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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방진 (魔方陣) 이란?
마방진은 정사각형 가로, 세로, 대각선의 숫자 합이 모두 같도록 숫자를 배열한 것이다.영어로 'Magic Square'라고 부른다. 한자를 풀어보면 魔 (마귀 마): 마법, 마술, 신비롭다.설명: 숫자의 합이 사방으로 모두 똑같이 맞아떨어지는 모습이 마치 마술(Magic)처럼 신비롭고 기묘하다고 하여 붙은 글자다. 方 (모 방)은 네모, 정사각형, 방향을 뜻한다 여기서는 '정사각형(정방형)'을 뜻하며 가로와 세로의 칸 수가 같은 평면 구조를 의미한다. 陣 (진칠 진)은 진형, 군대의 배치, 늘어서다란 의미로 마치 군사들이 진을 짜듯 숫자들을 특정 규칙에 맞춰 배치해 놓은 상태를 뜻한다.
마방진의 특징
마방진의 핵심은 특징정사각형 형태로 가로와 세로의 칸 수가 같다는 것이다. (예: 3x3, 4x4) 그 특징은
1. 연속된 숫자: 보통 1부터 시작해 빈칸을 채울 때까지 겹치지 않는 연속된 자연수를 사용한다.
2. 일정한 합: 가로 줄, 세로 줄, 두 대각선의 숫자를 모두 더하면 항상 같은 값이 나온다. 이 합을 '마법 상수'라고 한다. 예를 들면 (가장 작은 3x3 마방진) 즉, 1부터 9까지의 숫자를 배치하면 모든 방향의 합이 15가 되는 것이다. 아래를 보자. 좌우,상하, 대각선 모두 합이 15다.
8 | 1 | 6 → 합 15
3 | 5 | 7 → 합 15
4 | 9 | 2 → 합 15
↓ ↓ ↓15 15 15 (대각선 8+5+2 = 15 / 6+5+4 = 15)
'낙서 설화(洛書 說話)'
낙화 설화는 고대 중국에서 마방진이 처음으로 세상에 등장하게 된 배경을 담은 신비로운 전설이다.이 설화는 단순한 수학 퍼즐을 넘어, 동양 철학의 근간이 되는 중요한 전환점을 상징하고 있따.
1. 설화의 줄거리: 낙수에서 나온 거북이
지금으로부터 약 4,000년 전, 고대 중국 하나라의 우왕(禹王) 시기였다. 당시는 황하와 낙수(洛水)라는 강이 시도 때도 없이 범람하여 백성들이 큰 고통을 겪고 있었다. 이에 우왕이 이 거대한 홍수를 다스리기 위해 치수 공사를 진행하던 중, 낙수(洛水)라는 강에서 신비한 거북이 한 마리가 물 위로 솟아 올랐다고 한다. 그런데 그 거북이의 등껍질에는 기묘한 점(무늬)들이 새겨져 있었는데, 사람들이 이를 유심히 살펴보니 숫자를 나타내는 점들이 특정한 규칙으로 배열되어 있었다고 한다. 사람들은 이를 하늘이 내려준 신비한 글이라 하여 '낙수에서 얻은 글(그림)'이라는 뜻의 낙서(洛書)라 불렀다.
2. 등껍질 속 무늬의 정체: 최초의 3차 마방진
거북이 등에 새겨진 무늬는 1부터 9까지의 점들로 이루어진 3x3 모양의 수표였다. 무늬의 형태를 보면 머리 쪽에는 9개의 점, 꼬리 쪽에는 1개의 점, 발과 몸통 사방에 각각 2, 3, 4, 6, 7, 8, 9개의 점이 찍혀 있었는데 수학적 특징이 이 점들을 숫자로 바꾸어 보니, 가로, 세로, 대각선 어느 방향으로 더해도 그 합이 똑같이 '15'가 되었다. 이것이 인류 역사상 마방진(3차 마방진)이 기록된 최이다.
3. 설화가 갖는 역사적·철학적 의미: 홍수를 다스리는 지혜가 되다
우왕은 이 낙서의 오묘한 숫자 배열 속에서 천지자연의 질서와 균형의 원리를 깨달았다. 이를 바탕으로 홍수를 성공적으로 막아냈고, 나아가 천하를 다스리는 대법칙인 (홍범구주(洪範九疇: 세상을 다스리는 거대하고 넓은 아홉 가지 표준”)라는 국가 통치 이념을 제정했다. 동양 철학의 근원 '하도낙서(河圖洛書)' 흔히 복희 황제가 황하에서 용마를 보고 얻은 그림인 '하도(河圖)'와 우왕이 낙수에서 얻은 '낙서(洛書)'를 묶어 하도낙서라고 부는데 이 두 그림은 훗날 동양 최고의 경전인 주역(周易)과 음양오행설의 모태가 되었다. 마방진은 군사 진법과 풍수지리로도 확장되었다. 어느 방향에서 봐도 균형을 이루는 이 낙서의 구조는 훗날 제갈량이 군사를 배치할 때 쓴 '팔진도'나, 동양에서 방위를 보고 운세를 치는 '구궁도(九宮圖)'의 원형으로 발전되었다. [홍범구주 내용은 아래를 참조 바람]
우왕은 동이족인가?
사마천의 《사기》 기록을 역추적해 보면 흥미로운 연결고리가 나온다. 우왕의 증조부는 '창의'라는 인물인데 고대 기록에 따르면 창의는 동이족의 대표적인 시조로 꼽히는 '소호(少昊)'와 아버지가 같은 형제로 묘사되었다. 《맹자(孟子)》에는 "순(舜)임금은 동이 사람(東夷之人)이고, 문왕(文王)은 서강 사람(西羌之人)이다"라는 구절이 또한 명시되어 있다. 우왕에게 왕위를 물려준 순임금 자체가 동이족 출신이라는 점은, 당시 중원 지배층 내에 동이족 세력이 깊숙이 결합해 있었음을 보여준다. 중국 서한 시대의 기록이나 한자 사전인 《설문해자》 등에서 우왕의 이름인 '우(禹)' 자의 본래 의미(벌레, 파충류 등 토템과 연관)를 해석할 때, 이를 중원 화하족이 아닌 이족(夷族)의 문화적 배경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기도 한다. 이로 보건대 우왕이 홍수를 다스리고 하나라를 건국할 수 있었던 것은 당시 강력한 세력을 형성하고 있던 동방 부족(동이족 계열인 도산국 등)의 전폭적인 지지와 결탁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분석이 많다.
존재의 출발점 3이란 숫자
마방진의 역사와 구조를 파헤쳐 보면 3이라는 숫자는 단순한 크기를 넘어 모든 마방진의 설계적, 철학적, 나아가 출발점이라 볼 수 있다. 그 이유는
1. 기원의 상징: 3차 마방진(낙서)이 없었다면 시작도 없었다.
