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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참법문(小參法門)
-2020.4.21.화엄전. 無比스님-
보살은 열 가지 버리지 않는 깊고 큰 마음이 있다
안녕하십니까. 오늘도 화엄경 이세간품(離世間品) 한단락 공부하겠습니다.
‘보살은 열 가지 버리지 않는 깊고 큰 마음이 있다’
이런 단락입니다.
불사심대심(不捨深大心) 버리지 않는 깊고 큰 마음이 있다.
보살의 마음은 물론 깊고 큰 마음입니다.
본래로 우리 모든 사람들이 다 깊고 큰 마음이 있는데, 보살은 그것을 알고 그것을 깨닫고 그것을 계발해서 보살행을 하는 데 활용을 합니다.
그래서 여기서 ‘깊고 큰 마음이 있다’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
“불자여, 보살마하살은 열 가지 버리지 않는 깊고 큰 마음이 있으니 무엇이 열인가.”
불사성만일체불보리(不捨成滿一切佛菩提) 심대심(深大心)
“이른바 모든 부처님의 깨달음을 원만히 이룰 것을 버리지 않는 깊고 큰 마음이니라.”
모든 부처님의 깨달음을 원만히 이룰 것을, 그렇습니다.
부처님의 깨달음이 모든 많고 많은 깨달음 중에서 가장 원만한 깨달음이고 완벽한 깨달음이고 그야말로 가장 큰 깨달음이고 대각(大覺)이고 원각(圓覺)이고 또 시성정각(始成正覺)이고 바른 깨달음이고 그렇지요.
그러한 깨달음을 우리 모든 보살들도 원만히 이룰 것을 버리지 않는 깊고 큰 마음이 있다.
보살은 상구보리(上求菩提) 하화중생(下化衆生) 위로는 부처님이 깨달으신 그런 깨달음을 늘 구하는 자세와, 하화중생(下化衆生) 밑으로는 일체중생들을 어떻게 하더라도 잘 거두고 교화하고 가르치고 성숙시키려고 하는 큰마음이 있습니다.
불사교화조복일체중생(不捨敎化調伏一切衆生) 심대심(深大心)
“일체 중생을 교화하고 조복시킴을 버리지 않는 깊고 큰 마음이 있다.”
위로는 부처님의 깨달음이지만 아래로는 일체 중생을 교화하고 조복시킴을 버리지 않는 깊고 큰마음.
중생을 교화하겠다고 하는 것이 부처님의 깨달음을 원만히 이루려고 하는 그 마음에 못지 않습니다.
오히려 비중을 이야기하자면, 일체중생을 교화하고 조복시키고 성숙시키고 가르치려고 하는 마음이 더 크다고 봐야겠죠.
부처님이나 보살들의 관심사는 항상 중생이니까요.
중생이 화두고 중생이 관심사고 중생으로 인해서 부처가 되었고 보살이 되었으니까, 이치가 그렇습니다.
불사부단일체제불종성(捨不斷一切諸佛種性) 심대심(深大心)
“일체 모든 부처님의 종자 성품을 끊지 않음을 버리지 않는 깊고 큰 마음이니라.”
모든 부처님의 종자 성품, 불종성(佛種性).
불종성을 끊지 않음을 버리지 않는 깊고 큰 마음이니라.
불종성이 끊어지면 안되지요.
불종성은 근본적으로 살펴보면 본래 다 갖추고 있는 것인데 그것을 발현시켜서 일상생활에 그 불종성을 펼쳐 보이는 일, 그래야 완벽한 불종성이 되겠습니다.
내외명철(內外明徹)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안으로 갖춘 것은 누구나 다 갖추고 있다고 하는 사실이지만, 그것이 밖으로까지 발현이 되고 중생에게까지 영향이 미쳐지고 중생이 감동을 하고 그래서 중생이 교화를 받고 해야 그게 완벽한 불사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불종성, 부처의 종자 성품을 끊지 않음을 버리지 않는 깊고 큰 마음이다. 그렇게 표현했습니다.
불사친근일체선지식(不捨親近一切善知識) 심대심(深大心)
“모든 선지식 친근함을 버리지 않는 깊고 큰 마음이니라.”
