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용대(朝鮮義勇隊) 호가장(胡家庄)전투 격전지를 찾아서
1.
1938년10월10일 한구(漢口-현 사천성 중경)에서는 조선의용대(朝鮮義勇隊)가 건립되었다. 조선민족혁명당을 중심으로 조선청년전위동맹, 조선무정부주의자연맹, 조선민족해방동맹 등 반일단체들과 제휴해 조선민족전선연맹을 결성하고 역사적인 조선의용대가 김원봉(金元鳳, 1898~?)의 주도하에 만들어져 찬란한 독립전쟁의 무장군사조직이 그 서막을 열게 되었다.
당시 대륙(大陸)의 중국국민당(中國國民黨)과 팔로군(八路軍)측에는 캐나다 출신의 의사 노먼 베쑨(Henry Norman Bethune, 1890-1939)과 미국 출신의 신문기자 에드가 스노(Edgar Snow, 1905-1972)등이 들어와 이들을 지원했으며, 소련의 전투기와 폭격기들이 또한 지원되어 일제(日帝)와 싸우게 되었다. 이런 격변의 시기에 조선의용대가 창설되고 이후 대만(臺灣)의용대와 일본인민반전동맹이 창설되었다.
기록에 따르면 당시 우리의 독립투사들은 중국측에 조선의용군(朝鮮義勇軍)이라는 명칭을 주장했지만, 중국정부는 조선의용대(Korean Volunteers)로 규정해 버렸다고 한다. 대륙에 또 다른 정부군(政府軍)을 인정하지 않을려 하는 중국국민당과 팔로군의 간교함을 엿볼수 있는 부분이다.
1938년10월 일본군의 무한(武漢)점령에 따라 조선의용대도 낙양으로 철수하게 되는데, 당시 배를 타고 이동했다고 기록은 전한다. 이를 통해 분석해 보면 1938년 당시 무한(武漢)이었던 현 사천성 중경에서 가릉강(嘉陵江)으로 변조된 한수(漢水)를 타고 노하구(老河口-현 廣元市 좌측)를 지나 진령(秦嶺)산맥의 좌측단이면서 현 사천성 북쪽의 고산지대를 통과하는 운하(運河)길을 타고 이동하여 낙양에 도착했음을 충분히 분석해 낼 수 있다.
조선의용대(朝鮮義勇隊)의 군기(軍旗)는 태극기였다. 또한 발행되는 모든 인쇄전단에도 태극기를 실었는데, 이는 팽덕회(彭德懷)의 조언이 결정적이었다고 한다. 즉 조선이 일제에 강점당하기 전 어떤 국기를 사용했는가 라는 팽덕회의 물음에 태극기라 답하니 그 태극기라는 기치아래 조국을 되찾는 것이 옳다고 말한 것이 조선의용대의 기치로 태극기가 자리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2.
현 하남성 최북단 태행산(太行山)의 우측하단에 임주(林州)라는 행정구역이 있는데 안양현(安陽縣)에 인접했으며, 1938년 당시에는 임현(林縣)이라고 불리었는데, 지금의 감숙성(甘肅省) 난주(蘭州) 서북쪽 100km 지점에 존재했던 지명이다.
우리말에 행렬(行列)이라는 말이 있는데, 여기서 행(行)은 가로 줄을 말한다. 태행산(太行山)을 글자뜻대로 해석하면 가로로 크게 뻗은 산을 말하며, 따라서 현 하북성(河北省)의 태행산과는 전혀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낼 수 있다. 현 감숙성(甘肅省)의 기련산(祁連山)이 바로 역사속의 태행산임은 북경(北京)과 낙양(洛陽) 그리고 서안(西安)의 역사적 지리위치를 고찰하면서 우리는 정확히 밝혀낼 수 있다.
이와 관련해 조선독립군이었던 김학철(金學鐵,1916-2001)선생은 그의 평전에서 2백호가 넘었던 임현(林縣)에 대해 우물이 하나도 없는 황무지와 다를 바 없었다고 기록하고 또한 군용식량이 옥수수밥이 전부였으며 주위를 둘러보면 온통 옥수수밭뿐이었다고 하며, 아울러 소금이 엄청 귀했음과 양(羊)이 많이 방목되었음을 알려주고 있다.
1941년12월 호가장(胡家庄)에서 벌어진 조선의용대(朝鮮義勇隊)와 일제(日帝)의 전투와 관련해 김학철 선생은 그 위치에 대해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태항산의 한 지맥이 동남쪽으로 줄기차게 뻗어내려오다가 갑자기 뚝 끊기며 마침표인 양 쑥 솟은 누에머리(잠두-蠶頭)를 이루어 놓았는데, 바로 이 기슭에 이백호 남짓한 선옹채(仙翁寨)란 마을이 자리를 잡았고, 또 선옹채에서 서남쪽으로 7km가량 떨어진 곳에 호가장이라는 큰 부락이 자리잡고 있었다.>
결국 이 전투에서 김학철 선생은 큰 부상을 입고 포로로 잡혀 나가사키 감옥에 갇히게 되고 이후 해방과 더불어 한국에서 활동하다 곧바로 월북을 하고, 이후 김일성의 우상화 정책에 환멸을 느끼고 중국으로 건너가 활동하다 2001년 생을 마감하게 된다.
3.
호가장(胡家庄)전투지역을 지도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이 볼 수 있다.
2023.10.29.松溪
첫댓글 고맙습니다
'태항산' 오타인가요?
태행산이 원래 저기 있던 게 지금의 산서성과 하북성의 경계를 이루는 산맥으로 둔갑한 것인가요?
그렇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