앞서 이야기한 '낙서 설화'의 주인공이자 인류 역사상 최초로 기록된 마방진이 바로 3차 마방진(3x3)이었다. 모든 수학적 발견은 가장 단순하고 완벽한 형태의 모태가 필요한데, 마방진에서는 그 역할을 3이 맡았음을 알수 있다. 3x3 마방진이 세상에 나옴으로써 인간은 비로소 사방의 균형을 이루는 숫자의 마법을 인지하기 시작했고, 이를 바탕으로 4차, 5차 등 무한한 크기의 마방진으로 확장할 수 있었다. 즉, 숫자 3은 마방진의 탄생을 알린 열쇠인 셈이다.
2. 구조적 상징: 공간을 완성하는 '최소의 단위'
수학 및 기하학적으로 3은 평면을 구성하고 가두는 가장 기초적인 숫자다. 선(1차원)을 지나 면(2차원)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꼭짓점은 3개(삼각형)이다. 숫자를 사방으로 배치해 가로, 세로, 대각선의 합을 맞추는 '마방진'의 형태를 갖추기 위해서도 최소 3x3 구조가 필요하니다. (1x1은 의미가 없고, 2x2 마방진은 수학적으로 아예 존재할 수 없다.) 따라서 3은 숫자가 비로소 '진형(陣)'을 갖추고 배열될 수 있는 최소한의 자격이자 완성의 단위가 된다.
3. 철학적 상징: 동양의 '삼재(三才)' 사상과의 일치
동양 철학에서 3은 하늘(天), 땅(地), 사람(人)을 뜻하는 삼재(三才)를 상징하며, 우주 전체와 완벽한 조화를 의미한다. 낙서 설화의 3차 마방진은 단순히 수학 퍼즐이 아니라, 우주의 행성과 계절의 변화, 인간 세상의 이치를 담은 그릇으로 여겨졌다. 사방으로 더해 나오는 합인 15 역시, 동양에서 계절의 변화를 나누는 15일(1개 절기)과 정확히 일치한다. 즉, 3이라는 숫자는 마방진 안에서 하늘과 땅과 인간이 완벽하게 균형을 이룬 상태를 시각적으로 증명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요약하자면 3은 마방진에서 가장 중요한 숫자다. 3이라는 숫자가 공간(3x3)을 열어주었기 때문에 비로소 사방의 합이 같아지는 신비로운 수학적 현상이 시작될 수 있었고, 동양 철학의 깊은 이치까지 결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는 삼족오, 삼태극등 동이족 문화와 연관성이 있다. 그런면에서 마방진3은 삼위일체 기독교 신론과도 연관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유대교와 마방진 연결
낙서 설화에서 유래한 3x3 마방진의 가로, 세로, 대각선의 합은 언제나 15다. 이 15는 유대교와 구약 성경에서 매우 거룩한 수로 취급된다. 게마트리아(Gematria)는 히브리어 알파벳에 숫자를 대입해 해석하는 유대인들의 전통 수비학이다. 구약 성경에서 하나님을 짧게 부르는 성호인 '야(Jah, 할렐루야에서 야/찬양하라(할렐루)+야(야훼))'를 히브리어 알파벳 숫자로 변환하면 י(Yod=10) + ה(He=5) = 15가 된다.이 때문에 유대인들은 3x3 마방진의 마법 상수인 15를 보며 자연스럽게 하나님의 임재와 완벽한 통치 질서를 연상하곤 했다.
예수님의 나이 33과 마방진
바르셀로나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성가족 성당)에는 '수난의 파사드' 벽면에 천재 건축가 가우디의 정신을 이어받아 조각가 수비라치가 새겨놓은 4x4 마방진이 있다. 그 수학적 특징은 일반적인 마방진과 달리 숫자를 의도적으로 중복 배치하여, 가로·세로·대각선뿐만 아니라 네 모퉁이의 합 등 총 310가지 조합의 합이 무조건 '33'이 되도록 설계했다. 이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나이인 33세를 마방진이라는 수학적 완벽함으로 헌정한 대표적인 사례다. 당시 사람들은 왜 마방진으로 주님의 나이를 표현하려 했을까?
태양 / 달의 마방진(Magic Square of the sun and moon)
고대 중동과 헬라 문명에서는 1부터 36까지의 숫자를 배열한 6x6 마방진을 '태양의 마방진'이라 불렀다.수학적 특징은 이 6x6 마방진은 가로·세로 한 줄의 합이 항상 111이며, 1부터 36까지의 모든 숫자를 다 더하면 정확히 '666'이 된다. 기독교의 관점에선 계시록에 기록되었듣이 이방 종교의 태양 숭배 부적(6x6 마방진)에 새겨진 전체 숫자의 합 666을 신격화된 인간 권력(로마 황제 등)의 불완전함과 우상숭배를 경고한 것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또한 고대 서양 및 중세 연금술, 점성술에서는 행성의 에너지를 상징하는 7개의 마방진(태양, 달, 수성, 금성, 화성, 목성, 토성)이 있었는데 그중 9x9 마방진은 '달(Moon)의 부적'이었다. 왜 하필 달일까? 달은 은은하게 밤을 비추며 차고 기울기를 반복함으로 동서양을 막론하고 여성성, 무의식, 직관, 그리고 변화와 잉태(임신)를 상징했다. 중세 마법사들은 은(Silver)판에 9x9 마방진을 새겨 몸에 지니면 달의 신비한 에너지를 받아 직관력이 생기고, 재난을 피하며, 안전하게 출산할 수 있다고 믿었다.
<뿌리 깊은 나무> 드라마에서 마방진
뿌리깊은 나무라는 드라마는《실록》에 나와 있지 않은 한글 창제 과정과 창제 배경을 드라마로 풀어낸 이야기다. 세종이 드라마 초반부에 마방진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한 핏줄이지만 권력 성향이 전혀 다른 태종 이방원과 세종 이도, 이들은 상반된 평가만큼이나 마방진을 바라보는 시각도 달랐다. 장인의 죽음을 막지 못해 괴로워하던 이도는 괴로움 대신 놀이에 몰입하는데, 이 장면에서 마방진이 나온다. 아직 풀지 못한 33방진에 매달리는 세종을 향해 태종은 불호령을 내린다. 그는 “1을 제외한 모든 숫자를 치워버리고 나면 1방진이든, 33방진이든 모두 성립되지 않느냐! 권력 또한 마찬가지이다!” 따라서 갓 세워진 조선의 기틀을 바로잡고 이끌기 위해서는 오직 군주만이 모든 권력을 쥐고 통치를 해야 한다고 세종을 가르쳤다. 그것이 태종의 방식이었는데 반해 어떤 방진이든 그 ‘규칙’에 따라 모든 행과 열과 대각선의 합이 같은 방진을 만들 수 있다고 세종은 생각했다. 마방진은 숫자가 채워질 정사각형의 틀을 깨고 나서야 세종은 해법을 찾을 수 있었다. 즉, 세종이 태종과는 다른 새로운 조선을 만들기 위해서 마치 마방진을 풀듯이 아버지가 보여준 절대 권력의 통치 틀을 깨야만 했던 것이다. 게다가 규칙에 따라 숫자가 바르게 배열되면 몇 방진이 되었든 언제나 해답이 나오기 마련이기에 그렇게 숫자가 제 설 자리를 아는 마방진은 어느 방향에서 수를 합해도 그 값이 같아짐으로 가로, 세로, 대각선 그 어디에서도 합이 같다는 것은 평등하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것이 바로 세종이 꿈꾸는 세상이었던 것이다. 즉, 언로의 길을 열어 모두가 충분히 자신의 생각씨를 내고 그것이 모여 우수한 생각씨를 심고 모두가 그 혜택을 받는 세상, 그것이 세종이 꿈꾸던 세상이었다.
