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이 오른다
무대 전면 화면에 칠천량 바다, 새벽 조선 수군 전함과 거북선이 일본 수군과 육군의 공격을 받아 불타는 장면이 그려져 있다 함포, 조총, 활, 나팔, 북소리와 비명이 혼란스럽게 들리다가 점점 작아진다.
암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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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 행재소 | 전령이 뛰어 들어온다. |
전령
| 아뢰오. 지난 7월 5일, 부산포 공격을 나갔던 우리 수군이 거제도 칠천량에서 일본 수군의 기습을 받아 전멸되었다는 선전관 김식의 장계입니다. |
별전別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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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
| 큰일 났구나. 이 일을 어 찌하면 좋단 말인가? |
대신들 엎드린 채 꼼짝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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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
| 대신들은 엎드려 있지만 말고 무슨 대책이든지 말씀해 보 시오. 왜 아무 말이 없는가? |
유성룡
| 전하. 사태가 이리된 것은 이순신을 파직하고 원균을 삼도수군통제사에 보직한 까닭이온데, 원균이 싸우다 죽은 지금 무슨 대책이 있어 말씀드리겠나이까? |
선조
| 한산도를 굳게 수비해야 하는데 너무 출정을 독촉해서 이같이 패전하게 된 일이니, 이것은 사람이 한 것이 아니라 하늘이 한일 이거늘 이제 와서 말해 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원균을 대신할 장수가 어찌 없겠소? 대신들은 말씀을 해 보시오. |
이항복
| 전하. 아뢰옵기 황송하오나 백의종군 중인 이순신을 다시 임명하는 방법 외에는 다른 선책이 없음을 아룁니다. 도원수 권율의 의견 또한 그러하옵니다. |
선조 | 말이 없다. |
이항복
| 전하. 왜적은 수륙병진 전략을 빠르게 구사하고 있습니다. 육군은 전라도로, 수군은 서해로 공격해 들어올 것입니다. 임진년에는 이순신이 견내량을 틀어쥐고 이를 철저히 차단하였으나 이순신이 없는 지금 그러하지 못하옵나이다. 통촉하시옵소서. |
선조
| 이순신을 삼도수군통제사로 다시 불러들인다? ‥‥‥ 그리하라. |
암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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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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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
| 아, 어떻게 만들었던 수군인가! 우리 백성과 군사들이 전쟁 중에도 피땀 흘려 만든 함대, 수많은 밤을 지새우며 만들어 낸 거북선, 그 용감한 병사들과 용맹한 장수들은 다 어찌 되었단 말인가? 정녕 다 사라졌단 말인가? 어리석은 한 장수의 실책으로 하룻밤 사이에 모든 것이 사라지다니? 이억기, 최호, 배홍립! 그대들의 충성스럽고 씩씩한 모습, 이제 다시 볼 수 없구려. 전우여. 하늘이 무너지는구나. 바다가 뒤집어지는구나. 내 가 슴이 터지는구나. |
말발굽 소리가 들리고 선전관이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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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전관 | 이순신은 교지를 받드시오. |
이순신을 삼도 수군통제사에 보하는 교지가 보인다. 이순신 무릎을 꿇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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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전관
| 국가가 의지하는 것은 오로지 수군 뿐인데, 흉한 칼날이 번뜩여 마침내 삼도의 수군이 한 번의 싸 움에 모두 쓰러졌다. 임진년 승첩이 있은 뒤부터 그대의 업적이 크게 떨치어 군사들이 만리장성처럼 든든히 믿었는데, 지난번 그대의 삼도 수군통제사 직함을 박탈하고 백의종군하게 하였던 것은 사람이 어질지 못함에서 생긴 일이었거니와 그리하여 오늘 이와 같이 패전의 욕됨을 입었으니 내 무슨 할 말이 있으리오. 무슨 할 말이 있으리오. 예전같이 삼도 수군통제사로 임명하니 그대는 충의의 마음을 굳건히 하여 나라를 구해주기 바 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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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 | 사은숙배하고 전선으로 떠난다. |
말발굽 소리 멀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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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
| 아무것도 없구나. 저 악귀들, 저 왜적들과 싸워 이기고, 도탄에 빠진 백성을 어서 빨리 구해야 하는데, 말 한 마리, 채찍 하나 밖에 남은 것이 없구나. 나 또 한 무 슨 할 말이 있으리오. 무슨 할 말이 있으리오. 그러나 나는 가야 한다. 패전의 상처만 남아 있는 바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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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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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폐한 산야, 부서져 불탄 판옥선과 거북선 잔해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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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
| 왜적이 지나간 자리는 코가 없어진 우리 백성 시체밖에 없구나. 부서지고 불탄 전선밖에 없구나. 잔인하다. 처 참하다. 인간의 흉악함이 이리도 엄청난 사태를 만들다니. 인간의 탐욕이 이리도 엄중한 사태를 만들다니. 비극이로다. 참으로 비극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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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수 몇 명과 병사가 달려와 엎드려 통곡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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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수들
| 통제사 어른. 돌아오셨습니까? 장군님 뵐 낯이 없 습니다. 차라리 죽은 것만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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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
