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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꽁뜨5] 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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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강호는 한서대학교 무인항공학과 4년 재학중이다. 그는 10년전 천안함에 승선했다가 적의 어뢰 공격으로 격침된 천안함에서 전사한 최익규 원사의 외 아들이다. 그는 당시 초등학교 6년 13살의 나이로 아버지 최익규 원사의 장례식에 참여하였다. 아버지가 북한군의 공격으로 전사했다는 말에 그는 어린 나이에도 이 원수는 꼭 갚겠다고 맹세하였다. 최익규 원사는 전사 당시 나이 40세로 부사관 임관 20년차에 전사한 것이다. 그에게는 화랑무공훈장이 추서 되었다.
천안함의 침몰에 대하여는 국내외에 여러 가지 논란이 있었으나 침몰해역에서 수거된 어뢰 추진 동력장치와 선체의 변형 형태, 관련자들의 진술 내용, 부상자 상태 및 시체검안, 지진파 및 공중음파 분석, 수중폭발의 시뮬레이션, 백령도 근해 조류분석, 폭약 성분 분석, 수거된 어뢰 부품들의 분석 결과에 대한 국내·외 전문가들의 의견을 종합한 대한민국 국방부 합동조사단의 조사 결과는 다음과 같다.
천안함은 어뢰에 의한 폭발로 발생한 충격파와 버블 효과에 의해 절단되어 침몰했다. 폭발 위치는 가스터빈실 중앙으로부터 좌현 3m, 수심 6~9m 정도이다. 무기체계는 북한에서 제조한 고성능폭약 250kg 규모의 CHT-02D 어뢰로 확인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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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강호는 홀로 된 어머니와 외삼촌 아래서 컸다. 외삼촌 홍익선은 지금 서산 고등학교 교감으로 재직 중이다. 그는 천안함 유족회의 대표를 맡고 있다. 천안함 유족회와는 별도로 정부에서는 천안함 재단이란 걸 만들어 국민 성금 134억 원을 관리하고 있다. 최강호가 다니는 무인항공학과는 국가 산업의 중심인 무인기, 예를 들면, 드론, 무인항공기와 관련된 전문 인력을 양성하는 학과이다. 최강호는 평소 드론이나 무인항공기에 취미가 있고 다양한 기계의 작동 원리에 대해 흥미를 갖고 있었다. 평소 논리적으로 생각하고 무인항공기와 관련된 지식을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었다고 볼 수 있다.
무인항공학과는 무인항공기의 설계부터 제어, 운영 등에 대한 이론 학습과 실습을 통해 실무 경험도 쌓는 교육을 받게 되며, 항공, 기계, IT, 전자 등 융합 학문의 특성을 갖게 된다. 특히 오늘날 항공촬영, 재난 구조, 군사, 택배, 농업 등 여러 분야에서 무인항공기의 활용 범위가 점차 넓어지고 있다. 최근에는 무인 드론 택배 배송 서비스가 도입되는 등 무인항공기가 지속적으로 발전되며 해당 분야에서 창의성을 갖춘 인재를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최강호는 딱 적임자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수업이 끝나면 바로 공작실습실에 가서 이것저것 여러 가지 기계들을 손수 작동해 보는 것이다. 특히 새로이 도입한 3D 프린터는 아주 흥미 있는 기계이다. 드론의 몸체서부터 부품에 이르기 까지 못 만드는 게 없을 정도이다. 최강호는 학교 기숙사에 기거하며 집에는 일주일이나 2주일에 한 번 가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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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철. 이 자는 1946년생으로 올해 75세이다. 북한 량강도 출신으로 만경대 혁명학원을 졸업하고 김일성군사종합대 학사이다. 계급은 북한군 육군 대장이며 주요 경력은 군사정전위원회 연락장교를 시작으로 인민무력부 부국장, 남북 장성급 군사회담 북측 수석 대표. 정찰총국장, 통일전선부장 등이다. 현재 조선아시아태평양 위원장, 국무위원회 위원, 최고인민위원회 대의원을 맡고 있다. 2012년 김정일 훈장을 받았다. 이 자는 2018년 2월 평창동계올림픽 폐막식 북측 고위급 대표단 단장으로 한국에 온 일이 있다.
