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본단어 |
기본 색 |
사복음서의 영성중 |
성령의 불 |
빨간색 |
마가복음의 영성 |
이 영성은 ‘성령의 불’이라는 단어로 대표되며, 열정과 에너지를 나타내는 빨간색이 그 기본색이다. 치유와 이적을 강조했던 마가복음의 영성을 대변한다.
이 영성은 엘리야와 그의 제자인 엘리사가 소유했던 주된 영성이다. 엘리야는 아합왕에게 예언자적 선포행위후(왕상17:1), 그릿 시내가에서 까마귀가 아침저녁으로 물어다주는 떡과 고기를 맛보며, 한낱 미물도 초자연적으로 사용하시는 기적을 맛본다(17:2-6). 그 후 사르밧 과부의 집에서 통의 가루와 병의 기름이 떨어지지 않는 창조적 기적의 도구가 되고(17:16), 그 죽은 아들을 기도로 살려내는 이적을 행한다(17:20-22). 그의 사역의 절정은 갈멜산이다. 그는 그곳에서 3년6개월동안 닫혔던 하늘을 열고 강력한 불이 떨어지게 하며(18:38), 비가 내리게 하고, 아합왕이 탄 마차보다 더 빠르게 질주하는 초능력을 발휘한다(18:45-46).
이러한 영성은 신학적으로 오순절, 또는 은사주의적 영성에 속한다. 교단과 교파를 초월하여 이러한 영성기질을 가진 신자들은 성령의 외적능력인 은사와 권능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외적으로 드러나는 하나님의 나라의 확장을 위해 이러한 하늘의 능력을 사용하고 싶어한다. 기사와 표적에 열려있으며, 강력한 성령의 역사를 추구한다. 일반적으로 감성적이며 지속적으로 은사와 능력에 대한 사모함과 뜨거운 기도가 있는 분들이다.
칼멜산 영성의 소유자들이 일반적으로 익숙하며 선호하는 단어들은 다음과 같다: 부르짖는 통성기도, 사도적이고 선지자적인 사역, 권세 있는 말씀선포와 명령기도, 성령의 불의 역사, 보혈의 능력, 하늘의 능력과 권세, 계시적 가르침, 하늘의 문이 열림, 사탄의 견고한 진을 파함, 전략적 영적 전쟁, 예언적 중보기도, 열린 환상과 입신, 예언과 찬양의 기름 부으심, 새로운 영적 패러다임, 도시와 열방을 그리스도께로, 마지막 때의 영혼추수, 그리스도의 재림과 강력한 천사들의 활동, 두 증인 영성사역, 강한 하나님의 군대와 거룩한 신부운동, 영적 속박과 영적 파쇄 등등이다. 주로 선지자적 교사사역, 예언사역, 축사사역, 치유사역, 중보기도사역, 영적 부흥운동 등의 각 분야에서 사역하기를 즐겨한다(그리스도의 재림을 준비하는 두 증인 영성사역에 대해서는 오수송저, <두 증인이 온다>(쿰란출판사)를 참고바람). 현재 활동중인 세계적인 영성사역자들, 그리고 미국 부흥의 아버지라고 불리우며 강력한 성령의 권능아래 사역했던 부흥사 찰스 피니 또한 이러한 영성세계에 해당하는 인물이다.
이러한 유형의 영성 소유자들은 영의 세계와 신비적 은사능력에 대한 열정과 추구, 그리고 믿음은 강하지만, 상대적으로 현실적 감각이 떨어지고 기도와 기름 부으심은 강하지만, 삶에 대한 지혜나 삶을 극복해 나가는 역동성이 약하고, 바람직한 인간관계나 처세술이 부족하며, 카리스마는 있지만, 한 조직을 이끄는 실제적 경영능력은 떨어지는 경향이 있다. 때때로 다른 사람들의 좋은 조언을 잘 듣지 않는 독단성과 고집이 강하고, 극단적 신비주의에 빠질 위험성을 항상 내포하고 있다.
