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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년 1월 11일 주일예배 표어설교 +
+ 제 목 : “용서! 사랑의 시작입니다.”(3)
+ 본 문 : 이 사 야 55장 7절 (구약성경 1036쪽)
+ 본 문 : 에베소서 4장 31절, 32절 (신약성경 314쪽)
* 이사야 55장 7절 / “악인은 그의 길을, 불의한 자는 그의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그가 너그럽게 용서하시리라.“ 아멘!
* 에베소서 4장 31절, 32절 / “너희는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떠드는 것과
비방하는 것을 모든 악의와 함께 버리고,
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아멘!
새로운 2026년 새해를 맞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 모두에게,
범사에 잘 되고 행복이 충만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멘!
옆의 분들과 인사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잘 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나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나는 행복합니다.”
우리는 오늘 2026년 새해를 시작하자는 새해맞이 둘째 주일예배로 드립니다.
2026년 우리교단과 우리교회 표어는 “용서! 사랑의 시작입니다.” 입니다.
그래서 오늘 주일도 “용서! 사랑의 시작입니다.” 라는 제목으로 설교합니다.
본문은 표어의 요절인 이사야 55장 7절과 에베소서 4장 31절, 32절입니다.
기독교는 용서의 종교입니다. 주님께서도 원수를 사랑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말씀이지만 실천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사실이지, 용서한다는 것은,
부부 간에도, 피를 나눈 부모형제간에도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원수를 용서하고,
사랑한다는 것은 더더욱 어려운 일입니다. 그렇지만 성경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다 맞는 말씀인데 실천하기는 정말로 쉽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가르쳐 주신 기도문에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라고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러고 나서 덧붙여 이르시기를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면, 너희 천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시려니와,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 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다른 사람들의 잘못을 용서해야, 하나님께서도 우리 잘못을,
용서해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이처럼 양자는 매우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습니다.
우리가 “나에게 잘못한 사람들을 용서해야 하는 이유” 가 무엇일까요?
첫 번째로, 우리는 말할 수 없이 큰 죄를 용서 받은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에베소서 2장을 보면, 예수님을 믿기 전 우리의 비참한 실상을 언급합니다.
첫째로, 허물과 죄로 죽은 자들이었다고 했습니다. 둘째로,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 곧 마귀를 따르는 자들이라고 했습니다. 셋째로, 죄 가운데서,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세상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본질상 진노의 자녀였다고 말씀했습니다. 로마서 5장 10절을 보면,
그 때에 이런 우리 인간들은, 하나님의 원수였다고 말씀을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심판하지 않으시고 용서하는 편을 택하셨습니다.
무조건 용서하신 것이 아니라, 우리가 받아야 할 죄의 형벌을 독생자로 대신 당하게,
하셨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친히 우리의 죄 값을 갚아주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로마서 5장 8절에 보니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고 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대하여 큰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심판하시는 분, 우리의 잘못과 죄를 조금도 용납하지 아니하시고 무섭게 진노하시는,
하나님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감히 하나님 가까이 나오기를 꺼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런 분이 아니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죄를 미워하시고,
심판하시지만 인간들에게 죄를 용서 받고 심판을 면할 수 있는 길을 준비해,
놓으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자기를 용서의 하나님으로 계시하셨습니다.
다윗은 시편 103편에서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이 같이 찬송하였습니다.
“여호와는 자비로우시며 은혜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자하심이 풍부하시도다.
항상 경책지 아니하시며, 노를 영원히 품지 아니하시리로다. 우리의 죄를 따라,
처치하지 아니하시며, 우리의 죄악을 따라 갚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하늘이 땅에서,
높음 같이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 그 인자하심이 크심이로다. 동이 서에서 먼 것,
같이 우리 죄과를 우리에게서 멀리 옮기셨으며, 아비가 자식을 불쌍히 여김 같이,
여호와께서 자기를 경외하는 자를 불쌍히 여기시나니, 이는 저가 우리의 체질을,
아시며 우리가 진토임을 기억하심이로다.” 아멘!
얼마나 자비와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십니까. 얼마나 우리의 모든 형편을,
깊이 이해하시고 배려하시는 하나님이십니까.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생각은,
재앙이 아니라 우리 장래에 소망을 주려하는 것입니다. 심지어 악인들에 대해서도,
하나님께서는 선한 의도를 갖고 계십니다. 에스겔 18장 23절에서 말씀하시기를,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어찌 악인의 죽는 것을 조금인들 기뻐하랴.
그가 돌이켜 그 길에서 떠나서 사는 것을 어찌 기뻐하지 아니하겠느냐.” 하셨습니다.