김영철은 김정은의 최측근이자, 북한의 군부 인사 중 대미 강경 정책을 지속적으로 밀고 있는 군부 초강경파로 알려져 있으며, 미국을 향한 도발 사건에도 개입된 인물이다. 김양건 사망 후 2016년이 되면서 통일전선부장에 임명된 걸로 알려졌다. 대남 무력도발 총책임자인 정찰총국장이 대남 평화공세 책임자인 통전부장까지 겸하게 된 것으로 보아 북한 내부 대남 온건파가 김양건 사망과 함께 모조리 숙청당한 것이 아니냐는 전망이 있다.
정찰총국은 지난 2009년 인민무력부 산하 정찰국과 노동당 산하 작전부, 노동당 대외정보조사부 35호실 등 3개 기관의 대남·해외 공작 업무를 통합해 출범했다. 정찰총국은 특히 2010년 천안함 피격 사건과 2015년 비무장지대(DMZ) 지뢰 폭발 사건 등 대남 도발의 배후로 지목되기도 했다.
정찰총국의 첫 수장인 김영철의 계급은 대장이었지만 후임 장길성과 림광일의 계급은 이보다 한 단계 낮은 상장이다.
2016년 신설된 북한의 국가최고기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무위원회 위원으로 선임되었다. 8월 31일 통일부는 김영철이 권력남용이 원인이 되어 7월 중순부터 8월 중순까지 지방 농장에서 혁명화 교육을 받았다고 밝혔다.
2018년 남북미 화해무드인 상황에서 정보 라인의 책임자로 남북미 관계를 조율하고 있는 인사로 지목되고 있다. 평창올림픽 기간 방남은 물론 2018 제1차 남북정상회담과 2018 제2차 남북정상회담에 배석해 김정은 위원장을 수행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이러한 추측이 힘을 받고 있다. 그리고 북미정상회담에서 실무 접촉을 담당했던 외무성의 김계관, 최선희가 막말에 가까운 벼랑 끝 전술을 사용했다가 오히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취소 통보에 7시간 만에 미국에 다시 담화문을 발표해서 겨우 수습하고 있는 상황인 만큼 북미정상회담에서도 주도적으로 나설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다.
이후 미국 워싱턴을 방문하여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 김정은의 친서를 전달하였다. 볼턴의 회고록에 의하면, 김영철이 너무 긴장한 나머지 김정은의 친서를 차에 두고 내렸다고 한다.
제2차 북미정상회담이 실패로 돌아가자 문책을 당하고 통일전선부장에서 교체되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명단에 오르는 등 다른 직책들은 유지하고 있어서 면책을 받았으며, 다만 통일전선부장을 내려놓은 것은 대미협상라인을 교체하기 위한 목적이라는 이견도 나오고 있다. 후임으로는 장금철이 임명되었다.
2020년 2월 말 진행된 북한의 노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확대 회의에 등장했으며, 두 번째 열 왼쪽 끝단에 앉아 있었다. 정치국 확대 회의는 노동당 내 최고위 간부만 참석할 수 있는 자리이기 때문에 숙청설 등은 아무런 근거가 없고, 권력의 핵심에서 밀려나긴 했지만 그런대로 꽤 괜찮은 예우를 받고 있다고 볼 수 있다.
2020년 4월, 중순 진행된 조선로동당 정치국 회의에 참여했으며, 김정은으로부터 거리가 꽤 가깝기 때문에 복권 과정에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2020년 6월 9일, 조선중앙통신은 김여정과 김영철 당 중앙위 부위원장이 회의에서 “대남사업을 철저히 대적사업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배신자들과 쓰레기들이 저지른 죗값을 정확히 계산하기 위한 단계별 대적사업 계획들을 심의했다”며 “우선 북남 사이의 모든 통신 연락선들을 완전히 차단해버리는 데 대한 지시를 내렸다”고 전했다.