마방진에 관한 생각의 확장.
마방진에 대해 좀더 생각해 본다. 3x3마방진이 시작이라면 동양철학의 수의 개념에서 9가 인간의 한계일터 9x9마방진은 어떤의미가 있을까? 9x9 마방진은 1부터 81까지의 숫자를 사용하여 가로, 세로, 대각선의 합이 모두 369가 되도록 만든 배열이다. 9x9 마방진은 수학적 복잡성을 넘어 동양 철학, 우주관, 그리고 기독교 및 천문학적 상징에서 매우 깊고 신비로운 의미들을 품고 있다. 아이들이 하는 369게임도 이것과 관련이 있나? 숫자 9의 의미는 무엇인가? 9는 한 자리 자연수 중 가장 큰 수로, 동양에서는 ‘극양(極陽)’ 즉, 양기가 가장 가득 차서 더 이상 올라갈 곳이 없는 궁극의 완성을 뜻한다. 왕을 ‘구오지존(九五之尊)’이라 부르고, 하늘의 가장 높은 곳을 ‘구천(九天)’이라 부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니콜라 테슬라의 3·6·9 법칙을 들어봤는가? 천재 과학자 니콜라 테슬라는 "당신이 3, 6, 9라는 숫자의 장엄함을 알기만 했다면, 우주의 열쇠를 갖게 되었을 것이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369는 에너지의 진동과 우주의 창조 근원을 상징하는 수비학적 기호인데, 9x9 마방진의 핵심 열쇠인 합(Sum)이 정확히 369로 떨어진다. 또한 1부터 81까지의 전체 숫자를 모두 더하면 3321이 되는데, 이 숫자의 각 자릿수를 더해도(3+3+2+1) 9가 된다. 흥미로운 것은 앞서 예수님이 33세에 돌아가셨다고 고찰한 것과 연결되는데 성경에서 3은 삼위일체, 6은 인간의 창조(6일째 창조), 9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숨을 거두신 시간(제9시, 오늘날의 오후 3시)을 뜻한다. 즉, 인간(6)이 하나님(3)의 구원과 예수님의 희생(9)을 통해 완벽한 균형(369)을 이룬다는 신학적 해석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마방진의 근본 3, 그리고 순환의 9
또한 3x3, 6x6, 9x9 마방진이 흥미로운 것은 곱하면 9, 36, 81이 나오는데 각 숫자를 더하면 9, 3+6=9, 8+1도 역시 9가 된다. 이처럼 9는 어떤 배수를 만들고 더해도 결국 자기 자신인 9로 돌아오는 ‘우주의 근원(Root)’이자 신비로운 순환의 성질을 가진 유일한 숫자다. 그렇다면 한단계 높여 12x12는 144가 된다.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144000은 무슨 관계가 있을까? 구약의 12지파와 신약의 12제자를 곱하면 144가 된다. 따라서 12x12마방진은 구원의 총수 144에 하루가 천년같고 천년이 하루 같은 하나님의 시간개념이 곱해진 것은 아닐까? 숫자 12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우주의 시간과 공간을 나누는 절대적인 기준이다. 시간은 1년은 12달이고 하루는 낮 12시간과 밤 12시간 총 24시간으로 나뉜다. 서양 점성술의 황도 12궁과 동양의 12간지(띠) 역시 우주의 시간을 다스리는 체계다. 공간은 계시록에 언급된 새예루살렘의 문이 12개이고 성곽의 기초도 12개임을 나타내고 있다. 그리고 144도 각각을 더해보면 1+4+4, 9가 된다. 12x12 마방진의 한 줄의 합은 870인데 1부터 144까지 모두 더하면 10440이된다. 이 또한 각 숫자를 더하면 9가 된다. 한번 24x24마방진도 생각해 보자. 하루는 24시간이고 동양에서 태양의 움직임에 따라 1년의 기후변화를 24절기로 나누고 있다. 따라서 24x24는 인간이 삶의 거대한 시간적 축이고 만물이 태어나고 자라는 시간의 완벽한 순환톱리바퀴를 상징하고 있다. 또한 24x24=576이고 5+6+7=18, 1+8=9 여전히 9로 수렴되고 있다. 1부터 576까지 모두 더하면 166176이고 이를 더하면 27이고 다시 더하면 9가 된다. 그리고 한줄의 합은 6924가 되는데 이를 더하면 21이 되고 이를 다시 더하면 3이 된다. 여기서 테슬라가 느낀 전율을 우리도 느낄 수 있다. 전체를 통제하는 힘(칸 수와 총합)은 궁극의 숫자인 9를 가리키고 있는데, 그 내부를 구성하는 한 줄의 균형(마법 상수)은 마방진의 시작점이었던 3으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즉, 24차 마방진은 테슬라가 말한 3·6·9의 에너지가 내부(3)와 외부(9)에서 동시에 요동치는 완벽한 공명 상태를 보여주고 있다.
