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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광주대교구 꾸르실리스따 원문보기 글쓴이: 이선정스테파노
2024년 8월 19일 월요일
[(녹) 연중 제20주간 월요일]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오늘 전례
[백] 성 요한 외드 사제
말씀의 초대
주님께서는 에제키엘 예언자의 아내의 죽음을 예표로, 이스라엘의 성전이 더럽혀져도 슬퍼하지도 울지도 못할 것임을 알려 주신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완전한 사람이 되려거든 재산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라고 하신다(복음).
제1독서
<에제키엘이 너희에게 예표가 되고, 그가 한 것처럼 너희도 하게 될 것이다.>
▥ 에제키엘 예언서의 말씀입니다. 24,15-24
15 주님의 말씀이 나에게 내렸다.
16 “사람의 아들아, 나는 네 눈의 즐거움을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너에게서 앗아 가겠다.
너는 슬퍼하지도 울지도 눈물을 흘리지도 마라.
17 조용히 탄식하며, 죽은 이를 두고 곡을 하지 마라.
머리에 쓰개를 쓰고 발에 신을 신어라.
콧수염을 가리지 말고 사람들이 가져온 빵도 먹지 마라.”
18 이튿날 아침에 내가 백성에게 이 이야기를 해 주었는데,
저녁에 내 아내가 죽었다.
그다음 날 아침에 나는 분부를 받은 대로 하였다.
19 그러자 백성이 나에게 말하였다.
“당신이 이렇게 하는 것이 우리에게 무엇을 뜻하는지 일러 주지 않겠습니까?”
20 그래서 나는 그들에게 대답하였다.
“주님께서 이런 말씀을 나에게 내리셨습니다.
21 ‘이스라엘 집안에게 말하여라. 주 하느님이 이렇게 말한다.
나 이제 너희의 자랑스러운 힘이고
너희 눈의 즐거움이며 너희 영의 그리움인 나의 성전을 더럽히겠다.
너희가 두고 떠나온 너희 아들딸들은 칼에 맞아 쓰러질 것이다.
22 ─ 그런데도 너희는 내가 한 것처럼 하게 될 것이다. ─
콧수염을 가리지도 못하고 사람들이 가져온 빵을 먹지도 못할 것이다.
23 머리에는 쓰개를 그대로 쓰고 발에는 신을 그대로 신은 채,
슬퍼하지도 울지도 못할 것이다.
너희는 너희 죄 때문에 스러져 가면서 서로 바라보며 한탄할 것이다.
24 에제키엘이 이렇게 너희에게 예표가 되고,
그가 한 것처럼 너희도 하게 될 것이다.
이 일이 일어나면, 그제야 너희는 내가 주 하느님임을 알게 될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 음
<네가 완전한 사람이 되려거든 너의 재산을 팔아라. 그러면 네가 하늘에서 보물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9,16-22
그때에 16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다가와,
“스승님, 제가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면 무슨 선한 일을 해야 합니까?” 하고 물었다.
17 그러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어찌하여 나에게 선한 일을 묻느냐?
선하신 분은 한 분뿐이시다. 네가 생명에 들어가려면 계명들을 지켜라.”
18 그가 “어떤 것들입니까?” 하고 또 묻자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살인해서는 안 된다. 간음해서는 안 된다.
도둑질해서는 안 된다. 거짓 증언을 해서는 안 된다.
19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여라.’
그리고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다.”
20 그 젊은이가 “그런 것들은 제가 다 지켜 왔습니다.
아직도 무엇이 부족합니까?” 하고 다시 묻자, 21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네가 완전한 사람이 되려거든, 가서 너의 재산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라.
그러면 네가 하늘에서 보물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와서 나를 따라라.”
22 그러나 그 젊은이는 이 말씀을 듣고 슬퍼하며 떠나갔다.
그가 많은 재물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복음이 잘 이해되지 않아 앞뒤로 다시 보았습니다. 십계명뿐만 아니라 이웃을 자신보다 더 사랑하라는 계명까지 지켰는데 무엇이 아직 불완전하였을까요? 재산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는 것이 그 계명들을 모두 지키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이었을까요? 그는 왜 따라나서지 못하였을까요?