2. 로뎀나무 밑의 영성
“로뎀 나무 아래에 누워 자더니 천사가 그를 어루만지며 이르되 일어나서 먹으라 하는지라 본즉 머리맡에 숯불에 구운 떡과 한 병 물이 있더라 이에 먹고 마시고 다시 누웠더니”(왕상19:6-6)
기본단어 |
기본 색 |
사복음서의 영성중 |
현실과 삶 |
초록색 |
누가복음의 영성 |
기본단어는 인간 실존을 대변하는 ‘현실과 삶’이다. 기본 색은 자연과 세계를 상징하는 초록색이고, 사복음서의 영성중 세리와 창녀들과 죄인들, 즉 구원의 역사가 절실하게 필요한, 힘없고 버림받은 자들에 대한 강한 관심을 드러낸 누가복음의 영성이 이에 해당한다.
이 로뎀나무 밑의 영성은 인간의 기본적 생존에 필요한 떡과 물이라는 상징을 통해 그 성격이 드러난다. 즉 칼멜산 영성이 모세와 엘리야, 그리고 예수님의 영광스러운 영광으로 가득찬 변화산 위의 영성이라면, 로뎀나무 밑의 영성은 귀신들린 아이를 제자들에게 데리고 나온 부모의 현실적 문제가 존재하는 변화산 밑의 영성이다. 칼멜산 영성이 이상주의적 세계를 꿈꾸는 영성이라면, 로뎀나무 밑의 영성은 철저히 현세추구적인 영성이다.
이 영성은 크게 두 가지로 분류될 수 있다. 첫째는 생활 영성이다. 리차드 포스터, 유진 피터슨, 그리고 폴 스티븐슨과 같은 영성신학자들의 영성색깔이 이에 해당한다. 삶과 가정, 그리고 직장에 임한 하나님의 나라를 깨닫고 추구하며, 일상적인 평범한 삶 가운데 하나님의 임재를 추구하는 영성이다. 이러한 영성칼라를 소유한 신자들은 현실에 뿌리를 내리고, 현실을 존중하며 실존주의적 토대위에서 끊임없이 삶의 변화를 추구하는 사람들이다. 삶의 자리를 중시하기 때문에 삶에 대한 지혜로운 판단능력이 있고, 현실적인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영의 세계에 대한 관심과 추구능력이 약하기 때문에 칼멜산 영성을 소유하고 추구하는 신자들에 대하여 지극히 비판적이며 신비주의로 매도하는 경향이 있다. 기적이라는 극적인 하나님의 능력으로 현실적 문제를 극복하기보다는, 하나님이 주신 이성과 합리적인 판단으로 현실문제를 해결하고자 한다. 그리고 치열한 영적 전쟁을 통한 삶의 역동적인 변화보다는 점진적 개선을 통해 현실적 안주와 평안을 누리고자 하는 욕구가 강하다. 삶 가운데에서의 조용한 변화를 추구하고 이끄는 다양한 사역에 적합한 영성이다.
로뎀나무 밑의 영성세계의 두 번째 측면은 정당한 떡과 물을 확보하기 위한 투쟁적 영성이다. 이러한 영성을 소유한 신자들은 특히 제국적인 권력아래에서 부당하게 착취당하는 노동자와 농민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신학적으로는 소위 사회구원과 예언자적 정의를 추구하는 민중신학이나 해방신학에 해당한다. 이들은 출애굽의 역사를 애굽의 권세하에서 고통당했던 이스라엘을 해방하기 위해 모세를 찾아오신 하나님의 해방신학을 선호하며, 마찬가지로 로마제국의 압제하에서 고통당하는 일반 민중을 구원하시기 위해 오신 사회변혁가요, 위대한 투쟁가로서의 예수의 이미지를 좋아한다.
이러한 영성을 소유한 신자들에게 엘리야 이야기에서 발견되는, 지치고 탈진한 엘리야에게 떡과 물을 가지고 찾아온 천사의 방문이야말로 이 땅의 불평등한 현실적 갈등과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구원사건이다. 이러한 영성의 소유자들은 희망을 가지고 행복하게 살아가야 할 현실에서 일어나는 부조리와 불의에 대해 적극적으로 변혁하고자 하는 욕구가 강하고, 상대적으로 하늘에서 이루어진 하나님의 뜻보다는 이 땅에서 이루어질 하나님의 뜻에 더 관심이 많고, 도래하는 하나님의 나라보다는 이미 이 땅에 임한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관심이 더 크며, 비현실적 영적 세계보다는 현세안에서의 이상적인 사회인 인본주의적 유토피아관에 빠질 위험성이 항상 존재한다. 교회안에 머무는 사역보다는 사회 한복판에서 예언자적 정신을 실천할 수 있는 사회변화를 위한 다양한 사역이나 홈리스 등 소외당한 계층을 위한 구제 및 긍휼사역에 적합하다.
