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소설
젤 빨라, 퀵 서비스
김 주 석
한 낮의 테헤란로는 자동차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가득 메워져있다. 그 사이로 오토바이 한 대가 물 찬 제비처럼 요리조리 곡예를 부리며 헤집고 다닌다. 헬멧을 눌러쓰고 슈트에 핸드폰을 매단 체 무릎보호대를 하고 달리면서도 수시로 통화를 하는 모습이 로븟캅 처럼 역동적이다. 나날이 심해지는 교통체증에 반해 현대사회는 보다 신속한 업무처리와 물자 수송을 요구하는데서 생겨난 배달서비스 업종이다. 업소이름도 「젤 빨라, 퀵 서비스」로, 남보다 더 빠르게 배달해준다는 의미다. 그러다보니 시간을 다투며 엄청나게 신속히 달려야한다. 그가 주로 배달하는 물건은 중요한 긴급서류, 견본품, 고가 탁송품, ktx및 비행기표 등 다양하다. 운송하는데 소요되는 시간은 대부분 서울시내에서는 30분에서 한 시간이내이다. 그러므로 배달료가 일반운송료에 비하면 좀 비싼 편이다. 사무실이 있는 명동에서 강남까지는 6만원, 동대문은 5만원, 서대문은 4만원대 정도이고, 지방은 계약에 따라 금액이 일정하지 않다. 그러나 요즈음은 우후죽순처럼 업소가 많이 생겨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가격이 떨어지고 있는 형편이다.
달리는 도중에 핸즈프리로 전화가 걸려왔다. 사무실에서 중간열락을 취해주는 미스 박의 전화이다.
"여보세요. 전대요. 지금어디세요."
"테헤란로에서 엉금엉금 기고 있는 중이지. 명동의 선경빌딩에서 강남무역센타로 견본품을 배달해야하는데 시간이 될까요?" 하고 미스 박이 물었다.
"뚫고 갈려면 시간이 많이 걸릴 텐데."
"어쩔 수 없네요. 그러면 가까운데 있는 사람을 수배해 볼 게요. 수고하세요."
역삼역 부근의 동원빌딩 안에 있는 삼진무역사무실로 허급지급 뛰어올라갔으나 한 시간이 넘게 지체되고 말았다.
"이렇게 늦으면 비싼 돈 주고 퀵 서비스로 배달시킬 필요가 없잖아요."
깡마른 체구에 검은 뿔테안경너머로 눈 꼬리를 치켜세우며 쏘아붙이는 여직원의 신경질적인 반응에 변명한마디하지 못하고 당해야만 했다.
"죄송합니다. 다음부터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이런 자리는 얼렁뚱땅하며 빨리 빠져나오는 것이 상책이다.
구조조정으로 실직을 하고나서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막일을 하다 간신히 얻은 일자리다. 이일을 한지도 벌써 삼년이 넘는다. 새파랗게 젊은 사람이 대부분인 이 바닥에서 철중은 벌써 쉰 세대에 속한다. 세계적인 경기하락으로 일거리가 급격히 줄어들어 요즈음은 하루 일당도 벌지 못하는 날이 있다. 거기에다 가장 위험한 직업군에 속한다. 오죽하면 오토바이는 과부제조기라 불린다. 뿐만 아니라 이 직업은 보험 가입하는 것도 여간 까다롭지 않다. 교통사고로 병원을 제집 드나들듯이 들락거려야하고, 경찰서에 불려 다니는 것도 다반사이다. 철중도 작년여름 영동대로에서 접촉사고를 일으켜 보름동안 병원신세를 지고 나왔다. 이 직업에 대한 회의로 한 동안 오토바이는 쳐다보기도 싫었으나,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어쩔 수 없이 현실 앞에 무릎을 꿇고 다시 오토바이를 타게 되었다.
강남대로는 온통 차량으로 거북이걸음을 하고 있다. 다시 핸드폰이 울린다.
"여보세요. 어디 계세요."
"지금 강남대로를 빠져나오는 중인데."
"그러시면 서초에 있는 현대 자동차본사 관리부 김팔출 부장을 찾아가 탁송품을 인수 후 송파에 있는 교통회관 관리사무실로 전달하는 건 인데요."
"알았어. 그러면 여기서 막 바로 가도록 할게. 미스 박 고마워."