예수님을 따라오라는 말씀이 어려웠을 수도 있겠지만, 복음서에서는 “그가 많은 재물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태 19,22)라고 말합니다. 그에게 어려웠던 것은 그 재물을 내려놓는 것이었습니다. 어쩌면 그에게, 많은 재물을 가진 채 평생 자선을 베풀며 살라고 하였다면 기꺼이 그렇게 하였을 것입니다. 계명을 잘 지키는 사람이었다면 이미 그렇게 하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그에게 요구하신 것은, 지금의 상태에 머물러 있으면서 선행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처지를 흔들어 놓는 것이었습니다.
부자 청년은 그리할 수 없었습니다. 그가 가진 재물이 많지 않았다면, 처음부터 가진 것이 없었다면 겪지 않았을 어려움이었을 것입니다. 그는 가진 것이 많고 능력이 있었기 때문에 자기 힘으로 선한 일을 해서 하늘 나라를 얻으려고 하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그것 없이 어린이처럼 따라오라고 하십니다. 우리가 재물이 아닌 다른 어떤 것을 가졌다 하여도, 그것 때문에 하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완전한 사람이 되려거든”(19,21) 가지고 있는 것을 하늘 나라를 위하여 모두 내놓고, 빈 몸으로 길을 나서야 합니다.(안소근 실비아 수녀)
재물과 관련해서 때로는 용기도 필요하고, 때로는 지혜도 필요합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재물과 관련해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늘 고민해야 할 질문 한 가지가 있습니다. 과연 재물이 주님 나라 입국과 영원한 생명을 획득하는데 큰 걸림돌이 되는 것인가? 하는 질문입니다. 신앙인으로서 재물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가? 하는 고민입니다.
오늘 복음이 풍기는 뉘앙스는 재물이 천국과 영생으로 가는 길에 큰 장애물이 되는 듯한 분위기입니다. 그래서 이 대목에 대한 보다 진지한 성찰이 필요한 것입니다.
재물과 무관하게 살아가는 듯한 저희 수도자들에게도 이 부분은 참으로 큰 고민거리입니다. 적극적인 홍보 활동과 목숨을 건 후원 회원 확보로 막대한 부를 창출하는 공동체들이 있습니다. 그를 바탕으로 엄청난 규모의 수도원과 시설을 건립하고, 본인들도 모르게 서민들은 엄두도 못 낼 럭셔리한 생활을 하게 됩니다.
물론 가난하고 고통받는 이웃들을 위한 사랑의 실천도 많이 하십니다. 그러나 규모가 확장되면 될수록 청빈과는 거리가 먼 생활로 전락하고 맙니다. 벌써 그 공동체는 천국이나 영생과는 점점 거리가 멀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전적으로 탁발과 섭리에 의존하기에, 내일 먹을 양식도 확보되지 않고, 매일 라면으로 끼니를 때운다면, 거기서 오는 상대적 박탈감과 위화감이 만만치 않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청빈을 사는 데 있어서도 조화와 균형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관건은 재물을 어떻게 모으고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절대 부자들을 미워하거나 경멸하지 않으셨습니다. 정직하게 일해서 모은 재물은 주님이 주신 축복으로 여겼습니다.
그 재물을 통해 가족을 부양하고, 가난한 이웃을 위해 관대하게 나눌 때, 그러한 재물은 축복이요 선물로 변화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경계하시는 부는 부정한 방법으로 남을 짓누르고 축적한 천박한 부, 절대 나누지 않는 이기적인 부입니다. 그저 한도 끝도 없이 모으기만 모았지, 죽어도 나누지 않은 재물을 주님께서 슬퍼하실 부끄러운 부입니다.
가끔 형편에 맞지 않게 과도한 기부나 헌금을 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저는 즉시 따로 모시고 가서 차근차근 설명해드립니다. 바야흐로 백세 시대입니다. 앞으로 어떻게 되실지도 모릅니다. 자식들, 절대 확실한 보험이 아닙니다. 어떻게든 건강과 노후를 위해 지혜로운 선택을 하시기 바랍니다. 다 퍼주고 나중에 쫄쫄 굶다가 무료 급식소 신세 지면, 누구 책임입니까?
재물과 관련된 오늘 주님 말씀, 때로는 지혜가 필요하고 때로는 용기도 필요합니다. 우리가 재물에 너무 과도하게 집착하고 있지는 않은지? 재물이 주님보다 상위에 위치하고 있지는 않은지 잘 살펴보면 좋겠습니다.