조금만 더 생각해보자. 우주적 주기의 끝판왕이라 불리는 60(60분, 60갑자)차 마방진의 세계는 어떠할까? 60X60=3600이고 이 또한 각 숫자를 더하면 9가 된다. 1분은 60초이고 1시간이 60분인 이유는 뭘까? 동양에서는 60갑자라 하여 10천간과 12지지가 맞물려 한 인간의 삶과 역사의 대주기가 완성되는 시간이다(환갑). 서양의 시간개념과 기하학에서 1분은 60초, 1시간은 60분이며, 우주의 완전한 원은 **360도(60 × 6)**라고 했는데 이는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바빌로니아 문명에서 천문학과 수학을 계산할 때 60진법을 사용했고, 이것이 고대 그리스와 중세 천문학자들을 거쳐 현대까지 이어졌다. 그들에게 숫자 60은 2, 3, 4, 5, 6, 10, 12, 15, 20, 30으로 아주 쉽게 나누어떨어짐으로 실생활 계산에 유용했다. 그리고 바빌로니아 사람들은 태양이 1년(약 360일) 동안 하늘을 한 바퀴 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원의 각도 한 바퀴를 360도로 정했고, 이 각도를 더 쪼개는 과정에서 1도를 60분, 1분을 60초로 나누는 체계가 만들어진 것이다. 그런데 이집트 사람들은 숫자를 셀 때 손가락 마디를 기초로 했다. 엄지 손가락을 제외하고 4손가락을 보면 검지, 중지, 약지, 새끼 손가락에 각각 3개씩 나눠진 것을 알 수 있다. 그들은 손가락으로 5개까지만 세는 것보다 한손으로 12개까지 셀수 있어 훨씬 큰 수를 계산하기 편했다. 아무튼 60차 마방진의 전체 숫자의 총합은 1부터 60까지 모두 더한 값이 6481800이고 이숫자의 각각을 더하면 27이되고 이 또한 9가 된다. 한 줄의 합은 108030이고 이 숫자를 더하면 12가되고 이는 다시 3으로 귀결 된다. 지금까지 우리가 3x3(시작)에서 출발해 6x6, 9x9, 12x12, 24x24를 거쳐 60x60(대완성)까지 도달하면서 알게 된것은 예외 없이 9가 나오고 그 시작은 3이란 숫자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여기서 멈출수는 없다. 70X70마방진은 다르지 않을까? 맞다. 달라진다. 70x70=4900이다. 여기서 각 숫자를 더하면 13, 이를 다시 더함ㄴ 4가 나온다. 3이 아니다. 1부터 4900을 다 더하면 Nx(N+1)/ 2공식을 적용하면 12,007,450이 나온다. 여기서 각 자리수의 합을 더하면 19가 나오고 이를 다시 더하면 9가 아닌 1이 나온다. 한 줄의 합은 공식 S=n(nxn+1)2를 적용하면 (70x(70x70+1))/2 임으로 171535가 되고 이 숫자의 각각을 더하면 22, 이를 다시 더하면 4가 나온다. 이렇게 나온 것은 3의 배수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자리수의 합도 9가 나오지 않는 것이다. 그럼 이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일까? 비록 9의 법칙은 깨졌지만 성경에서 7은 완전성의 상징이다. 이스라엘 장로 숫자가 70이였고 예수님이 복음을 전하기 위해 따로 세워 파송한 제자들도 70명이었다. 성경속 70이란 숫자는 7일간의 천지창조를 완성하신 완전수 1에 세상의 모든 숫자를 대변하는 1과0이 합쳐진 만수 10이 곱해진 것으로 완전한 하나님의 지혜와 통치가 내포된 숫자로 볼수 있다. 70x70마방진 수가 1로 귀결되는 것은 태초의 시작 곧 유일하신 하나님께로 귀결되는 것과 같다. 그렇다면 인간이란 존재가 시작되는 3x3마방진과 7x7마방진은 셋이면서 하나인 것으로 볼수 밖에 없다는 결론에 이른다. 논리의 비약일까? 그것이 맞다면 수학과 종교, 철학의 본질인 셈이다. 70x70마방진이 이를 확실 증명하고 있다. 70x70마방진에서 나온 숫자는 1과 4뿐이다. 1은 태초의 시작, 유일한 존재를 의미하고 4는 그로부터 동서남북으로 뻗은 사방균형을 이루게 된다. 여기서 숫자 4는 본질 하나가 움직여 사방의 균형을 이룰 때 셋(3, 삼위일체/삼재)의 형태로 나타난다는 뜻이다. 70차 마방진은 외형적으로는 4의 균형을 가졌지만 그 속 알맹이(총합)을 모두 더하면 결국 하나, 1로 귀한되는 구조를 가진 셈이다. 1+1+1=3이 이면서 이것이 3이면서 1인 이유는 서로가 서로에게 온전히 스며들어 곱해지는 1x1x1로 신비로운 하나(1)인 것으로 70마방진이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앞서 다룬 3, 9, 12, 24, 60차 마방진들이 모두 3의 변주 속에서 결국 9(궁극의 1)로 수렴했던 것도 이 '하나이면서 셋'인 우주적 법칙과 정확히 맞물린 것이다. 내가 보기에 숫자는 하나님을 표현하는 우주의 언어다. "우주는 본질적으로 하나(1)이며, 그 하나가 세상에 나타날 때는 셋(3)의 조화와 사방(4)의 균형을 통해 움직인다"는 거대한 진리를 담은 신의 설계도였던 것이다.
혹시나 하여 80x80마방진을 계산해 보면 총 칸수는 80x80=6400개고 이를 합하면 자릿수의 합은 6+4=1이 된다. 각 칸에 들어간 전체 숫자의 합은 6400x6401/2=20483200이고 각 숫자의 합은 다시 2+0+4+8+3+2+0+0=19=>10=> 1이 된다. 반면 한줄의 합을 계산해보면 20483200을 80으로 나눈 값이므로 256040이 되고 이 각각의 수를 합치면 17이 되고 이에 각각의 수를 합하면 한 줄의 균형을 잡아주는 상수는 8이 된다. 3의 배수였던 60차 마방진이 중심(마법상수) 3에서 시작해서 외곽에서 9로 귀결되는 것을 보았다. 그런데80차 마방진은 중심에서 8을 보여주고 외곽에서 1을 공명한다. 흥미롭게도 이 둘을 더하면 (8 + 1) 다시 우주의 끝판왕인 9로 돌아가게된다. 결국 숫자는 결국 하나의 그물망이다. 결국 80x80 마방진은 전혀 새로운 별개의 세상이 아닌 것이다. 3의 배수(60차 등)가 '3·6·9의 순환'이라는 방식으로 우주의 조화를 보여주었다면, 80차 마방진은 '유일한 하나(1)의 묵직한 존재감'이라는 방식으로 우주의 진리를 보여주고 있을 뿐이다. 방식만 다를 뿐, 결국 같은 그물망 안에 있는 것이다. "결국 하나이면서 셋이 맞다"고 한 철학적 선언이 이 80차 마방진에서 '1과 8(더해서 9)'이라는 구조로 완벽하게 변주되어 나타나는 모습을 보니, 우주의 수학적 정교함에 다시 한번 감탄하게 된다.
