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신저스], 미국, 2008.
비행기 창 밖으로 푸른 하늘이 펼쳐져 있고, 기내 서비스는 만족스럽다. 그런데 한 순간 날개 엔진에서 폭발음이 들리고, 불길이 일고, 산소마스크가 내려 오면서 비행기는 곤두박질 친다. 다행일까? 몇 명의 생존자가 있다.
심리치료사 클레어(앤 해서웨이 분)는 이 생존자들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에 대한 치료를 맡는다. 생존자들의 집단치료를 지켜보는 이가 있었으니, 다름 아닌 항공사 관계자다.
생존자들은 기체 결함의 증거로 엔진의 불길을 회상하는데, 항공사 관계자는 조종사의 실수라고 말한다. 그리고 집단치료를 받던 사람들이 하나둘 잠적한다. 클레어는 이들이 항공사의 음모로 인해 실종되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에릭(패트릴 윌슨 분) 역시 생존자 중 한 명이지만 집단치료에 참가하지 않는다. 에릭을 찾아간 클레어는 그에게서 이상한 점을 발견한다. 독심술과 같은 것 혹은 예지력, 광적인 행동, 끔찍한 사고로부터 살아나온 생존자 답지 않은 쾌활함 같은 것들이다.
클레어는 상담자와 개인적인 관계를 맺어서는 안된다는 금기를 어기고 에릭과 사랑에 빠진다.
여기까지 보면 영화 [패신저스]는 전문적인 능력을 지닌 도도한 여자가 유쾌하고 긍정적인 남자와 사랑에 빠진다는 로맨스 영화이자, 생존자와 항공사가 벌이는 음모와 그 해결에 관한 영화다.
하지만 생뚱맞게 이승과 저승 혹은 죽음 이후의 세계에 대해 이야기 해야겠다.
2006년 개봉한 한국영화 [중천]이 있다. 정우성과 김태희라는 대한민국 최고의 남자와 여자를 캐스팅한 영화다. 줄거리는 아주 간단하다. 비명에 죽어 아직 저승에 가지 못하고 이승과 저승의 중간인 중천에 머물고 있는 소화(김태희 분)를 그의 애인 이곽(정우성 분)이 구해준다는 내용이다. 본지 오래되어서(라기 보다는 인상 깊지 않아서) 소화를 이승으로 데려오는지 아니면 저승으로 편히 보내주었는지 그 결말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뜬금 없이 [중천]을 들먹인 이유가 바로 [패신저스]도 아직 저승으로 가지 못한 영혼들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로맨스나 음모론 영화가 아니라 [패신저스]는 심령물에 가깝다. 클레어가 맡은 생존자들은 모두 죽었다. 다만 클레어 자신 만이 모를 뿐이다. 그런데 클레어도 그 비행기에 탑승했었다. 뉴스 보도에 그 비행기에서 살아남은 사람은 단 한사람도 없다.
클레어가 만나는 항공사 조사관 아킨은 자신이 비행기 안에서 잠깐 보았던 조종사이며, 자신의 대학 스승인 페리는 초등학교 시절 선생님이었고, 항상 바쁜 자신을 위해 이것저것 챙겨준 정다운 이웃 토니는 이모였던 것이다. 기억의 왜곡이다.
그리고 그녀가 사랑에 빠진 에릭은 비행기 옆좌석에 앉아 잠시나마 즐거운 대화를 나누었고, 마지막 추락 순간에 두 손을 꼭 쥐어 주었던 남자였던 것이다. 이 모든 인물들이 지상에는 없는 영혼들이고, 에릭은 클레어의 죽음을 받아들이게 하는 역할을 한다.
모두 [중천]을 떠도는 혼령들이었던 샘이다.
흔히 서양의 사후 세계관은 천당과 지옥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생각하는데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저승세계도 아주 세분화되어 있어서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타나토노트]를 읽어 보면 몇 단계를 거치면서 천당과 지옥이 교차되기도 하고, (아직 읽어보지는 못했지만)단테의 [신곡]에서는 지옥도 아주 세분화되어 있다.
이는 동양적인 저승과 비슷하다. 우리가 흔히 '구천을 떠도는 영혼'이라고 표현하는 '구천'이 바로 하늘에 있는 아홉 개의 방을 뜻하기 때문이다.
궁금하다. 클레어나 에릭은 동양적 개념의 중천에 머물러 있는 것인지? 아니면 천국으로 향하기 전의 많은 단계 중 한 관문에 있는 것인지?
영화에 대한 감동을 말하기 보다 자질구레한 의문으로 감상평 답지 않게 보일지 몰라도 아무튼 그런 의문이 든다.
그럼 영화는 어땠냐고?
앤 해서웨이, 정말 아름답다. 연기도 잘 한다. 이상이다.
감독이 만약 1999년 [식스 센스]에 대한 오마주로 이 영화를 제작했다면 몰라도 반전이라고 설정한 건 아무래도 좀 어색하기 그지 없다.
왜냐? 많은 관객들은 이미 [식스 센스] 이상의 반전을 기대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