모든 선지식 친근함을 버리지 않는 깊고 큰 마음이니라.
물론 불보살이나 완벽한 깨달음을 이루신 조사스님, 그리고 지혜와 자비를 펼쳐 보이는 선지식이라면 더 말할 나위 없습니다만 그렇지 못하다면, 지혜와 자비가 담뿍 담겨있고 완벽하게 펼쳐져 있는 화엄경과 같은 가르침을 저는 늘 선지식이라고 합니다.
선지식을 친근한다고 하는 말이 무슨 말입니까?
우리들처럼 이렇게 화엄경 공부를 쉬임없이 하는 것이 선지식을 친근하는 일입니다.
친히 가까이 하고, 늘 공양하고 받들어 섬기는 일입니다.
달리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우리가 화엄경 공부를 열심히 하고, 또 했던 것도 반복해서 하고, 그런 상황이 아니라면 그저 걸어갈 때나 잠자리에 들 때나 언제나 ‘화엄성중(華嚴聖衆)’이라도 마음속으로 되뇌이고 하는 것, 이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선지식 친근하는 일입니다. 그런 깊고 큰 마음이다.
불사공양일체제불(不捨供養一切諸佛) 심대심(深大心)
“일체 모든 부처님께 공양함을 버리지 않는 깊고 큰 마음이니라.”
모든 부처님께 공경 공양 존중 찬탄 그러한 일을 버리지 않는 깊고 큰 마음. 당연한 거죠.
보살로서 또는 어른으로서 또는 성숙한 불자로서 당연히 모든 부처님과 일체 중생과 생명 있는 일체 존재들을 부처님처럼 생각하고 공경 공양하고 받들어 섬기는 깊고 큰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곧 나도 행복하고 그도 행복하고, 그도 행복하고 나도 행복하는 열쇠입니다.
불사전구일체대승공덕법(不捨專求一切大乘功德法) 심대심(深大心)
“모든 대승공덕의 법만을 오로지 구하기를 버리지 않는 깊고 큰 마음이니라”
모든 대승공덕의 법, 대승공덕의 법.
불교에도 수많은 가르침이 있고, 또 얕은 가르침도 있고 높은 가르침도 있고 방편의 가르침도 있고, 진실한 실법, 실법(實法)의 가르침도 있고 여러가지가 있습니다.
여기서 대승공덕의 법이라고 하는 것은 요의경(了義經) 완벽한 가르침, 진리의 가르침을 뜻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결국 중생에게 지혜와 자비로 펼쳐져야 된다고 하는 의미를 가진 법을 대승공덕의 법이라고 했습니다.
오직 그 법만을 구하기를 버리지 않는 깊고 큰 마음이 보살에게는 있다 하는 것입니다.
불사어일체불소(不捨於一切佛所) 수행범행(修行梵行) 호지정계(護持淨戒) 심대심(深大心)
“모든 부처님의 처소에서 청정한 행을 닦아 청정한 계행을 보호하여 가지기를 버리지 않는 깊고 큰 마음이니라.”
모든 부처님 처소에서 청정한 행을 닦아. 그렇습니다.
어디에서든지 처처에, 보살은 청정한 행을 지키고 실천해야 합니다.
그러한 행을 닦아서 청정한 계행을 보호하여 가지기를 버리지 않는 깊고 큰 마음이니라.
불사친근일체보살심대심(不捨親近一切菩薩深大心)
“모든 보살 친근함을 버리지 않는 깊고 큰 마음이니라.”
모든 보살 친근함을 버리지 않는, 그렇습니다.
부처님도 물론 더 말할 나위 없이 친근하고 공경 공양 해야하지만 보살도 또한 친근 공양해야 합니다.
물론 문수보살 보현보살 관음보살 지장보살 같은 그런 보살님이야 평소에도 우리 불자들은 잘 친근하고 공경 예배하고 공양합니다.
설사 그와 같은 보살이 아니라 하더라도 그 외 모든 보살들도 보살의 지위에 있다면 항상 친근하고 배우고 받들어 섬기고 본받고 이렇게 해야 합니다. 그것이 보살이 갖는 깊고 큰 마음입니다.