그렇다면 50x50 마방진은 어떨까? 간단히 2500=> 7로 귀결되는데... 2500개 칸에 들어간 모든 숫자를 더하면 3126250이 되고 각각의 숫자를 더하면 22가 나오고 다시 이를 더하면 4로 귀결된다. 한줄의 합(마법상수)는 전체를 50으로 나누면 되니까 62525이고 각각의 수를 더하면 20이니까 2로 귀결된다. 처음 7과는 어떻게 연결될까? 7이 왜 완전수 일까? 7은 하나님께서 천지를 6일동안 창조하시고 7일째 안식하신 숫자이고, 삼위일체 하나님 3과 동서남북 온세상을 가리키는 4가 합쳐진 숫자다. 50방진에서는 2와 4가 나왔다. 이를 합치면 6인셈인데 6은 수학적으로 자신을 제외한 약수들의 합과 같은 최초의 물질적 완전수(1+2+3=6)이자 천지창조에 걸린 6일을 의미한다. 결국 50x50마방진은 외형은 영적인 완전수 7을 가리키고 내부는 물질적인 완전수 6의 균형을 이루며 조화를 이끌어 내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70차 80차 그리고 50차까지 다루면서 명확하게 확인되는 것은 3의 배수들은 9(순환과 공명)의 방식으로,80차는 1(유일한 존재감)의 방식으로,50차는 7(영적 완전함)의 방식으로 자신을 드러내고 있다는 것이다. 겉모습(차원)을 바꿀 때마다 숫자들이 저마다의 거룩한 상징(9, 1, 7)을 꺼내어 보여주지만, 그것들을 한 꺼풀만 벗겨서 수비학적으로 쪼개보면 결국 "하나(1)에서 시작해 셋(3)으로 조화를 이룬다"는 거대한 질서 밖으로 단 한 걸음도 나가지 못함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숫자는 고정되어 있지 않고 살아 움직이고 변화한다. 하지만 근본은 일치한다. 다양성 속에 일치 라는 속성을 가진 것이 숫자라는 것이라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드라마 뿌리깊은 나무에서 보면 세종이 33방진에 매달리며 해답을 찾지 못하다가 정 사각형 안에서 답을 찾지 못하고 그 틀을 깨고 나서야 해법을 찾았단 말이야... 틀을 깬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드라마 《뿌리깊은 나무》에서 세종(이도)이 마방진의 틀을 깨고 해법을 찾은 장면은 이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가장 위대한 정치적·철학적 각성의 순간이었을 것이다. 세종이 ‘정사각형의 틀을 깬다’는 것은 수학적 묘사를 넘어, 세종이 조선이라는 국가의 운영 방식과 ‘왕’이라는 자신의 존재 목적에 대한 거대한 패러다임을 전환했음을 의미한다. 드라마 속에서 마방진은 조선 사대부들이 말하는 '성리학적 조화와 질서'를 상징했다. 사방의 합이 완벽하게 들어맞는 마방진처럼, 양반과 노비의 신분이 정해져 있고 그 틀 안에서만 평화로우면 된다는 정적인 세계관이었다. 세종도 처음에는 그 사대부들의 논리(정사각형의 틀) 안에서 답을 찾으려 했지만 매번 막혀버렸다. 그런데 세종이 사방에 보조 칸을 그려 정사각형이라는 경계를 무너뜨리고 숫자를 밖으로 밀어냈다가 다시 들여오는 방식(홀수 마방진의 해법)을 찾았다는 것은, 기득권이 짜놓은 좁은 신분제와 한자의 틀을 깨부수어야만 진정한 세상의 답을 찾을 수 있다는 깨달은 것이다. 이는 한글 창제로 직결되었는데 당시 조선의 지식과 권력은 '한자'라는 높은 성벽(정사각형) 안에 갇혀 있었다. 사대부들은 백성들이 글을 알면 세상의 질서가 무너진다고 믿었다. 세종이 틀을 깼다는 것은 권력의 독점을 깨고, 글자라는 무기를 성벽 밖의 백성들에게 나누어주겠다는 혁명적 결단을 의미했다. 백성이 글을 알아야 스스로를 구원하고 국가의 진정한 뿌리(Root)가 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아버지 태종 이방원은 세종에게 숫자를 모두 지우고 '오직 1'만 남긴 방진을 보여주며, "이것이 왕의 방진이다. 왕이 곧 법이며 모든 권력은 왕 한 사람에게서 나온다"라고 훈계 하며 세종의 나약함을 비웃었지만 세종은 아버지의 잔인한 힘의 통치(1의 방진)도, 신하들의 폐쇄적인 통치(정사각형)도 거부했고 기존의 틀을 깨고 나간 자리에 백성을 채워 넣음으로써, 억압이 아닌 '소통과 설득'으로 나라를 다스리는 자신만의 새로운 '왕도(王道)'를 완성한 것이다. 잠시 경계 밖으로 자유롭게 나갔다 들어오게 열어주면(다양성) 결국 완벽한 균형(일치)을 이룬다는 자연의 순환 원리를 마방진의 숫자들을 28자의 한글을 창제함으로서 지배층만의 리그였던 조선을 깨고, 백성이 주인이 되는 새로운 시대를 열겠다는 꿈을 실천한 것이었다.
세종이 찾은 해법은 정사각형이 아니면 무엇이었을까? 드라마 《뿌리깊은 나무》에서 세종이 발견한 결정적인 해법은, 숫자를 정사각형 안에서만 이리저리 굴리던 고정관념을 버리고 ‘정사각형의 네 변 밖으로 임시 칸을 늘려 십자가(또는 다이아몬드) 모양’을 만든 것이었다. 수학사에서는 이를 ‘라루베르의 방법(Method of De la Loubère)’ 혹은 ‘계단식 배치법’이라고 부르며, 홀수 마방진(3x3, 5x5 등)을 푸는 가장 대표적인 공식이다. 세종이 깨달은 시각적 해법의 원리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사각형의 성벽을 허물고 확장하기 (십자가 모양)
세종은 3x3 정사각형의 가로, 세로 네 면의 중앙에 방을 하나씩 더 만들어 붙였다.이렇게 하면 정사각형 모양이 아니라, 위·아래·좌·우로 방이 튀어나온 십자가(또는 한자 亞 자) 모양이 된다. 사각형이라는 닫힌 경계를 허물고 공간을 외부로 확장한 것이다.
2. 틀 밖의 공간을 이용해 순서대로 배열하기
경계가 없어지자 숫자를 배치하기가 아주 쉬워졌다.튀어나온 칸을 포함하여 대각선 방향으로 1, 2, 3을 순서대로 썼다.그다음 줄도 대각선으로 4, 5, 6, 마지막 줄도 7, 8, 9를 순서대로 채워 넣었다. 이렇게 하면 숫자들이 사각형 틀 안팎으로 비스듬하게 줄을 서며 대칭 구조를 이루게 된다.
3. 밖에 나갔던 숫자를 반대편으로 포용하기 (해법의 완성)
이후 정사각형 틀 밖에 가 있는 숫자들(1, 3, 7, 9)을 안으로 들여보내게 된다. 여기서 핵심은 ‘가장 먼 반대편 칸’으로 이동시키는 것이다. 맨 위에 튀어나와 있던 1은 맨 아래 빈칸으로 내려보진다. 맨 아래에 있던 9는 맨 위 빈칸으로 올려보낸다. 왼쪽에 있던 3은 오른쪽 빈칸으로, 오른쪽에 있던 7은 왼쪽 빈칸으로 보낸다. 이렇게 밖으로 나갔던 숫자들을 반대편 안쪽으로 쏙 집어넣으면, 신기하게도 틀 안에 남아있던 숫자들(2, 4, 5, 6, 8)과 완벽하게 융합되면서 가로, 세로, 대각선의 합이 모두 15가 되는 완벽한 3x3 마방진이 완성다.
세종이 찾은 도형은 결국 "밖으로 확장되었다가 다시 안으로 수렴하는 유연한 공간"이었다.글자를 몰라 지식의 틀(정사각형) 밖에 버려져 있던 백성들(틀 밖의 숫자들)을 넓은 마음으로 품어 안아, 국가라는 시스템의 반대편 빈자리로 안전하게 들여보낼 때 비로소 조선이라는 나라가 완벽한 균형과 평화(마방진의 완성)를 이룰 수 있다는 정치적 해법을 수학적 시각으로 찾아낸 것이다.
