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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행문>
동남아시아 사찰 순례기- 태국 편
3일간의 태국여행기 (2)
방콕 유명 사찰들
글 | 김형근 (본지 편집인)
새벽사원탑의 화려한 장식
성지순례를 가거나 단순 관광을 가더라도 그 지역의 문화와 역사를 잘 아는 안내자와 함께 하면 여행의 보람을 많이 느낄 수 있고 그 여운이 오래간다. 하지만 배경 지식이 없이 단지 눈으로 보고만 오게 되면 먼 곳을 다녀온 느낌일 뿐이다.
요즘 불교계에서는 인도, 티베트, 부탄, 중국 쪽으로 성지순례를 많이 떠나고 동남아 성지순례는 뜸하다고 한다. 태국의 경우도 이제는 성지순례 오는 사람들은 별로 없고 일반 관광이 많다고 한다. 그래서 태국 단체 성지순례 관광단을 찾다가 혼자 가게 된 것이다. 배낭여행을 한다는 심정으로 처음으로 태국 사찰순례를 떠났다. 그리고 태국의 불교와 문화에 대해 인터넷 검색을 통해 사전 지식을 쌓았다. 아래는 인터넷 검색을 통해 알게 된 내용이다.
태국의 민간신앙은 피(phi)와 콴(khwan)이라는 두 개념으로 대표된다. 피 신앙과 콴 신앙은 오늘 날 타이 민중의 일상생활 속에서 살아 움직이고 있다. 피 신앙과 콴 신앙을 이해한다는 것은 타이인들이 자신들의 현세적 필요와 기복적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 어떤 방편에 호소하는지를 이해하는 것이다. 또한 민간신앙에 대한 이해는 자연스럽게 민간신앙과 불교간 관계에 대한 이해로 나아갈 수밖에 없기 때문에, 그것은 궁극적으로는 타이 불교의 성격에 대한 깊은 이해를 가능하게 할 것이다. 타이 민간신앙에 대한 이해는 타이 불교에 대한 이해만큼 중요하다. 불교와 깊이 연결되어 있는 민간신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타이 불교신앙의 공덕지향적 측면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대부분의 타이인들에게 있어서 하루는 불교와 더불어 시작된다. 가정주부는 이른 아침부터 탁발공양을 위해 음식을 장만한다. 동네 사람들은 인근 절의 스님들이 자신의 집 앞을 지나가는 시간을 대충 알고 있다. 동틀 무렵 집 식구들은 길가에 미리 나와 기다리고 있다가 스님들이 다가오면 정성스레 준비된 밥과 반찬을 바리때에 넣어준다.
(내가 목격한 것은 집에서 준비한 것도 있지만 가게에서 생수도 사고, 라면도 사서 주는 경우도 많았다.)
아침의 탁발공양과 더불어 타이인들이 그토록 소중히 여기는 공덕축적의 일상이 시작된다.
태국의 불교신자들은 불일(佛日)이나 석탄일과 만불절(萬佛節)과 같은 불교 절일(節日)에는 절에 가서 아예 살다시피 한다. 불일은 타이어로 완 프라(wan phra)라고 하는데, 그믐, 음력 8일, 보름, 음력 23일 등 한 달에 네 번 있다. 완 프라 날이 되면, 주민들은 아침 일찍부터 절에 가서 장시간 설법을 듣고 불경을 낭송하고 명상수련을 한다. 그들 중 우바새나 우바이와 같이 신심이 두터운 자들은 기본적인 오계 외에도 정오 이후 음식을 취하지 않고, 춤과 음악과 연극 관람과 몸에 대한 치장을 삼가고, 높고 큰 대에서 자지 않는다는 세 가지 계율을 포함한 팔계를 지키려고 노력한다. 그들은 절에서 하룻밤을 자고 새벽녘에 집으로 돌아가는데, 완 프라를 이렇게 경건하게 보내면 많은 공덕이 쌓인다고 믿는다.