김영철은 2021년 1월 조선로동당 제8차 대회에서 다시 통일전선부장에 복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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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강호의 외삼촌 홍익선은 이제 나이 50을 갓 넘겼다. 그는 전사한 최익규 원사와 고등학교 동기이다. 아직 미혼으로 술. 담배를 하지 않고 착실한 기독교인이다. 그는 오래전부터 죽은 처남의 원수를 갚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천안함 폭침의 원흉은 당시 북한군 정찰총국장이던 김영철로 알려졌다. 이 자는 군부 내에서도 강경파로 알려졌으며 모든 대남 도발은 그의 손에서 기획되고 실행된 것이다. 홍익선은 조카 최강호가 한서대학교 무인항공학과에 지원하도록 조언한 바도 있다. 그리고 여러 차례 조카 최강호와 만나 원수를 갚는 일을 의논하였다. 그런데 뜻은 좋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쉬운 일이 아니다. 처음에는 천안함 재단의 이부일 이사장과 의논하여 금전적 지원을 받을까도 생각했지만 그만두기로 하였다. 까닭은 이런 일은 여러 사람이 관여하면 비밀이 새어 나가기 쉽고 그러면 시작도 해보기 전에 좌초될 위험성이 크기 때문이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이 일을 둘이서 해내기로 결심하였다.
최강호는 드론 설계부터 시작했다. 마침 최강호가 졸업 작품으로 드론을 만들기로 한 것과 맞물려서 작업은 한결 수월해진 것이다. 지도 교수 이일호 박사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드론은2개의 주 회전 날개가 반대 방향으로 도는 이중반전 로터를 갖고 있고 수직 꼬리 뒤에 고속 프로펠러가 달리도록 하였다 이중반전 로터와 후부 프로펠러로 양력과 추진력을 극대화한 것이다. 몸체에는 스텔스 기능을 갖도록 특수 페인트를 칠하기로 하였다. 동력은 리티움 밧데리를 쓰기로 하였다. 전기 모터가 내연기관에 비하여 소음을 저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밖에 감시카메라와 적외선 센서를 부착하도록 하였다. 통신은 한반도 상공에 고정된 아리랑 3호 인공위성을 통하여 지상과 통신이 용이하도록 하였다. 본체 설계가 마무리되자 최강호는 학교 공작실에서 바로 제작에 돌입하였다. 제작비는 재료비와 핵심 부품 구입비 등 대략 4천만원 정도 추산되는데 홍익선이 그간 저축한 돈을 내놓기로 한 것이다. 한 3개월의 시간이 지난 후 드디어 시제품이 완성되었다. 비행시험은 한서대학교 태안 캠퍼스에 있는 비행기 이착륙용 활주로에서 실시하였다. 한서대학교는 항공대학과 더불어 자체 활주로를 갖고 있는 유이한 대학이다. 몇가지 시행 착오 끝에 마침내 드론이 완성되었다. 최강호는 이 드론의 이름을 ‘참수’라고 지었다. 드론에서 목표물에 최후의 일격을 가할 무기로는 헬파이어 대전차 로켓이 적격인데 이를 구하는 게 문제이다. 홍익선의 친구 중 평택 미군 기지에 근무하는 이를 통하여 어렵사리 이를 구하였다. 헬파이어는 공대지 대전차 로켓으로 추진은 고체 연료, 로켓 길이 163 cm (64 in) ,신관은 충격식, 날개폭 33 cm (13 in) , 직경 17.8 cm (7 in)이고 유도는 반능동 레이저 유도 및 밀리미터파 레이다 시커를 사용한 것이다.
그런데 이 로켓을 어떻게 구했는지 구체적인 내용은 설명을 생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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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N은 미군이 이란의 솔레이마니를 제거한 작전이 '임기표적'(臨機標的·Target Of Opportunity) 방식으로 수행됐다고 전했다. 사전에 정해둔 위치에서 표적을 제거한 것이 아니라 실시간으로 솔레이마니의 동선(動線)을 추적해 공격을 감행했다는 것이다. 드론에 탑재된 감시카메라, 적외선 센서 등이 수집한 정보를 인공위성을 통해 실시간으로 미 본토에 있는 지상 작전통제부에 전달하고, 이를 토대로 드론 조종사들이 전자장비를 원격 조정하며 표적을 정밀 추적해 타격했다는 것이다. 최강호와 홍익선은 이 방법을 쓰기로 하였다.