그렇다면 다이아 몬드 모형도 결국은 정사각형이다. 다이아몬드형(마름모)은 기하학적으로 정사각형을 45도 회전시켜 세워놓은 것에 불과하다. 즉, 겉모습만 바뀌었을 뿐 구조적 본질은 여전히 '정사각형'인 것이다.그렇다면 "세종이 틀을 깼다"는 것은 도대체 무엇이 다르기에 그토록 위대한 해법이 된 것일까? 그것은 도형의 모양이 바뀐 것이 아니라, 공간을 채우는 '패러다임(인식의 틀)'을 완전히 바꾼 것이다.기존의 정사각형은 단힌 감옥이었다. 그러나 마름모형을 이룬 것은 정사각형의 벽을 허물고 밖으로 통하는 '임시 통로(문)'를 냄으로서 잠시 성벽 밖으로 나갈 수 있게 공간을 열어주자, 빽빽하던 숫자들이 자연스럽게 흘러가며 자리를 잡을 수 있게 된것이다. 곧 숫자를 흐르게 한데 촛점이 맞춰져 있었다. 닫힌 공간에서 열린 공간으로 경계를 부수고 고정된 상태에서 역동적 흐름으로 이동의 자유를 허락한 것이다. 이런 면에서 십자가가 들어간 유연함을 간직한 다이아몬드와 감옥처럼 갇히고 막힌 정사각형은 엄청난 차이가 있는 것이다. 조선 사대부들이 말하는 '바른 질서(정사각형)'는 자신들만의 기준이었다.세종이 정사각형을 돌려 다이아몬드로 보았다는 것은, "내가 보는 방향만이 정답이 아니다"라는 시선의 전환이다. 고개를 돌려 다이아몬드로 바라보는 순간, 보이지 않던 대각선의 규칙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내 기준(양반의 한자)만 고집하지 않고, 백성의 눈높이(새로운 각도)로 세상을 바라보겠다는 거대한 발상의 전환이었던 것이다.
마방진을 묵상하면서 역시 인간이란 존재는 정방형이라는 한계가 있을 때 안전을 느낄 수 있지만 그것이 감옥이 되어서는 안됨을 느꼈다. 흐르지 않는 물은 썩듯이 숫자도 마찬가지다. 흐르지만... 역동성을 가지고 움지이지만 자신의 한계를 아는 것이 진정한 숫자의 아름다움아닌가 생각해본다. 다시말해 나와 너란 존재가 하나의 숫자라고 가정할 때 모든 숫자가 각자의 자리에서 역동적으로 움직이면서도 '사방의 합을 똑같이 맞추어야 한다'는 궁극의 한계와 책임을 스스로 알고 자신의 한계를 넘지 않는 것은 절제와 균형의 미를 갖춘 진정한 숫자일 것이다. 마방진을 하나의 몸으로 본다면 각 숫자는 한 몸의 각 지체 혹은 기관과 같은 것일 것이다. 분명 각자 태어날 때부터 부여 받은 절대적인 제자리가 있고 제 자리를 찾아 그 곳에서 제 기능을 하기 위해 움직이는 것이 숫자로서 아름다움을 유지하는 것이다. 그러면 각각 별개가 아닌 하나이면서 셋 속에 속한 존재라고 할까? ... 그렇다면 다른 숫자도 다른 것이 아닌 내 부분인 것일 수 있고... 그렇게 생각하니 동양의 물아일체(物我一體) 사상과 성경이 말하는 '한 몸의 지체' 개념이 마방진의 숫자의 완벽한 조화 속에서 그대로 살아 숨 쉬고 있는 것 같다. 3x3마방진에서 아무리 혼자 잘난 8이라도 날고 기고 해도 15란 완벽함을 만들 수는 없다. 옆에 1과 6이 붙어야 비로소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있는 것이다.
세종에게 그렇게 반대상소를 올렸던 성리학자들 그들은 내 몸이 아닌 곰팡이일까? 반대편 같은 숫자, 버티며 저항하며 대드는 숫자 같이 느껴지지만 성리학자들의 완강한 반대와 제동(한계)이 있었기에, 세종은 자신의 논리를 더 정교하게 다듬고 밤새워 고뇌하며 한글의 초성·중성·종성이라는 인류 역사상 가장 과학적이고 완벽한 체계를 완성할 수 있었다. 만약 반대파가 없어서 세종이 아무런 제약 없이 독단적으로 법을 만들었다면, 그것은 '역동적으로 흐르는 방진'이 아니라 또 다른 형태의 폭주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즉, 그들은 세종과 대립하는 별개가 아니라, 조선이라는 거대한 정방형의 균형을 잡기 위해 세종의 반대편 좌표에 배치되었던 지체들인 셈이다. 세상에 명백히 존재하는 잔인하고 악한 존재들은 어떻게 봐야 할까? 이들을 마방진을 갉아먹는 '곰팡이'로 볼 수도 있지만, 전체론적 관점에서는 이들을 '음(陰)의 숫자' 혹은 '마이너스(-)'의 값을 가진 지체로 해석할 수 있다. 수비학적으로 악(惡)은 그 자체로 독립된 존재라기보다, '선의 결핍'이자 '빛이 도달하지 못해 생긴 그늘'이다. 마방진에서 한 줄의 합이 '0'이나 '15'로 떨어지려면, 플러스(+)의 가치만큼 그것을 상쇄하고 깎아내리는 음(-)의 영역이 있어야만 우주 전체의 대균형이 설명된다. 악인들은 스스로는 파괴를 일삼는 곰팡이처럼 행동하지만, 거대한 신의 마방진(우주)이라는 큰 틀에서 보면 인간에게 '절제와 선(善)의 소중함'을 깨닫게 하고, 결국에는 더 큰 차원의 균형을 이루게 만드는 어두운 좌표의 숫자들일 수 있다. 그러기에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박히시면서도 그들을 정죄하지 않고 "아버지여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저들은 자기들이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함이니이다 "라고 기도하셨던 것이다. 인간의 무지와 그들을 향한 긍휼, 그리고 중보기도를 올릴 수 있어던 배경에는 더 큰 차원의 사랑과 긍휼, 하나님의 공의에 절대 순종하시는 모습을 보여주신 것이다. 곰팡이 같은 존재 조차도 자연계에서는 유기물을 분해하여 숲을 살리는 '순환의 한 축'을 담당 하는 것처럼 악인은 선인을 더욱 선인 되게 하는 도구로 사용하신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마방진에 음의 숫자가 과연 있는 것일까? 생각해 본다. 존재한다고 본다. 3x3마방진의 모든 숫자에 -를 붙이면 -1부터 -8 그리고 그 숫자 각 행 열 대각선의 합은 -15로 대칭과 균형이 그대로 유지된다. 심지어 양수와 음수를 절반씩 섞어서 한 줄의 합이 정확히 0이 되도록 하는 마방진도 존재한다. 음의 숫자는 근본 (하나이자 셋)을 벗어나지도 않는다. 오히려 존재해야만 하나 라는 근본이 완벽해 진다. 마이너스가 존재한다는 것은 상대적 개념에 입각해서다. 사실 자연계에 절대적인 '마이너스'라는 양은 존재하지 않는다. 마이너스는 인간이 수량의 변화나 반대 방향을 편리하게 표현하기 위해 만든 상대적인 개념이자 수학적 도구일 뿐이다. 0이란 무엇인가? 모든 것의 시작이자 아무런 방향도 없는,차이가 없는 상태, 즉 유일한 하나(1)라는 숫자의 또 다른 모습이다. 오도 0 ℃ 는 물이 어는 점일뿐 에너지가 없는 것은 아니다. 통장에 -100원이면 내돈이 마이너스 기운으로 바뀐 것이 아니라 채무상태로 갚아야 함을 나타내고 있다. 무엇을 말하는가? 마이너스는 상대적 관계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차이가 반대 방향으로 마이너스 라는 옷을 입어도 역시 1과 9를 향해 공명하고 있다. 위의 마방진 전체 숫자를 모두 더하면 -45가 되고 부호를 빼서 4+5로 더하면 결국 9가 된다. 이렇게 까지 생각하니 2차원 마방진에서 3차원 마장진으로 생각이 확대되는것 같다.
