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체절명의 위기까지 가본 사업가들은 한결같이 "천운(天運)이 있어야 큰돈을 번다"고 이야기한다. 그렇다면 천운이란 무엇인가? 천운은 도대체 어디서 오는 것이란 말인가? 재운(財運)의 실체를 파고 들어가면 하나의 법칙이 나온다. '식신생재(食神生財)'라는 이치이다. 베풀어 놓아야 돈이 들어온다. 돈을 써야만 돈이 들어온다는 말이다. 팔자가 식신생재 구조로 되어 있으면 사람이 후한 편이다. 주변 사람들에게 야박하게 처신하지는 않는다. 낚시터에 미리 떡밥을 뿌려 놓아야 붕어가 모여들 것 아닌가!
그래서 큰 부자들은 대개 손이 크다. '0'을 하나 더 붙여주는 스타일들이다. 현대사에서 '식신생재' 팔자를 급하게 3명만 추려본다면 정주영, 한보의 정태수, 그리고 박연차가 생각난다. 그렇지만 세 사람은 등급이 있다. 정주영은 용이었다. 정태수는 이무기 단계에서 용으로 올라가려다가 중간에 추락한 사람이고, 박연차는 그냥 이무기급이다. 정주영은 고속도로·조선소·자동차라는 당시 시대정신과 부합되는 사업을 했다. 대의명분이 있었던 것이다. 정태수는 대의명분을 어떻게 만들어 보려다가 실패했다.
박연차는 이 개념이 없었던 사람 같다. 그저 정치권력이라는 예리한 칼날에 묻어 있는 단 꿀을 빨아 먹다가 그 칼날에 사지가 절단되고 있는 것이다. 몇 년 전쯤 그가 한창 잘나갈 때 비행기 안에서 신발 벗고 돌아다니며 술주정했던 추태에서 그 어떤 조짐이 시작되었다. 정권과 너무 떨어져 있어도 춥지만, 지나치게 밀착되다 보면 이런 사태가 온다. 사업도 마지막에는 명분과 철학이 좌우한다.
자료원 ; 조선일보 3월27일자 조용헌 살롱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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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의 사주 사례는 인터넷 검색자료입니다.
1. 故 정주영 회장 사주 (자료원 ; 정수역학연구소)
현대그룹의 창업자 이자 한국 경제의 선봉에서 경제 발전과 근대화에 주도적인 역할, 그리고 맨주먹 하나로 무에서 유를 창조해낸 전설적인 인물이신 故정주영 회장은 어떠한 사주를 가지고 태어났는가를 당사이트에서 상담을 하시는 목향 선생님으로 부터 분석을 받았다.
故 정주영 사주 연구
1915년 11월 25일(양력) 丑시
丁 庚 丁 乙
丑 申 亥 卯
86 76 66 56 46 36 26 16 6
戊 己 庚 辛 壬 癸 甲 乙 丙
寅 卯 辰 巳 午 未 申 酉 戌
용신:
庚金 일주가 亥월(壬水 사령)에 태어나 신약한데, 일지 申金과 時지 丑土가 있어 일간을 도와 주고 있다. 亥월은 겨울철로 접어드는 계절이고 더욱이 壬水가 사령한 시기이니 조후로 丙火와 丁火의 火氣가 필요한데, 月干과 時干에 丁火官성이 투간되어 있고, 월지 亥와 년지 卯가 亥卯合木으로 財局을 이루고, 또 년간 乙木이 투간되어, 財성의 뿌리가 든든하여 용신 丁火官성을 도우니 相生不息으로 富로써 貴를 얻는 아름다운 사주이다.
격국:
亥卯로 財局을 이루고, 乙木 財성이 투간되어 있으니 정재격에, 丁火관성으로서 조후하니 정관 용신을 쓰는 사주이다. 격이 정재므로 재물이 따르고, 용신이 官殺(명예, 직위)이니 국가와 관련된 사업을 도모하므로써 부를 이루었다. 경부 고속도로, 소양강 댐, 올림픽유치, 새만금 사업, 현대 자동차, 울산 조선소등 모두 나라와 관련된 사업들이며,노후에 소떼를 몰고 두 차례 북한을 방문한 것도 물론 북한에 대한 현대의 독점 사업권때문이겠지만 용신 정관의 작용으로 그렇게 된 것이라 본다. 정주영씨 별명이 王회장인 것도 이때문이 아닐까
성격:
일주가 庚申이니 남성은 남자 중의 남자로서, 어디가나 우두머리 역할이며 가문에서도 장자로서 일복많은 남자이다. 매사에 남보다 앞장서며, 독립심이 특히 강하고 , 고집세고 자기 주장이 강하다. 또한 月지는 본성을 나타내는데, 食神의 성격이니 판단력이 뛰어나 매사에 머뭇거림이 없는 속전속결주의이고 민첩하고 뛰어난 수단가로서 우리에게 전해지는 일화도 많다. 50년대 한겨울철 푸른 잔디를 요구하는 미군 공사에 보리를 옮겨 심은 이야기며, 소양강 댐 사력댐 공사, 제방 공사때 파손된 배를 가라앉혀 난 공사를 해결한 것등, 어려울 때마다 속출한 아이디어는 식신의 작용으로 본다
