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묵주기도 신비 다섯 가지 묵상 방법 ①신비 선포 ②성화 또는 성상 묵상 ③성경 봉독 ④말씀 묵상 ⑤침묵. 다섯 가지 묵상 방법을 순서대로 합니다. 상황에 따라 선택하거나 생략할 수도 있습니다. |
신비 선포
고통의 신비 제2단 :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매 맞으심을 묵상합시다.
성화 묵상
빌라도는 예수님에게서 아무런 죄목도 찾지 못하였습니다. 그렇지만 유다인들의 외침에 예수님을 데려다가 군사들에게 채찍질을 하게하고, 군사들은 가시나무로 관을 엮어 예수님의 머리에 씌우고 자주색 옷을 입히고 그분의 뺨을 쳐 댑니다.(요한 19,1-2) 죄 없으신 그분께서는 가시나무 관을 쓰고 자주색 옷을 입으신 채로 밖으로 나왔습니다. 빌라도는 성난 군중에게 주님을 내보입니다. “자, 이 사람이오.”(요한 19,5) 하느님께서는 죄를 모르시는 그리스도를 우리를 위하여 ‘죄’로 만드시어,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의 ‘의로움’이 되게 하셨습니다.(1코린 5,21)
성경 봉독(요한 19,1-3)
1. 신비 관련 성경 전체 또는 한 구절만을 표시하며 읽고 침묵 가운데 묵상하거나 2. 소리 기도 중 열 번의 성모송을 한 번씩 반복할 때마다 숫자로 표기된 순서에 따라 아래 한 구절의 성경을 묵상하고 성모송으로 마칩니다. |
① 아침이 되자 수석 사제들은 곧바로 원로들과 율법 학자들, 곧 온 최고 의회와 의논한 끝에, 예수님을 결박하여 끌고 가서 빌라도에게 넘겼다. 빌라도가 예수님께 “당신이 유다인들의 임금이오?” 하고 물었다.(마르 15,1-2) (성모송)
②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않는다... 내가 임금이라고 네가 말하고 있다. (성모송)
③ 나는 진리를 증언하려고 태어났으며, 진리를 증언하려고 세상에 왔다. 진리에 속한 사람은 누구나 내 목소리를 듣는다.” (성모송)
④ 빌라도가 예수님께 말하였다. “진리가 무엇이오?” 빌라도는 이 말을 하고 다시 유다인들이 있는 곳으로 나가 그들에게 말하였다. “나는 저 사람에게서 아무런 죄목도 찾지 못하겠소.” (요한 18,36-38) (성모송)
⑤ 그리하여 빌라도는 예수님을 데려다가 군사들에게 채찍질을 하게 하였다.(요한 19,1) (성모송)
⑥ 사람들에게 멸시받고 배척당한 그는 고통의 사람, 병고에 익숙한 이였다.(이사 53,3) (성모송)
⑦ 학대받고 천대받았지만 그는 자기 입을 열지 않았다. 도살장에 끌려가는 어린 양처럼 털 깎는 사람 앞에 잠자코 서 있는 어미 양처럼 그는 자기 입을 열지 않았다.(이사 53,7) (성모송)
⑧ 그러나 그가 찔린 것은 우리의 악행 때문이고 그가 으스러진 것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다.(이사 53,5) (성모송)
⑨ 그는 우리의 병고를 메고 갔으며 우리의 고통을 짊어졌다.(이사 53,4) (성모송)
⑩ 우리의 평화를 위하여 그가 징벌을 받았고 그의 상처로 우리는 나았다.(이사 53,5) (성모송)
말씀 묵상
처음부터 그리스도교 신심은, 특히 사순시기의 십자가의 길 기도는 수난의 각 사건들에 초점을 맞추어 왔는데, 이는 수난이 사랑의 계시의 절정이며 우리 구원의 원천임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성 요한 바오로 2세)
예수님께서 유다 최고 의회 앞에서 심문을 받으시고, 빌라도에게 넘겨집니다. 빌라도의 부인이 꿈을 꾸고, 빌라도는 예수님을 헤로데에게 넘깁니다. 다시 빌라도에게 되돌아온 예수님의 수난사가 고통의 신비 2단에 압축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매 맞으심은 빌라도의 행위를 통하여 이루어진 십자가 죽음에 대한 결정입니다. 채찍질, 사형선고, 십자가의 길과 십자가형 죽음까지. 매 맞으심은 본격적인 고통의 신비의 십자가의 길이라 할 수 있습니다.