| 어찌 이리되었는가? |
송희립
| 왜적과 싸움을 피한다고 도원수에게 곤장을 맞은 원균 통제사는 스스로 분을 삭이지 못하고 한산도 전병력과 함대를 재촉하여 부산까지 쉬지 않고 노를 저어 갔다가, 다시 가덕도를 거쳐 칠천량으로 들어와 정박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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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억기
| 통제사 등 여러 장수가 칠천도는 왜군에게 앞뒤로 포위당할 위험이 크다고 적극 반대하였으나 무시하고 그대로 머물러 있다가 왜 수군과 육군의 기습에 그대로 당하고 말았습니다. 거북선, 판옥선은 모두 분멸당하고 군사들은 태반이 전사하고 흩어졌습니다. 우리 전선이 타는 연기가 하늘을 덮고, 우리 병사의 원성은 바다에 가득 찼습니다. 왜적들은 한산도로 물밀 듯이 몰려갔으며, 우수사 배설은 휘하 판옥선 12척을 이끌고 먼저 달아났는데 어찌 되었는지 알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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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
| 참으로 한탄스럽기 짝이 없구나. 그러나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일 , 한탄만 해서 무엇하랴. 가자. 일어나 가자. 군사를 모으고 무기를 찾아 싸움을 준비하자. 남해가 뚫리면 전라도를 잃고, 전라도를 잃으면 나라를 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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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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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안 길.
이순신이 이동하는 길에 피난민을 만나 그들을 위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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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
| 어르신. 얼마나 고생이 많으십니까? 용기를 잃지 마시고 힘을 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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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들 눈물을 흘리며 이순신에게 간곡히 술잔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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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
| 사또가 다시 오셨다. 이제 우리는 죽지 않는다. 우리는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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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이
| 나는 사또를 따라 왜적과 싸우러 간다. 전쟁이 끝나면 돌아오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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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젊은이가 이순신을 따라나선다.
호남 지방 곳곳에서 장수와 병사가 찾아 오고, 이순신은 이곳 저곳에서 방치된 무기와 군량을 찾아 낸다. 날이 저물고 어둠이 깃든다. 이순신 수루에 홀로 서서 시를 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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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
| 한산섬 달 밝은 밤에 수루에 혼자 올라 큰 칼 불끈 잡고 깊은 시름 하는 차에, 어디선가 들려오는 피리소리 이내 시름 더해 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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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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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룡포 포구. 이순신, 배설을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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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
| 배수사. 이곳에 숨어 있었구려. 무탈하시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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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설
| 무탈할 리가 있겠습니까? 아니 무탈하다고 해야지요. 이렇게 살아 있으니까요. |
이순신 | 칠천량에서 살아나온 병사들과 함선은 어디 있소? |
배설 | 그걸 왜 내가 말해야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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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
| 배수사. 아직 미몽에서 깨지 못한 모양이군. 정신 차리시오. 죽여 버리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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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설 | (기가 죽어)‥‥ 따라 오시지요. |
판옥선 12척이 포구에 무질서하게 정박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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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
| 이 모습. 조선 수군 비극의 흔적이요, 어리석은 자가 만든 절멸의 증좌로다. 분하다. 원통하다. 그러나 하늘은 이 열두 척의 전선으로 나에게 마지막 기회를 주는 것인가? 새롭게 시작하자. 최선을 다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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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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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룡포. 군사들과 판옥선 12척이 도열해 있다. 이순신의 삼도수군통제사 취임식이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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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
