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에서 읽었습니다.
따스한 봄볕이 많이 쬐였으면 합니다. 비가 그치고...
지난 1월은 어머님이 갑자기 위독하셨다 겨우 위기를 넘기시고 안정되느라고
정신이 없어 글도 쓰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자판을 두들기는 오른손의 마비가 완전히 풀리지 못하여 더듬대다가
오자 투성이가 되어 그냥 일일이 수정하기도 번거로워 지워버린 글도 서너개 됐습니다
오늘은 하루종일 트로트만 듣고있었던 입원시절 외로운 사나이 얘기를 하려고 합니다
케이블 티비에는 i-net 라는 하루종일 트로트만 방송하는 챠넬이 있습니다
우리 6 병동 휴게실의 티비를 완전히 독점하고 24시간 그 트로트만 듣고있던 사나이는
나이가 50 후반 돼 보이는 체수가 자그만하고 인상이 트위스트 김 깉이생긴 말이 없는
몹시 외로워 보이는 사나이었습니다
자기 아들을 간병하고 있다는데 그사람 외에는 다른 가족은 보질 못했습니다
늘 혼자서 쓸쓸하게 트로트만 듣고 있었습니다
그 사람 때문에 6병동의 다른사람들은 티비 다른 챠넬을 볼 수가 없었습니다
휴게실 소파의 웅크리고 쑤셔 박혀 있으면 있는지 없는지도 잘 구분이 안됩니다
그렇게 체수가 자그만 했습니다
대개 공동 생활을 하는데서는 티비 챠넬 때문에 자주 언성이 높아집니다
뉴스 시간에 뉴스 보자고 하면서 리모콘을 달라고 해도 귀먹어리 같이 못 들은척 꼼짝도 하지
않고 소파 구석에 보이지도 않게 처박혀 있습니다
언성도 높히고 심지어는 강제로 리모콘을 빼앗으려고 몸싸움을 해도 결코 리모콘을
빼앗기지 않습니다
그래서 6병동 환자들과 간병인들은 밤 10시이후 숫째 티비 보는 것을 포기하고 1층 라운지로
내려 갑니다
병원의 병실은 밤 10시만 되면 병실 티비가 꺼지기 때문에 그 이후 간병인 들과 잠 안오는
비교적 쌩쌩한 나같은 환자들은 휴게실에 나와서 티비를 보거나 서로 엉터리 의학 상식을
주고 받거나 인생 역경에 대한 이야기를 주고 받는 것이 병실의 즐거움인데 그는 이 즐거움
중 한가지를 독점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 형씨 도대체 24 시간 트로트만 들으면 안 질려요 ? "
그는 한번도 누구의 질문에 반응 한 적이 없습니다
항상 초점잃은 눈동자로 티비를 보는건지 천정을 보는 건지 구분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아침 9 시에 아들을 휠체어에 태우고 지하 치료실에 데려다 주고나면 다시 아들을 데리고
점심시간과 오후 3시 치료처치후 데리고 올라오는 시간과 식사시간 외는 휴게실 소파에서
꼼짝을 하지 않는 사나이었습니다
잠도 휴게실 소파에서 슬리핑 백을 쓰고 잡니다
가끔 휠체어에 밀고가는 아들은 덩치도 크고 좀 험하게 생겼습니다
저런 아버지 한테서 저런 아들이 나왔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습니다
아들은 심하게 뇌졸중이 온것 같았습니다
오른손과 다리가 완전히 마비되고 뇌수술도 서너번 받고 언어와 인지늘력을 상실하고
시력도 80% 상실했다고 했습니다
그의 생활은 기계적이었습니다
시간되면 아들을 휠체어에 싣고 치료실에 데려다주고 시간되면 데리고 올라오고
2일에 한번씩 아들을 샤워실에 데리고가서 씻기고 식사 시간에 밥먹여주고 약먹는 시간에
약 먹여주고 용변 본다고 하면 화장실 볼일 해주고 그렇게 내가 입원했을 때 4 개월이 됐다고
했습니다
그는 특히 아들을 샤워실세서 씻기고 나면 소파 구석에서 소리없이 울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은 마누라도 없던 말인가 ?
그리고 아들도 나이가 30대 후반은 넘어 보이는데 결혼도 안했단 말인가 ?
친구도 없단 말인가 ?
