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도보에서 정릉[貞陵]을 거쳐 북악산길로 삼청공원까지 간다고 했을 때 혹 했던 것은 정릉이라는 왕릉, 무엇보다 비운의 왕비 신덕왕후 강씨의 능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신덕왕후 강씨, 알고보면 고려말 조선초 이성계를 도와 조선 개국에 공이 큰 여걸이었고 정치적 역할도 상당히 많은 인물이었지만 의붓아들 이방원, 태종으로 인해 역사에 가려진 비운의 인물입니다.
성북구 정릉동에 있는 정릉을 찾으니 참 단아하고 소박한 느낌입니다. 당연히 역사적으로 홀대받은 능인 만큼 단아 소박한 느낌이겠지만, 능 안에 누워있는 신덕왕후는 피눈물을 흘렸겠죠.
비운의 왕비 신덕왕후 강씨를 안치한 정릉
신덕왕후를 보면 두가지 이미지가 겹칩니다.
야사에서는 흔히 이성계가 말을 타고 가다 우물가에 있는 여인에게 물을 청하니 버들잎을 띄어 줘서 지혜롭다 해서 얻은 부인이 바로 신덕왕후 강씨라는 것이죠. 전형적인 유교적 가치관에서 여성의 덕성을 강조한 것이죠.
그런데 역사드라마 <용의 눈물> 혹은 최근에 방영된 <정도전>에 보면 신덕왕후 강씨가 이성계의 둘째부인으로 현모양처형 보다는 정치에 적극적으로 개입한 인물로 나옵니다. 실제로 알고보면 이성계는 고려말 변방의 유망한 군인에 불과하고, 신덕왕후 강씨는 곡산 강씨로 고려의 유력 세도가 집안의 여인이었죠.
고려시대 여인들은 자유분방했습니다. 유교적 인습 같은 것이 없어서 남녀평등 사상이 어느정도 보장된 시기이기도 하죠. 어떤 면에서는 정도전이 주장하듯이 이성계가 조선을 개국한 것이 아닌 신진사대부=정도전이 조선 개국의 일등공신이라 하면, 신덕왕후 역시 할말이 많은 여인인 셈이죠.
이런 정치적 역할, 가문의 배경이 나이 많은 이성계의 아들들을 제치고 자신의 아들을 세자로 세우는데 결정적 역할을 합니다. 당연히 나이 많은 이방원 등이 반발, 왕자의 난이 일어나 신덕왕후 강씨의 아들인 방번과 방석은 죽임을 당합니다. 물론 신덕왕후는 그 비극이 있기도 전에 세상을 떠납니다. 어찌보면 신덕왕후는 당당한 고려의 마지막 여인이자 유교적 조선에 의해 평가절하된 첫 번째 여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제가 정릉을 찾은 이유도 이런 신덕왕후를 좀더 자세히 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항상 역사에는 가정이 나옵니다. 신덕왕후가 더 살고 방석이 임금이 되고 왕자의 난이 없었다면, 정도전 등 신진사대부들에 의해 조선은 모범적인 유교적 덕치국가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신덕왕후는 나이많은 이성계 보다 먼저 세상을 떠나고 상심한 태조 이성계는 신덕왕후를 지금의 광화문 정동에 안장합니다. 그렇지만 복수에 불타는 아들보다 더 오래 살 수 없는 법, 이성계가 세상을 떠나자 태종은 복수에 나서 정동의 신덕왕후능을 한양 도성 밖 정릉동에 옮기고 석물은 땅에 묻고 능 주변 12지석은 해체해서 지금 청계천 광통교 다리로 씁니다. 왕비의 능에 쓰인 석물을 백성들이 밟고 다니게 한 것, 그의 원한이 얼마나 깊은지 여실히 보여줍니다.
태종 이후 신덕왕후능은 방치된 묘로 남다가 조선 후기 송시열 등에 의해 다시 복원됩니다. 그저 허례에 사로잡힌 신하들의 주청에 의해 1669년 현종대 신덕왕후는 왕비로 복위되었고, 무덤도 왕후의 능으로 복원됩니다. 신덕왕후가 왕비로 복위되는 날 정릉 일대는 비가 많이 내렸다고 합니다.
정릉 해설사 분이 워낙 설명을 많이 잘해주어 생각보다 많은 시간을 지체한 후 북악산길로 올라섭니다. 정릉길을 한바퀴 도는데 만산홍엽, 붉은 단풍이 유난히 많이 보입니다. 이것 또한 신덕왕후의 원이 서려서가 아닌지... 잠시나마 뒤를 돌아 정릉을 다시 봅니다.
북악산길은 언제걷든지 좋습니다. 서울 한가운데 이런 멋진 산에 숲이 잘 보존된 곳을 지나면 감탄이 나옵니다.
