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발원(發願)'

두 달前 은사스님이 꼭 읽어 보라고 주신 소설책을 어제서야 다 읽었다. 평소 책 읽는 속도가 워낙 느리고 읽을 때는 내용 자체에 몰입해서 읽지만 도중에다른 일들이 다가와 흐름이 끊어지면 그 책에 대해 한참을 놓치게 되는 과정을 반복하다 보니 책 분량에 비해 시일이 오래 걸렸다. 그래도 내게는 김훈의 ‘칼의 노래’ 이후 모처럼 완독(完讀)한 소설책이 되었다. 詩人으로 더 알려진 김선우 작가가 신라시대 원효스님과 요석공주와의 이야기를 새롭게 그려낸 소설 ‘발원(發願)’이 그 책이다. 나라의 통치자들이 삼한통일이라는 대의명분과 상대에 대한 복수를 내세워 백성들을 끊임없이 전쟁터로 내모는 시대, 그리고 지배층과 결탁하여 무수한 삶의 고통에는 무관심하고 허울뿐이 권위를 내세우며 호의호식했던 승려들이 대접받는 시절, 그런 세상을 부처님의 가르침에 의지해 온 몸을 부딪치며 살아갔던 요석과 원효의 삶을 흥미롭게 그려내고 있다.   불교수행자에게 국가란 무엇이며, 전쟁에 대한 태도는 어떠해야 하는지, 그리고 사찰과 수행자가 평생 품을 수 있는 꿈에 대하여 부딪친 절박한 상황속에서 구체적으로 모색하는 원효의 모습은  소중한 가치를 종종 놓치고 사는 우리에게 새로운 성찰과 가슴 아픈 각성을 안겨준다.      ‘원효는 그저 부처님의 말씀을 연구하고 전하면서 평생을 보내고 싶지 않았다. 스스로 부처의 삶을 살고 싶었다. 부처를 찬탄하고 숭배하는 삶이 아니라, 부처의 삶으로 스스로의 삶을 채우고 싶었다.’   소설의 한 대목이다. 출가 수행자로서 이 같은 바램을 지녔던 원효는 생명에 대한 무한한 신뢰와 자비심으로 다가오는 사람과 상황에 대처 한다. 즉 무자비한 살생과 무지막지한 혼돈의 세상 한복판을 오직 ‘慈悲心’이라는 무기 하나로 헤쳐 나갔던 것이다.그리고 선언한다.   “부처를 숭배하느라 허비하는 그 시간에 그대들 스스로 부처의 삶을 살기를 소원하라! 부처가 되기 위해 스스로 노력하라! 부처의 행위로 세상을 장엄하라”   아주 잘 만들어진 영화 한편을 보고 영화관을 나서는 기분처럼 여운이 쉽게 가시지 않는다. 곁에 두고 세상살이가 힘에 부칠 때 마다 자주 펼쳐볼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