즉 김영철을 제거하려면 그가 있는 장소를 알아 내야 한다. 물론 목표 지점은 평양 시내 통전부 건물이다. 이번에 국토지리정보원에서 공개한 북한 전역의 3D 위성사진이 큰 도움이 되었다. 이는 구글의 위성사진과는 달리 목표물에 대한 검색기능이 부여된 것이다. 약 2만 3천 개의 목표물에 대하여 검색하면 해당 위치로 이동하여 약 1m의 해상도로 주변을 볼 수가 있는 것이다. 대동강변에 능라도 경기장이 있고 여기서 서편으로 2km 떨어진 위치에 주석궁이 있고 통전부는 주석궁 근처에 배치되어있는 것이다. 문제는 김영철의 동선을 어떻게 파악하느냐에 있다. 홍익선의 고교 동창이 국정원 2차장인데 이를 통하여 들은 바에 의하면 김영철은 북한의 출근 시간이 오전 8시 30분인데 8시면 사무실에 나온다는 것이다. 김영철이 타는 차는 벤츠 E300이며 보통 보좌관 없이 운전병만이 운전한다는 것이다.
최강호와 홍익선은 참수를 직접 평양까지 날려 보기로 하였다. 물론 위험 부담이 큰 일이지만 다른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최강호와 홍익선은 참수를 목표지점까지 이동시키는 비행경로를 놓고 고심하였다. 서산에서 평양 까지 직선 거리는 200km정도 이지만 육지를 가로 지르면 적의 레이다나 대공 포가 마음에 걸린다. 그래서 서해를 우회하여 황해도를 돌아 광량만으로 들어가 대동강을 따라 평양 남부로 진입하는 코스를 택했다. 비행거리는 약 300km로 참수의 비행 속도 320km/h를 감안하면 한 시간 정도 걸리는 거리이다. 2월 1일 아침 6시30분 모든 준비를 마치고 참수를 발진시켰다. 비행경로를 따라 위성지도를 입력시킨 후 지형정보 매핑 기술을 이용하기로 한 것이다. 참수는 이 경로를 따라 자동적으로 북으로 평양까지 날게 되는 것이다. 두 사람은 마음을 졸이면서 참수에 장착된 GPS 정보를 원격으로 읽으며 따라 간다. 아침 7시 30분 드디어 평양 남부에 이르렀다. 감시카메라에 잡히는 이미지가 원격으로 이쪽 조종실로 전송된다. 잠시 뜸을 들인 후 참수는 통전부 건물 남쪽 2km 지점에서 공중 정지한다. 아침 7시 50분 김영철이 탄 벤츠가 통전부 건물 2km 지점에 나타난다. 참수를 전진시켜 벤츠를 따라 간다. 8시 정각 김영철이 차에서 내리는 모습이 감시 카메라에 잡힌다. 됐다! 일단 성공이다. 참수는 방향을 바꾸어 올라간 반대 코스로 남진을 시작한다. 참수에는 만약의 경우에 대비하여 자폭 장치가 내장되어 있다. 적에게 증거를 남기지 않기 위해서다.
2021년 2월 3일 드디어 운명의 날이 다가 왔다. 아침 6시 30분 헬파이어 대전차 로켓을 장착한 참수를 아무도 없는 서산고등학교 교정에서 발진시켰다. 먼저 날았던 항적을 따라 참수는 소리 없이 북진한다. 아침 7시 30분 드디어 평양 통전부 건물 남쪽에 도착했다. 이제 김영철이 탄 차가 나타나기를 기다린다. 아침 7시 55분 드디어 김영철이 탄 차가 보인다. 소리 없이 접근 ..8시 정각 김영철이 차에서 내린다. 운전병은 미리 내려 문을 열고 대기한다. 감시 카메라에 김영철의 모습이 나타난 순간 발사 스위치를 눌렀다. 헬파이어가 굉음을 내며 날아간다. 적들은 아직 눈치채지 못한 것 같다 마침내 헬파이어가 김영철이 탄 차의 뒷 유리를 뚫고 폭발한다. 그와 동시에 김영철의 몸이 허공으로 날린 후 땅 바닥에 나둥글어진다. 놀란 운전병이 달려 간다. 이것으로 상황 끝이다. 이것으로 46인의 전사자를 낸 김영철의 천안함 폭침사건은 대 단원의 막이 내린다. 며칠 후 평양의 소식통은 김영철이 교통사고로 숨졌다고 발표했다.
첫댓글 김정은이도 이렇게 죽일수 있겠네요.
글세요.. 지어낸 이야기임으로 실현가능성은 희박합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