걷다보니 1968년 1.21사태, 이른바 김신조 일당하고 교전한 호경암을 지납니다. 바위에는 엄지가 들어갈 정도의 총탄자국이 많이 있습니다. 김신조 일당의 청와대 습격사건 이후 북악산 인왕산은 금단의 땅이 됩니다. 오로지 통치자 한 사람의 안위를 위해 서울시민의 휴식공간인 북악산 인왕산이 막힌 곳이죠. 그래도 오랜 세월을 묵묵히 견딘 이곳은 김영삼 시절 1993년 인왕산이 해제되었고, 북악산 일대 숙정문은 2007년 노무현 정부 시절 해제되었습니다. 40여 년 만에 서울시민 품에 안긴 것이죠.
1968년 1.21 사태의 현장 표지석
북악산 길을 걸으며 약간 엉뚱한 생각을 해 봅니다. 금단의 땅, 보존이 잘 된 것은 누구 덕분일까? 김신조 일당? 아니면 박정희 권력과 차지철 같은 추종자들? 어쩌면 묵묵히 견딘 시민들의 힘인지 모르겠습니다. 가을 깊어가는 북악산은 말이 없고 단풍이 물들어 가더군요.
정릉으로 해서 북악산 일대를 걸은 하루. 오늘 걸은 길은 역사의 뒤안길에 있던 사람, 역사의 소용돌이에 있던 시절의 길이었습니다. 그 길의 의미를 알고 현재에 다시 생각하고 조금이나마 깨우치며 걸은 길이었습니다.
강남 선정릉의 정(靖)릉은 중종의 능. 중종도 왕비없이 혼자 누워있다.
9만 여 평의 작은 규모이지만 산세가 여성에게 좋은 곳이라는 풍수지리적 특성이 있다고 함.
정릉 입구 빨간 단풍이 인상적이다.
왕릉을 상징하는 홍살문. 원래는 홍상문과 능이 일직선이어야 하는데 기구한 신덕왕후 능은 홍살문과 능이 일직선이 안되고 꺽여져 있다. 이를 봐도 정릉은 홀대받은 능임을 알 수 있다.
참도도 꺽여 있다.
가을 깊어가는 정릉. 혼자서 걷기에는 딱 좋은 곳.
능에서 바라본 정릉 일대. 나무 보다 더 높은 아파트가 흉물스럽다.
애초 광화문 정동에 있다가 당시 경기도 양주땅 이곳으로 옮겨 방치되었다 300여 년만에 복위된 신덕왕후 강씨. 이제는 신덕왕후 여말선초 여인의 정치사 등에도 관심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단아한, 자그마한 규모의 정릉
정릉 일대에는 유난히 붉은 단풍이 많다. 신덕왕후 강씨의 원이 서려 있는지...
낙엽 쌓인 길을 통해 북악산으로 올라간다.
금강소나무길 안부러운 송림
가을을 보내고 겨울을 맞는 것 같은 북악산 길
북악스카이웨이와 연결된 소방문에서 바라본 길. 다시 내려가면 정릉길
김신조 일당과 교전한 호경암 일대 바위
호경암에서 숙정문 가는 길의 나무데크길. 남마루 서마루를 거치는 동안 전망 좋은 곳, 호젓한 숲길을 지나는 등 북악산 최고의 길.
서마루에서 바라본 북악산과 단풍들
말바위쉼터로 내려와 걸은 삼청공원 정문길.
39명의 대부대가 움직인 화요도보
일일총무 에비앙님이 뭔가 중요한 것을 체크하는 줄 알았더니 도보 후 매식할 메뉴 된장과 청국장 수량 파악중...
화요도보 모범생들
고운길 첫걸음 7명의 회원. 그린비님이 소개를 하면서 이런말 저런말 하시는데 꼭 작업멘트 같았음.
배낭에 고구마를 잔뜩 짊어지고 오셔서 그 무게로 땅에 인사하신 한글나라님...
핸폰사진의 달인 이백님
스트레칭의 달인 에코박사님
사진찍히기의 달인 그래이거다님
화요도보 일일총무, 후기의 달인 에비앙님
* 다음 좋은 길에서 뵙겠습니다. 마음에 안드시는 사진이 있으시면 알려주세요.
첫댓글 낙화유수님. 너무나도감사합니다
정말행복해지네요. 하하하~~~
삭제된 댓글 입니다.
아니 어찌 그런 말씀을...
멋지게 나이들어 가시는 모습에 항상 감탄하고 있습니다.^^
각기 다른 컨셉의 달인 시리즈가 재미나네요.
찬찬히 읽어 내려가는 후기속에서 돌아서면 바로 깍깍~까마귀가 될지언정...
가랑비에 옷젖듯 머리속에 영양분으로 남겠지요.
바쁜 스케즐 속에서도 함께 동행해 주셔서 많이 많이 감사합니다.^^
참가하신다는 댓글보고 환호성을 지르고
이번엔 과연 어떤 작품이 나올지 호기심 가득 기다렸더니...
또 한편의 수채화를 그려놓으셨습니다!!
