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안녕들 하셨는지요 ?
오늘은 나의 어릴적 이야기를 더듬어 보니 ,혹시
재미가 없더라도 끝까지 읽어 주시면 고맙겠읍니다.
"한강"
한강은 나의 어릴적 고향이다 !
국민학교(초등학교) 입학 전후 우리가족은 흑석동과 상도동 사이에 있는
본동이란 동네에 살았었다.
그곳은, 나의 어린시절 추억의 산실이다.
아버님이 군 시절 대한민국 육상 국가대표 감독을 역임 하시던 시절이다.
(그때는 대표선수들이 군인들로 이루어 져 있었다)
그시절, 모두들 그러했겠지만 참으로 배고푼 시절이었다.
이승만 대통령 때에는 군인 월급을 쌀로 대신하여 줄 정도 였으니까...
그나마,박정희 정권이 들어서자 비록 조금이지만 나라에서 월급을 봉투에
담아 주기 시작하였다.
그때는, 운동을 직업으로 하기에는 너무 어려운 시절이다.
그저, 김일/장영철/천규덕 프로레슬링 선수들의 묘기를 만화방에서 모여
함성을 지르고 박수를 치고는 했던 기억이 난다.
그시절, 떠오르는 선수로는 대표팀 코치를 맡았던 황영조,이봉주 마라톤 선수를 키워 낸
정봉수 중사 아저씨가 먼저 떠 오른다.
정봉수 아저씨는 원래 주 종목이 마라톤이 아니라 800m 선수 출신이다.
그리고, 원반에 김병기 병장 아저씨가 생각난다.
참 잘 생기고 멋진 몸매를 가진 선수였다. 후에,미스터 코리아 선발전에 출전하여
금상을 받았을 정도이다.
제대 후, 한전에서 직장생활을 하시였다.
또, 투포환에 김호곤 병장 아저씨,거구의 몸에 별로 말이없던 과묵한 아저씨이다.
제대 후, 공주 사범대학 체육과 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친 학구파 아저씨이다.
이 두분, 아저씨의 한국기록은 십오년이 넘게 누구도 갱신을 못한 독보적인 존재였다.
그리고, 양복석 하사 아저씨, 마라톤 선수이지만 별로 두각을 나타내지 못 하였던 선수이다.
마라톤 경기가있는 날이면 쌍둥이 동생 성호랑 군트럭 뒷자리에 올라타서 달리고 있는 아저씨에게
"빨리,빨리 !'하며 응원을 하곤 했었다.
제대 후, 장가를 부잣집 딸하고 결혼하여 지금은 사당동에 있는 큰 시장의 사장님이시다.
그때에는, 집에서 조금나서면 "한강 백사장"이 넓게 펼쳐 있었다.
아저씨들이 수영간다고 나서면 홀딱벗은 쌍둥이 녀석이 "아저씨, 우리도 데려가 줘 ?"하고
졸라대면, "이 녀석들, 집에 들어가 빤스입고 오면 데려가 줄께" 했었지.
그떄만해도 빤스조차 귀한 시절이었다.
그리고, 한강에 다다라 수영복(빤스)를 모래사장에 묻어 놓고 실컷 물장구치고 나오면. 그 귀한
수영복이 감쪽같이 없어져서 무척이나 당황스러워 했었지 ?
(아저씨들이 장난으로 감추어 버린거다.)
할수없이, 쌍둥이 두 녀석이 두손으로 귀한부분을 가리고 집까지 오고는 했던 쑥스러운 기억이 난다.
얼마 후 지금도 기억이 뚜렸한 5.16 혁명이 일어났다.
새벽에 요란한 총소리와 탱크소리에 들리기에, 집에서 튀쳐나와 어린마음에 무슨
병정놀이 구경하듯,신기하게 바라보며 박수치면서 신나게 총싸음을 구경했었다.
그,구경거리가 우리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크나큰 사건인지를 조금도 모른체 말이다.
그리고, 후에 우리집은 좀 더 편한 상도동으로 이사를했다. 지금도 있는 이화약국 근처이다.
그 근처에와서 쌍둥이 집이 어디예요 ? 물어보면 다들 알 정도로 두녀석 참 개구장이였다 !
그리고는, 아버님께서는 관직으로 옮기게 되어 나의 한강변 추억은 접어야 했다.
나의 어릴적 고향 "한강"은 언제나 아름다운 추억이고, 지금도 한강에서 가까운 곳에
머물며 살고있다.
- 어릴적 추억을 더듬으며 -
용호
첫댓글 오랫만에 뵙습니다^^
옛날에는 실로 군인들의 역할이 컸다는 것을
새삼 알게 되었습니다
즐감하고 갑니다
참으로 좋은추억을간직하고있네~^^
gakumi 님 !
지난 한해 아낌없는 수고에 감사...
gakumi님, 성락 친구를 비롯한 모든 친구들, 새해 건강들 하시고
범사에 감사하며, 넉넉히 승리하는 귀한 갑오년을 맞이 하기를
기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