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삼국지>를 보면, 오나라의 장수 주유가 피를 토하고 죽는 장면이 나온다. 주유가 조조의 백만 대군을 간신히 물리치고 그 포상으로 형주 땅을 차지하려고 갔더니, 어느새 약삭빠르게 촉나라 군대가 이미 형주를 차지하고는, 뒤늦게 달려온 주유를 향해 손가락질하며 비웃고 놀렸다고 한다. 그러자 주유는 그 분함을 참지 못하고 크게 화를 내다가, 그만 피를 토하고 말 위에서 떨어져 숨을 거두었다고 한다. 얼마나 분했으면 피까지 토하고 죽었을까?
조선시대 임금 중에는 선조가 피를 토했다는 기록이 나온다. 선조 8년 2월 6일과 12일의 <왕조실록> 기록을 보면, 선조가 본래 타고난 비위가 허약하여 평상시에도 식사를 자주 걸렀었는데, 병간호할 때부터 슬픈 피로가 극도에 이르렀고, 더욱이 상사(喪事)를 만난 뒤에는 그 괴로움이 더욱 극도에 이르러 5일 동안 물 한 모금조차 마시지 않고 가슴을 치며 뛰다가 급기야 각혈(?O血)까지 했는데, 이는 몸이 너무 지쳐서 중기(中氣)가 매우 허약해진 것이라고 얘기하는 장면이 나온다.
원래 피를 토하는 것은 크게 각혈[객혈(喀血)]과 토혈(吐血)로 나눈다. 여기서 폐나 기관지 같은 호흡기에서 나오는 출혈을 각혈이라 부르고, 식도나 위와 같은 위장관 계통에서 나오는 출혈을 토혈이라고 부른다. 그래서 각혈은 보다 선홍색으로 밝은 빛을 띠며 거품이 섞여 있는 경우가 많고, 토혈은 보다 검은색으로 어두운 빛을 띠며 음식찌꺼기가 섞여 있는 경우가 많다. 선조의 경우에는 원래 위장기능이 좋지 않은 상태에서 식음을 전폐하여 더욱 나빠진 상태에서 피를 토한 것이기 때문에, 위장관 출혈일 가능성이 높다.
또한 이 당시 진료를 했던 의관(醫官)도 입진(入診)하고 나와서 “맥후(脈候)가 이상하여 병의 증세가 이미 드러났으니 조보(調保)가 실로 급하다. 만약 주육(酒肉)과 강계(薑桂)로써 기혈을 보양하지 않는다면 병이 날로 깊어져서 후회해도 미칠 수 없을 것이다”라고 이야기한다. 몸을 따뜻하게 하는 술과 양기를 돋우는 고기, 그리고 따뜻한 성질의 생강과 계피를 처방한 것을 보면, 위장을 따뜻하게 보하고 기운을 돋우려 했음을 알 수 있다.
이후에 다시 또 선조가 피를 토했다는 기록은 없기에, 이 당시의 각혈은 일시적인 출혈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순조 30년 윤4월 22일의 <왕조실록>에 나오는 왕세자가 했던 각혈의 예후는 그렇게 간단하게 끝나지 않았다. 4월 10일부터 세자에게 대단치 않은 병이 있었는데, 얼마를 지나지 않아 갑자기 각혈하는 병을 앓게 되었고, 나타나는 증세가 여러 번 바뀌어 처방(處方)과 약(藥)이 그 효과를 아뢰지 못하다가, 급기야 5월 6일에 22세의 나이로 사망한다. 그동안 왕세자에게 투약된 처방을 살펴보면, 음(陰)을 자양하고 화(火)를 가라앉히는 ‘자음강화탕(滋陰降火湯)’으로 시작해서, 복령보심탕(茯?r補心湯) 귀용지황탕(歸茸地黃湯) 청심소요산(淸心逍遙散) 가미사화탕(加味瀉火湯) 죽여등심다(竹茹燈心茶) 용뇌안신환(龍腦安神丸) 가감이사탕(加減二四湯) 청화음(淸火飮) 인삼과죽음(人蔘瓜竹飮) 자음화담탕(滋陰化痰湯) 등의 처방 등이 투약되는데, 대부분 진액이 부족하여 화가 상부로 치솟는 증상을 치료하는 처방으로서, 폐결핵과 같은 만성 소모성 호흡기 질환에 응용될 수 있는 처방들이다.
각혈이든 토혈이든 간에 피를 토하게 되면, 당연히 호흡기와 위장관에 출혈을 일으킬 만한 원인 질환이 있는지부터 파악해야 한다. 그 원인 질환을 치료해야 근본치료가 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