는 도대체 무엇이 기뻐서 저렇게도 즐겁게 춤을 추고 있을까?‘
그게 궁금해서 거지에게 기쁘고 즐겁게 춤추는 이유를 물어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그 거지가,
춤추며 대답하기를 "제가 기뻐서 춤을 추는 이유가 세 가지입니다.“ 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첫째, 하나님께서 나를 만물 중에서 가장 귀한 사람으로 지어주심을 생각할 때에 너무 기쁘고,
둘째, 나는 다리를 저는 절름발이 불구자이나, 세상에는 나보다 더 큰 불구자가 많이 있고요.
셋째, 세상에서는 날 부러워할 사람 없지만, 난 죽으면 하나님 품에 있기에 너무 기뻐 춤을 춥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여러분은 어디에 있습니까? 지금 주님 안에 있습니까?
아니면 주님 밖에 있습니까? 지금 주님 안에 있다면,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지금 주님 안에서 역사하시는 주님을 바라볼 때, 진정으로 감사하며 기뻐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3 단계, 기쁨이 넘치는 삶을 살려면, 나누고 섬기는 삶이 있어야 합니다.
성경에는 주는 자가 더 복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사도행전 20장 35절 말씀입니다.
“... 주 예수의 친히 말씀하신 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지니라.” 아멘!
교회 안에서 참 기쁨을 알고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은 여러 기관에서 봉사를 하시는 분들입니다.
그렇습니다. 섬김을 받는 것도 기쁘지만, 다른 사람을 주님 사랑으로 섬기는 것은 더 기쁜 일입니다.
켐벨(Campbell)이라는 사람의 전기에 보면, 타운센트(Townsend) 라는 한 기독인의,
성실한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종교서적을 보급하는 안건을 위해 회의를 하기로 한 어느 날,
오전에 캠벨이 회의실로 올라가는 계단으로 가는데, 계단의 난간에 몸을 기대고 숨을 가쁘게,
내쉬고 있는 타운센드라는 사람을 발견했습니다. 그는 숨을 가쁘게 내쉬는 타운센드를 부축했습니다.
타운센드 씨는 오랫동안 그 회의에 참석하였던 사람인데, 오늘도 회의 참석을 위해서 회의실로,
오는 길이었습니다. 캠벨이 “몸이 많이 약해지셨는데 계속 참석하시겠습니까? 이제 그 일을,
젊은이들에게 맡기셔도 되지 않겠습니까?” 라고 권하자, 타운센드 씨는 “오! 하지만 주님을 위해,
봉사하는 일을 그만 둔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오.“ 라고 말하는 그의 얼굴은 기쁨으로,
상기되어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주님을 위해 봉사하는,
일을 그만 둔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 고 고백할 수 있습니까? 아니면 이와 반대로,
“주님을 위해서 봉사하는 일은 결코 쉬운 아니라.” 고 하면서 봉사를 쉴 생각은 않으셨습니까?
성경에서 가장 짧은 절이 2개입니다. “주께서 우시니라!” 그리고 “항상 기뻐하라!” 입니다.
그런데 이 두 개의 문장은 전혀 다른 것 같으나, 가만히 살펴보면 매우 깊은 연관이 있습니다.
즉, 주님께서 우셨기에 우리는 항상 기뻐할 수 있습니다. 주님은 우리의 구원을 위해 그 생명을,
드리셨습니다. 주님이 생명을 우리 위해 주셨기에, 우리는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주님이 우셨기에, 우리는 웃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주님이 우리의 죄악으로 슬퍼하셨기에, 우리가 주님의 용서하심에 기뻐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베푸는 것, 그 자체가 보상이다.” 라는 옛말이 있습니다. 리처드 칼슨이라는 분의,
“우리는 사소한 것에 목숨을 건다.” 는 책은 미국에서 1년에 550만부 이상 팔리는 베스트셀러입니다.
그 책에 “우리는 뭔가를 주는 동시에 받는다. 정말로, 우리가 받는 것은 주는 것과 직접적으로,
비례한다. 이웃에게 주는 사람은 그 자체로 자기 자신에게 커다란 기쁨이 생겨난다.“ 고 말합니다.
샌프란시스코 만에는 다섯 개의 유료다리가 있는데, 그곳에서 친절운동이 생겼다고 합니다.
톨게이트에서 통행료를 내려고 하는데 “앞차에서 내셨습니다.” 하는 말을 듣게 됩니다.
그 차도 역시 뒤차를 위해 내고, 그렇게 같은 돈을 내는데도 기분 좋은 출근길이 된다고 합니다.
요즘 이색적인 기부운동을 하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자신의 가게에서 올리는 수익의 1%를,
어려운 이웃을 돕기 위해 따로 모아 기부하는 운동인데, 그렇게 누군가 필요로 할 때 주는 것이,
얼마나 큰 기쁨인지 아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우리가 그런 기부로 기쁨을 누립시다.,
구약성경 레위기 19장에 추수 때가 되면, 가난한 이웃들을 위해 일부러 밭모퉁이를,
추수하지 않고 남겨 두거나, 떨어진 볏단이나 이삭들은 줍지도 않고 모두 다 남겨두었습니다.
그렇게 남겨 주는 이유는 가난한 사람과 타국인을 위해서였는데, 하나님의 명령이기도 했습니다.
우리 주위에 있는 가난한 이들을 위해서 모퉁이운동을 시작합시다. 모퉁이 헌금통을 만들어서,
매달 1회씩 첫 주에 모퉁이헌금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모퉁이헌금을 좋은 일에 사용했으면 합니다.
그 헌금 통에, 예를 들어 세차를 집에서 하고 세차비 3천원을 넣기도 하고, 시장에서 물건을,
싸게 샀다고 생각이 들면 천원을 넣는다든지, 아차 교통신호 위반을 했는데 걸리지 않았다면,
범칙금으로 만 원을 넣는다든지, 어떤 물건을 사고 동전이 남았으면 그것으로 헌금하면 됩니다.
그렇게 모아 북한 선교를 위해 돕는 기금으로 보내든지, 구제와 장학금으로 쓸 수도 있습니다.
한 달 수입 중 하루 몫은 가난한 이웃을 위해서 사랑의 헌금으로 내는 분들도 많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비전 인생이 가지는 기쁨이 넘치는 삶을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기쁨이 넘치는 삶을 살려면, 경쟁심이나 시기 질투가 없어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항상 주님 안에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나누고 섬기는 삶이 있어야 합니다.
이런 우리의 삶으로, 기쁨이 넘치는 삶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