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못 다 쓴 이야기를 좀 더 풀고 오늘 일을 써야겠다.
선배 교사 한 분이 이런 얘기를 한 적이 있었다.(여자 선생님인데 현재는 명퇴한 상태)
"내가 자식 교육에서 후회되는 것이 있어. 너무 아이들에게 순한 엄마였어. 훨씬 독한 엄마가 됐어야 우리 아이들에게 도움이 됐을텐데..... 기가 센 엄마들은 아이의 방만한 마음을 강하게 휘어잡아서 몰아붙이니까, 아이들이 어쩔 수 없이 따라가더라구. 결국 자식은 나중에 고맙다고 말하게 되지. 난 애들 의견을 너무 받아주다보니 이제 원망 듣는 엄마가 됐어. 속상하고 후회된다. 박 선생은 나처럼 하지마"
난 선배의 생각이 착각에서 비롯된 것이라 믿는다. 또는 자식 교육에 실패했다는 좌절감을 보상받으려는 변명에 불과하다.
요즘 아이들은 부모세대와 전혀 다른 패러다임에서 자랐기 때문에 기가 센 부모가 몰아붙이면 두 가지로 반응한다.
완전히 무너지거나(무기력, 우울증, 히키코모리 상태, 심한 탈선 등) 높은 목표를 설정하거나.
부모 뜻대로 움직여주는 아이들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부모를 만족시키는 아이들은 병치레 없이 학교성적이 잘 나오는 경우인데, 이런 아이들은 질문할 줄 모른다는 문제를 안고 있다. (그러고 보니 세 가지 반응이다)
그런데 대부분 성인이 되면 거의 달라진다. 무기력하거나 탈선을 일삼거나 허황된 목표를 설정하거나 질문할 줄 모르는 범생이 스타일, 어떤 유형이든 변신한다. 빠르면 20대 초반이고 늦으면 20대 후반이나 30대 초반에 크게 변한다. 자식 문제로 정말 걱정인데 대책이 없다면 10년 쯤 기다리시라. 거의 해결된다.
그런 여유와 기다림이 불가능한 경우에 일정한 프로그램에 집어 넣는다. 우리 학교도 그런 성격을 갖고 있다. 정작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위 3가지 유형 중에서 목표를 너무 높게 잡는 친구들에 대한 것이다. 이 녀석들은 부모나 교사 귀가 솔깃해지는, 기대하게되는 목표를 스스로 제시한다.
"엄마(아빠/선생님/하느님), 제가 비록 지금 부족함이 많지만 열심히 노력해서 ***목표를 꼭 이루겠습니다. 지켜봐주시고 격려부탁합니다."
이 얼마나 기특한 얘기인가!
유감스럽게도 아이의 그런 표현(말로 표현하기도 하고 행동으로 보여주기도 한다)은 거의 가짜라고 보면 된다.
무의식 속에 선택하는 전략이다. 완전히 무너지는 친구들은 부모의 기대가 더 이상 따라오지 못하도록 하기에 최적의 전략이다.
"그래, 알았다. 공부 안해도 된다. 아프지 말고, 경찰서에서 부르는 일 없고, 임신하는 일(시키는 일)만 없길 바란다"
이런 결과를 끌어내고 부모의 잔소리에서 벗어나려면 한 없이 무너지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다.(물론 이보다 더 어리석은 일은 분명히 없다)
하지만 이렇게 해방구를 창출하려면 한동안 큰 충돌이 일어난다. 전쟁 같은 갈등을 감당하기 어려운 아이들은 높은 목표를 설정하는 것으로 전략을 선택한다(이것도 무의속에서 이루어진다) 부모는 높은 목표 설정 자체에 만족하고(부모도 자기최면을 건다) 열심히 노력하는 아이에게 결과에 관계 없이 너그러워진다.
"애썼다. 최선을 다한 네 모습에 만족한다. 너도 상처 받지 마라."
이런 얘기를 듣는다면 작전 성공이다. 책을 선택해도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어려운 책을 고른다. 부모는 자기 아이 독해력 상태를 거의 모른다. 연주 연습곡도 어려운 명곡을 선택한다. 아침마다 중앙일간지를 읽는(척 한)다. 일요일에는 도서관에 간다(진짜로). 컴퓨터 게임은 별로 안하고 무언가 한다고 하며 책상에 오래 앉아있는다. 속지 마시라.