학문:
신약한 면이 있는 사주에 인수가 필요하여 喜紳이 되었으나, 丑土 인수가 공망이니, 학업이나 어머니와는 인연이 짧았고, 丙戌대운에 학업의 운이 들어 왔으나 丑戌 형살로 배움이 길지 않았다. 그러나 인수가 희신이니 庚辰대운(편인)때부터, 명예 공학 박사를 필두로 경제학 박사,문학박사, 인문학 박사, 정치학 박사,철학 박사, 이학 박사등 수많은 명예 박사를 받았으니 어찌 재밌지 않은가
처와 자식:
財局을 이룬 사주에 乙木 財가 투간되어 있으니, 수많은 여자들 편력이야 말할 것 없었지만 乙木 정처 자리가 힘이 있고, 乙庚 合을 하였으니 많은 여자들 속에서도 정처는 끝까지 자리를 지켰다. 정관 자식자리가 월간과 시간에 투출되어 있고, 재국으로 힘을 받고 있으니 자식이 많겠고 사회에 두각을 나타내는 자식으로, 자식자리(丁火)에서 보아도 관(亥水)이 강하니 자식들도 국가 근간 사업에 종사할 수 있다. 월드컵을 정몽준씨가 유치한다든지 결국 실패는 했지만 정몽구씨가 여수 해양 박람회등을 유치할려고 한다든지, 북한 관련 사업에 정몽헌씨가 손대고 있는 것도 물론 아버지가 벌려 놓은 일들 중 하나이지만 자식들 스스로도 정부 사업을 하도록 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운로:
본격적으로 안정된 운으로 흐른 것은 癸未대운때부터이다. 乙酉 甲申 대운때에는 재가 투간되어 있고 비견 겁재운이니 돈에 대한 대단한 집착심으로 겁 없이 일을 저질러, 몇 번의 좌절을 겪고,사업이 기로에 선 일도 많았다. 그러나 비견 겁재가 나쁜 운이 아니기 때문에 친구와 형제의 도움으로 이때, 뒤에 큰 사업을 일으킬 기반을 닦았다. 癸未 대운때부터 운이 남방(火운)으로 방향을 틀었으니, 50년 庚寅년 현대 건설 주식회사를 설립하여, 57년 丁酉년, 정관든 해, 국가 사업으로 한강 인도교 사업으로부터 현대 건설이 주목을 받기 시작하였다.
65년 乙巳년 巳申 역마 冲으로 외국으로 눈을 돌려 태국 고속 도로건설에 뛰어들었으나 巳申 충의 작용으로 별반 재미는 못 보고. 후에 소양감 댐 공사, 경부 고속도로등등의 국가 사업으로 완! 전히 재벌의 반열에 들어 승승장구하였으나 정경유착이라고 세인의 입방아에 오르내린 것은 癸水 상관 壬水 식신이 천간에 뜬 관계였으리라 .76년 丙辰년부터 관운이 들어 이 해에 한.아랍친선협회회장을 , 77년 丁巳년 정관드는 해부터 시작하여 87년까지 전경련 회장을 맡았으니 官의 작용이 재밌다.
庚辰 대운때에는 왕성한 기운인 水식신이 庫장에 들었으니 답답하다. 전두환 대통령 당시 현대가 핍박받던 때로 운신의 폭이 좁았었다. 허나 어찌하랴 화무는 십일홍이요 달도 차면 기우는 법이니 운기가 내리막인걸 감지하고서 주변을 정리하고 조용히 말년을 보냈었으면 지금쯤 세인들로부터 더 많은 존경을 받지 않았을까
92년 壬申년운:
火를 쓰는 사람이 불을 끄는 水운에 대선에 출마하여 일생 일대의 대결을 벌렸으니 그 결과야 뻔한 것이다. 丁壬合木으로 판단력이 흐려졌음이다. 丁은 官이니 국가기관이고 壬은 아랫 사람이니 아랫사람과 관이 합해서 木(돈)으로 보이니 선거에 반드시 이겨 돈이 된다고 생각한 것이다. 火는 사람의 눈에 해당하는 기관이다. 눈이 가려 판단력이 흐려진 것으로도 풀이된다. 또한 식신이 관과 합하여 큰 관재구설수에 해당하기도 한다. 선거 기간 중 부산 복집 사건등 말도 많았다. 지지에 비견을 깔고 왔으니 경쟁심이 발동하여 문제를 일으키고 돈은 물론 많이 나갔으리라 본다.
다음해 癸酉년 역시 불을 끄는 해이다 14대 전국구 국회의원직도 사퇴하고 그 해에 현대가 망한다는 소리까지 있었다.
2001년 辛巳년 마지막 해
戊寅대운 辛巳년 辛卯월 癸未일에 우리 나라 경제사에 한 획을 그은 거목 정 주영씨가 운명하였다. 戊寅대운은 그에게 편인대운이며 일간을 寅申 冲하고, 세운으로는 劫財년에 劫財월에 傷官날 서거하였으니 어찌 음양 오행의 기운을 무시할 수 있겠는가 .
첫댓글 뿌리없는 관을 용신으로 정하는 이가 아직도 있구나 ^^ 아 ^ 조후와 억부의 용신의 차이를 누구이해할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