우리 수도자들도 진지한 성찰이 필요합니다. 어찌 보면 우리에게 주어지는 24시간이라는 시간이 재물입니다. 우리 앞에 펼쳐지는 하루하루 우리네 남은 인생이 재물보다 더 중요한 자산입니다. 이 소중한 자산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 잘 계획해봐야겠습니다.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님
인터넷에서 감동을 주는 글을 읽었습니다. 오늘은 그 내용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사랑하는 딸을 먼저 보낸 어머니의 이야기입니다. 2009년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가 퍼져나갈 때입니다. 코로나 팬데믹처럼 공포의 대상은 아니었지만 사스에 걸리면 사망률이 높았습니다. 딸이 사스에 감염되어서 회복하기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당시 딸은 아이를 가진 산모였습니다. 산모의 남편은 딸과 함께 임진 중에 있는 아이도 하늘나라로 보내자고 했습니다. 엄마도 사위의 의견에 함께 했습니다. 그런데 의료진은 산모가 2달만 버텨주면 아이는 태어날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산모는 그렇게 2달을 버텨 주었고, 드디어 아이는 태어났습니다. 아기가 태어나면서 산모는 모든 힘을 바친 후에 하느님께 갔습니다. 의료진과 아이와 산모를 위해서 기도했던 사람들은 기뻐했지만, 산모의 남편과 산모의 부모는 웃지도 울지도 못하였습니다. 그렇게 태어난 아이가 어느덧 중3이 되었다고 합니다. 삶과 죽음은 둘이 아닙니다. 생사불이(生死不二)입니다.
음악인 노영심씨의 이야기도 있습니다. 노영심씨는 2009년 김수환 스테파노 추기경님이 선종하신 후에 추모 음악회를 준비했다고 합니다. 처음 나온 기획안은 예술의 전당에서 음악회를 개최하는 안이었다고 합니다. 비용은 5,000만 원 정도였다고 합니다. 노영심씨는 김수환 추기경님을 추모하는 음악회를 좀 더 의미 있게 하고 싶었고, 전국 교도소를 순회하면서 음악회를 개최하는 안을 내놓았다고 합니다. 한 번의 음악회도 좋지만 김수환 추기경님의 추모 음악회는 달라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준비 위원회도 그 안을 받아들여서 전국 교도소를 순회하면서 음악회를 하였고, 서울에 와서 사형제 폐지 음악회로 마무리 했다고 합니다. 노영심씨를 잘 모르지만, 노영심씨의 따뜻한 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교도소와 세상도 둘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밀과 가라지의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밀과 가라지가 밭에서 같이 자라고 있다고 하셨습니다. 선악불이(善惡不二)입니다. 영원한 생명은 미래가 아닙니다. 영원한 생명은 과거도 아닙니다. 영원한 생명은 시간의 차원이 아닙니다. 영원한 생명은 존재의 차원입니다. 그래서 영원한 생명은 바로 지금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믿는 자는 죽더라도 살고, 살아서 믿는 자는 영원히 살 것이다.” 지금 감동이 없다면, 지금 기쁨이 없다면, 지금 감사가 없다면 영원한 생명은 허상(虛像)일 뿐입니다.
칼릴 지브란은 ‘옷’이라는 이야기를 남겨주었습니다. “그대의 옷은 그대의 아름다움은 많이 가리면서도 아름답지 못한 것은 가리지 못하는 것. 그대는 옷으로 개인의 자유를 얻으려 하지만, 오히려 그것이 갑옷이 되고 사슬이 됨을 깨닫게 되리라. 그대가 옷을 좀 덜 입고 살을 좀 더 내놓아 태양과 바람을 더 많이 만날 수 있기를. 생명의 숨결은 태양 속에 있고, 생명의 손길은 바람 속에 있으므로. 잊지 말라. 부끄러움은 순수하지 못한 이의 눈을 가리는 방패일 뿐. 순수하지 못한 것이 거기 더는 있지 않을 때, 부끄러움은 오히려 마음의 족쇄, 마음의 얼룩이 아니고 무엇인가. 또한, 잊지 말라. 대지는 그대 맨발의 감촉을 기뻐하고, 바람은 그대의 머리카락과 장난치기를 갈망하고 있음을” 오늘 복음에서 한 젊은이가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영원한 생명을 얻고 싶다고 이야기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젊은이에게 길을 알려 주었습니다. “살인해서는 안 됩니다. 간음해서는 안 됩니다. 도둑질해서는 안 됩니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해야 합니다. 이웃을 자신처럼 사랑해야 합니다.” 젊은이는 규율과 율법이라는 옷을 잘 입고 있었습니다. 젊은이는 예수님께 무엇을 더 해야 하는지 묻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완전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옷을 입는 것이 아니라 옷을 벗으라고 하십니다. 재물, 명예, 권력이라는 옷을 벗으라고 하십니다. 체면, 가식, 율법이라는 옷까지 벗으라고 하십니다. 욕심, 시기, 질투라는 옷을 벗으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진정한 자아를 보라고 하십니다. 진정한 자아를 보면 누군가에게 묻지 않아도 하느님께로 가는 길이 보입니다.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하느님나라 가까이>
상지종 베르나르도 신부님
“가서 너의 재산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라.