빌라도는 예수님을 심문한 후, 예수님께서 정치적 선동가가 아니며 예수님의 복음 선포와 등장이 로마의 지배에 위험 요소가 아니라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고발자들인 유다인들은 소리칩니다. “그 사람을 풀어주면 총독께서는 황제의 친구가 아니오.”(요한 19,12) 그 위협은 빌라도 자신의 경력에 대한 불안을 들추어내고 있습니다. 빌라도는 적당히 유다인들의 분노를 잠재우기 위해 먼저 파스카 사면을 위한 후보로 예수님을 내세워 풀어주고자 합니다. 무죄를 선고한 것이 아니라 사면을 한다는 것은 이미 유죄 선고를 내린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을 석방시키고자 내세웠던 인물은 바라빠였습니다. “마침 바라빠라고 하는 사람이 반란 때에 살인을 저지른 반란군들과 함께 감옥에 있었습니다.”(마르 15,7 참조) 바라빠는 정치적 상황에서 로마의 반란군입니다. 그는 로마의 평화를 거스른 선동가이지만, 유다인들은 바라빠를 풀어달라 요청하며 자신들이 바라던 메시아를, 바라빠와 같은 인물로 요구한 것입니다. 그들은 메시아를 자신들의 뜻을 충실히 반영하는 존재로 만들어버렸습니다. 그래서 총독이 그들에게 “두 사람 가운데에서 누구를 풀어주기를 바라는 것이오?” 하고 물었습니다. 그들은 “바라빠요.” 하고 대답합니다. 빌라도가 그들에게 “그러면 메시아라고 하는 이 예수는 어떻게 하라는 말이오?” 하니, 그들은 모두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 하고 외쳤습니다.(마태 26,21-22) 빌라도는 무죄한 이에 대한 정의를 택한 것이 아니라, 정치적인 선택을 합니다. 그래서 그는 예수님에게 사형선고를 내린 이로 기록됩니다. 정의롭지 못한 선택은 당장의 위기를 모면할 수 있지만, 언젠가 진실은 드러나게 마련입니다.
“그리하여 빌라도는 예수님을 데려다가 군사들에게 채찍질”(요한 19,1)을 하게 하였습니다. 채찍질은 로마법에서 사형선고에 수반되는 형벌이었습니다. 이는 극단적이고 야만적인 형벌입니다. 다수의 군사들이 지치고, 죄수의 살에 피가 나고 살가죽이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오랫동안 얻어맞았습니다. 그분은 온몸에서 느껴지는 모든 감각에서 고통을 받으셨습니다. 몸에 와 닿는 고통뿐만 아니라 모욕도 함께 들으십니다.
악한 이들이 상상할 수 없는 방법으로 주님을 매질하는 끔찍한 일을 저질렀을 때, 주님께서 참고 견디어 내신 극심한 고통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하나 찢겨진 상처는 우리들의 비난입니다. 채찍질로 난 상처마다 우리들의 죄에 대한 통고입니다. 죄지은 우리가 하느님이신 구세주께서 겪으신 모든 고난의 장본인이었고 그 도구였습니다.(교리서, 598항)
하느님께서는 죄를 모르시는 그리스도를 우리를 위하여 ‘죄’로 만드시어,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의 ‘의로움’이 되게 하셨습니다.(1코린 5,21)
“저의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님, 저를 위해 참아 받으셨던 모든 모욕과 고통. 당신께 감사드립니다.”
침묵
잠시 침묵하고 ‘소리기도’(주님의 기도, 성모송 10번, 영광송, 구원을 비는 기도)로 이어집니다. 앞에 제시된 순서에 따라 개인 묵주기도 묵상 노트를 만들거나, 다양한 ‘묵주기도 묵상서’를 이용할 수 있습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