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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아산UBF 특강 제 5 강
내 안에 거하라
말씀 / 요한복음 15:1-17
요절 / 요한복음 15:4
(요 15:4, 개정)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사람이 누구나 인생에서 아름답고 좋은 열매를 맺고 싶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맺어야 할 열매가 무엇이며 어떻게 열매 맺을 수 있는지 말씀해 주십니다. 이 말씀을 마음으로 받고 실제로 행하며 살아서 주님이 주시는 풍성한 열매 맺기를 기도합니다.
1절을 보십시오.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나는 참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농부라. 예수님께서는 예수님을 참포도나무, 하나님 아버지를 농부로 비유하십니다. 농부는 참포도나무를 통해 열매를 맺습니다. 참포도나무는 그 가지에서 열매가 자라고 맺힙니다. 그런데 참포도나무에 붙어있다고 해서 모든 가지가 열매를 맺는 것은 아닙니다. 열매가 잘 자라고 결실하는 가지가 있고 그렇지 않는 가지가 있습니다. 이를 잘 보고 판단하여 처분을 내리는 이가 농부입니다.
2절을 보십시오. 무릇 내게 붙어 있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그것을 제거해 버리시고 무릇 열매를 맺는 가지는 더 열매를 맺게 하려하여 그것을 깨끗하게 하시느니라. 가지를 제거하거나 남기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기준은 열매입니다. 제주도의 특산물인 한라봉은 그 과실이 크고 달아서 비싸고 귀한 과일로 취급받습니다. 좋은 한라봉이 맺히게 하는 비결이 있습니다. 한 가지에 잘 자라는 하나의 한라봉만 남기고 다른 잔가지는 쳐내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한라봉에 양분이 집중적으로 흘러가서 특상품이 됩니다. 가지가 나무에 붙어있다고 그것만 믿고 안심하다가는 아무 열매도 맺지 못하여 잘려나갈 수 있습니다. 가지는 나무에 붙어서 열매를 잘 맺어야 합니다.
여기서 가지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예수님께 함께하게 된 제자들을 지칭합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말씀으로 이미 깨끗하여 졌습니다. 베드로, 요한과 야고보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갈리리 어부 생활을 정리하였습니다. 세리였던 마태는 세리직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가 되었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을 모르던 시절의 삶이 있습니다. 세상에 던져져 방황하며 살다가 각자 다른 계기로 예수님의 말씀을 듣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받아 죄악되고 잘못된 행실에서 어느정도 벗어나 새로운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다가 아닙니다. 참포도나무이신 예수님께 붙어있게 되었다면 그에 맞는 열매를 맺어나가야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가지가 가지치기 당하듯이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는 것을 피할 수 없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맺어야할 열매는 무엇이며 열매에는 어떤 열매들이 있습니까?
흔히 눈에 보이는 좋은 결과와 성과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우리 모임은 대학생들에게 성경말씀을 읽히고 가르칩니다. 전도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소화하고 그 말씀에 따라 성장하며 말씀을 이루는 삶을 살게합니다. 제자양성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다른 지역의 모르던 사람에게 전하여 예수님을 믿어 구원에 이르게 하는데 쓰임받습니다. 선교입니다. 이런 것들은 눈에 보이는 열매입니다. 이 열매들을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나 이 열매들이 맺히기까지 먼저 이루어져야하는 내적 열매가 있습니다. 자기 중심적이고 성과 지향적인 나의 인격이 변화되어야합니다. 가지인 우리의 내면이 포도나무이신 예수님을 닮아 다른 한 영혼을 품고 감당할 수 있을 만큼 성숙해져 가야합니다. 농부이신 하나님께서 가지인 우리가 참포도나무이신 예수님을 통해 내적으로 외적으로 풍성한 열매맺기를 원하십니다. 우리의 열매를 통해 창조주 하나님께서 영광받으시는 것이 궁극적인 열매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본성은 열매맺기에 부적합합니다. 우리가 좋은 열매를 맺기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할까요?
