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매달려 죽은 일과 그의 수난과 죽음이 가져다준 구원의 은총을 상기시킨다(→ 색인 : 십자가형). 십자가는 그리스도 자신과 그리스도교도의 신앙을 동시에 나타내는 상징이다. 의식을 집행할 때 십자가 상징을 긋는 것은 상황에 따라 신앙고백·기도·봉헌·축복 등을 뜻한다.
십자가를 나타내는 기본적인 도안에는 다음 4가지가 있다.
① '크룩스 쿠아드라타'(crux quadrata):그리
스 십자가라고도 하며, 네 팔 길이가 똑같다.
② '크룩스 이미사'(crux immissa):라틴 십자가라고도 하며, 기본 줄기가 나머지 세 팔보다 길다.
③ '크룩스 코미사'(crux commissa):그리스 문자 '타우' 모양이며, 때로 성 안토니우스의 십자가라고도 부른다.
④ '크룩스 데쿠사타'(crux decussata):로마의 '데쿠시스' 또는 10이라는 숫자의 상징에서 이름을 따왔으며, 성 안드레아의 십자가라고 한다. 여러 전승에 따르면, 그리스도가 달려 죽은 십자가는 '크룩스 이미사'라고 하지만, '크룩스 코미사'였다고 믿는 사람들도 있다. 이 4가지 십자가 모양에서 행렬·제단·문장(紋章) 등에 쓰이는 십자가, 교회·묘지 등에서 무늬를 넣고 색을 칠해 쓰는 십자가 등 많은 변형과 장식이 발전했다.
십자가 상(像)들은 그리스도교 시대보다 훨씬 전에 종교나 그외의 상징들로 사용되었지만, 이 십자가 상들이 단지 신분이나 소유를 상징하는 물건이었는지, 아니면 신앙이나 숭배의 의미를 갖고 있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그리스도교 시대에는 그 이전에 쓰이던 2가지 십자가 형상들이 널리 유행했다. 콥트 그리스도교도들은 생명을 상징하는 고대 이집트의 상형문자(ankh[지붕을 얹은 '타우' 십자가로 '크룩스 안사타'로 불렸음])를 받아들여 신앙 기념물에 널리 썼다. '크룩스 감마타'(crux gammata)라고도 하는 만(卍 swastika)자형 십자가는 그리스 문자 감마의 대문자 4개로 이루어져 있으며, 초기 그리스도교도들의 무덤에 십자가의 은밀한 상징으로 사용되었다. 4세기 콘스탄티누스 황제시대 이전의 그리스도교도들은 십자가를 그리는 것을 극도로 자제했다. 십자가를 공개적으로 드러내면 조롱을 받거나 위험에 처하게 될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콘스탄티누스는 개종(改宗)한 뒤에 죽음의 형벌이었던 십자가형을 없애고, 십자가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루어진 키로(chi-rho) 도안을 그리스도교 신앙의 상징물로 권장했다. 이 상징물은 350년경부터 그리스도교 예술에 소재가 되었으며 묘비에서도 널리 쓰이게 되었다.
콘스탄티누스 이후 수세기 동안 십자가에 대한 그리스도교도들의 열정은 그리스도가 악과 죽음의 권세를 이긴 것에 집중되어 있었으며, 그가 고난을 당하는 모습을 실제로 묘사하는 것을 피했다.
십자가에 달린 초기의 그리스도 상들(그리스도의 모습을 포함한 십자가들)은 그리스도가 창에 찔려 인성(人性)으로는 죽은 것으로 묘사했지만, 여전히 눈을 뜨고 팔을 내밀고 있는 모습으로 묘사하여 신성(神性)으로는 살아 있음을 나타냈다.
9세기에 들어와 예술가들은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의 실제적인 면들을 강조하기 시작했고, 그 이후로 서양에서는 그림이든 조각이든 십자가 상의 고통과 고뇌를 더욱 정교하게 표현했다. 로마네스크 양식의 십자가 상들은 그리스도의 머리에 왕관이 씌워져 있는 모습으로 되어 있는 경우가 많지만, 후기 고딕 양식은 그것을 가시 면류관으로 바꿔놓았다.
20세기에 들어와 로마 가톨릭 교회는 특히 의식과 관련되는 십자가 상을 새로이 강조하기 시작했다. 이 십자가 상에서 십자가에 달린 그리스도는 왕관을 쓰고 왕과 제사장의 옷을 입은 모습을 하고 있으며, 고난의 표식들은 훨씬 덜 두드러진다.
16세기 프로테스탄트 종교개혁 이후 루터교도들은 일반적으로 십자가를 장식용과 의식(儀式)용으로 계속해서 사용했다. 개혁교회들은 20세기만 해도 십자가를 그런 용도로 쓰는 것을 거부했지만, 그후 교회 건물과 성찬식 탁자에 십자가 장식을 다시 사용하기 시작했다. 영국국교회는 세례식 때에 십자가 성호를 긋는 관습을 계속 유지했다. 19세기 중반 이래 성공회는 십자가를 다시 사용했으나 거의 개인의 신앙 용도로만 활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