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나 냉전 시대에 비해 상대적으로 많이 줄어들었지만 지금도 무기의 발전 속도는 대단하다. 예를 들어 순항미사일 같은 정밀 타격용 무기들만 하여도 10년의 간격을 두고 발생한 걸프전과 이라크전을 비교할 때 정확도에서 엄청난 차이를 보여주었을 정도다. 이처럼 그 어떤 상업 제품 못지않게, 아니 능가할 정도로 무기의 발전 속도가 빠른 이유는 간단하다. 좋은 무기를 가진 쪽이 전쟁에서 이길 수 있는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M2 중기관총. 브라우닝이 개발했으며, 0.5인치(12.7mm) 탄환을 사용하여, M2브라우닝(M2 Browning) 혹은 캘리버 50기관총(.50 caliber Machine gun), MG-50(.50구경 기관총이라는 의미)이라고도 한다.
살벌한 신무기 경쟁에서 100년 현역을 바라보는 기관총
만일 교전 중인 양측 부대원들의 능력이 대등하다면 무기의 우열은 승패의 결정적 요소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따라서 무기 또한 소비자에게 선택되기 위해 치열한 성능 경쟁을 벌인다. 왜냐하면 사용 목적을 배제하고 본다면 무기 또한 엄연한 상품이기 때문이다. 당연히 좋은 품질의 무기는 계속하여 생산되고 성능이 뒤진 무기는 자연스럽게 도태되기 마련이다. 그래서 탄생한지 오래된 무기가 최신 무기에 비해 성능이 떨어지는 것은 당연한 법칙이라 볼 수 있다.
그런데 이토록 살벌한 경쟁에서 무려 100년 가까이 사용되고 있는 스테디셀러 무기가 있다. 흔히 캘리버 50이라 불리는 M2 중기관총이 바로 그 주인공인데, 사실 무기는 고사하고 일반 상품에서 조차 이런 경우는 극히 드문 예다. 이 총이 처음 세상에 선보였을 때에는 미사일이라는 단어가 세상에 존재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미사일이 머리 위를 날아다니는 지금도 M2는 일선에서 사용 중이다.
M2 중기관총을 삼각대 위에서 사격하는 모습
M2 중기관총을 차량에 장착하여 사용 중인 모습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전선에서 요구한 새로운 기관총
M2는 1918년 전투기용 기관총으로 처음 설계되었다. 제1차 대전 당시 전투기에 장착하였던 기관총은 빅커스(Vickers)나 MG-08 스팬다우(Spandau)같이 8mm이하 구경의 소총탄을 사용한 것들이었다. 이들은 연사력이 좋았지만 파괴력이 부족하여 공대공 전투로 적기를 격추시키려면 많은 명중탄을 작렬시켜야 했다. 하지만 기동력이 뛰어나고 속도가 빠른 적기에 계속하여 탄을 명중시키기는 것도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따라서 적은 수의 명중탄만으로도 치명적인 타격을 줄 수 있는 새로운 기관총이 요구되었다.
개발을 의뢰 받은 브라우닝(John M. Browning, 1855-1926)은 자동화기의 아버지라 불린 총기 역사 최고 장인 중 하나지만 군 당국의 요구 사항에 많은 고민을 하였다. 파괴력을 늘리려면 탄과 이를 발사할 수 있는 기관총의 크기를 크게 하여야 하는데 이것은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사격 시 충격을 충분히 흡수할 수 있을 정도로 튼튼하되 정확도는 좋아야 하고 또한 비행기에 충분히 장착할 만큼 무게도 적당하여야 했다.
수랭식 시절의 M2 중기관총. 함정 위에 장착한 모습
P-47 전투기에서 M2 중기관총(항공용 버전)을 쏘는 모습
우여곡절 끝에 탄생한 무기
바로 이때 독일군이 전쟁 말기에 대물저격용으로 사용한 마우저 1918 탕크게베어(Mauser 1918 T-Gewehr) 소총은 좋은 힌트를 주었다. 브라우닝은 당시 존재하던 전차나 장갑차량을 관통할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하지만 보병들이 휴대(사실 18kg이라서 너무 무겁고 사격시 반동이 심하여 사수들이 부상당하는 경우가 많아 일선에서 그리 반기지는 않았지만)할 수 있었던 T-Gewehr 소총의 13.2mm 구경 탄환을 기존 M1917 기관총에 장착하는 시도를 하였다.
하지만 이를 그대로 사용하는데 많은 예기치 못한 문제점이 드러났고 제작은 난항을 겪었다. 바로 그때 미군 병기국에서 12.7mm 구경의 새로운 탄환을 개발하였는데 브라우닝 개발팀은 이를 이용하여 실험을 재개하였고 마침내 1921년 새로운 수랭식 중기관총을 만들어 냈다. 그것이 바로 M1921이었는데 곧바로 미군 당국에서 채택하였을 만큼 성능에 만족하였다.
M2 중기관총 2정을 결합하여 함정에 장착한 모습
M2 중기관총 4정을 결합하여 대공 무기로 사용하는 모습
공랭식으로 변신, 표준 중화기로 거듭난 M2
최초 M1921은 전투기용으로 개발되었으므로 보병이 휴대할 수 있을 만큼 가벼운 장비는 아니었다. 엄밀히 말해 M1921에만 해당되는 사항이 아니라 제1차 대전 당시 전선의 주역으로 등장한 기관총들 대부분은 상당히 무거워서 3~4명 이상의 병사가 운용하였고 진지의 거치대에 장착하여 사용하는 방어용 무기에 가까웠다. 하지만 제1차 대전을 거치며 기계화, 차량화 부대가 속속 등장하면서 육군도 무거운 중화기를 손쉽게 탑재하여 사용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M1921은 바로 이러한 새로운 형식의 부대에 적합한 무기였다.
