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92년 조선이 개국되면서 대장군(大將軍)이 되고, 이듬해 사헌중승(司憲中丞)을 거쳐 황주목사(黃州牧使)로 나갔다. 1398년(태조 7) 제1차 왕자의 난 때 방원(芳遠)의 조전절제사(助戰節制使)로 전공을 세워, 죽성군(竹城君)에 봉해지고 중추부지사(知事)가 되었다. 그러나 상작(賞爵)이 낮다고 불평하여, 방원의 미움을 사서 죽주(竹州:永同)에 유배되었다.
이에 앙심을 품던 중, 태조의 4남 방간(芳幹)과 5남 방원 사이의 왕위 계승을 둘러싼 반목을 기화로 방간을 충동질하여 1400년(정종 2) 제2차 왕자의 난(방간의 난)을 일으켰다. 방간이 패하자, 이산(尼山)에 유배된 뒤 참수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