행복한 결과를 낳는 원인이 되는 행위를 공덕이라고 한다. 공덕은 타이어로 분(bun)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팔리어의 푼냐(puṅṅa)에서 파생된 것이다. 태국의 재가들이 불교신앙에서 가장 큰 관심을 두고 있는 것이 바로 이 분을 행하는 것 즉 타이어로 탐분(tham bun) 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달리 말하자면, 타이 재가들은 공덕지향적인 불교 신앙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새벽탁발에 스님들께 공양을 드리고 축원을 받는 필자
재가들은 다양한 공덕 행위들을 통해 한편으로는 내세에서 더욱 행복한 인간으로 살아가기를 희망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현세에서도 더욱 많은 복을 누리고 자신과 가족의 삶이 나아지기를 바란다. 사실 민중은 대부분 내세보다는 현세에서의 일이 더욱 중요하다. 그래서 재가 민중들은 탐분을 통해 죽고 난 다음에 올 내세에서의 행복보다는 우선 눈앞에 당장 놓여있는 문제가 해결되고 현세에서의 삶이 개선되는 것을 더욱 중시한다. 한 걸음 더 나아가 그들은 현재의 기복적인 욕구를 채우기 위해서 내세지향적인 불교신앙의 범주를 과감히 이탈해버린다. 그리고 철저히 현세지향적인 주술신앙이나 정령신앙이나 샤머니즘 등 민간신앙의 세계와 접촉한다. 태국의 재가들은 내세에서와 현세에서의 행복을 위해 이처럼 불교와 민간신앙의 두 세계를 들락거리며 살아간다.
11월 16일 새벽에 일어나 스님들 탁발하는 장면을 보고 난 후 방콕의 사찰 순례에 나섰다. 태국인으로 담마카야 사찰에서 15년째 자원봉사활동을 하면서 비구니 스님처럼 팔계를 지키며 살아가는 시리폰(SIRIPORN) 보살이 안내자로 차를 운전하고 함께 간다. 차 운전석이 미국이나 한국과 달리 오른쪽에 있었다. 아침 일찍 출발했기 때문에 1시간 좀 지나서 방콕 시내에 들어섰다. 도로에 차가 많았지만 오토바이를 타는 사람들도 또한 아주 많았다. 방콕 시내에 사찰이 아주 많기 때문에 나는 안내자에게 새벽사원이라 불리기도 하는 ‘왓 아룬’과 ‘왓 포’ 사찰은 꼭 보고 싶다고 하였다. 방콕에는 많은 사찰이 있고, 글로 소개를 하여도 직접 방문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현장감이 잘 전달 될 것 같지가 않다.
황금산 사원 왓 사켓-The Golden Mount (Wat Saket)
아침 8시 30분에 황금산 사원으로 불리는 (왓 사켓)The Golden Mount (Wat Saket)에 도착하였다. 원래 방콕은 산이 없다. 원래 운하로 연결된 평지였다. 그러나 이곳에 나지막한 산이 딱 하나 있다. 이 산은 인공으로 만들어진 산이라고 한다. 높이가 80m의 이 인공산 위에는,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모셔진 큰 황금탑이 있다.
한국이 삼국시대, 고려.발해시대, 조선시대 라는 역사를 지나왔듯이 태국도 몇 개의 왕조를 거쳐 왔는데 한국과 달리 지금까지도 왕조가 이어지고 있다.
태국왕조를 역사순으로 살펴보면 ‘쑤코타이(1238~1360), 란나왕국(1259~1558), 아유타야(1350~1767), 톤부리(1767~ 1782), 라타나꼬신(1782 ~현재)로 이어진다. 라타나꼬신 왕조는 ’‘프라야 짜크리’ 장군에 의해 시작되었기 때문에 짜끄리 왕조라고도 한다. 짜끄리 장군은 라마 1세(1782 ~ 1809)로 등극했다. 작년에 서거한 푸미폰 아둔야뎃 왕은 라마 9세(1946 ~ 2016)이고 현재 왕은 라마 10세이다.