불사구일체불법(不捨求一切佛法) 방편호지심대심(方便護持深大心)
“모든 불법을 구하여 방편으로 보호해 지님을 버리지 않는 깊고 큰 마음이니라.”
모든 불법을 구하여, 팔만사천 대장경에서 가르치고 있는 온갖 불법, 그런 모든 불법을 낱낱이 놓치지 말고 구해서 방편으로 보호해서 지님을 버리지 않는 깊고 큰 마음이니라.
불사만일체보살행원(不捨滿一切菩薩行願) 집일체제불법심대심(集一切諸佛法深大心)
“모든 보살의 행과 원을 만족하고 일체 모든 불법 모을 것을 버리지 않는 깊고 큰 마음이니 이것이 열이니라.”
모든 보살의 행원, 행과 원을 만족하고, 보현보살의 행원과 같은 큰 행과 원을 만족하고, 일체 모든 불법 모을 것을 버리지 않는, 모든 불법을 모두 모아서 중생들을 교화하는 데 활용하는 마음가짐입니다.
그 얼마나, 어떻게 보면 욕심이 얼마나 많습니까?
저 뒤에 가면 욕심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보살은 이러한 큰 욕심이 있다. 이런 말을 했는데, 보살이 표현하는 욕심이라고 하는 것은 여기서 말하는 깊고 큰 마음입니다.
그런 불법을 모을 것을 버리지 않는 깊고 큰 마음이니
*
“이것이 열이니라. 만일 모든 보살들이 이 가운데 편안히 머물면 곧 능히 모든 불법을 버리지 않게 되느니라.”
이러한 마음, 열 가지 깊고 큰 마음을 지닌다면 두 말할 나위 없이 능히 모든 불법을 버리지 않게 된다.
그런 이치를 말하고 있습니다.
보살은 열 가지 지혜의 관찰이 있다
일련번호 62번인데 ‘진실행(眞實行)을 답하다’ 하는 과목이 있습니다.
‘보살은 열 가지 지혜의 관찰이 있다’
지혜의 관찰, 지혜 관찰, 지혜 관찰 그렇습니다.
당연한 거죠.
지혜와 자비가 보살의 정신이고 보살의 일입니다.
보살이라면 그 지혜와 자비가 보살의 내용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혜로 관찰한다고 하는 것은 가장 우선시 됩니다.
*
“불자여, 보살마하살이 열 가지 지혜의 관찰이 있으니 무엇이 열인가.”
선교분별(善巧分別) 설일체법(說一切法) 지혜관찰(智慧觀察)
“이른바 아주 뛰어나게 잘 분별하여 일체 법을 연설하는 지혜의 관찰이니라.”
아주 뛰어나게 선교분별(善巧分別), 선교(善巧)를 제가 ‘아주 뛰어나게’ 라고 표현 했습니다.
아주 뛰어나게 잘 분별하여, 선교분별하여 일체법을 연설하는 지혜 관찰.
아주 뛰어나게 분별하는 능력을 갖추어 결국은 불법을, 일체 불법을 연설하는 목적으로 말하자면 아주 뛰어나게 분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일체 분별을 연설하는 지혜의 관찰이니라.
요지삼세일체선근(了知三世一切善根) 지혜관찰(智慧觀察)
“과거 현재 미래 삼세의 일체 선근을 분명히 아는 지혜의 관찰이니라.”
삼세 일체 선근을 아주 확실하게 분명하게 아는, 삼세 모든 선근을 요지하는, 분명히 아는 지혜 관찰이니라.
요지일체제보살행자재변화(了知一切諸菩薩行自在變化) 지혜관찰(智慧觀察)
“일체 모든 보살의 행과 자재하게 변화함을 분명히 아는 지혜의 관찰이니라.”
일체 모든 보살의 행과 자재하게 변화함을 분명히 아는 지혜의 관찰이다.
보살의 행과 자재하게 변화하는, 보살의 중생교화에 필요한 자유자재한 변화의 능력은 정말 많이 필요하고, 또 그 크기는 이루 말할 수가 없습니다.
또 그렇게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중생들이 워낙 여러 가지 업을 가지고 있고, 여러 가지 성향을 가지고 있고, 여러 가지 욕심을 가지고 있고 참 각양각색입니다.