놀랍게도 이 3차원 마방입체를 역사상 최초로 이론화하고 세계적인 수준으로 발전시킨 인물이 바로 조선시대의 천재 수학자 최석정(崔錫鼎, 1646~1715)이다. 그는 자신의 저서 《구수략》에 세계 최초로 9차 마방진(구구도)을 비롯한 입체적 수의 배열을 기록해 세계 수학계를 놀라게 했다. 구구도(九九圖)는 가로와 세로가 각각 9줄인 9×9 크기의 마방진(가로·세로·대각선의 숫자의 합이 모두 같은 표)을 말한다. 글자 그대로 9×9 방진이며, 최석정은 구수략에서 이를 '구구모수변궁양도'라는 이름으로 소개했다. 그 특징은 가로, 세로, 대각선 방향의 숫자 합이 모두 일정하게 일치하도록 배열한 수학적 도형이다. 이는 스위스의 수학자 오일러보다 67년 이나 앞서 발견한 세계 최초의 직교라틴방진(Orthogonal Latin Square) 관련 성과로 인정받고 있다. 우리가 오늘날 매일 쓰는 스마트폰(LTE, 5G), Wi-Fi 통신, 위성 방송의 핵심 기술인 '오류 정정 부호(Error Correcting Code)'에 바로 이 원리가 적용되었다. 데이터가 공기 중을 유통할 때 노이즈(어둠)로 인해 일부 훼손되더라도, 가로·세로의 완벽한 대칭 구조(최석정의 방진 원리)를 복원 필터로 사용하여 지워진 데이터를 원래대로 깨끗하게 복구해 낸다. 우리가 끊김 없이 고화질 동영상을 볼 수 있는 숨은 공로자다. 백신 신약개발과 실험 계획법에도 쓰이는데 환자의 나이, 성별, 체질 등 수많은 변수 속에서 모든 조합을 다 실험하려면 비용과 시간이 무한대로 들지만 최석정의 직교 방진 규칙에 따라 환자군과 약물을 배치하면, 최소한의 실험(샘플링)만으로도 전체의 균형 잡힌 정확한 효과를 도출해 낼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신문이나 잡지, 스마트폰 앱으로 즐기는 9x9 스도쿠 게임은 최석정이 《구수략》에 채록한 ‘9차 직교 라틴 방진’의 규칙과 정확히 100% 일치한다.
이런 마방진 개념을 어린 아이들에게 이걸 놀이로 가르쳐 주고 싶다. 아이들이 노는 공기 놀이에 숫자를 붙여서 뭔가 만들어 줄 수는 없을까? 그래서 한번 교육용 레크레이션을 만들어 봤다. 일면 [마방진 공기놀이] 내용은 역동성(달리기), 무작위성(공기줍기), 선입선취(자리잡기), 공동체 조화성(노래, 오답을 축제로 만) 그리고 수확적 연산을 온몸으로 체험하게 만들었는데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일단 9명의 학생들이 있다. 그리고 선생님인 나.
2. 공기돌 9개가 있고 각돌에 숫자가 1부터 9까지 써있는 것이지
3. 땅에 마방진 빈칸9개로 만들어진 정방형을 그려 놓는다.
4. 아이들은 대기장소에 준비! 하며 기다리고 있다가 내가 잡아라! 하며 공기를 마방진 안으로 던지면 달려가서 각자가 주워들고 자기의 번호를 확인한다.
5. 그리고는 마방진 밖에서 손을 잡고 마방진을 둘러싼 원을 만든다.
6. 그리고 둥글게 둥굴게, 빙글 빙글 돌아가며 춤을 춥시다....하며 노래를 부른다.
7. 그러다가 내가 각자 위치로! 하며 휘슬을 불면 각자가 생각했던 마방진 빈칸으로 달려간다. . 아마 서로 자기 자리라고 싸우기도 하겠지.. 그러나 선입선취.. 먼저 온 사람이 자리를 잡는 규칙을 따르게 한다. 그러면 빈자리를 찾아 이동하고 마지막에 마방진을 다 채운다.
8. 마방진을 다 채우면 가로세로대각선으로 계산을 해본다. 계산 결과15가 되면 그자리에 남고 숫자가 안맞는 사람들은 다시 마방진 밖에 나가서 다시 손으 잡고 둥글게 둥글게 노래를 부르게 한다... 그러다가 휘슬이 울리면 자기가 생각한 곳으로 또 달려가지...
9. 그렇게 해서 마지막에 자리를 잡은 사람에게 벌칙이 아닌 상으로 공기돌 5를 준다.왜냐하면 그로이해 마지막 퍼즐이 완성되었으니까.. 아이들이 서로를 포용하고 환호하는 축제? 상상만 해도 재미있다.
글을 마치기 전에
100차 마방진, 100x100마방진은 어떨까? 1부터 10000까지의 숫자가 들어가는 거대한 마방전은 소름돋을 정도로 유일한 하나님의 삼위일체를 보여준다. 총칸수 10000개 자릿수 합 1, 전체 숫자의 총합 1부터 10000까지 모두 더하면 10000x10001/ 2=50005000, 자릿수 합은 역시 1이 된다. 한줄의 합(마법상수)는 50005000/100=500050, 결국 이것도 1이다. 지금까지 수많은 마방진을 다루어왔지만, 외형(칸 수), 한 줄의 균형(마법 상수), 내부의 알맹이(전체 총합)가 단 하나의 예외도 없이 모조리 '1'로 통일된 것은 이 100차 마방진이 처음이다. "결국 하나이면서 셋이 맞는 거야... 각각 별개가 아닌 하나이면서 셋 속에 속한 존재라고 할까?" 생각한 것은 100차 마방진에서 확실하게 증명된 것이다. 100은 아브라함이 이삭을 얻은 나이다. 한 시대의 완성이다. 좋은 땅에 떨어진 씨앗이 맺는 최고의 결실도 100배였다. 태초의 가장 순수하고 강력한 빛인 '1'의 모습이 외형과 한줄 균형 전체 총합이란 3가지 면에서 1로 나타난 것이 100차 마방진이었다.