| 우리는 임금의 명령을 같이 받들었으니 같이 죽는 것이 마땅하다. 사태가 여기까지 이르렀으니 한번 죽음으로 나라에 보답하는 것이 무어 그리 아까울 것이냐. 나의 죽음이 나라와 백성을 구하고, 나의 용기와 충성이 이 짓밟힌 조국의 산하를 되찾는다는 것 . 얼마나 영광된 일인가. 우리는 나가야 한다. 싸워야 한다. 이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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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
| 이순신에게 이르노라. 빈약한 전선과 패잔한 병사들을 이끌고 의지할 곳 없이 바다를 떠돌 것이 아니라, 배를 버리고 육지로 올라와 권율의 육군과 합류해 적을 막도록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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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
| (상감께서 바다를 그냥 내주라 하시다니! 남해를 포기하면 서해가 뚫리고, 서해가 뚫리면 한강이 뚫리고, 한강이 뚫리면 한양이 뚫린다) 전하. 아니되옵니다. 임진년으로부터 5, 6년에 이르는 동안 적이 감히 충청, 전라 양호에 쳐들어오지 못한 것은 오직 수군 선박으로 적이 쳐들어오는 길을 막아낸 때문입니다. 지금 신에게는 아직 열두 척의 전선이 있습니다. 죽을 힘을 다하여 싸운다면 오히려 막아낼 수 있 습니다. 만일 지금 수군을 모조리 폐하신다면 이는 적이 가장 바라는 바일 것이며, 적은 호남으로부터 한강까지 바로 진격할 것입니다. 이는 신이 가장 두려워하는 바입니다. 전투선이 비록 적다고 하나 미천한 소신이 아직 죽지 아니했으니, 적이 감히 우리를 업신여기지 못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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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
| 이순신이 또 거역 하는구나. 그러나 그의 말이 옳다. 이 일을 다시 거론하지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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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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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희립
| 장군. 동쪽에 나가 있던 탐방선에서 왜 수군이 이진까지 들어왔다는 보고가 올라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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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
| 우리가 이 전력으로 회령포에서 버티기는 힘들다. 이곳은 방어하기에 불리하므로 좀 더 물러나 시간을 벌 어야 한다. 어란진으로 이 동하자. 물때가 어 떻게 되 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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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희립 | 곧 밀물이 시작됩니다. 출항을 서두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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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 | 그리하라. |
송희립
| (소리친다) 진을 옮긴다. 어란진으로 간다. 서둘러라. 빨리 빨리 움직여라. 밀물을 타려면 서둘러야 한다. 닻을 올려라. 노를 내 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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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옥선 12척이 남해 바다를 항해하고 있다. 노를 통제하는 북소리가 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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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희립
| 돛을 바짝 당기고 타를 힘껏 밀어라. 앞에 보이는 섬이 조약도다. 조약도 산봉우리를 보고 타를 잡아라. 조약도를 지나서 썰물을 받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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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수로 항해가 계속되고, 북소리가 계속 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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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희립 | 썰물입니다. 조약도로 들어가야 하겠습니다. |
이순신 | 그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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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희립
| 전 함대, 우현 함수에 있는 득암만으로 들어가서 물때가 바뀔 때까지 닻을 놓고 대기한다. 다음 사항을 지시한다. 일. 묘박 중 각 전선은 항해할 때와 동일한 전투태세를 유지 한다. 사주 경계에 빈틈이 없게 하라. 정박 중 모든 격군은 반드시 쉬게 하라. 일. 적 기습에 대비하고, 조약도 뒷산 토끼봉에 감시조를 배치하라. 일. 대기할 때 각 전선은 수기 신호 훈련을 하라. 일. 조류가 바뀔 때 주묘 되지 않도록 특히 잘 살피고 노를 유실하지 않도록 주의하라. 일. 긴급사항 발생 신호는 꽹가리 난타. 다음 들물에 출항한다. 술 마시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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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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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희립 | 들물이 시작된다. 출항이다. 닻을 올려라. 돛 을 올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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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대, 섬 사이를 항해한다. 함대 어란진 포구로 들어간다.