그러면 네가 하늘에서
보물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마태 19,21)
나에게서
너에게로
다가가는
그만큼
하느님나라에
더 가까이
오늘의 성인
성 세발도 (Sebald)
활동년도 : +8세기경?
신분 : 은수자
지역 : 뉘른베르크(Nurnberg)
같은 이름 : 세발두스, 시니발도, 시니발두스, 쎄발도, 쎄발두스
독일 바이에른(Bayern) 지방 뉘른베르크의 수호성인인 성 세발두스(Sebaldus, 또는 세발도)는 라이크스발드(Reichswald)에서 은수자로 살면서 인근의 주민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였다. 처음에 그는 비첸차(Vicenza) 교외의 은수자였으나, 교황 성 그레고리우스 2세(Gregorius II) 때에는 로마(Roma)에서 지냈고, 성 그레고리우스 3세와 성 빌레발두스(Willebaldus, 7월 7일)가 독일로 갈 때 함께 갔다.
한번은 눈 오는 밤에 어느 농부의 헛간에 들었으나 추위 때문에 잠을 잘 수 없었다. 성 세발두스는 주인에게 불을 조금 피워달라고 청했지만 그 농부는 너무나 가난하여 불씨만 꺼지지 않을 정도로 산다고 말했다. 이에 성인은 농부의 부인에게 추녀의 고드름을 따다가 불 위에 놓으라고 하였는데, 그 부인이 시키는 대로 하자 불꽃이 크게 피어올랐다는 전설이 전해온다. 이외에도 맹인을 눈뜨게 한 기적을 비롯하여 그에게는 수많은 기적이 일어났다. 그는 이탈리아에서 시니발두스(Sinibaldus)라는 이름으로도 공경을 받고 있다.
성 루도비코 (Louis)
신분 : 주교
활동지역 : 툴루즈(Toulouse)
활동연도 : 1274-1297년
같은이름 : 누수, 루도비꼬, 루도비꾸스, 루도비쿠스, 루수, 루이, 루이스
성 루도비쿠스(Ludovicus, 또는 루도비코)는 시칠리아(Sicilia) 섬의 왕 카롤루스 2세(Carolus II)의 아들로 태어났다. 1284년 그의 부친이 아라곤(Aragun) 왕과의 해전에서 포로가 되었을 때, 석방 조건으로 그의 아들 세 명을 보내라는 요구가 받아들여져 성 루도비쿠스도 인질로 잡혀갔다. 그는 7년 동안 에스파냐의 바르셀로나(Barcelona)에서 지내면서 여러 가지 운동으로 체력을 단련하는 한편, 작은 형제회 회원들의 영향을 받아가며 공부하였다. 이윽고 그는 작은 형제회 회원과 함께 기거하면서 밤낮으로 기도하고, 철학과 신학 공부에 매진하였다. 1295년 그는 석방되었으나 아라곤 국왕의 딸과 결혼해야 한다는 조건이 붙었다. 그러나 그는 가난하고 겸손하신 예수를 따르기 위해 세속적인 모든 것을 물리치고는 “나의 왕국은 예수 그리스도 뿐이다”라고 외쳤다고 한다.
그 후 그가 툴루즈의 주교로 임명되었을 때, 교황 보니파티우스 8세(Bonifatius VIII)로부터 관면을 받고 23세의 나이로 사제 서품 후 착좌하였다. 그런 다음 그는 로마(Roma)로 가서 작은 형제회 회원으로서 서원하였다. 그는 가난한 수도자로서 주교직을 수행하였으나, 툴루즈 사람들은 그를 왕 못지않게 공경하였다. 그의 신심과 자태는 만인의 심금을 울렸다. 그는 주교관의 모든 화려한 물건은 배격하고, 작은 형제회의 회원답게 오로지 작은 형제회 회원에 알맞은 의복과 음식으로 만족하며 살았다. 그는 마르세유(Marseilles)의 작은 형제회 수도원에 안장되어 있다. 1317년 요한 22세(Joannes XXII)로부터 시성될 때 그의 모친도 생존해 있었다.