0차마방진, 0x0 마방진은 홀수도 아니고 짝수도 아니고 그렇다고 음수도 아니다. 일종의 무극(無極)'의 자리다. 현대 수학에서는 0을 짝수로 분류하지만, 동양 철학과 수비학에서는 음과 양이 나뉘기 전의 상태로 본다. 만약 가로, 세로 0칸인 0x0 마방진이 있다면 어떨까? 칸도 없고, 숫자도 없다. 당연히 합을 구할 수도 없다. 철학적으로 이 0차 마방진은 ‘아무것도 없지만 모든 가능성을 품고 있는 태초의 상태’, 즉 동양 철학의 무극(無極)이나 불교의 공(空)의 상태, 천지창조이전의 상태를 뜻한다. 우리가 나눈 모든 숫자의 대우주가 시작되기 전, 가장 완벽한 가운데의 자리다. 2x2 마방진도 존재하지만 '존재할 수 없는' 가짜 짝수이다. 마방진의 역사에서 가장 기묘한 ‘가운데’는 바로 2x2 마방진입니다. 2는 분명 짝수다. 하지만 놀랍게도 2x2 마방진은 수학적으로 '절대' 만들 수 없다.1부터 4까지의 숫자를 어떻게 배열해도 가로, 세로, 대각선의 합을 똑같이 맞추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수학자들은 2x2 마방진을 ‘숫자의 형상을 하고 있지만, 마방진의 생명을 얻지 못한 유령 같은 존재’로 본다. 홀수 마방진(3차)의 시작점 바로 직전에 가로막혀 있는, 그야말로 홀수와 짝수의 경계선에 걸린 기괴한 공간인 셈이다. 복소수(가상수) 마방진도 '현실'과 '상상'의 한가운데 있다. 우리가 다루는 숫자는 1, 2, 3 같은 실수(Real Number)뿐이다. 하지만 수학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상상의 수인 허수 'i' (루트-1)가 있다. 만약 일반 숫자(양수, 음수)와 허수(i))를 섞어서 마방진을 만들면 어떻게 될까? 일종의 복소수 마방진인 셈이다. 이 방진은 우리가 사는 3차원 평면도 아니고, 거울 세계(음수)도 아닌, 인간의 상상 속에만 존재하는 ‘차원’으로 숫자들이 뻗어 나간 것이다. 홀수와 짝수라는 물질적 구분을 넘어, 현실과 상상의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는 신비로운 마방진이지만 실존하는지는 의문이다. 인간이 존재하는 공간은 최소 3x3 마방진(가로, 세로, 높이)이어야 입체세계의 문이 열리는 것이다. 국 인간이란 존재는 3에서 나왔고 홀수 짝수 마방진의 희노애락을 다 겪으면서 살다가 다시 1로 돌아가는 존재같다는 느낌이다...
마지막으로 불교의 108번뇌를 생가하며 108x108 마방진을 생각해 본다. 108x108 마방진이야말로 이 사색의 대장정을 맺는 최고의 명작이자 완벽한 마침표다. 마방진의 총 칸수 108x108= 11,664개, 각 자리수의 합은 18, 이를 다시 합하면 9로 귀결된다. 그리고 전체 숫자으 총합은 1부터 11664까지 모두 더한 값은 11664x11665/2=68,0330,280으로 각 수를 더하면 27이되고 2+7은 다시 9로 귀결된다. 마지막 한줄의 합(마법상수)은 108x(108x108+1)/2= 629,910이다. 여기서도 각 자리수를 더하면 29이 되고 2+7은 결국 9가 된다. 수많은 방진을 거쳐왔지만 외형(칸 수), 내형(한 줄의 합), 전체(총합)가 단 하나의 예외도 없이 모조리 우주의 끝판왕인 '9'로 통일된 것은 이 108차 마방진이 처음이자 유일하다. 지금까지 생각의 여정을 돌이켜보면 이 소름 돋는 일치가 무엇을 뜻하는지 바로 알 수 있다. 108은 그 자체로 3의 배수이자 9의 배수이다. 테슬라가 말한 우주의 열쇠 3·6·9의 에너지가 이 108이라는 숫자 안에 가득 차 있었기에, 마방진이라는 완벽한 대칭의 틀을 만나자마자 겉과 속, 그리고 전체가 모두 '9'라는 하나의 소리로 일제히 대공명을 일으킨 것이다. 인간의 108가지 번뇌를 다 아우르고 치유하듯, 108차 마방진은 모든 수치를 궁극의 완성인 9로 귀결되었고 100차 마방진이 '오직 유일한 하나(1)'를 보여주었다면 108차 마방진은 '그 하나가 만물로 흩어졌다가 다시 완벽한 조화(9)를 이루는 순간'을 보여준 셈이다.
[참고사항]
범구주(洪範九疇)는 고대 중국 하나라의 우왕이 낙수에서 얻은 마방진(낙서)의 원리를 바탕으로 정리한 ‘나라를 다스리는 9가지 거대한 원칙(근본 법전)’이다.글자 그대로 풀면 ‘넓을 홍(洪), 법 범(範), 아홉 구(九), 이랑/범주 구(疇)’로, “세상을 다스리는 거대하고 넓은 아홉 가지 표준”이라는 뜻이다. 후대 유교 정치 철학의 모태가 된 서경(書經)에 기록되어 있다. 최초의 마방진인 3x3 낙서가 9개의 칸으로 이루어져 있듯이, 홍범구주 역시 세상을 다스리는 영역을 정확히 9가지 카테고리로 나누었다.우주 자연의 질서(오행)부터 시작해서 인간의 신체 활동, 국가 경영, 기후 변화, 그리고 백성들이 누려야 할 복지까지 정치와 삶의 모든 영역을 9가지 규칙 안에 완벽한 균형으로 담아낸 것이다.
그 핵심은 황극(皇極)의 대균형이다. 9가지 원칙 중 가장 중심이 되는 다섯 번째 원칙으로 황극은 ‘임금이 세우는 최고의 표준과 균형’을 뜻하며 홍범구주의 9가지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오행(五行): 자연을 이루는 수·화·목·금·토의 이치를 다스림
2. 오사(五事): 임금의 다섯 가지 태도(태도, 말, 시선, 경청, 사색)를 바르게 함
3. 농용팔정(農用八政): 먹거리, 재물, 제사 등 국가의 8가지 행정을 돌봄
4. 협용오기(協用五紀): 달력을 만들어 해, 달, 별, 날짜 등 시간을 다스림
5. 황극(皇極): (중심) 임금이 치우침 없는 도덕적 중심을 세움
6. 예용삼덕(乂用三德): 백성을 다스릴 때 상황에 맞는 3가지 덕(정직, 강함, 유연함)을 씀
7. 계용계의(稽用禔疑): 거북점과 대나무 신탁을 통해 국가의 의문점을 해결함
8. 서징(庶徵): 비, 햇빛, 더위, 추위, 바람 등 기후 변화를 관찰함
9. 향용오복, 위용육극(嚮用五福, 威用六極): 백성에게 5가지 복을 주고, 악인에게 6가지 벌을 내려 사회 정의를 실현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