그래서 그러한 변화함을 분명하게 아는, 그러한 중생들을 교화하려면 보살은 그런 행과 자유자재하게 변화하는 그런 능력이 있어야 됩니다. 그래서 분명히 아는 지혜의 관찰이니라.
요지일체제법의문(了知一切諸法義門) 지혜관찰(智慧觀察)
“일체 모든 법과 이치의 문을 분명히 아는 지혜의 관찰이니라.”
일체 모든 법과 이치의 문을 분명히 아는.
법(法) 과 의(義) 그랬어요.
법(法)이 있고 의(義)가 있다.
법에는 거기에 해당되는 이치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소나무 그렇게 표현하면 그건 법이 되고, 소나무는 이러이러한 성질을 가지고 있고, 이러이러하게 성장하고 이러이러한 용도로 쓰인다 하는 세세한 소나무의 뜻이 있습니다. 그게 의(義)입니다. 이치예요. 소나무의 이치가 됩니다.
그래서 법(法)과 의(義) 이것은 기신론 같은 데서 자세하게 설명을 합니다.
여기서 일체 모든 법과 법에 따른 이치의 문을 분명히 아는 지혜의 관찰.
보살은 당연히 이런 지혜의 관찰이 있어야 됩니다.
금강경 하면 금강경은 법이 되겠죠. 그러니까 금강경에서 우리들에게 일러 주고자 하는 주제가 있을 것이고, 거기에 어떤 이치가 있을 것이고 교훈이 있을 것이고 등등 그런 것을 의라고 합니다.
화엄경 하면 화엄경이 법이고요. 화엄경에 담겨있는 온갖 다양한 이치가 있습니다. 그걸 의라고 그래요.
뜻 의(義)자 의(義) 그런 것을 분명히 아는 지혜의 관찰이 보살에게는 당연히 있어야 합니다.
요지일체제불위력(了知一切諸佛威力) 지혜관찰(智慧觀察)
“일체 모든 부처님의 위엄과 힘을 분명히 아는 지혜의 관찰이니라.”
모든 부처님에게 있는 위엄과 힘 위력이지요.
그런 것까지도 분명히 아는 지혜의 관찰이다.
요지일체다라니문(了知一切陀羅尼門) 지혜관찰(智慧觀察)
“일체 다라니문을 분명히 아는 지혜의 관찰이니라.”
일체 다라니문을, 모든 것을 기억하고 기억해서 지니고 다닌다. 다라니를 총지라고 하죠. 모든 불법을 전부 다 놓치지 않고 기억해서 가지고 있다. 그런 뜻입니다. 그것을 분명히 아는 지혜의 관찰을 보살은 또한 분명히 지니고 있어야 되는 것이죠.
어일체세계(於一切世界) 보설정법(普說正法) 지혜관찰(智慧觀察)
“일체 세계에서 바른 법을 널리 설하는 지혜의 관찰이니라.”
일체 세계에서 어떤 상황에서든지 정법을 널리 설하는, 바른 법을 널리 설하는 지혜의 관찰이 있어야 합니다.
앞에서 열거한 지혜의 관찰은 결국 부처님이 깨달으신 정법을 널리 설하기 위한 목적으로, 지혜의 관찰을 지니게 되는 것입니다. 보살은 그러한 지혜의 관찰을 가지고 있다.
입일체법계(入一切法界) 지혜관찰(智慧觀察)
“일체 법계에 들어가는 지혜의 관찰이니라.”
일체 법계에 들어가는 지혜의 관찰이다.
모든 세계는 다 법이 있고, 그래서 또 법계(法界)라고도 표현을 합니다. 진리의 세계죠.
거기에 들어가서, 들어간다는 말은 뭐라고요?
혼연일체가 되는 것이다.
나와 혼연일체가 되는 것이다. 아는 정도에 그치지 않고 그 속에 푹 젖어드는 것을 들어갈 입(入)자로 씁니다.
그러니까 일체 법계에 들어가는 지혜의 관찰을 보살은 가지고 있다.
지일체시방불가사의(知一切十方不可思議) 지혜관찰(智慧觀察)
“일체 시방의 불가사의를 아는 지혜의 관찰이니라.”