4절을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예수님께서는 “내 안에 거하라”고 하십니다. ‘거하다’는 ‘머물다’ ‘살다’ ‘결합하다’의 의미가 있습니다. 가지가 나무에 착 달라붙어서 오랜 세월동안 지내게 되면 끊임없이 양분과 수분을 주고 받으며 한 개체가 되어간다고 합니다. 제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과 하나가 되어가야합니다. 그렇지 않을 때 가지는 양분을 온전하게 공급받을 수 없고 스스로 열매 맺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또 말씀하십니다.
5절과 6절을 보십시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려져 마르나니 사람들이 그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 우리는 예수님을 떠나서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려져 말라버리고 사람들은 그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를 것입니다. 참포도나무 예수님과 연결되어 주렁주렁 열매를 맺든가 아니면 밖에 버려져 불에 던져지든가 둘 중 하나입니다. 중간은 없습니다. 이를 알고 우리는 필사적으로 열매 맺는 가지가 되고자 해야합니다. 비결은 가지인 우리가 포도나무이신 예수님과 딱 붙어 연결되어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께 딱 붙어서 예수님으로부터 오는 양분을 받고 좋은 열매를 많이 맺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7절을 보십시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7절부터는 예수님 안에 거한다는 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말씀하십니다. 가지가 참포도나무에 붙어 있는 것은 우리가 예수님 안에 거하는 것인데, 예수님 안에 거한다는 것은 첫째로 예수님 말씀이 우리 안에 있는 것입니다. 둘째는 예수님께 기도하고 응답받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내적인 상태를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내 속에 계서서 나의 생각과 말과 행동을 넘어 삶 전체에 영향을 끼치고 있는 상태입니다. 사람이 가만히 있는데 저절로 이렇게 되지 않습니다. 시편 1편에 보면 주의 말씀을 즐거워하여 주야로 묵상하는 사람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사랑하고 예수님의 말씀을 향하여 마음을 활짝 열어야합니다. 아침에나, 저녁에나, 혼자 있을 때나 시간이 없을 때에도 시간을 내어 말씀을 읽고 묵상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나에게 적용시키며 나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 결과, 예수님의 말씀이 내 안에 자리를 잡아 내 생각과 삶의 방향을 인도해가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 안에 말씀이 있다면 그 말씀에 기초한 것은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기도하라고 하십니다. 사람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말씀대로 살고자 하여도 한계에 부딪힐 수 있습니다. 이 때 정말 말씀대로 될 까 마음에 의심이 들어옵니다. 그럴 때 물러서거나 포기하지 말아야합니다. 다른 길로 가거나 다른 방법을 찾아가서도 안됩니다. 내 속에 임한 주의 말씀을 붙들고 기도하기를 계속해나갈 것입니다. 말씀의 의미를 잘 모르거나 확신이 없다면 말씀의 참된 뜻과 나아갈 방향을 깨닫게 해달라고 또 기도해야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리하면 이루리라고 분명하게 약속해 주셨습니다. 내 안에 말씀을 채우고 말씀에 따라 기도할 때 주님께서 우리를 통해 말씀을 이루어가십니다.
8절을 보십시오. “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는 내 제자가 되리라” 예수님의 말씀이 그 내면에 있고 기도를 통하여 예수님과 막힌 관계가 없을 때, 그 사람은 열매를 많이 맺습니다. 먼저 내적인 열매를 주십니다. 내 안에 계신 예수님께서 나의 인격을 변화시킵니다. 다른 사람을 생각하고 살피며 도울 수 있는 세밀하고도 넓은 인격이 되게 하십니다. 그럴 때 다른 사람에게도 주의 복음을 전하고 그 안에 믿음이 자라나도록 돕는 일을 할 수 있으며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는 선교사명에 쓰임받습니다. 이런 신령한 열매를 맺는 삶은 새로운 피조물로 다시 태어난 인생입니다. 이 변화된 모습으로 인하여 하나님께 영광 돌릴 수 있습니다. 일생 본성에 이끌리며 살고 세상 풍조를 따라 욕심을 부인하지 못하고 살던 인생이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살 수 있는 것이야말로 얼마나 크고 놀라운 기적입니까! 이렇게 변화된 사람을 예수님께서 ‘제자’라 하십니다.