라타나꼬씬 왕조 연대표
라마 1세: (1782~1809)
라마2세:(1809~1824)
라마3세:(1824~1851)
라마4세:(1851~1868)
라마 5세:(1868~1910)
라마 6세:(1910 ~1925)
라마 7세:(1925 ~1935)
라마 8세:(1935 ~ 1946)
라마 9세:(1946 ~ 2016)
라마 10세: (2016년 ~ 현재)
라마 3세 국왕이(1787-1851)은 1824년부터 1851년까지 왕으로 있었는데 이 곳에 아주 큰 탑을 세우려고 했으나, 방콕의 지반이 약했던 탓에 건설도중 무너져 내렸다고 한다. 그 이후로 수 십 년간 무너진 진흙과 벽돌더미는 방치된 채로 남아 있었고, 이 곳에 잡초들이 자라면서 산 모양처럼 되었는데, 그 지역 사람들은 마치 이를 진짜 산인 것처럼 푸 카오텅(phukhao thong) 즉 황금산(The Golden Mount)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황금산 사원 입구
라마 4세 때는 이 산 위에 작은 탑을 세우기 시작했고, 라마 5세(1868 ~1910) 때 들어 완성이 되었다. 그리고 스리랑카에서 부처님 진신 사리를 모셔와 봉안하게 되었다.
입구에서부터 344개의 계단을 올라가면 꼭대기에 오를 수 있다. 오르는 길에는 티베트 사찰을 방문하면 볼 수 있는 윤장대는 아니고 마치 윤장대처럼 쭉 종이 걸려있는 곳이 있었다.
오르는 계단과 맨 윗 층 탑 둘레에는 화분에 수련을 기르고 있었다. 계단이 가파르지 않아 어렵지 않게 오르실 수 있었다.
날씨도 맑아 저 멀리 방콕의 시내 모습이 잘 보였다. 시내 곳곳에 사찰이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한 집 건너 사찰이 있다시피 크고 작은 사찰들이 보였다. 미얀마가 탑의 나라라고 한다면 태국은 사찰의 나라라고 해도 무방할 것 같았다.
법당에서 들어가 사무실에 앉아있는 스님에게 나를 소개해줘서 나는 스님에게 보시를 하였다. 그러자 스님이 불상에 붙이라고 종이에 들어있는 얇은 금 조각을 주었다. 위층으로 올라가 불상에 절을 하고 금 조각을 붙였다. 옥상에 올라가니 탑에 절을 하고 기도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리고 스님과 신도들이 천으로 탑을 빙 둘러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것은 우리가 부처님께 꽃이나 향, 과일 공양하는 것처럼 부처님께 공양하는 것이라고 한다.
천으로 탑을 감는모습
불상앞에 선 필자
짜오프라야 강 선착장
재래시장
불상에 붙이는 금
밖에서 본 새벽사원
새벽사원 조각상
황금산 사원에서 나와 짜오프라야 강 선착장으로 갔다. 짜오프라야 강가 유료 주차장에 차를 놓고 나와 선착장에서 커피를 마시면서 주변을 살펴볼 수 있었다. 교복을 입은 고등학교 여학생들이 떼를 지어 다니고 있었고 많은 사람들이 배를 기다리고 있었다. 짜오프라야 강은 뉴욕의 허드슨 강이나 한 강에 비하면 폭은 매우 적었고, 물은 탁했다. 수심도 깊지 않은 것 같았다. 배는 수상 보트도 보였고 많은 사람들이 타는 여객선, 친구나 가족들이 타는 조그만 배등 여러 종류의 배들이 있었다.
배를 타고 강을 건너서 방콕의 재래시장을 구경하고 허름한 식당에 가서 식사를 하였다. 식당안에 불단이 만들었는데 불단 모습이 중국사람들 불단처럼 보였다. 안내 SIRIPORN 보살이 주인에게 물어보니 화교라고 한다. 그녀는 조상 때부터 태국에 살았다고 한다. 시장은 우리나라 재래시장과 비슷한 모습이었고 태국사람들의 삶을 모습을 보는 것 같아 좋았다.
나는 여기서 코코넛을 사서 마셨고, 안내인에게 목걸이를 사서 선물하였다. 불교국가이지만 기독교인 방문자가 많은지 십자가를 토대로 디자인한 목걸이가 불교소재 보다 많아 보였다.
새벽사원 왓아룬 Wat Arun
태국의 여행 안내 책자를 보면 방콕에서 방문해 보라고 하는 것 중에 왓 아룬과 왓포 사원이 빠지지 않는다. 나는 왓 라캉를 나와 왓 아룬으로 갔다. 새벽에 왓 아룬을 보는 것은 이번에는 불가능하기 때문에 다음에 와서 새벽에 보고 싶다.