3. 광야의 영성(또는 동굴의 영성)
“이에 일어나 먹고 마시고 그 음식물의 힘을 의지하여 사십 주 사십 야를 가서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니라 엘리야가 그곳 굴에 들어가 거기서 머물더니……”(왕상19:8-9)
기본 색 |
사복음서의 영성중 |
|
침묵과 자아성찰 |
하얀 색 |
요한복음의 영성 |
기본단어는 그리스도를 추구하는 삶을 통해 내면세계의 성숙을 지향하는 ‘침묵과 자아성찰’이며, 기본색은 순결과 성화를 의미하는 하얀 색이다. 사복음서중 성령안에서의 신비적 교제를 통해 그리스도와의 합일을 추구하는 요한복음의 영성에 해당한다(특히 요15장).
이 영성의 기초는 바로 사막교부들의 수도사적 영성세계이다. 사막 교부(Desert Father)란 3세기 경에 시작된 주로 이집트의 스케티스 사막에서 생활한 은둔자들,금욕주의자들, 수사들, 수녀들이다. 가장 잘 알려진 사람으로는 주후270년 ~ 271년에 그 사막으로 이주하여 사막 수도원주의의 교부이자 창시자가 된 안토니우스이다. 따라서 이러한 영성이야말로 수도원적 영성세계를 추구하는 카톨릭 영성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영성을 소유한 신자들은 주로 자신의 내면세계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관상기도나 침묵훈련, 거룩한 독서, 홀로 하나님의 임재 앞에 머무는 고독의 시간 등에 많은 에너지와 열정을 투자한다. 추구하는 최종 목표는 예수 그리스도와의 신비로운 합일에 이르는 것이다.
이스라엘에 있어서 광야40년의 세월은 자신 속에 있는 우상숭배근성과 자기 중심성, 그리고 강한 자아를 십자가에 못박는 연단의 세월이었다. 이러한 광야의 연단을 통해 획득되는 영성은 하나님안에서의 자아의 죽음 그리고 그리스도안에서의 성화를 끊임없이 추구하는 것이다. 광야는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지정학적 환경을 가지고 있으므로, 절대적으로 하나님만을 의존하게 만들고,
가나안 땅이라는 궁극적인 비전을 가지고 나아가는 나그네의 삶, 순례자의 영성을 소유하게 만든다.
이러한 광야 영성의 소유자들은 눈에 보이는 외적 성과나 사역보다는 자기 내면세계의 성숙에 더 관심이 있기 때문에 로뎀나무 밑의 영성을 소유한 신자들에 비하면, 현실세계의 변화나 사회운동에는 무관심한 경향성을 보이기도 한다.
또한 광야의 영성을 소유한 신자들은 외적으로 화려한 은사주의적 칼멜산 영성과는 큰 차이가 있고, 조용하고 은밀하며 역동성(力動性)보다는 정중동(靜中動)의 세계를 추구한다. 따라서 대부분의 경우, 이러한 신자들은 내적 깊이가 있고, 말을 아끼며, 삶자체에 집착하기보다는 관조하는 입장이고, 단기적인 열매보다는 장기적인 안목에서 점진적인 변화를 추구하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신자들은 한마디로 도시의 수도사들과 같다. 때로는 동굴속에 들어가 숨어버리고 은둔하는 듯한 영적 기질이 있기 때문에 현실적 안목에서 볼때에는 답답함을 느끼기도 한다. 이러한 영성추구가 지나치면, 힌두교나 불교 영성, 그리고 뉴에이지 운동과도 영성세계가 서로 통하기 때문에 종교다원주의적 신학에 빠져들 위험성도 항상 존재한다. 이러한 분들은 대체로 떼제공동체와 같은 은둔자적 공동체 사역을 선호한다.
4. 호렙산의 영성
“……또 지진후에 불이 있으나 불 가운데에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더니 불 후에 세미한 소리가 있는지라”(왕상19:12)
기본단어 |
기본 색 |
사복음서의 영성중 |
말씀과 경건 |
파란색 |
마태복음의 영성 |
호렙산의 영성을 규정하는 기본단어는 바로 하나님의 말씀과 그 말씀대로 살아가는 경건성에 있다. 그리고 기본색은 하늘의 색깔이며 생명력으로 넘치는 파란색이다. 사복음서중에서는 모세오경적 기본구조를 가지는 마태복음의 영성이 여기에 해당하는데, 마태복음의 영성은 산상수훈으로 대표되는 말씀의 영성과 제자도로 특징지어지는 제자의 경건성에 있다.