이순신이 바다로 나와 수로를 관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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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
| 적은 어디로 올 것인가? 진도 왼쪽 수로는 항해 거리가 길어 물살을 이기기 어렵다. 진도 오른쪽 수로는 한 물 때에 통과할 수 있는 거리이며 수평선이 훤히 보인다. 적들은 울돌목으로 온다. 울돌목에서 악귀들을 기다리자. 진도 수로의 물살을 자세히 알아야 울돌목은 우리편이 된다. 벽파진을 거쳐 우수영으로 가자. 적이 모르게 야간에 은밀히 이동해야 한다. |
암전
어란진 포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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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희립
| 정조입니다. 캄캄합니다. |
이순신
| 가자. 별이 쏟 아지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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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희립
| 전 함대 닻을 올려라. 돛을 올려라. 절대 정숙 항해다. 등불을 달지 말라. 악귀같은 왜적이 우리의 이동을 모르게 가자. 조용히 밀물을 타고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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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르르르 탁 작은 북소리가 긴박하게 들린다. 병사들이 활을 들고 사주 경계하는 가운데 함대는 어란진을 출항하여 야간 항해를 시작한다. 판옥선이 별빛에 의지하여 줄줄이 기함을 따라 캄캄한 바다로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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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 | 수로 가운데로 나가자. |
캄캄한 하늘에는 구름 사이로 별이 보이고, 시커먼 수면에는 야광충이 푸르게 빛나며 뱃전을 따라 흘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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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희립
| 타를 밀어라. 바람을 우현 선수로 받고 서쪽으로 간다. 북극성을 정 우현에서 본다. 모든 돛을 바짝 당겨라. 병사들은 우현으로 이동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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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파라락, 우지끈 돛이 돌아가고 배가 요동친다. 바람소리 요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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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 | 회오리 바람이다. 돛을 빨리 내려라. 총원 노에 붙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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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사들이 펄럭이는 돛을 힘겹게 잡아 내린다. 북 소리가 커지며 빨라진다. 격군들의 숨소리가 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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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희립 | 선수를 잡았습니다. 회오리 바람이 지나 갔습니다. |
이순신 | 다시 돛을 올리고 가자. |
송희립 | 돛을 올려라. 모든 인원은 원위치하라. |
북소리가 천천히 작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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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희립
| 예상보다 빨리 갑니다. 하마도가 가까워질 시간인데 너무 캄캄 합니다. 구름이 별을 가려 아무것도 안 보입니다. |
이순신 | 수심을 확인하라. |
측심수 | 현재 수심 다섯 길. |
측심수 | 현재 수심 네 길. |
측심수 | 현재 수심 세 길. |
이순신 | 속도를 줄이고 협선을 내보내라. |
송희립 | 우현 협선 출발하라. |
협선이 작은 등불을 달고 앞서 나가 달린다. 저 앞 협선에서 횃불을 빙글빙글 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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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시 | 선수 전방 협선 큰 횃불이 보입니다. |
송희립 | 하마도입니다. |
이순신
| 잘 알았다. 수고가 많구나. 북북서로 항로를 잡고 가자. |
송희립
| 타를 당겨라. 북극성을 우현 함수 두점으로 보고 타를 잡아라. |
측심수 | 현재 수심 여섯 길. |
송희립 | 잘 알았다. |
어두운 밤바다. 야간 항해가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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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시 | 선수 전방에 벽파진 감부도가 보입니다. |
송희립 | 감부도가 틀림없느냐? |
견시 | 벽파진이 제 고향입니다. |
송희립 | 알았다. |
이순신
| 감부도를 돌아 벽파진으로 들어가자. 벽파진에서 썰물로 바뀔 때를 기다리자. |
송희립
| 잘 알았습니다. 감부도를 돌아 벽파진으로 들어간다. 타를 힘 껏 밀 어라. 아차하면 감부도를 놓치고 떠내려간다. 돛을 내 리고 닻 놓 을 준 비를 하 라. |
측심수 | 현재 수심 네 길. |
송희립 | 닻을 던져라. |
이순신
| 이곳에서 정세를 보며 물때를 기다리다가 썰물이 시작되는 때에 맞추어 울돌목을 건너 우수영으로 들어간다. 물길이 바뀔 때 울돌목의 물살을 직접 보아야 한다. 수표석을 지정하고 물때를 놓치지 않도록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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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밝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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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희립
| 장군님. 우수사 배설이 보이지 않습니다. 달아난 것 같습니다. 추적대를 보냅니까? |
이순신
| 큰 싸움을 앞두고 한 명의 병사도 소중 하거늘, 백성과 힘을 합쳐 악귀들과 싸울 준비를 하자. |
이순신
| 중양절이구나. 제주도 점세가 보낸 소 다섯 마리를 내주어라. 군사들이 먹어야 싸운다. 많이들 먹어라. 나는 상중이라 고깃국을 먹을 수 없구나. |
암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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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
| 오늘은 달이 밝고 시정이 좋다. 적이 야습하기 좋은 날이로구나. 경계를 철저히 하고 즉시 응전할 수 있는 준비를 갖 추도록 하 라. |
송희립
| 협선 3척 감부도 하단으로 경계를 나가고, 판옥선은 장전 대기하라. 졸면 죽는다. |
왜선 8척이 야음을 타고 몰래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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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희립 | 발포하라. |
판옥선 함포 불을 뿜는다.
