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덕궁 선정전[昌德宮 宣政殿]
창덕궁 선정전은 평상시 임금이 신하와 일상업무를 논하던 편전(便殿)이다. 일반적으로 궁궐의 편전은 경복궁의 사정전(思政殿)과 같이 정전의 뒤에 위치하지만, 선정전은 창덕궁의 지세에 따라 정전인 인정전의 동쪽 뒤에 위치해 있다. 태종 5년(1405) 창건 당시 이름은 조계청(朝啓廳)이었으나 세조 7년(1461)에 궁궐 건물들의 이름을 바꿀 때 선정전으로 고쳤다.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광해군 원년(1609)에 복구하였으나, 인조반정(1623) 때 다시 화재를 당하여 인조 25년(1647)에 재건하였다. 이 건물은 광해군이 인왕산 아래에 새로 지었던 인경궁(仁慶宮)의 광정전(光政殿)을 철거한 재목을 이용하였으며, 이때의 모습이 현존하고 있다.
건물은 남향하였으며, 정면에 설치한 낮은 월대 위에 다시 기단을 만들고, 그 위에 정면 3칸, 측면 3칸의 규모로 지었다. 기단 바닥에는 전돌을 깔았으며, 좌·우에는 드므가 놓였다. 정면과 후면 어칸에 4분합문을, 정면과 후면 좌·우 협칸과 측면 중앙칸에는 4분합창을, 그리고 측면 좌·우 협칸에는 3분합창을 달았다. 공포는 외2출목, 내3출목을 한 다포계이며, 단층 겹처마 팔작지붕을 하였다. 내부에는 앞쪽으로 2개의 고주를 세웠는데, 창경궁 명정전(明政殿)의 기둥 배열과 같은 방식이다. 내부 주심포의 초제공은 살미가 첨차같이 된 교두형(翹頭形)으로 처리되었고, 그 위는 초각(草刻)되어 툇보를 받치고 있다. 대들보·툇보·충량 윗몸에 붙여 우물천정을 가설하였고, 중앙의 후면 대량칸에는 장방형의 보개(寶蓋)를 달았다. 보개 안 천정에는 구름 사이를 나르는 한 쌍의 금색 봉황이 부조되었다. 단청은 온화한 색조의 반초머리의 모루단청이다.
지붕은 푸른색의 유리기와를 덮었고, 각 마루에는 양성을 하지 않았으며, 취두와 용두가 놓이고 사래에 토수(吐首)가 설치되어 있다. 동궐도에는 초록색 지붕으로 그려져 있는데, 유일하게 궁궐에 현존하는 청기와 지붕이다. 외벌대로 된 월대 위 전면 좌우의 모서리에는 화재를 막기 위한 벽사적인 의미로 청동제 드므를 놓고 물을 담아두었다. 선정전 주위 마당 남·동쪽으로는 행각이 둘러싸고 있고, 선정전 정면 중앙칸 앞에서 남쪽으로 정문인 선정문까지는 사방이 트인 천랑(穿廊)으로 연결되어 있다. 원래 선정전 남쪽과 동쪽에 많은 전각들이 있었으나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모두 헐렸다. 선정전은 순조 때에 이르러 그 옆의 희정당(熙政堂)이 편전으로 사용되면서 기능이 약화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