그런데 M1921을 일선에서 운용해 본 결과, 물에 의한 냉각 방식은 무게만 늘릴 뿐임을 알게 되었다. 공기만으로 충분히 냉각시킬 수 있음이 입증되자 총열 부분을 약간 개량하여 공랭식으로 개량이 이루어졌는데, 1933년 이렇게 탄생한 것이 바로 M2다. 공랭식 M2는 일선에서 대단한 호평을 받았고 기존의 M-1921은 빠른 속도로 M2로 개량되었다. 이후 항공기는 물론, 전차, 장갑차를 비롯한 모든 기동 장비와 군함에도 표준 중화기로 탑재되었다.
M2 중기관총은 M1 에이브람스 전차 포탑에도 장착된다(사진 왼편의 기관총)
소형 전투정의 주 화력은 M2 중기관총이 맡는다
100년을 이어온 성능
M2의 외형적 특징 중 하나가 HB(Heavy Barrel-굵은 총신)다. 이는 공랭식으로 개조하면서 방열 효과를 높이기 위해 생겨난 특유의 구조인데, 이 때문에 M2HB라고 불리게 되었다. 브라우닝이 만든 총기답게 노리쇠를 반동으로 후퇴전진 시키는 쇼트 리코일(Short recoil)방식으로 작동하고 12.7×99㎜ 전용탄을 사용한다. 최대 유효사거리는 1,830m이고 분당 최대 600발을 발사할 수 있는데 91m 거리에 있는 22.2mm 장갑판을 관통할 수 있는 파괴력을 보유하였다.
M2는 총열이 몸통에 회전식으로 결합되어 있어서 총열을 교환할 때 시간이 많이 걸리고 게이지를 이용하여 두격(노리쇠와 총열의 삽입부 사이)을 매번 조정하여야 번거로움이 따라다녔다. 기관총은 사격 시 총열을 자주 교환해주어야 하는데 이는 M2의 커다란 약점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단점을 개량하여 총열교환을 탈착식으로 할 수 있는 모델이 M2/QCB(Quick Change Barrel)인데 현재 M2를 개량한 국산 K6 중기관총도 이러한 형태다.
M2 중기관총의 뒷 부분. 엄지로 누르는 형태의 방아쇠 등이 보인다
M2 중기관총의 우측면 세부, 방금 사격을 끝낸 모습이다
다양한 사용 범위와 뛰어난 전과
M2는 제2차 대전부터 본격적으로 맹활약하였는데, 한마디로 미군이 있는 곳에 반드시 M2가 함께 하고 있을 정도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것으로 소임이 끝난 것이 아니라 한국전쟁, 월남전쟁은 물론 현재까지도 당당히 실전에서 사용되고 있을 만큼 끈질긴 생명력을 자랑하고 있다. 더불어 미국으로부터 군사적 지원이나 원조를 받은 수많은 나라에서 표준 화기로 활동하였고 현재도 사용 중이다.
원래 기관총은 대인용이라기 보다는 강력한 화력으로 일정 지역을 제압하기 위한 용도로 사용하는 화기다. 특히 M2는 적 장비 격파를 목적으로 탄생하였다 보니 정확도보다는 파괴력에 중점을 둔 기관총이라 할 수 있다. 그럼에도 M2는 정확도가 상당한 총기인데 대인 저격용으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1967년 월남전쟁에서 미 해병대의 저격수였던 카를로스 헤스콕(Carlos N. Hathcock)은 광학조준경을 장착하여 2,250m 거리에 있는 적을 저격하는 경이적인 기록을 세웠는데 이후 35년간 최장 저격기록으로 남았을 정도였다.
헬리콥터에 장착된 M2 중기관총의 항공용 버전(GAU-18/A)
진지를 지키는 M2 중기관총
최초에 너무 잘 만들어서 더 이상 개선할 필요가 없다
M2는 일반 보병들이 휴대하여 사용하기에 불가능할 정도로 무겁고 총열 교환을 자주 하여 주어야 한다는 약점이 있으나, 최초에 너무 잘 만들어서 더 이상 개선할 필요가 없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잘 만들어진 기관총이다. 최신 무기의 습득에 남다른 욕심이 있는 미군 당국도 무게를 줄여 보는 등 개량 형 개발을 시도했지만 모두 실패하였고 이를 완전히 대체할 새로운 중기관총 프로젝트(OCSW)를 추진하였으나 지지부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M2 중기관총은 앞으로도 상당기간 현역에서 활동할 것으로 예상된다.
M2 중기관총은 100년에 가까운 세월을 버텨온 무기이다
멀쩡한 핸드폰이 싫증이 난다는 이유만으로 버려지고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제품이 단종 되는 경우가 허다한 요즘 시대에, 그것도 최신식이 판치는 무기의 세계에서 M2 중기관총의 생명력은 실로 대단하다. 복엽기가 하늘을 날아다니는 시절에 만든 기관총이 100년 가까이 된 지금까지 최 일선에서 사용되고 있다는 사실은 놀라움을 넘어 경이의 대상이라 할 것이다. 만일 M2가 생명체였다면 최신무기라고 뽐내는 놈들 앞에 가서 이렇게 외쳤을 것 같다. "물렀거라! 내가 큰 어른이다"
글 / 남도현[군사 저술가] [전쟁, 그리고], [2차대전의 흐름을 바꾼 결정적 순간들], [끝나지 않은 전쟁 6.25] 등의 군사 관련 서적을 저술한 군사 저술가. 국방부 정책 블로그, 군사월간지 [국방과 기술] 등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현재 무역대행 회사인 DHT AGENCY를 경영하고 있다. 자료제공 / 유용원의 군사세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