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진쑥 이야기
세월이 참 빠르다. 아직 한낮에는 햇볕이 따가운데 가을 냄새가 물씬 풍기고 있다. 한여름 무성하게 잘 자라던 식물들도 이 가을에 비가 오지 않으니 목이 타는 듯 축 처져 있는 게 안쓰럽게 보인다. 나무는 단풍으로 변하여 떨어진 낙엽이 수북하고 들판에는 벼가 황금빛으로 물들고 사과도 붉게 익었다.
자세히 살펴보면 자연에는 수많은 종의 생명들이 존재하면서 저마다의 역할을 하고 있다. 그 중에서 우리가 잡초라고 이름 붙이는 풀조차도 초식동물이나 식물을 먹이로 하는 생명체들에는 이들 식물이 없으면 존재할 수 없는 꼭 있어야 할 소중한 존재다. 하지만 사람들은 자신들이 필요로 하는 식물 이외에는 잡초라는 이름으로 부르고 있다. 이렇게 이름 없는 잡초들도 나름대로 다른 종의 생명유지에 헌신을 하면서 살아가는 이유는 오로지 자신들의 유전자를 후세에 남기기 위해 치열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우리 땅에는 우리 민족의 건강과 생존에 크게 기여한 약초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는 것들이 많이 있다. 조선 선조와 광해군시대 명의였던 허균선생이 지은 동의보감이란 책에 의하지 않고도 우리민간에서 수 천 년 동안 약초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것 중에 인진쑥이란 것도 그 중의 한 종류에 속한다.
우리나라 속설에 아홉수를 조심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있다. 나이 39세이던 시절 한여름 휴일을 맞아 우리 가족과 친구 가족이 경기도 하남시 남한산성 아래에 위치한 고골이라는 곳에 휴식을 하러 갔다. 모두들 아이들과 함께 즐겁게 점심식사를 하고 잘 놀고 있는데 오후 들어 갑자기 피곤하고 힘이 들어 쓰러질 것 같아 집으로 돌아왔다.
다음날 병원에서 혈액검사를 한 결과 급성간염이라고 했다. 다른 병원에 가서 다시 검사를 해 보아도 마찬가지였다. 얼굴과 눈이 노랗게 되고 피곤하여 도저히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는 처지라서 인근 병원에 입원을 했다. 일주일이 지나고 2주일이 지나니 간의 수치가 조금은 떨어졌으나 더 이상 진전이 없이 정상화되지 아니하고 식사도 할 수 없었다. 담당의사의 말이 간의 수치가 떨어지지 않아 만성 간 경변으로 갈 가능성이 많다고 했다. 20일이 경과되어도 수치가 떨어지지 않고 식사는커녕 링거에 의지해야만 했다. 그래도 기댈 곳은 병원 밖에 없었다.
병에 대한 차도가 없으니 내가 아픈 것은 고사하고 병원에서 간병하는 아내를 바라보는 마음도 괴로웠다. 이제 겨우 5세, 3세인 철없는 아이들을 키우고 있는 아내의 입장에서 담당의사가 전하는 말과, 차도가 없는 남편을 바라보는 마음은 오죽했을까 싶었다.
그런데 부모 자식 사이에는 무언가 통하는 텔레파시라는 것이 있는 것 같았다. 시골에 계시던 어머니께서 꿈자리가 이상하다고 하시면서 병원으로 찾아오셨다. 병원에 누워 있는 아들을 보고 왜 연락을 하지 않았느냐고 야단을 하셨다. 보시더니 이런 병은 시골에서는 흔한 병인데 병원에 입원해 봐야 대책이 없고, 민간요법인 인진쑥으로 나을 수 있는 황달이라고 하셨다. 담당주치의에게 이야기를 했더니 간에 무리한 약을 잘못 쓰면 큰일 나니 더 입원을 하라는 것이다. 더 이상 좋아지지 않았지만 당분간 의사의 말대로 병원에서 병을 치료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계속 입원할 마음이었다. 하지만 어머니 주장이 너무 완강하시고, 병원에 있어도 더 이상 나을 기미도 없어 의사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퇴원했다.
어머니는 그길로 아내와 함께 제기동 경동시장에 가서 인진쑥을 잔뜩 구입해 와서 20ℓ 보다 큰 알루미늄 통에 인진쑥과 물을 가득 부어 끓이니 쓰디쓴 물이 많이 나왔다. 어머니는 그 물을 한 사발 가득 담아 와서 무조건 마셔야 낫는다고 하셨다. 맛을 보니 너무 쓴 물이라 마실 수가 없었다. 하지만 낫기 위해서는 먹어야 했다. 사탕을 먹고 인진쑥 물 한 사발을 마시고, 다시 인진쑥 물 한 사발을 마시고, 이렇게 하루 동안 15사발을 마셨다. 그렇게 일주일을 마시고 나니 거짓말처럼 노랗던 눈과 얼굴도 본색으로 돌아오고 밥맛도 꿀맛이 되었다. 그동안 못 먹었던 밥이 더 먹고 싶을 정도로 밥에 대한 욕구가 일어났다. 충분한 식사와 인진쑥으로 몸 관리를 하면서 집에서 한 달을 보내니 병원에 입원한 기간 포함해서 2개월이 경과되었다.
출근을 하기 위해서 병원에 혈액 검사를 의뢰한 후 완쾌 여부를 알아보기로 했다. 병원 세 군데를 찾아가서 검사한 결과 간염이란 그런 병을 앓았던 흔적이 없다는 것이다. 병을 앓았으면 항체가 생겨야 하는데 그런 흔적이 없다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출근을 하면서도 혹시나 해서 인진쑥 끓인 물을 가지고 가서 수시로 복용했다. 다시 2개월 후 병원에 가서 혈액검사를 한 결과도 음성으로, 흔적이 없다는 것이고 3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런 흔적이 나타나지 않고 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우리민간에서 황달로 통칭되는 급성간염은 30년 전의 서양의학으로는 대중요법 외 다른 치료 방법이 없는 것 같았다. 우리나라에서 수 천 년에 걸쳐 내려온 민간요법인 인진쑥 복용법은 비록 과학적인 수치로 환산한 검증은 없었지만, 지금까지 무사한 것을 보면 완치하는데 실용적인 민간요법임에는 틀림없는 것 같다는 생각이다.
잡초라고 이름 지어진 식물 중에는 아직 발견되지 않는 수많은 효용성을 가진 종들이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수 천 년 동안 우리 선조들이 온 산천을 더듬어 가면서 필요한 약초를 구하기 위해 노력하였고,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귀한 효능을 발견하였을 것이다.
이와 같이 이름 없는 선조들의 헌신적인 희생과 아낌없는 노력에 의해 이 땅의 민초들이 건강과 생명을 유지하였고, 우리의 역사가 이어져 온 것이란 생각이다. 그러고 보면 지금 비록 잡초로 불리는 풀도 언젠가는 세상에 유용하게 쓰일 것이다. 우리 주변에 함께 살아가는 풀들이 귀찮은 잡초라는 이름의 보잘 것 없는 생명이 아닌 것이다.
첫댓글 에세이 출간을 축하합니다. 문운과 건안을 빕니다.
수필집 출간을 축하드립니다.
급성간염을 낫게한 '인진쑥'
감동입니다. ^^
김재근 선생님
등단한 지 그리 오래지 않았지만 열심히 쓰고
활동하시는 모습이 보기 좋습니다.
출간을 축하드립니다.
졸작을 올려주신 김나현 선생님 .
김재환 선생님, 신노우선생님
감사드립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좋은 시간 되십시오
출간을 축하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