일체 시방의 불가사의 시방에는 불가사의한 일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아무리 불가사의 하다 하더라도 보살은 그것을 다 속속들이 알고 파악할 수 있는 지혜의 관찰을 가지고 있다.
지일체불법지혜광명무유장애(知一切佛法智慧光明無有障礙) 지혜관찰(智慧觀察)
“일체 불법의 지혜 광명이 장애가 없음을 아는 지혜의 관찰이니, 이것이 열이니라.”
일체 불법의 지혜 광명이 장애가 없음을 안다.
일체 불법은 지혜 광명을 지니고 있고, 그 지혜 광명에는 본래 장애가 없습니다. 그래야 불법의 지혜 광명이라고 할 수 가 있는 거죠.
그 자체는 장애가 있을 수 없습니다.
사람이 불법의 지혜 광명을 알려고 할 때 그 사람에게 장애가 있는 거죠. 그런데 불법의 지혜 광명에는 장애가 없습니다. 그러한 이치입니다.
불법의 지혜 광명이 장애 없음을 아는 지혜 관찰이니 이것이 열이니라.
그래 보살은 이러한 내용까지도 휑하니 잘 꿰뚫어 아는 지혜의 관찰이 있다. 이런 뜻입니다.
보살은 열 가지 법을 말함이 있다
‘보살은 열 가지 법을 설함이 있다’ 그랬습니다.
설법(說法)이라고 했어요. 유십종설법(十種說法)
*
“불자여, 보살마하살은 열 가지 법을 말함이 있으니 무엇이 열인가.”
설일체법(說一切法) 개종연기(皆從緣起)
“이른바 일체 법이 다 인연으로부터 생긴 것을 말하며”
첫째 일체법이 개종연기라 그랬어요.
일체법(一切法)이 개종연기(皆從緣起)라.
부처님이 무엇을 깨달았나? 라고 이야기 할 때, 연기의 이치를 깨달았다.
일체법이 다 연기로부터, 인연으로부터 생겼다고 하고 인연으로부터 소멸한다고 하는 이치를 깨달았다.
이렇게 딱 한마디로 표현합니다.
거기에 대해서는 아무도 반기를 들지 못해요.
또 다른 표현으로는 ‘부처님이 마음을 깨달았다’‘진리를 깨달았다’ 다 일부 맞는 말이기는 한데, 그래도 가장 적확한 표현이 ‘연기(緣起)의 이치를 깨달았다’
인연으로 일어나고 인연으로 소멸한다.
인연으로 생기고 인연으로 없어진다.
모든 것은 전부, 사물이든 사건이든 간에 전부 인연으로 생기고 인연으로 소멸한다고 하는 이치를 깨달았다.
그렇습니다.
그래서 여기서 법을 설한다.
보살에게는 열 가지 설법이 있다 했는데 첫째 조항이 ‘일체법이 개종연기다’ 라고 하는 것을 들고 있습니다.
다 인연으로부터 생긴 것을 설한다.
당연한 거죠.
설일체법(說一切法) 개실여환(皆悉如幻)
“일체 법이 모두 환술과 같음을 말한다.”
환술(幻術)과 같다. 환영(幻影)과 같다.
그것도 역시 연기로부터 생겼으니까, 인연으로부터 생겼으니까 인연으로부터 소멸하고, 인연이 흩어지면 다 사라져 버립니다.
사물이든 사건이든 부귀든 영화든 무슨 명성이든 벼슬이든 모든 것이 따지고 보면 환영과 같고 환술과 같습니다.
그렇지 않은 것이 도대체 뭐가 있습니까?
우리 마음이 그렇고, 몸뚱이가 그렇고 명예가 그렇고 부귀가 그렇고 영화가 그렇고 그 어떤 벼슬도 그렇습니다.
물질이든 명예든 그렇지 아니한 것은 이 세상에 아무 것도 없습니다.
일체법이 모두 다 환술과 같음을 설한다.
어떻게 보면 좀 ‘세상을 부정적으로 보는 견해가 아니냐’ 이런 말을 할 수도 있습니다만, 뭐라고 평하든 간에 이것이 사실입니다. 이것이 사실인 것을 어떻게, 이러한 사실을 꿰뚫어 아는 불보살들이 말을 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바로 설법의 두 번째 조항입니다.