이 같은 하나님의 뜻은, 선민이나 이방인이나 차별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구원함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데 이르기를 원하십니다.(딤전 2:4).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범죄 한 인생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독생자를 이 세상에,
보내셨으며, 인생들의 죄 값을 대신하여 십자가에 달려 고난을 당하게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은, 우리 인생들을 위한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지극하신가를 보여준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요한일서 4장에 이 같이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니라.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아멘!
하나님의 공의에 의하면, 우리는 마땅히 심판을 받아야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심판하지 않으시고, 독생자로 우리 인간들의 죄를 대신 지고 심판을 받게,
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인간들에게는 죄 문제를 해결할 아무 능력도 없기 때문입니다.
인간들이 죄를 해결 받는 길은, 다만 하나님 편에서 용서해 주시는 길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공의의 하나님께서 죄를 심판하지 않고서는, 용서해 주실 수가 없으므로,
독생자로 하여금 범죄 한 인생들을 대신하여, 죄 값을 치르게 하셨던 것입니다.
이로 인해 이제 누구든지 하나님의 초청에 응답하여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마다 죄의 문제를 해결 받고 하나님과 화해를 이룰 수 있게 되었습니다.
죄 사함을 받고 하나님과 화해하기 위해 우리가 할 일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다만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면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들은 예수님의 보혈로 모든 죄를 깨끗하게 사함 받았으므로, 의인의 자격으로,
하나님 앞에 설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하신 로마서 8장의 선언은 믿는 자들을,
위한 해방선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공로는 무한하기 때문에 지금도,
주님을 믿는 자들은 동일한 사죄의 은총을 받아 누리게 됩니다. 지금도 하나님께서는,
죄 가운데 있는 인생들을 향하여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 같을,
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되리라.”(사 1:18),
저와 여러분이 아무리 큰 죄를 지었더라도, 자기 죄를 회개하고 주님께로 돌아오면,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받고, 하나님의 한없는 용서를 경험하게 됩니다. 믿습니까?
예수님과 나란히 십자가에 달렸던 두 강도 중 한 사람이 자기 죄를 뉘우치고,
예수님께 부탁하기를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 나를 생각하소서.” 말하자,
예수님께서 “내가 진실로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고 하셨습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든지 구원의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
그런데 이 세상에는 마음이 완고해 하나님의 초청을 거부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제 인간들에게는 죄 용서 받는 길이 열려 있으므로, 구원 받지 못하는 것은,
죄인이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을 거부하기 때문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죄, 영원히 용서 받지 못하는 죄는 하나님의,
사랑을 끝끝내 거절한 죄입니다. 지금까지 살펴본 대로 우리는 하나님의 한없는,
용서를 받은 사람이므로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들을 너그럽게 용서해 주어야 합니다.
용서야말로 그리스도인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삶의 태도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나에게 잘못한 사람들을 용서해야 하는 이유” 가 무엇일까요?
두 번째로, 하나님의 용서를 세상에 전파할 사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들에게 주신 구원의 소식이기에 좋은 소식이요. 복음입니다.
복음의 중심은 하나님의 용서입니다. 하나님의 용서를 받을 수 있는 길이,
활짝 열렸다는 것이 복음의 요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구원의 복된 소식을,
온 세상에 널리 전파하기 위해서, 우리 먼저 믿는 자들을 일군으로 삼으십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는 것은, 곧 복음을 전할 사명자가 되었음을 의미합니다.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마 28:19-20) 하신,
주님의 지상명령은 사도들에게만 주신 것이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주셨습니다.
지금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모든 분쟁과 범죄 행위는, 미움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개인적인 다툼이건, 계층 간의 분쟁이건, 국가 간의 전쟁이든 간에 모두 알고 보면,
미움 때문입니다. 그러나 불화를 보복으로 해결하려고 하면, 보복의 악순환을,
불러 올 뿐입니다. 이는 개인적인 차원에서건, 국가적인 차원에서건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 이스라엘과 팔레스틴의 전쟁을 보게 되면,
서로 죽이고 죽는 보복의 전쟁을 하고 있는데, 언제 끝이 날지 기약이 없습니다.
복수는 복수를 불러올 뿐입니다. 그 땅에 평화를 정착시킬 방법은 전쟁에서의,
승리가 아니라 서로가 서로를 용서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용서가 쉬운 게 아닙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용서의 복음 안에서는 원수를 용서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우리가 살다보면, 우리가 원하지 않는데도 사람들과 불화하는 일이 생깁니다.
내 편에서 다툼을 원하지 않았는데도, 상대방이 싸움을 걸어올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 대항하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그러나 미움은 미움을 낳고 보복은,
보복을 낳기 때문에, 그런 방식으로는 틀어진 인간관계를 원상회복할 수 없습니다.
