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추사의 증조부인 김한신이 쓴 <화암사>현판.
김한신이 경주 김씨 원당사찰로 이 절을 짓고 직접 쓴 현판이다.

예산 화암사의 詩境樓.
화암사는 절집의 구조가 민가의 형태를 본받은 듯 사랑채가 전면에 드러나 있고
누마루가 돌출되어 있다. 이 누마루를 완당은 시결루라고 이름지었다.

화암사 뒤뜰 병풍바위. 이바위가 있어 담장 구실을 하였는데 완당은 이 바위에
<시경> <천축고선생댁>이라는 글씨를 새겨 놓았다.

<詩境>탁본.127.5x67,2cm
완당은 옹방강에게 선물받은 육방옹의 <시경>이라는 예서체 탁본을 화암사 병풍바위에 새겨 놓았다.
육방옹(陸放翁, 이름游)의 이 글씨는 명작으로 이름높아
南宋때 방신유(方信孺)라는 사람은 지방관으로 부임한 곳마다 이를 새겨 두기도 했다.
옹방강은 일찌기 광동(광동)과 계림(계림)에 있는 이글씨를 탁본해두었는데
그 중 하나를 완당에게 선물한 것이다.

<天竺古先生宅>탁본, 136.1x30.3cm
화암사 병풍바위에 이 절집을 (천축나라의 옛선생댁)이라는 말로 풀어서
<천축고선생댁>이라고 새겨 놓았다.
-자료출처-유홍준 지은 완당평전1권

추사의 글씨로 충남 예산 華巖寺에 걸려 있던 것이다.수많은 추사의 (무량수각)편액 가운데
草衣 意恂에게 써준 해남 大興寺의 것과 본가의 願刹로서 1846년(헌종 12년) 9월 준공된 화암사에
써준 것이 유래가 확실한 원본이라 할 수 있다. 현재 수덕사에 옮겨 보관하고 있다.

<詩境樓>편액은 無量壽閣 편액과 함께 예산 華巖寺에 걸려 있던 것으로 현재는 수덕사에 옮겨
보관하고 있다. 이 편액의 글씨 역시 (歲寒圖)의 운치와 한 뜻으로 통하는 淸高한 것이다.

세로 6개의 소나무 쪽판에 새긴 이 편액은 阮堂이란 朱文 방인이 찍혀 있다.
전형적인 추사체로 고경하고 천진하다. (板殿) 편액과 마찬가지로 추사 말년의
글씨로 보이며 서울 진관사에 번각되어 걸려있다.

<詩境>석각
화암사 대웅전 바로 뒤 石壁의 왼쪽에 새겨져 있다.추사가 직접 새겼다고 전한다.

<天竺古先生宅(천축고선생댁)>-왼쪽
화암사 대웅전 뒤 石壁 오른편에 새겨져 있는 것으로 (天竺)이란 印度를 지칭하는 말로
古先生 즉 부처님이 계시는 곳을 秋史다운 기발함으로 표현한 것이다.
<小蓬萊(소봉래)>-오른쪽
예산집 烏石山 화암사의 뒤산의 큰 바위에 <소봉래>라고 큰 글씨로 새겨 놓고는 이 오석산을 금강산에 비기고 있다.

해남 대흥사의 무량수각 편액

영천 은해사의 편액

봉은사의 <판전>편액
자료출처-한국사찰의 편액과 주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