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골의 밤은 갑자기 찾아왔다.
정선군 남면 낙동 3리, 사방이 병풍 같은
높은 산들로 둘러싸여 금방이라도
으스러질 것 같은 조그만 가옥들의
낮은 지붕 위로 저녁 햇살은 미끄러지고,
산등성이 위로 넘어오는 어둠에
동내 개들은 불안한 듯 이따금 짖어댔다.
개들이 짖어대는 소리에 반향 하는 것은
외딴 산동네의 고요함일 뿐,
햇볕 아래서 현존했던 모든 사물들은
감각의 순수한 황무지에서 더욱 강렬한
침묵의 배후가 되어 내 육신을 죄어왔다.
나의 빈약한 정신은 그만큼 분명하게
산골의 밤의 정적과 맞서고 있는 것이었다.
어둠 속에 홀로 버려져
주어진 모든 이름들을 잃어버리고,
인간의 언어마저 잃어버리고
태초의 세계와 대립하는 귓속의 계곡으로
샛강은 흘러가고 그 흐름의 끝에서부터
나의 노래는 시작되고 있었다.
석양의 강물 위를 느릿느릿 떠가는
그림자, 누군가 어깨를 길게 늘여서
노을을 만져보고,
말없는 산과 몇 평도 안되는
하늘과 속닥거리고, 끝내는
저 강물이 되었다는 말인가
흐른 다음에는 구불구불
기찻길을 유혹하여 함께 흐를 것인가
- 배홍배 산문집 <풍경과 간이역>에서
9월에 이어 11월에도 새 산문집을 냈다.
이번 책은 클래식의 숨은 진주 같은 곡을
146곡 선정하여 시와 이야기와 해설과
사진을 곁들이고 곡마다 QR코드를 입혀
책을 읽으며 휴대폰을 이용해 바로 음악을
들을 수 있게 했다.
이제 홀가분한 기분으로 다시 간이역
여행을 떠나야 겠다.
*브람스 피아노 트리오 C장조
제2악장
- 배홍배 <빵냄새가 나는 음악>에서 골라
제 오디오로 녹음해 올립니다.
https://youtu.be/8kQHNT9QFA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