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1) - 조선시대 궁중에서 개발한 음식
오늘도 조선시대 왕들의 건강법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왕처럼 먹고 왕처럼 살아라>의 저자
장동민 한의사, 연결돼 있습니다.
(전화 연결 - 인사 나누기)
Q1. 조선시대 궁중에서
특별히 개발한 음식이 있다면서요?
네 있습니다. 바로 탕평채인데요, 조선시대 세시풍속을 정리한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 의하면 1725년 경 조선시대 영조가 당쟁을 뿌리 뽑기 위해 탕평책(蕩平策)을 실시하였는데요. 이것을 논하는 자리의 상에 처음 올랐던 음식이라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고 합니다.
당파정치의 폐해로 아들을 잃은 영조는 정치적 화합을 실현하는 구심점으로 탕평책을 고안해냈다고 하는데요, 대신들과 탕평책의 경륜을 펴는 자리에서 그 의미를 환기시키기 위해, 사서오경 중의 하나인 <서경>에 나오는 조문을 본 따서, 탕평채란 음식을 선보였다고 합니다.
Q2. 아, 한정식 집에 가면 꼭 나오는 음식이
바로 탕평채죠?
네 맞습니다. 넓은 그릇에 얇게 썬 녹두묵과 양념해서 볶은 고기, 약간 데친 숙주와 미나리, 물쑥 등을 함께 넣고 초간장으로 고루 무쳐 접시에 담고 가늘게 채 썬 달걀지단과 김채, 실고추 등을 웃기로 얹어 먹는데요. 그 음식의 맨 아래에는 기름이라도 바른 듯 반질반질한 하얀 녹두묵이 있는데, 이 녹두묵은 매끈한 감촉이 있어 주안상에 꼭 오르는 음식이라고 합니다.
묵 위엔 향기가 좋은 미나리와 숙주나물, 그리고 달걀흰자와 노른자를 따로 부쳐 잘게 채 썬 것이 얹어져 있으며, 또한 김과 깨소금도 뿌려져 있어서 흰색과 노란색, 녹색과 검은색이 조화를 이루어 매우 아름다운 색을 띠게 됩니다. 또한 간장에 고소한 참기름과 식초를 탄 양념장이 재료에 골고루 배어, 그 맛도 매우 좋으며 영양균형도 매우 좋다고 합니다.
Q3. 탕평채는 모양과 맛만 좋은 게 아니라..
영양 균형까지 고려한 그야말로 건강식품이네요?
네 맞습니다. 청포묵의 탄수화물뿐 아니라 계란 지단과 고기의 단백질, 김과 미나리와 숙주의 비타민과 무기질을 고르게 섭취할 수 있기 때문인데요, 이는 영조의 의도가 재현된 것으로 이름 자체가 아주 기막힌 비유입니다.
이처럼 어느 쪽에도 치우침 없이 고르다는 뜻을 지닌 탕탕평평(蕩蕩平平)이란 말에서 유래한 탕평채는 오색의 고명과 더불어 청포묵의 밝은 흰색이 어우러져 색깔에서도 조화를 이루고요. 매끈한 묵의 감촉과 사각거리는 야채의 질감과 맛으로 인해 맛으로도 조화를 이루고, 영양학적으로도 완벽한 균형을 갖춘 음식이었던 것이지요.
Q4.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궁금한 점이 있는데요.
우리가 알기로 사상체질의학에서는
각각 체질에 맞는 음식이 있다고 하잖아요.
그러면 탕평채처럼 여러 가지를 골고루 먹기 보다는
체질에 맞는 음식만 골라먹어야 하지 않나요?
좋은 말씀인데요, 탕평채가 모든 음식을 골고루 균형되게 먹으라고 권장하는 의미라고 생각해 볼 때, 이 시점에서 사상체질의학에 대해 잠시 생각해보아야 하는 것이 맞습니다. 이 사상체질의학은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에 동무 이제마가 사심신물의 모든 구조를 4원 구조로 파악하는 사상철학의 개념을 내어놓으면서, 의학에도 이 이론을 도입하여 발생된 의학입니다.
기존의 한의학이 음양오행의 도가(道家)적인 기본 바탕에서 시작되었다면, 사상의학은 인의예지의 유학적인 구조에서 비롯되었던 것이지요. 우리나라의 고유한 체질개념이기도 하며, 사극 드라마로도 만들어졌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이 개념에 대해 대략적으로는 알고 있는 편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제마가 이 사상의학을 완벽하게 완성 짓지 못하고 사망했다는 데에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후대의 임상가와 의학자들이 자기 나름대로의 체질개념과 변증방법을 제시하고 주장하게 되었으니, 결과적으로 일반인들뿐만 아니라 한의사들에게도 많은 혼란을 주고 있는 현실입니다. 특히 제 생각으로는 가장 심한 오류 중의 하나가 음식을 가려먹는 방법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이제마의 <동의수세보원>에는 구체적으로 음식을 가려먹으라는 이야기가 없습니다.