설일체법(說一切法) 무유괴쟁(無有乖諍)
“일체 법이 어기거나 다툼이 없음을 말하느니라.”
일체법이 괴쟁(乖諍) 어기고 다툼이 없다. 무유괴쟁(無有乖諍)이라. 다툼이 없다.
중생들의 입장에서는 여러 가지 어기는 일, 다투는 일, 갈등 되는 일들이 많은데 그건 중생들이 알량한 자기 욕심에 의해서 그런 일이 생기는 것이고, 법 그 자체는 그런 것이 있을 수가 없다 하는 내용입니다.
설일체법(說一切法) 무유변제(無有邊際)
“일체 법이 끝이 없음을 말하며”
변제(邊際)가 없다. 일체법은 끝없이 연기연멸 하면서 끊임없이 반복합니다. 그래 끝이 없습니다.
아무리 오랜 세월이 흐른다 하더라도 법이 끝날 날은 없습니다. 그래서 일체 법이 변제가 없다. 끝이 없다.
그걸 이야기 한다는 것입니다.
설일체법(說一切法) 무소의지(無所依止)
“일체 법이 의지한 데 없음을 말하며”
일체법은 전부 연기연멸이기 때문에 꼭 무엇을 의지한다 그런 것은 있을 수가 없습니다.
그저 저절로 자연스럽게 인연에 의해서, 인연에 의해서 생기고 없어지기 때문에 무엇에 의지한다. ‘권력에 의지한다. 돈에 의지한다’ 그런 것은 해당도 안되는 이야기지만 아무튼 의지한 데 없습니다. 일체법은요.
설일체법(說一切法) 유여금강(猶如金剛)
“일체 법이 마치 금강과 같음을 말한다.”
금강과 같다고 하는 말은 이 이치는 일체법은 다 무상하고 연기연멸하고 하지만 그러한 이치는 변함이 없습니다. 그게 금강과 같다는 뜻입니다.
일체법의 그러한 이치는 금강과 같다.
금강은 변하지 않고 말하자면 영원히 있는 것이다.
여기서 까딱 잘못 생각하면 모순이 있는 것처럼 이야기가 되는데, 현상은 도대체가 무상(無常)하고 연기연멸(緣起緣滅)해서 한순간도 가만히 있지를 않습니다. 그렇게 한순간도 가만히 있지 않는다고 하는 이 사실, 이 이치가 금강과 같다는 것입니다.
이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쉽게 표현하면 ‘변한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이렇게 말하면 되겠습니다.
설일체법(說一切法) 개실여여(皆悉如如)
“일체 법이 모두 다 여여함을 말하며”
일체 법이 모두 다 여여함을 말하며 이걸 혹 진여와 같음을 말한다 이렇게도 표현하는데 다 여여함을 말한다.
여여하다는 것입니다.
현상은 끊임없이 순간순간 일초일초 변화무상(變化無常)하지만 그 본질에 있어서는 텅 비어서 본래 공(空)한 것입니다.
텅 비어서 본래 공하기 때문에 바람에 의해서 바다의 물결이 끊임없이 치지만 물이라고 하는 사실은 여여합니다.
언제나 여여합니다.
큰 물결이든 작은 물결이든 동쪽에서 치는 물결이든 서쪽에서 치는 물결이든 물 자체로서는 여여하다고 하는 이치입니다.
일체법은 다 그래요. 그러한 이치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설일체법(說一切法) 개실적정(皆悉寂靜)
“일체 법이 모두 다 고요함을 말하느니라.”
적정(寂靜)하다는 뜻입니다.
일체법이 다 적정하다. 고요하다.
앞에서 물의 비유를 들었습니다만 현상은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변화하고 변화무쌍(變化無雙)하게 돌아가지만 그러나 그 본질에 있어서는, 본체에 있어서는 또는 실상에 있어서는 정말 고요하고 적정하다고 하다는 뜻입니다.
설일체법(說一切法) 개실출리(皆悉出離)
“일체 법이 모두 다 벗어남인 것을 말하며”
출리(出離)입니다. 벗어남이라고 하는 것은.