그럼 어떻게 하냐구? 아이의 작전이 어디서 비롯된 것인지 생각해보면 답이 보인다. 중요한 것은 무너져내린 아이들이나 허풍을 부리는 아이들이나 학교성적 잘 나와서 부모 만족시키는 아이들 이상으로 노력한다는 것이다.
이런 얘기들은 외부 강연에서 꼭 하는 말인데, 「미완의 화자」가 자유게시판에 올린 '좋은 입문서란?'에 들어있는 "무지는 나태의 결과가 아니라 근면의 성과입니다"와 같은 맥락이라고 본다.
절친한 후배(학번은 하나 아래, 나이는 한 살 위)가 25년동안 풍물에 푹 빠져있었다. 현직교사로는 최고봉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그런 후배가 6살 아래 선생님에게 지난 10년을 배우고 있었다고 한다. 그 선생님이 유인상. 국악인 유인상이 "인상(impression)"이란 타이틀로 개인공연을 한다고 함께 보러가자고 연락해왔다. 그래서 참석한 "인상" 공연.
우리가 아는 사물놀이도 제자와 함께 마지막에 했지만, 꽹과리 독주나 북 독주는 듣도 보도 처음이다. 네 명이 금속타악기만 가지고 하는 사물놀이도 신선한 충격이다. 창도 직접 한다.
삼성역 근처에 있는 국악전문공연장인 KOUS는 매진이 거의 없다고 하는데, 빈 자리가 전혀 없다. 다들 감동 받고 축복 받았다.
유인상은 서강대 불문학과를 들어갔다. 풍물동아리에 들어 재미로 장구와 꽹과리를 쳤다. 그리고 빠졌다. 진짜 공부에 돌입했다. 학교 수업에는 들어가지 않았다. 김덕수와 쌍벽을 이루는 이광수 선생님하고 산 속에 텐트를 치고 몇 년을 살면서 사사했다. 전국의 고수를 찾아다니며 배웠다. 배우고 또 배우며 연습하고 또 연습했다. 마지막으로 연습을 통해 자신의 목을 창을 할 수 있는 목으로 만들었다. 현재는 대학 강사로도 나가지만 계속 공부하고 연습한다.
하고 싶은 말은 유인상의 성공스토리가 아니고, 공연을 보면서 "돌이킬 수 없는 변화"를 겪은 유인상을 느꼈다는 것이다. 돈오점수의 전형으로 보였다. 계속해서, 죽을때까지 연습하고 공부하는 것을 '점수'로 표현할 수 있겠지만 '돈오'가 우리 아이들에게 가능하다고 본다. 유인상에게 돈오는 아마도 대학 동아리 경험에서 왔을 것이라 추측한다. 바로 선택에 있어 한없이 자유로운 조건이 돈오(頓悟)의 단초였을 것이리라.
우리 아이들이 고수가 되거나 대가로 성장하는 것은 단재학교를 떠나고 나서 시작될 것이다. 중요한 것은 청소년 시기에 '삘'충만해지거나 적어도 졸업 후에 돈오를 만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주는 것이 우리 교사가 할 일 이다.

참으로 신기한 공연이 있어서 소개한다. 강릉 단오제는 일종의 굿판이다. 단오날 한 달 전부터 제상에 올릴 술을 빚는일부터 단오굿이 시작된다. 주인공은 무당(박수)이다. 부산 동래 별신굿, 강릉 단오굿, 영덕 오구굿, 이렇게 세 굿이 동해안의 자연환경을 배경으로 전래되는 3대굿이다. 오구굿은 사람이 죽었을 때 망자의 넋을 위로하는 굿이다. 굿판에는 타악기와 창과 춤이 함께 한다. 종합예술선물세트다. 그런 굿을 20시간 연속으로 진행한단다. 그게 가능해?
졸면서, 화장실에 왔다갔다 하면서, 커피 빼 마시면서, 바게트 뜯어먹으면서 1박2일 무당과 함께 삶과 죽음을 구경하는 퍼포먼스. 흥미롭다.
공부는 지루하고 괴로우면 할 수 없다. 그럴 필요도 없고. 그러나 예술은, 청소년 시기에 지루하고 괴로운 것을 관통하며 체험할 필요가 있다. 이런 공연도 있으니 참고하시라고 소개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