왜선 놀래 달아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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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 | 왜놈들이 염탐을 왔구나. 곧 총 공 격이 있을 것이다. 싸움 준비를 더욱 서둘러야 하겠다. |
암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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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희립 | 정조가 가까워 졌습니다. 물살이 한결 순해졌습니다. |
이순신 | 가자. |
판옥선 12척 벽파진을 출항하여 줄줄이 울돌목으로 들어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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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희립 | 정조입니다. 배가 딱 멈 추었습니다. |
이순신
| 모두 다, 한사람도 빠짐없이 잘 보아라. 이제 곧 썰 물이 시 작한다. 자, 순식간에 물살이 역류하며 빨라진다, 소용돌이가 인 다. 삼각파도가 인 다. 모두 잘 보 았느냐? 우리나라에서 제일 빠르고 험한 물살이다. 우리 배는 삼각파도를 잘 견디지만 왜선은 마 구 흔 들린다. 바로 우리가 적을 격멸하는 순간이다. 울돌목은 우 리 편 이다. 우리는 승 리한다. 우수영으로 들 어가자. 조금 더 지체하면 모두 떠내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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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살은 더욱 소용돌이 치며 세차게 흐르고, 함대는 우수영으로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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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전
우수영 판옥선 선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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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
| 모두 잘 들어라. 적은 수가 매우 많고 우리는 매우 적다. 적은 집단 공격이며, 우리는 일자 방어다. 그러므로 우리는 울돌목 제일 좁은 곳에서 적을 맞아 물살이 제일 강한 시간에 적을 격파할 것이다. 싸움은 적이 한꺼번에 몰려오도록 하는 것이 오히려 유리하므로, 내가 앞에 나가 닻을 놓고 적을 맞을 것이다. 울돌목에서 적은 나를 지나치지 못한다. 내가 싸우다가 물때를 보아 초요기를 올리면 그때 일제히 돌격하여 적을 쳐부순다. 울돌목의 썰물이 또한 적을 깨끗이 쓸어 줄 것이다. |
전령이 뛰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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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령
|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적선이 울돌목으로 몰려오고 있습니다. 바다가 보이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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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백성
| 적선을 300척까지 세었으나 너무 많아 더 이상 못 세겠소. 우리는 겨우 한 줄 , 열 세 척. 이제 다 죽 었구나. 사또 이를 어이 하리오. |
이순신
| 드디어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칠 영광의 시간이 왔다. 군사들이여 나를 따르라. 나가자. 군악을 울려라. 살려고 하면 필히 죽을 것이요, 죽으려 하면 필히 살 것이다. |
기함을 선두로 판옥선 13척, 군악을 울리며 우수영을 출항하여 울돌목으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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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
| 나는 앞으로 나가 닻을 놓고 물살을 버티며 적을 막을 터이니 제장은 뒤에서 나의 돌격 신호를 기다리라. |
울돌목 진입을 앞둔 왜 전선 세끼부네 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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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루시마 미치후사 | 소장이 선봉으로 먼저 돌격하겠습니다. |
와키자카 야스하루 | 이순신을 결코 가벼이 보지 마시오. |
구루시마 미치후사 | 나는 기필코 당포에서 이순신에게 죽은 형의 원수를 갚아 고향에 계신 어머니의 한을 풀 것이오. |
와키자카 야스하루 | 이 싸움은 나와 이순신의 세 번째 싸움이다. 드디어 이순신을 격파할 절호의 기회가 왔다. 내 기필코 한산도와 안골포의 원수를 갚으리라. |
수많은 일본 수군과 조선 수군 13척의 전열이 마주보고 있다. 순간 이순신 기함의 대취악이 끝나고 정적이 감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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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루시마 미치후사
| 겨우 열세 척의 전선으로 나를 막겠다고? 거기다가 나팔만 불고 있어? 가소롭기 짝이 없구나. 나는 일본에서 물길 험하기로 유명한 미야쿠보 출신이다. 이 정도 물살은 우습다. 부대 돌격하라. |
수십 척의 적선이 이순신의 기함으로 달려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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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 | 서두르지 마라. 태산 같이 기다려라. (어린 병졸을 보며) 두려운가? 포성이 울리면 너의 두려움도 사라지리라. 돌아가신 부모 형제, 짓밟힌 조국의 산하를 생각하라. |
이순신 기함의 징이 크게 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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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