Q5. <동의수세보원> 책에는
음식 가려먹으라는 얘기가 없다고요?
네 맞습니다. 물론 체질적으로 편중되게 좀 더 이로운 음식과 해로운 음식은 분명히 있습니다. 하지만 제 생각에 오히려 사람들은 이를 잊고 살아야 한다고 봅니다. 음식을 가려먹을 것이 아니라 오히려 골고루 먹는 것이 몸에는 더 이롭다고 보는 것이, 설사 일정부분 몸에 해로운 요소가 들어왔더라도 인체의 해독능력으로 그 정도는 충분히 소화해낼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지요.
일전에 환자와 같이 오셨던 보호자 한 사람이 말하길, 자신은 “체질이 태양인인데 평소에 몸이 너무 말라 고민하다가 오로지 살찌고 싶은 일념으로 태양인에게 이로운 음식만 먹고 있다.”라고 말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살이 찌던가요?”하고 물으니 고개를 저었는데요. 다시 덧붙여 묻기를, “만약 자녀분이 잘 먹지 않아서 바짝 말라있다면 ‘너는 태양인이니 태양인 음식만 편식하거라.’ 라고 말하시겠습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Q6. 그랬더니, 환자분께서 뭐라고 하시던가요?
말문이 막히셨던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웃기만 하신 적이 있었는데요. 실제로 많은 곳에서 체질 음식에 대해 이야기들을 하고 있지만, 아직도 상당히 이견이 많은 편입니다.
앞서 말했듯이 사상의학은 완성된 학문이 아니어서, 동무 이제마의 뒤를 잇는 후학들이 동무가 제시한 원리에 자신의 임상경험과 이론을 더한 경우가 많아 중복되거나 이견이 있는 부분이 많이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특수한 경우가 아닌 일반 적인 경우에는 음식을 가리지 않고 골고루 섭취하는 것이 가장 옳은 것이며, 만약 부득이 음식을 가려먹고 싶다면 꼭 전문 한의사와 상담부터 하시는 것이 좋습니다.
Q7. 그럼, 탕평채처럼 조선시대 궁에서 개발한
특별한 음식이 또 있을까요?
네 있습니다. ‘신선로’라는 음식이 있는데요, 이 신선로는 구자탕(口子湯), 열구자탕(悅口子湯), 탕구자(湯口子)라고도 합니다. 여러 가지 고기와 야채, 해산물을 각각 볶아 잣 호두 은행 같은 것을 색깔 배색이 잘 맞도록 예쁘게 돌려 담고, 가운데에 굴뚝처럼 구멍이 뚫려 있는 그릇에 담아 장국을 부어 끓이면서 먹는 음식인데요, 그 그릇에 뚫린 구멍에 숯을 넣어 끓여 먹는 것이 정통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신선로는 조선시대 연산군 때 한림호당(翰林湖堂)을 지낸 정희량(鄭希良)이 무오사화(戊午士禍)를 겪은 다음 갑자년(甲子年)에 다시 사화가 있을 것을 예견하고 속세를 피하여 산중에 은둔하여 살 때, 수화기제(水火旣濟)의 이치로 화로를 만들어 거기에 채소를 끓여 먹었는데, 그의 기풍이 마치 신선과 같았다 하여 그릇을 신선로라 하였다고 전합니다.
Q8. 신선로를 ‘구자탕’이나 ‘열구자탕’으로 불렀다고 하셨는데요.
무슨 뜻인가요?
네. 신선로의 또 다른 이름인 ‘열구자탕’ 이 ‘입맛을 돋우는 탕’ 이라는 뜻인데요. 그 이름만 보아도 신선로의 맛이 아주 좋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요.
신선로 맨 밑바닥에는 쇠고기를 채 썰어 갖은 양념한 것이나 고기에 무를 섞어 곤 것을 함께 썰어 넣으며, 그 위에 생선전과 처녑전, 간전, 미나리 또는 파 초대를 담고, 그 위에 해삼과 전복을 얹고, 맨 위에 알지단 황백, 표고버섯, 석이버섯, 붉은 고추, 쇠고기 완자, 호두 깐 것, 은행 볶은 것 등을 색조를 맞추어 돌려 담았다고 합니다. 이렇게 담은 것에 쇠고기 맑은장국을 붓고 중앙 부위에 있는 노(爐)에 숯불을 담아 끓이면서 먹었다고 합니다.
지금까지 장동민 한의사와 함께
‘조선시대 궁중에서 개발한 음식’에 대해
살펴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