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이야기는 웃대 아이디 znf 님이 해주신 이야기입니다 >
내 이야기는 아니고, 한때 나랑 가장 친했던 친구의 이야기다.
그 친구는 생일이 12월달인데, 하필이면 23일이다.
크리스마스근처라서 다들 더 기억을 잘하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크리스마스준비때문에 이 친구생일은 거의 다 까먹는다.
이름이 혜진인데, 눈이 까맣고 좀 귀엽게 생긴 자그마한 애다.
중학교 3학년 마지막 시험도 끝내고, 나는 꽤 한가해졌다.
곧 가게 될 고등학교 생각만 할 뿐, 당분간은 시험걱정도 없고 진도도 거의 다 나가
학교에서도 공부를 잘 안했기에 무척 신났었다.
그 당시 새로 장만한 다이어리에다 즐겁게 애들 생일이나 기념일같은걸 쓰는데
문득 혜진이의 생일이 떠올랐다.
12월 23일이라니. 게다가 방학식 하는 날이라 다들 지네끼리 논다고
또 혜진이 생일은 잊혀질 것만 같았다.
그래서는 안되겠다고 생각해서 나는 같이 놀던 친구들 세명과 함께 모여
혜진이 생일을 어떻게 할까 고민했다.
[야. 뭘사주지? 옷이나 그런건 비싸고 별로인거 같아]
[그냥 먹을걸로 하면 안돼? 혜진이 빵 되게 좋아하잖아]
[그래도 생일인데 좀 그렇다...아. 혜진이 머리 기니까 머리핀은 어때?]
다들 이리저리 말한 끝에 우리는 혜진이에게 예쁜 머리핀을 하나 선물해주기로 결정했다.
항상 집을 같이가는 친구들이였지만 그날만은 혜진이를 먼저 보내려고
이상하다는 듯 보는 혜진이에게 어물대며 나는 엄마핑계를 대고 딴애들도 각자 핑계를 댔다.
학교에서 좀 밑으로 걸어와서 커다란 매장에 들어가 우리는 모아온 돈에 맞는
예쁜 핀을 사기 위해 열심히 안을 돌아다녔다.
한참 돌아다녔지만 딱히 마음에 드는게 없어 다른곳에 갈까 싶었는데,
미정이가 손을 들고 호들갑스레 우릴 불렀다.
우르르 몰려가서 보니, 미정이는 하얀 리본과 우윳빛구슬들로 장식된 머리핀을 가르켰다.
모두들 그게 가장 예쁘다고 감탄했고, 까만 머릿결의 혜진이에게도 잘 어울릴거라며 그걸 사기로 결정했다.
기분좋게 그것을 들고 계산대로 갔는데, 카운터의 언니가 고개를 저었다.
[저기 학생들. 이건 미리 사가기로 한 사람이 있거든?]
[에이, 그런게 어딨어요 언니. 저희가 사가면 안되요?]
언니는 그래도 안된다고 고개를 저었고, 우리는 사겠다고 떼를 썼다.
한 10분정도 옥신각신 하는데, 꽤 나이들어 보이는 아저씨가 우리에게 다가왔다.
짜증을 내던 언니가 그 아저씨께 공손하게 인사하는 것을 보고있자니,
아저씨가 우리에게 웃으며 말을 걸었다.
[미안하지만, 이건 내가 먼저 사기로 했는데....내 딸이 하얀리본을 참 좋아하거든]
[아저씨. 이거 저희가 사면 안되요? 저희 학생이라 돈도 얼마없고 하는데
이게 싸고 예뻐서 너무 마음에 들어서 그래요]
친구들 중 한명이 나서서 말하자 아저씨는 잠시 생각하더니 다시 웃으면서
카운터의 언니에게 뭐라 속삭이고 사라지셨다.
언니는 곧 머리핀을 포장하더니 우리에게 내밀었다. 내가 돈을 내려고 지갑을 꺼내자
언니가 손을 저었다.
[너희. 이거 그냥 가져가. 사장님께서 대신 돈 내신데]
[와아. 진짜요? 감사합니다, 언니!]
우리는 신나게 매장을 빠져나왔고, 머리핀을 사려던 돈으로
케잌과 꽃도 사고 우리끼리 저녁도 사 먹고 재미있게 지냈다.
다음날, 나는 내가 맡아간 케잌을 들고 학교에 일찍 도착했고,
다른 친구들도 다들 일찍 와선 언제 생일을 챙겨줄지 의논하고 있었다.