| 발포하라, 쏘아라. 천둥 같이 쏘아라. 우레 같이 쏘아라. 조국의 운명이 우리에게 달려있다. 용사들이여 분전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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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희립 | 비격을 던져라. 불화살을 쏘아라. |
이순신 | 닻줄을 지켜라. |
송희립
| 편전조 앞으로. 닻줄에 달려드는 악귀들을 쏘아라. |
이순신
| 뱃전에 기어오르는 놈들을 창으로 찌르고 낫으로 훑 어라. 조란탄을 계속 쏘아라. 쇠뇌를 퍼 부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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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 기함이 포위된 가운데 달려드는 적선을 격파하며 맹렬히 싸우고 있다. 포탄 터지는 소리, 조총소리, 활시위 소리, 비명. 요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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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 | 전사들이여, 조금만 더 버티자. 곧 물때가 바뀐다. 초요기를 올려라. |
초요기가 올라가고 판옥선 2척이 달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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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 | 안위야, 응함아. 왜 이리 늦게 오느냐? 내 손에 죽겠느냐? 싸우다 죽겠느냐? |
안위 | 예, 싸우다 죽겠습니다. |
이순신 | 싸움이 급하다. 나가 싸워라. |
다른 판옥선들도 뒤이어 달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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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루시마 미치후사 | 저 배를 공격하라. |
세끼부네들이 안위의 배를 집중 공격한다. 왜군들이 안위의 배에 기어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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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
| 안위가 위험하다. 급히 가서 안위를 구하자. 닻줄을 끊어라. 화살 공격을 집중하라. 선체를 부딪쳐 기어오르는 악귀들을 털어버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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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의 기함이 왜선에 화살을 퍼붓고 세끼부네를 밀어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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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위 | 장군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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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 | 안위야. 계속 싸워라. 나는 왜장의 배를 격파하러 간다. |
이순신 기함이 삼도수군통제사 깃발을 휘날리며 붉은 기를 펄럭이는 왜장선으로 돌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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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희립
| 타를 당겨라. 북을 쳐라. 저기 붉은 깃발 왜장선을 쳐부순다. |
이순신 | 돌격하라. 쏘아라, 퍼부어라. |
송희립 | 왜장이 화살을 맞고 물에 떨어졌습니다. |
이순신
| 찍어 올려라. 이놈. 아직 죽지 않았구나. 토막 내어 걸어라. |
구루시마 미치후사의 수급이 피를 흩뿌리며 이순신 기함의 장대에 걸렸다. 대장의 수급을 본 왜군들 경악한다. 밀물이 썰물로 바뀌며 소용돌이와 삼각 파도가 일기 시작한다. 세끼부네는 마구 흔들리며 밀리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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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 | 쏘아라. 퍼부어라. 밀어 붙여라. |
왜선들 썰물에 밀려 서로 부딪히며 큰 피해가 발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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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끼자카 아스하루
| 이순신에게 또 당하는구나. 처참하게 깨지는구나. 수륙병진, 서해 진출 목표는 또 좌절되는구나. 이순신을 이길 수 없고, 울돌목의 격류와 노도를 넘을 수가 없구나. 후퇴하라. 후 퇴하라. |
왜 수군 후퇴를 알리는 나팔이 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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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끼자카 아스하루
| 이순신, 증오스러운 자.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사람, 내가 가장 죽이고 싶은 사람, 내가 가장 흠숭하는 사람, 내가 가장 만나보고 싶은 사람. 이순신, 이순신. |
왜 수군 부서지고 불타며 패주한다. 진도 백성들 강강수월래로 환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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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
| 악귀들은 완전히 패주했다. 그만 추격을 멈추어라. 다음 싸움을 준비하자. 우리의 우국충정 용맹이 하늘에 닿았다. |
막.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