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이명박이냐구? -첫 번째 이야기> 2007. 8. 15
이명박 후보는 이래서 좋다.
무릇 대통령은 국민들의 눈높이에 있어야 한다.
시건방 떨지 말고 겸손해야 한다.
비록 이틀간의 동행이었지만 그는 겸손이 몸에 베인 분이다.
그 첫 번째 이야기를 풀어 놓는다.
지난해 평창동계올림픽이 준비되는 강원도 일대, 특히 평창에 사상초유의 물난리가 났었다.
해발 700~800미터 이상되는 고원지대에서 물난리라니 상상이 안 갈 일이었다.
국지성호우였다.
실제 도저히 물난리라고는 상상도 못할 평창 진부 시가지가 1미터 이상 침수되는 날벼락이 쏟아졌고 주민들은 망연자실한 채로 하늘만 쳐다볼 즈음.
2006. 7. 22-23 1박 2일 일정으로 평창 수해지역 자원봉사단이 떴다.
동행 자원봉사자는 80명
모두 모여든 자원봉사자들이었다.
명사랑, MB프렌즈(연대) 등 이명박 펜카페 지원자들과 함께 서울을 출발하였다.
이명박 후보께서도 버스 2대 중 앞차에 동행하였다.
차는 가는 길에 휴게소에 잠시 들렀었다.
이명박 후보께서는 다른 봉사자들처럼 커피가게 앞도 가 보고, 또 여행안내도를 들여다 보기도 하였다. “이 거 맛있어 보이는데”라며 간식을 사는 모습도 보통인 그대로였다. 만나는 이들과 인사를 하기도 하였지만 요새 애들말로 ‘나대지’ 않았다.
사람들 사이로 천천히 걷다가 마주치는 사람들이 알아보면 반갑게 인사를 건네는 모습은 여느 사람들과 다름없었다. 마침 뽀빠이 이상용이 휴게소에서 이후보를 알아보고 와서 인사를 하는 것이었다.
이 시기는 선거운동 시기도 아니고 봉사활동을 가는 터였지만...이 후보의 모습은 염려스러움이었다.
도착해 본 진부시가지는 물과 진흙으로 뒤범벅되고,농가 마을은 쑥대밭이었다.
골짜기마다 토사...이 높은 지형에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40일간이나 지속되어 물바다가 되었다는 마치 노아의 홍수를 조금이나마 상상할 정도였다.
첫날 배당된 작업장은 파프리카 농장이었다.
잘 지은 하우스시설이 부셔지고, 파프리카 시설은 엉망이었다.
장화를 신고서 흙더미를 치우고 파프리카 바로 세우는 일이었다.
농장 안에 쌓인 뻘흙더미를 밖으로 치우는 일로 바구니(일명 다라이)가 동원되었다.
이 후보께서는 골마다 일렬로 봉사자들을 세우고 제일 힘든 문턱 앞에서 무거운 흙바구니를 릴레이로 넘기셨다.
일솜씨가 대단했다.
둑에 작은 수로와 모래주머니로 소형댐을 만들기도 하였다.
쉬는 시간 이외에 ‘요령피우는 일’ 없이 모두 기쁜 마음으로 열심히 일했다.
점심은 간이 밥이었다.
꼭지를 당기면 자동으로 열이 나와 더운밥이 되는 전투용 식량이었는데
밭두렁에 앉아 우리는 함께 맛있는 꿀밥을 먹고 저녁까지 풀로 일했다.
동행기자 5명도 취재 후 흙작업을 함께 하였는데, 너무 열심히 일하는 이전시장과 봉사단의 모습에 취재 와서 같이 작업하기는 처음이라고 하였다.
모두가 땀, 흙 범벅이었다.
바로 20미터쯤 옆에서는 충청도에서 왔다는 농협 봉사대가 역시 한 구역을 맡아 열심히 일하고 있었지만 그 분들은 이 후보를 알아보지 못했고, 이 후보께서도 열심히 일만하셨다.
다른 후보와 달랐다. 일을 마치고 올 때 우리들이 여기 이명박 후보께서도 오셨다고 일러주어 그 때서야 수고한다며 인사를 나누었으니...
저녁은 진부고 수용시설에서 다른 자원봉사자들이 해 준 밥을 먹고
잠은 10여리 떨어진 산골마을 두일 초등학교에서 마루바닥에서 아무렇게나 잤다.
저녁 늦은 9시에 도착하여 간담회를 가졌는데 ‘정치’ 이야기는 꺼내질 않으시는 것이었다.
... 참 겸손하신 분이구나!
둘째날 아침, 마침 주일 아침이어서 06시 인근 교회 예배당(두일교회 이승주 목사)을 찾아 이명박 장로님과 10여명이 예배를 드렸다.
조식 후에는 진부 시내 수해 민가(노기형씨댁) 등 4가구에 들이 닥친 토사를 치웠다.
이후보께서는 끝까지 작업반장을 하셨고, 무거운 짐도 손수 나르셨다.
동행한 기자들이 그런다.
"진짜 작업반장이시다"
작업은 우리가 평창에서 일을 마칠 때까지 계속되었다.
젊은이들도 힘들었을 터인데 피곤한 기색이 없으셨다.
잠깐 사진박고 다녀가는 그런 분이 아니었다.
우리는 힘들었지만 땀으로 적신 달콤한 이틀간의 봉사활동을 마치고 귀경하였다.
아! 이명박은 역시 다르구나!
이런 분이 나랏일을 맡으면 좋겠구나!
이 생각은 돌아와서도 오래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