다음은 인터넷 검색을 통해본 왓 아룬 소개 글이다.
“새벽 사원”이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이것은새벽의 일출하는 햇빛이 이 사원의 첨탑에 박혀있는 자기를 비추어 영롱한 무지개 빛을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가파르게 솟아 오른 탑은 이층의 테라스 구조를 갖추고 있다. 바깥에는 네개의 위성 탑이 서 있으며, 높이는 66.8m에서 86m에 이른다. 이 탑의 표면에는 조개와 중국과 태국을 오가는 배의 깔았던 고령토로 장식되어 있다.
중앙의 탑은 일곱 갈래로 갈라진 삼각형의 첨탑의 모양을 하고 있으며, “시바신의 삼지창”을 상징한다고 알려져 있다.
탑 주변의 제단에는 고대 중국의 군인들과 동물상들이 있다.
두 번째 테라스 위로는 흰코끼리(에라완)을 탄 힌두교의 네 개의 인드라상이 있다.
왓 아룬의 빼어난 특징은 ‘중앙의 크메르 스타일의 탑인 쁘랑에 있다고 한다‘ 라고 소개된 글들을 많았다. 이 사찰은 70-80 미터 정도의 주탑과 주변의 4개의 보조탑으로 이루어져 있고, 아룬 이라는 이름은 힌두의 새벽신인 Aruna 에서 온 것이라고 하며, 주탑은 불교에서 세상의 중심으로 여기는 수미산을 나타낸다고 한다.
강가에는 중국식으로 된 6개의 정자(살라)가 있다. 이 정자는 푸른 색 화강암과 연육교가 있다. 탑 주변은 부처 상에 모셔진 법당이 있으며, 라마 2세에 의해 설계된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법당의 전문에는 중앙 첨탑을 가진 지붕이 있으며, 색채 자기와 치장벽토로 외장된 색상 자기로 되어 있다.
새벽에 떠오르는 일출 빛을 받으면 사원의 탑에 장식된 도자기들이 반짝이며 빛을 반짝인다고 하여 이름 붙여진 새벽사원. 강 건너에서 바라보는 야경이 특히 아름답다고 한다. 이곳은 강건너에서 바라보는 것도 예쁘지만 직접 탑에 올라 차오프라야강과 어우러진 방콕 풍경을 바라보는 것도 멋지다고 하여 직접 올라가 보았다. 계단이 상당히 경사가 가파랐다.
낮에 방문하면 이 거대한 건축물에 자기( Ceramic tile) 로 한 조각 모자이크 하듯이 모양을 낸 아름다음을 가까이서 볼수가 있었다. 날씨가 약간 후덥지근했다. 2시가 넘어서 비가 왔다. 많은 관광객이 보였다. 기념품 가게에서 코코넛을 사 마셨고, 주변에 기념품 가게가 많았다. 불상은 장식품이 아니라는 글귀가 보였다.
나의 태국 사찰 순례는 준비가 많이 부족하였다. 특히 태국 불교미술과 사찰의 가람 배치등에 대해 전혀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시작되었다. 다음은 인터넷 검색으로 찾아낸 태국 불교미술과 가람배치에 대한 글들이다.
한국의 불화가 그렇듯, 태국의 불화는 태국 불교미술의 핵심적인 구성요소 중 하나로서 태국의 중요한 전통문화유산일 뿐만 아니라 가치있는 문화자원이다. 태국의 전통 불화속에서 발견되는 다양한 이미지는 태국의 문화적 정체성을 고양하는데 이용되기도 하고, 문화상품을 만드는데 활용되기도 한다.
태국의 불벽화는 태국의 다양한 불화의 형식 중 가장 풍부한 내용을 저장하고 있으며, 동시에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이 같은 태국 불벽화의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서의 연구 성과는 거의 전무한 실정이다. 본 연구는 태국 불교 사찰벽화, 즉 불벽화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를 시도한다. 태국 불벽화에 대한 다양한 연구주제 중 본고에서는 불벽화의 기본 배치구조와 역사를 검토해 보고자 한다. 태국의 불벽화는 중부지역을 중심으로 하는 주류벽화와 독특한 전통을 지닌 북부지역 즉, 란나지역의 벽화로 구성되는데, 본 연구는 주류벽화만을 연구 대상으로 한다. 한편, 태국의 불화는 불당벽화, 불탑벽화, 암벽화, 필사본불화, 괘불 등이 포함되는데, 본 연구에서는 불당벽화와 불탑벽화만을 대상으로한다.