성 요한 에우데스(John Eudes)
신분 : 신부, 설립자, 설교가
활동연도 : 1601-1680년
같은이름 : 얀, 외드, 요안네스, 요한네스, 이반, 장, 쟝, 조반니, 조안네스, 조한네스, 존, 죤, 지오반니, 한스, 후안
성 요한 에우데스(Joannes Eudes)는 1601년 프랑스 노르망디(Normandie)의 아르장탕(Argentan) 근교 리(Ri)라는 마을의 유복한 가정에서 외과 의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14세 되던 해에 캉(Caen)에 있는 예수회 학교에서 공부하였으며, 결혼하기를 바라는 양친의 소망을 뿌리치고 1623년에 오라토리오회에 입회하였다. 파리(Paris)와 오벨빌리엘에서 수학한 그는 1625년 12월 20일에 사제로 서품을 받은 뒤 노르망디 지역에서 본당 사목에 전념하였다.
1625년과 1631년에 노르망디 지역을 급습한 전염병의 희생자를 돌보기 위해 활약하기도 했던 그는 이 시기에 설교가로서의 명성을 떨치기 시작하였다. 또한 얀센주의(Jansenism)의 강력한 반대자로서의 명성도 획득하였다. 그밖에도 고해성사 등의 성무 활동을 통해 다양한 계층의 신자들과 교류하였다.
오라토리오 회원으로서 사목활동에 종사하던 요한은 당시에 나타난 교회의 악한 표양을 날카롭게 비판하기도 하였다. 또한 점차 성직자 교육을 등한시하던 오라토리오회의 활동에 대해 반감을 갖게 되었으며, 만약 각 성당의 사제가 충분한 교육을 받지 못한다면 본당 사목 활동은 단지 일시적인 성공만을 할 수 있을 뿐이라며 성직자 교육을 강조하였다. 그는 또한 타락한 여성들을 구제하기 위한 사목에도 흥미를 보여, 1641년 평신도였던 장 드 베르니에르(Jean de Bernieres)와 가스통 드 렌티(Gaston de Renty)와 함께 성체회, 성모 방문 수녀회의 도움을 받아 캉에 ‘회개한 죄인들을 위한 보호소’를 세웠다.
요한은 1643년에 오라토리오회를 떠나 캉에서 새로운 사제회를 설립하였다. 그가 창립한 사제회는 재속 사제회로서 교구 신학교에서 성직자 양성과 본당 선교 활동을 통해 신자들에 대한 사목을 도모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였다. 그러나 오라토리오회 총장과의 불화 등의 이유로 그의 새로운 사제회는 오라토리오회와 얀센주의자들로부터 큰 도전을 받아 교황청의 인가를 받지 못하였다.
그러나 1650년 쿠탕스(Coutance)의 주교가 교구 내에 신학교를 설립해 달라고 요청하여 활기를 띤 이 사제회는 1851년에 교황청으로부터 인가를 받은 후 ‘예수 마리아 수도회’로 공식 명칭을 정하였으며 ‘에우데스회’(the Eudists)로도 불린다. 또 같은 해 2월 8일 교구 주교로부터 캉에 개설한 보호소를 새로 구성해 ‘착한 목자회’로 승인을 받았으며, 1666년에 공식적인 수녀회로서 교황의 인가를 받았다.
이 수녀회는 주로 ‘타락한 여성들’을 위한 구제 활동을 전개하였다. 요한은 1653년에 리지외(Lisieux)에, 1659년에는 루앙(Rouen)에, 1666년에 에브뢰(Evreux)에, 1670년에는 렌(Rennes)에 신학교를 세웠다.
오늘날 그가 널리 알려지게 된 계기는 예수 성심의 환시를 체험하고 그 신심을 전파시킨 성녀 마르가리타 마리아 알라코크(Margarita Maria Alacoque, 10월 16일)처럼 예수 성심의 신심을 전파하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한 사람들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그는 후에 예수 성심의 공경과 신심이 전파되고 축일이 제정되도록 하는데 선구자적인 역할을 하였다. 또한 성모 성심 공경의 보편화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성 요한 에우데스는 1909년에 시복되었으며, 1925년 교황 비오 11세(Pius XI)에 의해 시성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