그런데 머리핀을 맡은 미정이가 오래도록 오지 않았다.
일단 케잌을 TV뒤에 숨겨놓고 우리는 미정이를 기다렸다.
미정이는 1교시에 틀어준 영화가 거의 다 끝날때쯤이야 느지막히 교실에 들어섰다.
[야. 너 왜이렇게 늦게오냐? 난 아예 안올줄 알았잖아]
[미, 미안...오늘 늦잠을 좀 잤어]
미정이는 평소와는 다르게 좀 기운없어 보이게 대답하곤 자기 자리에 앉았다.
왠지 기분이 이상했지만 내버려두고 모두 방학식을 하러 우르르 나간사이,
우리는 운동장에 나가지 않고 혜진이 생일을 챙겨주었다.
준비해둔 케잌에 초를 꽃고 불까지 붙이자 혜진이는 감동한 듯 눈물까지 글썽댔고,
미정이가 포장된 선물을 건네자 조금 훌쩍대기까지했다.
선물을 풀어본 혜진이는 환하게 웃으며 몇번이고 자신의 머리에 머리핀을 대보며 기뻐했고,
보고있던 우리도 괜히 기분이 좋아 서로 즐겁게 웃었다.
그렇게 방학이 시작되고, 크리스마스랑 새해때까지 우리는 서로 만나지 못했다.
그러다 어느날, 집에 전화가 와서 받아보니 난데없이 경진이가 울면서
혜진이에게 교통사고가 났다고, 빨리 병원으로 오라는 것이다.
당황해서 나는 병원으로 다른 아이들과 달려갔고,
다른 환자 두세명과 함께 일반병실에 있던 혜진이는 생각보다 멀쩡한 모습으로 우리를 맞이했다.
고작 팔에 금이 간 것 뿐이라고 말한 혜진이가, 곧 미안한듯 우리에게 말했다.
[근데, 저기....나. 너희가 사준 그 머리핀 잃어버렸어]
[어? 어쩌다가?]
[길 건너다가 아슬하게 차랑 부딧쳤는데 넘어지면서 머리에서 떨어졌나봐. 없어졌어]
다들 그정도는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 한 듯,
이정도 다친게 다행이라고 웃으며 혜진이를 다독댔고,
그래도 혜진이는 아쉬웠는지 그 머리핀 마음에 들었는데 하고 중얼댔다.
병원에서 돌아오는 길에 다들 시끄럽게 떠드는데 미정이가 조심스레 우리를 불렀다.
뭔가 어려운 말이라도 하듯 몇번 망설이다 미정이는 자그맣게 말했다.
[나, 너희한테 할 말이 있는데.....]
[응. 뭔데?]
[실은, 혜진이 생일날에...학교 오는길에 왠 여자애를 봤는데,
하얀 원피스에 흰 구두를 신은 초등학생같았거든.
그냥 예쁘게 생긴 애네, 하면서 오는데 걔가 나를 노려보면서 막 그러는거야.
왜 내 머리핀 언니가 가지고 있냐고....
순간 겁이나서 어쩌다가 우리가 간 가게로 뛰어갔는데,
마침 언니가 가게문을 열고 있는거야. 그래서 그때 아저씨 딸 몇살이냐고 물어봤어.
그랬더니 그건 왜 묻냐면서, 작년에 죽었을때 아마 10살이였다고.....]
[뭐, 그 아저씨 딸이 죽었다고?]
[응.....그런데, 교통사고로 죽었대.....]
어쩌면 우연일수도 있겠지만 나는 걸어가는 내내 마음이 무거웠다.
왠지 혜진이가 다치게 된 이유가 그 머리핀때문인것 같아서,
하얀걸 좋아했다는 그 아이가 머리핀을 가져가려고 그런것 같다는 기분이 들었기에.
혜진이는 며칠 지나지않아 금방 퇴원했고, 팔도 한두달 동안 다 나아서
곧 아무렇지도 않게 생활할 수 있게 되었다.
고등학교 배정받은 뒤로, 혜진이가 딱 한번 그 머리핀에 대해 다시 이야기하며
어디서 샀는지, 다시 그 머리핀을 사고싶다고 말하길래
나와 미정이는 어색하게 웃으며 아마 이젠 없을거라고만 말했다.
첫댓글 얼마짜리 머리핀이었을까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