* 미국 워싱턴주립대학교 방문학자, jangnoh@gmail.com2
수완나부미 제1권 제2호
태국 사찰벽화의 기본 배치구조를 살펴보기 전에 먼저 태국의 사찰건물에 대해 간단하게나마 살펴볼 필요가 있다. 먼저 불당 및 불탑 등 태국의 사찰건물은 많은 경우 정문출입구가 동쪽으로 나있으며, 불당내부에 봉안한 본존불 역시 출입문을 향하여 동향하고 있다. 이 경우의대표적인 예가 방콕의 왕실 전용사원인 왓프라깨오이다. 이 같은 동향배치 경향은 인도와 크메르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모든 사찰건물이 동향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며, 강, 운하, 도로 등을 향하고 있는 경우도 많다.
하늘을 찌르는 모습의 사원 지붕모습
태국의 사원은 기본적으로 봇(Bot)과 위한(Viharn)이라는 두 가지의형태의 불당을 가지고 있으며, 봇은 수계식 및 참회식 등이 열리는 승려중심의 법당이고, 위한은 일반 신도들을 위한 예배 공간이다(Sthapitanonda 외 2005, 80-82). 태국 불당의 평면 형태는 대개가 측면이 길고 정면과 뒷면이 짧은 직사각형의 모습을 하고 있다. 건물은 너비에 비해 높이가 강조된 특징을 하고 있으며, 너비가 짧은 정면에서 본건물의 모습은 꽤 높은 수직감이 전해진다. 건물은 대개 벽돌을 쌓아 건축하며, 높이가 강조되는 건물이다 보니 기둥의 수가 많으며, 기둥 또한 벽돌로 쌓는 경우가 많다. 쌓아올린 벽체와 기둥위에 보를 걸어 지붕을 얹는데, 지붕의 기와와 보, 도리 및 서까래가 드러나게 하거나 반자를 설치한다. 지붕의 무게를 기둥에 전달하기 위해 설치하는 우리나라의 공포와 같은 가구는 설치하지 않는다. 불벽화는 주로 봇의 내부 벽을 장식한다.
왓 라캉 Wat RaKang
이 사찰은 라마 1세가 왕이 되기 전에 머물렀던 사원이다. 짜오프라야 강을 사이에 두고 왕궁과 마주보고 있다. 배를 타고와서 갔다. 사원 내부에는 아유타야 왕조때 건설된 사원으로 지붕 모양에서 전형적인 아유타이 양식을 엿볼 수 있다고 한다. 사원 내부에는 전형적인 라따나꼬신 시대 건축 양식으로 만들어진 우보쏟(대법전)과 크메르 양식으로 만들어진 탑인 쁘랑Prang이 있다. 태국을 비롯하여 동남아시아 사찰에서 외부에서 보면 두드러지게 눈에 띄는 것은 마치 하늘을 찌르는듯한 지붕이다.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아래와 같은 글이 눈에 띈다.
왓라캉 사원의 종들
왓라캉 사원 벽화
왓라캉 사원 법당
태국의 사원이나 궁전 등의 건축물에서 발견할 수 있는 지붕의 장식물이다. 사진의 태국 건물들에서 지붕의 양 끝이 하늘로 치솟는 것처럼 보이는 장식물이 있는데, 이를‘처화’(chaw-fa/Chofa)라고 부른다. 아무도 처화의 기원과 그 의미를 알지 못하지만, 이 장식에 대한 다양한 형태와 그 설명이 존재한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나가를 잡고 있는 가루다’와 ‘나가’의 변용된 형태라는 것이다. ‘나가를 잡고 있는 가루다’라고 그 형태를 보았을 때에는 메루산 정상에서 인드라가 뱀-구름과 싸우는 장면을 묘사한다고 보는 것이다. ‘나가’의 변용된 형태라고 보았을 때에는 하늘의 물(비)이 떨어
져서 지붕을 흐를 때, 지붕 용마루의 메루산 장식을 출발하여 지붕의 끝에 도달하기 때문에 지붕 끝 장식은 뱀의 머리라는 것이 드러난다. 이 지붕 장식을 나가로 해석했을 때 ‘처화’의 기원이 지질시대와 연결되는 것과, 또 인드라가 뱀-구름을 죽이는 신화와 연결되는 것을 이해하게 되기 때문에 가장 눈에 띄는 해석이라고 볼 수 있다.