호렙산에서 하나님은 엘리야의 주된 영성과 사역을 의미하는 크고 강한 바람, 지진, 그리고 불이 지나간 후에 ‘세미한 음성’가운데 나타나신다. 이러한 하나님의 현현방식은 엘리야적 사역을 부인하는 것이 아닌, 또 다른 차원의 영성세계가 존재함을 의미하고 있다. 특별히 불 이후에 세미한 음성이 나타나고 있어서, 불의 영성으로 대표되는 칼멜산 영성과 대조되는 의미에서의 말씀의 영성이 강조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차이점은 서로 반대되는 의미라기 보다는 무엇에 더 강조점을 두고 있는가? 의 차이라고 할 수가 있을 것이다.
‘불’이라는 외적으로 볼 때 극적이고 두드러지는 능력으로 나타나는 칼멜산의 영성에 비하면, 세미한 음성으로 나타나는 호렙산의 영성은 상대적으로 장기간에 걸쳐 빗물이 바위를 뚫듯이, 인간을 변화시키는 지속적인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할 수 있다. 오순절적 은사들과 능력이 마치 가시덤불에 불꽃이 확하고 붙듯이 화려하면서 일시간에 강력하게 타오르는 장점은 있지만, 오래 그 불길이 지속되지 못한다는 단점이 있다면, 말씀의 능력은 장작더미에 불이 붙을 때 상대적으로 시간이 좀 지체되지만, 한반 불이 붙으면 화력이 오랜 시간 지속되는 것과 같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호렙산의 영성은 신학적으로 개혁주의 영성이나 청교도적 영성에 해당한다. 이러한 영성을 소유한 신자들은 하나님의 절대주권과 하나님의 영광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에 깊이 영성적 뿌리를 내리고 있는 사람들이다.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와 칼빈, 영성가 존 오웬으로부터 조나단 에드워드, 현존하는 존 맥아더 그리고 존 파이퍼에 이르기까지 개신교의 주류를 형성하고 있는 영성 세계라고 할 수가 있을 것이다. 호렙산의 영성은 감성이나 은사가 아닌, 지성으로 알아가는 하나님을 강조하며, 그리스도를 따르는 십자가의 신학과 제자도를 강조하고 특히 믿음으로 인한 구원, 회개와 거룩함, 죄 사함의 은혜와 성화를 추구하는 영성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호렙산의 영성은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하나님의 말씀에 천착하는 것이 가장 큰 강조점이다. 따라서 이러한 영성은 QT, 성경연구, 성경통독 그리고 성경적인 설교를 중요시 여기게 되고, 건전한 성경신학을 추구하게 되어있다.
하나님의 말씀을 그 무엇보다도 강조한다는 것이 장점이라면, 대체로 호렙산 영성의 소유자들은 상대적으로 칼멜산 영성사역에서 나타나는 성령의 역동성과 은사들의 나타남에 대해 부정적이고 비판적인 자세를 보이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영성이 지나치게 강조되는 경우에는, 성령의 참된 역사조차도 마귀적인 현상으로 매도하는 위험성에 처해지기도 한다. 또한 사회적 구원이나 사회변혁을 위한 예언자적 정신보다는 개인적 구원이나 대외적 선교활동에 더 큰 관심을 보이기 때문에 역사와 현실에 무관심하다는 강한 비판을 받기도 한다.
위의 4색 영성은 사람에 따라서 중복적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자신의 영성이 어떤 색깔을 띤 영성인지를 스스로 분석하고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각 신자의 영성세계는 그가 자라난 환경, 소속된 교단과 교회, 영향을 준 주변인물, 경험한 영적 체험, 접하는 신학에 따라 독특하게 형성된 것이다. 따라서 다른 사람들의 다양한 영성을 이해할 수 있는 포용력이 요구되고, 나와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하나님의 나라를 추구해 나가는 지혜도 필요할 것이다.
자신의 영성세계가 어떤 것인지를 먼저 이해하고 나면, 스스로가 추구해야할 삶의 방향과 사역스타일도 눈에 보이게 된다. 하나님이 주신 독특한 은사와 달란트, 부르심과 사명 또한 자신이 소유한 영성과 결코 무관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