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가니 마을
이 진 규
셋째 딸은 선도 안보고 데려 간다 했다. ‘최진사집 셋째 딸’ 역시 그런 뜻 일거라 생각하니 이 말이 우연은 아니란 생각이다. 하기야 요사이는 깎고 넣고 빼고 도려내고 칼질해서 누가 누구인지 분별하기 힘든 세태이지만, 하여튼 셋째 딸의 미모가 빼어났던 게 틀림없었나 보다. 이처럼 뚱딴지 같이 셋째를 되짚는 것은 내촌면이 화촌면 두촌면 등 홍천군의 3촌 면 중에서 세대 인구가 제일 적다하여 셋째 막내로 불러진데서 비롯된다. 그러니 더 이상 살펴볼 필요 없이 보고픈 마을, 머물고픈 마을이 내촌면 아니겠는가?
홍천읍에서 인제방향으로 2차선 44번 국도에 몸을 실어 액셀 밟으니 철정검문소가 우측으로 들어서라 한다. 게서 우측으로 핸들 꺾어 451지방도에 들어서니 꾸불꾸불 1차선도로가 곡예부리 듯 밀쳤다 당겼다 한다. 내촌면 빗장을 풀자마자 오른쪽 아래 물골안이 내려다 뵌다. 물과 산, 나무가 깎아지른 바위를 반갑다는 듯 감싸 안고 어우러져 절경을 이루니 벌어진 입이 닫히질 않는다. 조금 더 가면 경관이 빼어나 자동차 레이스 경기장을 만들었으면 좋겠다던 화상대가 나타난다. 그렇게 파란 강을 곁에 끼고 달리면 애국충절의 고장 내촌면소재지 도관리에 이르게 된다. 모종촌이라는 이름 말고도 좌우앞뒤가 산으로 둘러싸여 오목이 빠진 생김새가 마치 도가니 같다하여 도가니 마을이라고도 구전돼온다.
홍천강 상류지역에 위치한 내촌은 산 좋고 물 맑기로도 유명하지만, 곳곳에 좋은 돌이 많기로 수석의 고장이라 말하기도 한다. 제24회 서울올림픽을 기리기 위해 삼마치 구 5번 국도변에 세운 표지석도 예서 찾은 외에도 산하를 수색하여 시집 놓은 것이 부지기수라 하겠다. 하기야 감칠맛 나는 재질 좋은 표지석감을 찾느라고 강변을 오르락내리락 거리다 까만 구두 백구두 된 것도 몰랐지만, 그날을 보람으로 삼고자 한다.
잊을 수 없는 절경, 홍천의 9경(九景)중 하나인 5경 가령폭포가 부른다. 면소재지에서 451지방도로로 20여리 북쪽으로 달리다보면 인제군 못미처 좌측 골짜기 백암산 등산로 방향으로 오리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58미터의 3단 낙차폭포, 천혜의 때 묻지 않은 채 비단줄기 내려 뿜는 가령폭포의 비경이 넋을 빼앗는다. 또 와야 삼거리에서 우측으로 빠져 진 반죽 길이었던 밀가루고개를 넘으면 배산임수의 동창마을이 펼쳐진다. 제법 널따란 논밭 전경이 평화로이 펼쳐지는가 하면 앞으로 내춘천이 풍요를 유유히 노래한다. 예부터 홍천 동쪽에 큰 창고가 있다하여 붙여진 동창(東倉)은 조선시대에 서울〜영동을 잇는 중요 역촌으로 중종 때는 1일 300여필의 말들이 모였고 수 백가마의 대동미가 쌓였었다고 한다. 물걸리로 개칭된 동창 기미만세공원에선 1세기가 다된 지금도 3・1운동만세를 목 터져라 외치다가 왜경의 시퍼런 칼 앞에 낙엽 되어 떨어진 호국 팔렬사의 한 맺힌 울부짖음이 들리는 듯하다. 게다가 통일신라시대의 보물과 유적지를 간직하고 있음은 역사적으로 이곳이 예사로운 고장이 아니었음을 말해준다. 공원뒤뜰 대승사에 석가여래좌상과 석조비로자나불좌상, 불상대좌 석조광배가 보물로 모셔지고, 삼층석탑이 천년의 체취를 말없이 전해주고 있음이 그것이다. 그 뿐인가? 홍양사 절터가 강원도 기념물 제47호로 지정되어 있어 찾는 이를 신라시대에 살고 있나 착각하게 된다. 그런가 하면, 홍천군 10읍면을 통 털어 고등학교가 7개밖에 없다는데, 조그만 이곳 마을에 늠름타 사립고가 젊은 인재들을 배출되고 있으니 가히 학구열을 짐작케 한다. 척야산 오르막길 따라 필 듯 말 듯 한 진달래가 봄추위를 시샘하며, 모진 풍상을 이겨낸 철쭉 연산홍이 내일의 자태를 그리는가 하면, 저 먼 이국에서 시집왔다는 이름 모를 수양나무는 향수에 젖어 눈시울 붉힌다. 골짜기마다에서 발원한 지천들이 모인 푸른 내촌천은 바위 틈바구니에 하얀 구슬 날리며 장난치고, 물위에 뜬 반석과 수 백 년 동안 애환을 함께 누려온 군락노송들은 쉬어가라 다정스레 손짓한다. 쌍계사 부도향기 가득한 골짜기에 부처님의 자비가 서기되어 내려오니 속세에 찌든 인생 환생극락에 몸 둘 바 모른다. 구석구석 속속들이 발길을 머뭇케 하는 명승고적들, 백우산 덕탄 약석반석 영계명월 남산 아기바위 비선동의 기암절벽 벼락바위 복동칙소 말구리소가 그것들이다.
지금 동서고속도로 공사의 굉음이 산하에 가득하다. 넓고 시원스런 고속도로 닻 올리는 날, 서울에서 70〜80분이면 능히 도착할 수 있단다. 동창마을 어귀에 장수한 노인이 많은 마방이라는 뜻을 지닌 장수원(長壽院)마을에 인터체인지까지 생기니, 그러면 산 좋고 물 맑고 나무 어우러진 도가니・동창마을을 쉬이 밟을 날도 멀지 않다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