도대체가 그들 부자 외에는 전혀 한 시람도 얼씬하지 않으니 말입니다
6병동 휴게실에는 늘 그 조그만 사나이와 트로트만 울려 퍼지고 있었습니다
저는 누가 면회와서 과일이나 과자 같은 것을 주고 가면 늘 휴게실에 혼자서 트로트만
듣고있는 그 조그만하고 외로워 보이는 그에게 조금씩 나누었습니다
모두들 손가락질하고 쑤군대는 그가 안돼 보였습니다
남들은 하루가 멀다하고 면회를 와서 과일이다 쥬스다 사오고 심어는 병실 전체에 먹을것을
돌리기도 하는데 어느 누구도 찾아오는 사람이라고는 없는 그가 안돼 보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가 잠을 자는데 슬리핑 백 밖으로 나온 내복 소매가 나달 나달 떨어져 있었던 것입니다
그것을 보자 갑자기 울컥하는 슬픔이 밀려 왔었습니다
" 형님 보시고싶은 챠넬 보세요 "
처음으로 그의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조그만 소리인데 쇳소리같은 고음의 공허하고 메마른 소리였습니다
처음으로 입을 연 것이었습니다
" 아 나도 트로트가 좋구먼요 "
트로트라고는 들어보지 않던 내가 마음에도 없는 비위 맞추는 그런 소리를 했습니다
하잖은 사람이지만 왠지 그의 비위를 맞춰주고 싶었습니다
어느 누가 그의 비위를 맞춰줬겠습니까 ?
그들 부자가 내일이면 다른 병원으로 옮겨야 한답니다
국민 건강 보험법상 한 병원에 6개월 이상 입원이 불가하여 6개월 마다 병원을 옮겨야 한답니다
그날 저녁 그는 밤늦게 새벽 4시까지 아무도 없는 휴게실에서 내일이면 작별이라고 하면서
그는 그 조그만 옥타브 높은 쇳소리로 얘기를 했습니다
자기는 외항선을 타는 선원이었으며 배탈때 무전기사였다고 했습니다
배 타다가 위암에 걸려서 수술을 두번이나 받고 지금도 항암 투병중이라고 했습니다
하나있는 아들을 작년에 장가를 보냈는데 돈이 없어서 자기 살던 집의 전세금을 빼서
사돈집에 방 한칸 세들어살던 세입자에게 주고 방을 비워서 거기서 아들이 신방을차리고
처가살이 아닌 처가 살이를 하다가 지난 5 월에 아들이 갑자기 쓰러져 이렇게 됐다고 했습니다
아들이 쓰러지자 중장비 기사로 일하던 아들이 실직자가되고 그나마 산재처리가 되어
병원비는 걱정이 없지만 전혀 회복이 까마득하니 막막하다고 했습니다
처음에는 며느리가 간병을하더니 어느날 이혼을 선언하고 병원 출입을 끊고 자기집에 셋돈으로
준 돈도 위자료 명목으로 챙기고 졸지에 불구된 아들을 세상에 내동댕이 쳤다고 하면서
눈물을 보였습니다
자기는 위암 수술을 두번이나 하고 일자리를 잃자 마누라도 아들 장가보내자 마자 집을 나가서
들어오지 않고 소식도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세상 천지에 아들과 자기 둘 뿐이라고 했습니다
자기는 집 전세금도 아들에게 빼 주고 월세로 살았는데 이제는 월세도 못내고 아들 덕에
병원에서 자고 먹고 그렇게 살다가 가는 수 밖에 없다고 했습니다
트로트를 듣고 있으면 그저 노래 가사에서 지난 세월의 슬픔과 기쁨과 사랑과 미움이
구름같이 흘러 가면서 잠시 고통을 잊고 지낸다고 했습니다
이갸기를 하고 있는 그 사람의 눈동자에는 정말로 인생의 구름이 지나가듯이 흐려지고
있었습니다
그들 부자는 이튿날 아침 다른 병원에서어 온 앰브란스에 몸을 실으면서 손을 내밀고
" 형님 퇴원하시면 연락 하세요... 빨리 회복하세요 "
나도 그들 부 자에게
" 아들 빨리 회복시켜서 행복하게 사세요 "
했다
" 하나님 이들 부자에게 역사하시어 행복이라는 것을 보여 주시십시요 "
저의 메일에 배달이 되어 있기에.. 모두들 함께 갈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새해 새마음
감사드립니다^-^.
첫댓글 우리가 상상하기 조차 어려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을까?
우리는 행복한 삶을 부여 받고도 행복을 느끼지 못하며, 메마른 생각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건 얼마나 이기적인가.
나날이 밝게 떠오르는 해를 보며 "나는 너무 행복하다."는 마음의 근육을 키울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