간신히 중앙분리대를 건너 반대방향인 양재동쪽으로 향했다. 남보다 배달건수를 올려주려고 애쓰는 박양의 살가운 마음 씀이 가슴에 찡하게 느껴진다. 뱅뱅 사거리를 넘어서면서 그만 교통단속에 걸려들었다. 길거리 교통경찰은 저승사자와 같이 두려운 존재다. 멀리서부터 차선을 요리조리 넘나들고 정지신호를 무시하는 것을 보았다며 차선위반으로 삼 만원의 스티커를 발부 받았다. 생계형인 점을 감안하여 제일 싼 것으로 끊었다며 크게 봐주는 척하고 생색을 냈다. 일반교통경찰관이라면 붙들고 사정도하고 억지라도 부려보겠으나 몇째 동생뻘 되는 새파란 의경에게는 벙어리 냉가슴 앓듯이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기분이다. 오늘 일당 절반 가까이를 날린 샘이다. 허탈한 심사였으나 일진이 나쁜 날로 자위하고 빨리 잊어버리는 것이 상책이다. 그러나 교통신호를 제대로 지키며 퀵 서비스 일을 하기는 불가능한 일이다. 교통위반을 식은 죽 먹듯이 하는 외에도 인도 위를 달리며 보행자들을 불편하게 할 때에는 미안한 생각이 들기도 한다.
현대자동차의 김부장을 찾아가 배달물품을 인도 받았다. 깨질 위험이 있는 귀중품임으로 안전하고 신속하게 배달하도록 각별히 신경 쓰라고 위압적인 투로 말했다. 출발을 서둘렀다. 아직 점심도 먹지 못한체 오토바이에 올라 탓을 때는 허리가 휘어지고 뱃가죽이 등 뒤에 달라붙는 것을 느꼈다. 이 직업은 점심도 제때 먹기가 어렵다. 시간에 쫓겨 대부분 햄버거 아니면 자장면으로 때울 때가 많다. 큰 건물로 들어가면서 중국집부터 먼저 찾아가 자장면을 주문해 놓고 물건을 배달해주고 난후에 후딱 먹어 먹어치우는 것이 시간을 가장 아끼는 방법이다. 뜨거운 국물이 있는 짬뽕이나 백반 같은 식사는 먹는데 시간이 걸려 좀처럼 시키는 법이 없다.
강남에서 교통소통이 가장 원활한 양재대로에 들어섰다. 훤하게 트인 넓은 대로에서 액세레이터를 힘껏 밟으며 스피드를 냈을 때는 삶의 무거운 짐을 훌훌 벗어 허공으로 날려버리는 가슴 후련한 스릴을 맛 볼 수 있다. 잠시 질주를 만끽하는 스피드광이 된 기분이다.
교통회관이 있는 잠실역 부근에 도착했을 때 핸드폰이 울렸다. 또다시 배달주문으로 생각하고 ‘아무리 돈벌이도 좋지만 점심이나 먹고 봐야할 것 아닌가.’ 하고 궁시렁 거렸다.
"여보세요. 철중씨." 미스 박의 다급한 목소리였다.
"지금 교통회관에 도착했어요?"
"잠실역부근인데 왜 그래." 불길한 예감이 스치고 지나갔다.
"지금 빨리 아산병원응급실로 가봐야겠어요. 상철씨가 길동사거리에서 차량충돌사고가 일러나 119구급차에 실려 갔다고 방금 연락이 왔어요."
"사고차종이 뭔데." 하고 철종이 물었다.
"승용차라는 것만 알아요."
"알았어. 빨리 배달해주고 곧장 병원으로 달려갈게."
"도착하는 대로 상황을 알려주세요."
통화가 끝난 순간, 철종의 가슴이 철렁 내려 않았다. 차량 충돌사고에서 십중팔구는 오토바이가 치명적인 부상을 입게 된다. 신호를 위반하여 앞으로 치고 나가다가 충돌한 것으로 판단된다. 이 경우 본인과실은 물론이고 과속을 했다면 더욱 큰 사고를 당하게 된다. 아직 장가도 못간 구만리 같은 청춘이다.
교통회관의 탁송품을 전해주고는 불이 나게 아산병원으로 달려갔다. 응급실에서 붕대를 칭칭 감고 의식 없이 누워있는 상철을 보고 간호사에게 환자의 상태를 다급하게 물었다.
"머리와 상반신에는 이상이 없고 하체 허벅지 살갗이 찢어져 이십여 바늘을 꿰맨 정도에요."
"교통사고에 이 정도는 억세게 운 좋은 편입니다." 행운이라는 듯이 미소 지으며 대답해주었다.
철중은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여보세요. 아 난데. 천만다행으로 가벼운 상해를 입은 부상이라 큰 걱정은 안 해도 될 것 같다."
"정말다행이 네요." 미스 박이 자기 일처럼 반가워했다.
철중은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고 조용히 병원로비로 나왔다. 그리고 자판기에서 커피한잔을 뽑아 마시며 일 년만 더 이일을 계속하기로 한 계획을 바꾸기로 했다. 마누라와 함께 옷가게를 열기로 한 구상도 포기하고, 고향에서 농사를 지의며 산에서 약초를 키우고 살아가는 귀향을 마음먹었다.
심중을 굳히면서도 철중은 노처녀인 미스 박의 실망하는 모습이 다가와 머뭇거려지며 마음이 납덩이처럼 무거워 진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