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계절의 시| 노희석
그때까지는 왜 몰랐을까 외
집이 가까워 지면
주머니를 이리저리 뒤지는 버릇은
내 탓이 아니다
누구한테 배운 것도 아닌
절로 생겨난 버릇을 가지고
나를 붙들고 그 이유 따져보아야
무슨 소용이 있기나 하랴
불도 없는 컴컴한 복도,
열쇠 꺼내어 열쇠 구멍을 찾는다
그 잠깐의 순간에
자물쇠를 따는 것은
왜 열쇠여야 하는가를 생각하다
병따개가 떠 올랐다
병뚜껑을 따듯 문을 따고 들어가면
너무나 쉬울 터인데
그 좁은 열쇠 구멍 찾느라
허둥대는 내가 싫다,
그래 열쇠를 확 뽑아 던져버리는 거다
그날 이후, 주머니 뒤지던
내 버릇은 어느샌가 사라져 버렸다
젠장, 머릿속에 걸어둔
비밀번호 여섯 자리 슬쩍 꺼내
꾹꾹 누르면 그만인 것을
내, 그때까지는 왜 몰랐을까
던지는 순간,
해방되고 만다는 것을 왜 왜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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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無知의 지知에 대하여
델포이 신전 앞에 쓰여 있는
너 자신을 알라는 글귀,
이천오백 년 동안이나 버티고 있다.
아무리 들춰봐도
알 수가 없는 너라는 존재.
화두라며 툭 던져놓고
모른다는 것을 아는 것이 바로
아는 것이라는
무지無知의 지知라는 그 말은
한낱, 소크라테스의 변명일 뿐이다.
길가는 아테네 사람들,
아무나 붙들고 거머리 같은
질문 쏟아붓고서는
끝내 무지의 뿌리, 캐내어
얼굴에다 휙 뿌리고 싱긋이 돌아서는
그는 이미 알고 있었던 거다.
세상의 악법도 법이라는 것을
아니, 독배는 죽음이 아니라
영원한 자유라는 것을
그는 벌써 깨닫고 있었던 거다
아테네 시민들 앞에서
호탕스레 독배를 들었던 소크라테스
모른다는 것이
얼마나 부끄럼인가를 보여주고 싶어
묻고 또 물었던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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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희석
1990년 《시대문학》으로 등단했으며 시집 『당신은 어느 별의 사람입니까』, 에세이집 『세상을 건너는 지혜 생각 100℃』, 동화 『은행나무 할아버지』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