왓 라캉의 대표적인 것은 종(라캉)이다. 종소리가 아름다워 라마 1세가 수도를 지금의 왕궁인 라따나꼬신으로 옮기면서 범종도 왓 프라깨우로 가져갔다고 한다. 현재의 왓 라캉의 종은 라마 1세가 새롭게 만들어 준 모사품이라고 한다.
법당은 한국 법당과 크게 다른 점이 2개 정도 확연하게 느낄 수 있었다. 법당은 직사각형이지만 한국 법당은 불상과 불상을 보는 사람들이 쪽으로 짧고, 옆으로 길다. 하지만 태국 사찰은 그 반대로 필통 형상이다. 그리고 남방불교는 대승불교의 보살사상이 없으므로 한국이나 중국의 삼존불이 아니고 일반적으로 주불 한 개의 불상만이 있다.
사원 내부에는 커다란 불상이 있고 양 쪽 벽은 화려한 벽화가 나의 눈길을 끌었다. 벽화는 힌두 신화인‘라마끼안’과 불교의 우주 진리를 표현했다고 여러 글에 소개되어 있다. . 나는 고려불화에 관심이 많으므로 이 벽화가 나의 눈길을 끌었다. 하지만 안내를 맡은 보살도 이런 분야에는 잘 모른 것 같았다. 여러차레의 인터넷을 검색을 통하여 아래와 같은 글을 찾을 수 있었다.
아유타야를 철저히 파괴했던 버마군을 몰아낸 딱신왕의 톤부리왕조가 붕괴된 후 새 왕조를 창시한 라마 1세는 새 왕조 창시에 따른 모랄의 회복을 위해 많은 사찰을 중창하거나 개창하였으며, 특히 아유타야 문화의 계승에 중점을 둠으로써 이 시기의 건축과 예술은 대부분 아유타야의 것을 계승하는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라마 1세의 동생이 거주했던 전궁(Wang Na: front palace) 소재 부다이사완(Buddhaisawan) 불당에 그려진 벽화는 이 특징을 잘 나타내 주는 대표작으로 평가된다(VanBeek 외 1999, 186). 톤부리 지역에 남아있는 왓 라캉
과 왓 두싯타람의 불당에도 이 시기에 제작된 벽화가 남아있다벽화와 천정의 그림 색은 완전히 다른 색이었다. 이 벽화에 대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많다. 이 사원에는 커다란 하얀 탑도 한 개 있었는데 그 양식이 크메르 식이라고 한다.
사원은 학생들이 아주 많았다. 시내에서 교복을 입고 단체로 움직이는 모습도 자주 볼 수 있었다. 남한에서는 이제는 볼 수 없는 모습이다.
왓포 사원
왓포 Wat Pho
왓 포는 방콕이 건설되기 전인 16세기에 만들어진 사원으로, 아유타야 양식으로 지은 방콕에서 가장 오래된 사원이다. 이 사원은 전통 타이 마사지의 탄생지로도 알려져 있다. 내가 방문할때는 많은 사람들도 붐비고 있었다. 여러 가지 크메르 양식을 비롯하여 중국식 탑도 있었고 크고 작은 탑과 불교관련 여러 불상과 조각들이 너무 많아서 혼란스러웠다. 탑들은 화려해서 도자기 공예를 전공하는 사람들, 화가들이 와 보면 좋을 것 같았다.
많은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고 한쪽에서는 스님과 신도들이 함께 예불을 하는 모습도 보였다. 사원은 수련을 비롯하여 여러 가지 꽃들로 장식이 되어 있었는데 무궁화 꽃도 보였다.