제주의 청정한 공기담아 감사한 마음 전합니다~~사진찍기의 달인 낙화유수님에게
묘 뒤로 가봤는데 커다란 양 뿔을 하고 있는 양 석상이 두 개 있더군요, 양이 그 당시 우리나라에 있었던가,,,의문이 들었습니다~
맑음님..
양은 이미 삼국시대 이전에 우리나라에 들어와 있었답니다.
부여국에서 이미 양을 숭배한 사실이 있고요.
신라 김유신 장군 묘에도 이미 석양이 있지요.^.^
@정든길 아항~~그렇군요~돌돌 말린 커다란 뿔이 여전히 위엄 있어 보였거든요~고맙습니다, 또 배웠습니다~
사진 찍으시는 진지한 뒷모습이 인상적이였습니다.
낙화유수님 후기 보려고 이제나 저제나 여러번 들락날락 했습니다.
역사 지식이 엄청난 후기를 보니, 왠지 전직 형사 (제가 추측한) 는 아닌것 같습니다. ㅋ
다음길에서 또 뵙겠습니다 ^&^
낙화유수님!
달인 중에서는 "사진 찍히기의 달인"이 제일인 듯 합니다,
홈런입니다~ ^^
ㅎㅎ 감사합니다..
이백님의 포스 또한 만만치 않습니다!!
화요도보에 온갖 달인이 모두 모였습니다!!ㅎ
역사공부도 열심히했구요 낙화유수님의 코멘트가 이아침을 기분좋게 열어주네요 ^^
사그락사그락 낙옆 밟으며 혼자서 조용히 겆고싶은 정릉길입니다~~
만추의 조용함이 그대로 담겨있네요 멋진사진 감사합니다~^^
후기글이 압권이네요. 문화해설사가 따로 필요하지 않은 글입니다. 역사적 사실과 가치및 의미해석 그리고 노정에 대한 감상과 사진 하나마다 붙인 해설과 멘트 등, 잘 정돈된 멋진 후기글이 배울만큼 돋보이는군요. 읽는 사람은 금방이지만 작성하려면 상당히 공을 들여야 하는 글인데...정말 인재들이 많은 곳, 정겨운 카페입니다.
이런... 정든길님이 좋은 지적을 해주셨는데... 글이 없어졌네요.. 정든길님 귀한 댓글 다시 올려주세요. 그런 댓글, 저의 답글을 통해 내용이 풍부해집니다. 댓글이 많아야 콘텐츠가 풍성해지는거죠.
정든길님 부담갖지 마시고 댓글 다시 올려주세요. 흥미로운 주제이고 그것을 통해 재미난 이야기를 많이 풀어낼 수 있어요~~ 부탁드립니다^^
이런... 벌써 제 댓글을 보셨었군요.^.^
지적은 아니고요~
제 생각 한 조각 올렸다가, 별로 어울리지 않는 얘기인듯 싶어 지웠네요.
댓글로 풍성하게 이야기 나누자는 낙화님 말씀 공감하고요^.^
현장 해설 보다 더 많은 생각 하게 하는 귀한 후기 고맙습니다 낙화님 !
역사는 시대와 보는 이들의 시점에 따라 달라지기도 하는데 사진과도 비슷하다고 생각도 드네요. 같은 사물을 다른 각도에서 보면 모두 다르게 보인다는 것이...그러나 우리는 자신의 눈에 비친 모습만이 옳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지는 않을까하고 생각도 됩니다.
멋진 사진 감사하고...잘 감상했습니다.
북악의 창연한 단풍이
여수에 와서 한숨 쉬는듯 하더니
제주 사려니숲으로
이사를 왔네요.
올해의 첫눈이 우리길에 내리고
더좋을수없는 행복을 주었네요
신덕왕후의 애잔한 스토리에
가슴이 젖어옵니다
역사는 우리를 더나은삶으로
가기위한 이정표임을
깨닫습니다
낙화유수님!
낙화가 어느곳에 있던지
빛이나네요^^
자상한 해설, 시크한 영상
가지신 재능에 찬사를
보냅니다.
수고한이들의 감사로
여행이 더욱 행복합니다
수고하셨습니다^~^
낙화유수님의 후기 정말 짱입니다
역사공부 복습도 하고 멋진사진 감상도..
수고하섰습니다 감사합니다
역사공부와 함께 만추의 정릉길을 다시한번
뒤돌아 볼수있는 좋은 추억을 남겨 주셨
네요~~^^
즐감 하고갑니다~~ 수고하셨습니다~~^^
낙화유수님의 역사에 대한 글과 길에 대한 글이 자세하고, 사진도 좋아서 가 보지 못한 저도 감상 잘하였습니다.
빨리 저도 화요 도보에 합류하고 싶어지네요.
제주에서 돌아와 컴앞에 앉아 이제서야 낙화님의 작품을 제대로 감상하고 있습니다.
음악도 넘 좋구요
제 사진도 짱 맘에 들어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