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곁에 아버지의 목소리가....
어느 날 이었습니다. 남편이 벽시계를 떼면서 수리를 하러 가자고 합니다. 나는 그동안 벽에 걸린 뻐꾸기시계가 고장이 난 줄도 모르고 있었습니다. 거실 TV 옆에 숫자로 표시되는 전자시계가 버티고 있고, 화장실도 탁상시계가 있습니다. 집안 곳곳에 시계는 너무 많이 있고 시간도 틀린 경우가 있기 때문에 그밖에 시계는 모두 무시하였습니다. 이제 오래된 뻐꾸기시계는 그냥 버릴 때 된 물건인데 버리는 자체를 잊고 있었을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남편이 외출을 서두르면서 말했습니다.
“우리가 새 아파트로 이사 간다고 좋아 하시면서 아버지가 사 오셨잖아” 그때 사오신건가? 나는 그 자체가 생각도 안날 정도로 까맣게 잊고 있었습니다. 감사한 마음도 없이 그동안 사용했던 뻐꾹이시계를 방치한 죄송한 마음이 울컥했습니다. 남편의 말에 너무나 힘들었던 시아버지의 병원생활이 생각났습니다. 시아버지는 전립선에 이상이 오면서 원하지 않았던 요양병원 생활을 하시게 되었고 2년 쯤 지나 하늘나라로 가셨습니다. 노후를 그렇게 병원에서 보내셨다고 남편은 안타까워했습니다. 집에서 모시지 못한 것 한이 남는다고 했습니다. 요양병원에서 시아버지는 유언같은 말씀은 한 번도 하지 않았습니다. 평소에도 우리들에게 걱정하시는 말씀은 없었습니다. 약간 위독하시다는 말을 듣고 병원으로 갔던 날 산소통이 있는 방에 혼자 누워계셨습니다.
“경수(손자)에미! 경수에비!”를 큰소리로 몇 번이고 외치면서 우리들을 바라(흐믓)보셨습니다. 아들과 며느리에게 우리가 누구인지 알아 볼 정도는 된다는 표정으로 웃으시기까지 하셨습니다. 그때는 몰랐지만 그게 마지막 가시는 날이었습니다. 그 날 저녁도 못 드신다고 밀어 놓은 다 식어 차가워진 죽을 며느리가 주시는 대로 받아 드시고 요플레까지도 다 드시면서 “천천히 천천히”라고 또렷하게 말씀하신 걸 보고 대전 병원에서 용인 집으로 왔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다녀 간 다음 날 돌아가셨습니다. 너무나 허무했지만 며느리가 주신 저녁을 다 드시고 디저트까지 드셨다고 생각하니 마지막인 날, 마지막 가족과 보낸 시간인 줄 아버지는 틀림없이 아셨을 것입니다. 가시는 끝까지 웃으시면서 누구하나 곁에 두지 않고 홀로 떠나셨습니다. 우리는 아버지의 유품으로 가지고 있는 게 사실 하나도 없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허전한 그 무엇 때문에 남편은 벽시계를 가보로 생각하는 것 같았습니다. 기특한 남편이 사랑스러웠습니다. 차남인 남편의 따뜻한 마음을 시아버님이 알아주실까요? 내 가슴에 행복한 감동이 요동치고 있었습니다. 수원 수리점 주인에게 보물이니 천천히 잘 고쳐달라고 맡기고 일주일을 기다려서 벽에 걸렸습니다. 방금 뻐꾸기시계가 말을 했습니다.
“뻐꾹, 뻐꾹” 두 시를 알리는 소리는 다름 아닌 시아버지 목소리였습니다.
“잘있니? 잘있어?”두 번 울리는 시아버님의 다정한 목소리, 시아버님이 항상 우리 곁에서 지내시는 것 같습니다. 시간마다 울리는 소리가 너무 좋습니다.
한 번, 두 번, 열두 번 울리면 ‘아직도 안자니?’ 라고 말하시는 것으로 알게 되었습니다. 여섯 번 울리면서‘이제 아침이다. 일어나야지’하고.....
2013.12.5
용인소식지 163호 2014. 1.1.
첫댓글 새해에 가슴 따뜻해지는 글 입니다.
도그맘님 정말 오랜만에 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