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因燔去魯
정공14년 노나라 임금이 제나라에 속아 넘어가 여악사를 보러가서는 종일 돌아오지 않고 국정에
태만하였다. 교제를 지낸 후 관례에 따라 대부들에게 주었던 제사지낸 고기를 나누어주지 않았다.
공자께서는 이에 사직하고 떠나 열국을 주유했다.
8월: 靈公郊迎
공자 56세 때 노나라를 떠나 천하를 주유할 때 위나라에 이르자 영공이 기뻐하며 교외에 나가 공자를 맞이했다.
공자께서 노나라에 계실 때 6만의 녹봉을 받았다는 말을 듣고 위나라에서도 그렇게 드리기로 했다. 영공이 공자를 이와 같이
예우하니 공자께서는 위나라에서 직책을 맡지 않았지만 벼슬하고 있는 것과 다름 없는 대우를 받았다.
9월: 匡人解圍
공자께서 노나라를 떠나 위나라로 갔고, 위나라에서 다시 진나라로 가실 때 광 땅을 지나가셨다. 일찍이 노나라의 양호가
이곳 사람들에게 폭정을 하였는데 광 땅 사람들이 양호로 오인하여 5일동안 포위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문왕이 이미 별세했으니 문(예약과 제도)이 나에게 있지 않겠는가? 하늘이 문을 없애려 하지 않으셨으니
광 땅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하겠는가?>
10월: 西河反駕
공자께서 위나라에서 중용되지 못하자 진나라고 가서 조간자를 만나보려고 하시다가 황하에 이르러 조간자가 어진 대부인
두명독과 순화를 죽였다는 말을 듣고 탄했다. <군자는 같은 부류를 해치지 않는다.>라고 탄식하고는 다시 위나라로 돌아갔다.
11월: 沐浴請討
노나라 애공 14년에 공자께서 벼슬을 그만두고 노나라에 계시었다. 제나라의 대부 진성자가 간공을 시해하였다.
신하가 군주를 시해함은 인륜의 큰 변고이기에 공자께서 목욕하시고 조회에 들어가서 애공에게 아뢰었다. <진항이 임금을
시해하였으니 그를 토별하소서.> 애공이 <저 세 대부들에게 말하라.>라고 하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대부의 뒤를
따랐기 때문에 감히 아뢰지 않을 수가 없었는데, 임금께서는 저 세 대부에게 말하라고 하시는 구나.>
세 대부에게 가서 말하자 불가하다 하니, 공자께서는 <내가 대부의 뒤를 따랐기 때문에 감히 말하지 않을 수 없었다.>
라고 하셨다.
12월: 入廟置戶
노나라 애공 16년 임술 4월 기축일에 공자께서 별세하시니 나이가 73세였다. 노나라 도성 사수 가에 장례하니
제자들이 모두 심상 3년을 입고 떠났으나 오직 자공만은 여막을 짓고 모두 6년을 시묘했다.
노나라 임금이 공자의 사당을 세우고 관리자 백여명을 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