일체법은 다 알고 보면 번뇌에서 벗어나고 생사에서 벗어나고 고통에서 벗어나고, 벗어나는 그런 이치가 일체법 속에 다 저절로 내재 되어 있습니다.
설일체법(說一切法) 개주일의(皆住一義) 본성성취(本性成就)
“일체 법이 다 한 가지 이치에 머물러 본성품을 성취함을 말하나니, 이것이 열이니라.”
일체법이 다 한 가지 이치에 머물러, 본성품을 성취함을 말하나니 이것이 열이니라.
일체법이 한 가지 이치, 하나의 이치에 머물러서 그 본성이 성취가 된다. 본성을 그대로, 말하자면 ‘가지고 있다’ 이런 의미가 되겠습니다.
무엇을 달리 다른 것을 성취하는 것이 아니고, 본성 그대로 존재하나니 이것이 열이니라.
*
“만일 모든 보살들이 이 가운데 편안히 머물면 곧 능히 훌륭하고 교묘하게 일체 법을 말하느니라.”
이러한 열 가지에 머물게 되면, 그 어떤 법도 아주 뛰어나고 훌륭하게 설법을 할 수가 있다. 법을 설할 수가 있다.
그렇습니다.
불교를 설명하는 방법이 이 열 가지 설법이라고 하는 것 가운데 다 있습니다.
맨처음에 일체법이 개종연기라. 다 인연으로부터 일어났다. 하는 이 이치만 가지고도 설명 안 되는 것이 없습니다.
그다음으로 일체법은 다 환영과 같다.
‘연기로 좇아 일어나고 연기로 좇아 멸한다’ 라고 하는 것과 ‘환영과 같다’고 하는 것은 같은 맥락인데, 설명을 풍부하게 하도록 그렇게 짜여져 있습니다.
이러한 것이 보살들이 말하는 설법의 방법, 또 설법의 종류, 설법할 때 이러한 이치를 적용시켜서 설법한다 하는 내용이 되겠습니다.
성불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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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_()()()_
리얼한 정리 감동입니다
수고에 감사드려요
부처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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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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華嚴經 離世間品 善法行
*보살의 열 가지 버리지 않는 깊고 큰 마음
1모든 부처님의 깨달음을 원만히 이룸
2일체 중생을 교화하고 조복시킴
3일체 모든 佛種性을 끊지 않음
4모든 선지식 친근함
5일체 모든 부처님께 공양함
6오로지 모든 대승공덕의 법만을 구함
7모든 부처님 처소에서 청정한 행을 닦아 청정한 계행을 가짐
8모든 보살 친근
9모든 불법을 구하여 방편으로 보호해 지님
10 모든 보살의 행과 원을 만족하고 일체 모든 불법을 모음
華嚴經 離世間品 眞實行
*보살은 열 가지 지혜의 관찰이 있다
1아주 뛰어나게 잘 분별하여 일체 법을 연설함
2삼세 일체 선근을 아주 확실하고 분명하게 앎
3일체 모든 보살의 행과 자재하게 변화함
4일체 모든 법과 이치의 문을 분명히 앎
5일체 모든 부처님의 위엄과 힘을 분명히 앎
6일체 다라니문을 분명히 앎
7일체 세계에서 바른 법을 널리 설함
8 일체 법계에 들어감
9일체 시방의 불가사의를 앎
10일체 불법의 지혜 광명이 장애가 없음을 앎
*보살은 열 가지 법을 설함이 있다
1일체 법이 다 인연으로부터 생긴 것
2일체 법이 모두 환술과 같음
3일체 법이 어기거나 다툼이 없음
4일체 법이 끝이 없음
5일체 법이 의지한 데 없음
6일체 법이 마치 금강과 같음
7일체 법이 모두 다 여여함
8일체 법이 모두 다 고요함
9일체 법이 모두 다 벗어남
10일체 법이 다 한 가지 이치에 머물러 본성품을 성취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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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 법문 뒤에 곧 바로 복습하니 더 쏙쏙 잘 이해 됩니다.
혜명화님, 수고하셨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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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方廣佛華嚴經 大方廣佛華嚴經 大方廣佛華嚴經...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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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대방광불화엄경 나무대방광불화엄경 나무대방광불화엄경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