화해를 원한다면 먼저 내 편에서, 상대방의 무례와 잘못을 용서해야 합니다.
나의 진심이 상대방에게 올바로 전달되도록 인내심을 갖고 대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때 우리가 기억할 말씀이 오늘 본문입니다. “서로 인자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아멘!
미워 죽겠는데 어떻게 인자하게 대해 주고, 불쌍히 여기고, 용서해 줄 수 있습니까?
우리 속에 미워하는 감정이 남아 있는 한 불가능합니다. 그러므로 본문에 보니,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하십니다.
영원한 지옥 형벌을 받아야 할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독생자를,
십자가에 죽도록 내어주셨습니다. 이처럼 독생자의 희생이 있었기에 저와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용서를 받은 것입니다. 우리가 이 같이 위대한 하나님의 용서를 받았음을,
생각할 때, 우리도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들을 너그럽게 용서해 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같은 용서의 정신이, 갈라놓았던 미움과 갈등을 해결하고 진정한 화해를,
이루게 됩니다. 이렇게 볼 때, 복음을 전하는 것은 개인의 구원은 물론이요.
우리사회를 치유하고, 더 나아가 불화하는 세계를 구하는 길임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무한한 용서를 경험한 우리, 용서의 복음을 전하는 데 열심내야 합니다.
우리가 “나에게 잘못한 사람들을 용서해야 하는 이유” 가 무엇일까요?
셋째로, 내가 남을 용서할 때 나 자신이 치유 받고, 서로 화해를 이룰 수 있습니다.
용서는 남을 위한 것 같지만, 실은 우리 자신을 위한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내가 누구를 미워하면, 상대방이 고통을 받는 것이 아니라 내가 고통스럽습니다.
내 마음이 분노와 악한 감정으로 쑥대밭이 되어, 심하면 화병에 걸려 고생합니다.
어느 성도님이 같은 교회에 다니는 교인에게 금전적인 피해를 크게 입었는데,
상대방이 손해를 변상하기는커녕 오히려 자기가 손해를 봤다고 소문을 퍼뜨립니다.
이 일로 너무 분하고 억울한 나머지 화병에 걸렸습니다. 백약이 아무 효험이 없고,
시름시름 앓다가 죽을 지경에 이르자, 성도님은 ‘기왕에 죽게 된 것 용서해 주자.’
그랬더니 점점 마음이 평안해지고, 몇 개월이 지나 완전히 건강을 회복했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내 몸과 마음의 건강을 잃지 않기 위해서라도, 내가 먼저 용서해야 합니다.
한번은 베드로가 예수님께 묻기를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번까지 하오리이까?” 하고 묻자, 예수님께서 대답하시기를,
“네게 이르노니 일곱 번뿐 아니라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하라.” 고 하셨습니다.
그러고 나서 만 달란트 빚진 자가, 백 데나리온 빚진 자를 용서하지 못한 비유를,
말씀해주셨습니다. 우리는 도저히 갚을 수 없는 큰 빚을 하나님께 진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를 불쌍히 여기셔서, 하나도 남김없이 탕감해 주셨습니다.
곧 우리의 모든 죄를 깨끗하게 용서해주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용서받은,
죄에 비하면 다른 사람들이 나에게 저지른 잘못은, 아주 사소한 잘못에 불과합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잘못한 사람들을, 용서하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의 용서를 받은 우리에게 너무나 어울리지 않는 행동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면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시려니와,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 아멘!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해 주는 것이 우리가 하나님의 용서를 받는 길입니다.
결국, 다른 사람들을 용서하는 것은, 나 자신을 위한 것이 됨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나에게 잘못한 사람들을 용서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첫째로, 죄인인 우리 자신이 말할 수 없이 큰 죄를 용서 받은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용서받은 우리는 하나님의 용서를 세상에 전파할 사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셋째로, 내가 남을 용서할 때 나 자신이 치유 받고 화해를 이룰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사노라면 남에게 잘못을 저지르기도 하고, 또 다른 사람들이 나에게,
잘못하기도 합니다. 내가 남에게 잘못했으면 그 사람에게 먼저 용서를 구하고,
다른 사람이 애게 잘못했으면, 내가 먼저 용서하는 것이 바람직할 태도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천국백성인 우리에게 용서는 빠를수록 좋습니다.
그런즉 “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하신 말씀을 따라 용서를 생활화하고,
용서의 복음을 전하는데 힘쓰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다함께 2026년의 표어를 힘차게 외치며 결단합시다.
저를 따라 세 번 외치겠습니다. “용서! 사랑의 시작입니다.”
♥ 기도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