왓 포가 현재의 모습을 갖춘 것은 라마 1세 때(1782~1809)로, 왕실의 전폭적인 지지 아래 증축되었다. 라마 1세는 방콕 왕궁으로 거처를 옮겼는데, 이 때 왕궁 주변으로 북쪽에는 왓쌀락 (Wat Salak), 남쪽에는 왓 포다람 (Wat Phodharam)이 있었다고 한다. 1788년에 그는 왓 포다람의 복원 및 증축을 명했고, 이 작업은 7년 5개월 28일이 소요 되었다.
1801년에 첫 번째 복원 후 연회가 열렸는데, 여기서 이 사원을 "왓 프라 체투폰 위몬망끌라바스 (Wat Phra Chetuphon Vimolmangklavas)"라고 이름을 붙였다. 그리고 이 이름은 라마 4세때(1851~1868) 다시 "왓 프라 체투폰 위몬망끌라람(Wat Phra Chetuphon Vimolmangklaram)"으로 바뀐다. 전성기에는 500명의 승려와 750명의 수도승이 왓 포에 거주하며 수행했다.
라마 3세때 (재위 1824~1851) 이 사원의 복원을 다시 하게 되는데, 이번 복원은 16년 7개월 동안 진행된 가장 큰 규모의 작업이였다. 이 작업을 통해 남쪽 구역과 거대한 와불상이 있는 서쪽 구역을 확장하였다. 또한 미사카완 공원(Missakawan Park), 프라 몬돕 (Phra Mondob, 도서관), 수행하는 장소들을 만들었다. [이러한 왕실의 후원을 바탕으로 개방 대학의 면모도 갖추게 되었다. 석판, 벽화, 조각 등으로 교재를 만들어 의학, 점성학, 식물학, 역사 등 다양한 학문을 교육했다. 태국 최초의 대학이었으며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학문 수행이 가능했다고 한다.
사원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는데, 예배를 하는 지역 ( B u d d h a v a s ) 과 스님들이 거주하는 거주 지역(Sangghavas)으로 나뉘어진다. 방콕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사원이라고 한다.
프라 마하 사리탑 (Phra Maha Stupa)
사원 마당의 코너에는 4개의 탑이 있는데, 이 탑들은 “Phra Agghiya chedi”라고 부른다. 체디(Chedi)는 불탑을 의미한다. 각각의 탑은 대리석 타일로 만들어졌다. 북동쪽, 남동쪽, 남서쪽, 북서쪽 4개의 코너는 각기 다른 수호신의 영역으로 정해져 있고, 4개의 탑 모두 이름이 다르다.
프라 마하 쩨디 (Phra Maha Chedi)
대법전에서 와불상을 보러 가기 전에 들르게 되는 곳이다. 쩨
디는 불탑을 의미한다. 도자기 조각을 발라 반짝이는 4개의 초대형 쩨디는 짜끄리 왕조 초기 왕들에게 헌정한 것이다. 녹색은 라마 1세, 흰색은 라마 2세, 노란색은 라마 3세, 파란색은 라마 4세를 상징한다. 4개의 초대형 쩨디 앞쪽의 사원 마당과 와불상을 모신 법당 사이에도 작은 쩨디들로 반짝인다. 모두 91개로 왕족들의 유해를 보관하고 있다.
프라 마하 쩨디-4개의 불탑
와불상
왓포 와불상
왓포에서 가장 유명한 곳이다. 와불상은 태국에서 가장 큰 규모로 길이 46m, 높이 15m를 자랑한다. 석고 기단 위에 황금색으로 칠해진 와불은 열반에 든 부처의 모습을 형상화했다.
왓 포가 열반 사원이라는 불리는 이유도 와불 때문이다. 태국에는 와불을 모신 사찰이 많았다. 그 이유가 궁금했다. 와불이 너무 커서 전체의 모습을 한번에 보기 힘들고 발바닥은 아래에 있어서 그나마 자세한 윤곽을 볼 수 있었다. 발바닥에는 자개를 이용하여 그림을 그렸는데, 108번뇌를 묘사하고 있다.
이 와불을 배경으로 많은 사람들이 기념사진을 찍으려고 좁은 공간에서 줄을 서야 했다. 방콕을 방문하는 불교인들은 꼭 가보야 할 곳으로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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