이 같이 좋은 열매를 맺고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제자에게 필수적인 것은 말씀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말씀이 내 삶에서 실천되는 것이 무엇으로 나타납니까?
9, 10절을 보십시오.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예수님 안에 거하는 것은 예수님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은 예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입니다. 말씀이 내 삶을 통해 나타난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도 주의 계명을 지키는 지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계명이 무엇입니까?
다같이 12절을 읽어보겠습니다.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서로 사랑하라 하십니다. “내가 예수님 안에 거한다 예수님의 사랑 안에 있다” 아무리 말하여도 서로 사랑하라 하신 예수님의 계명을 지키지 않고 나타나지 않으면 예수님께서 내 안에 계시다 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사랑을 모르고 사랑을 실천하기에 부족합니다. 예수님께서도 이를 아십니다. 그래서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을 계명으로 주셨습니다. 내 나름의 사랑이 아니라 예수님의 사랑을 배우고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사랑을 행하며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들을 어떻게 사랑하십니까?
첫째, 죄인을 용서하셨습니다. 내 뜻대로 해주지 않는다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는 우리를 용서하시고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하나님께 용서의 기도를 드리셨습니다. 사람들은 자기 욕심을 추구하는 본성을 가졌습니다. 무지하고 무례하고 교만하며 부도덕합니다. 사람이 함께 살아갈 때 서로에게 짐이 되고 미운 마음이 저절로 올라옵니다. 하나님과 본체이신 예수님께서 이런 우리와 함께 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베드로는 죽기까지 예수님을 따르겠다 호언장담하고도 예수님이 잡혀가시고 고초를 당하실 때 저주하기까지 하며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런 베드로를 용서하시고 교회의 반석으로 세우셨습니다.
둘째, 목숨을 버려 자기를 희생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대신하사 채찍질 당하시고 십자가에 못박히사 물과 피를 쏟으셨습니다. 우리가 받아야 할 업신여김과 조롱을 대신 받으셨습니다. 대신 죽으심으로 죄로 인해 죽을 우리를 살리셨습니다. 사랑은 반드시 희생을 동반합니다.
13절을 보십시오.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 사랑은 온전한 희생으로 나타납니다. 친구는 혈연관계도 아니요 운명 공동체도 아닙니다. 엄밀히 말하면 남이고 나중에 모른 척해도 그만인 그런 사이입니다. 그런데도 친구를 위해 자기 목숨을 버리면 진짜 사랑하는 것입니다. 오롯이 그 사람을 위하는 마음으로 하는 것이요 그 안에 나를 위하는 것이 전혀 없으니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그렇게 사랑하셨습니다.
예수님을 중심으로 공동체를 이루게 된 제자들은 누가 더 높은 자리를 차지할까 서로 경쟁하고 신경전을 벌였습니다. 제자들은 밖에서 들어와서 발이 더럽고 냄새가 나는데도 서로 발을 씻어 줄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먼저 발을 씻겨주었다가 낮은 위치에 서게 될 것이 싫었기 때문입니다. 외적인 열매에만 집착하느라 사람자체, 그 사람의 관계, 그 사람을 사랑하는 것에는 무심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런 제자들에게 예수님의 사랑이 어떤 것인지 보여주셨습니다. 스스로 낮아지셔서 제자들의 발을 손수 씻겨주셨습니다. 더럽고 냄새나는 발을 일일이 씻겨주셨습니다. 제자들은 제자들의 마음을 아시고 예수님의 사랑을 온 몸으로 보여주셨습니다.
외적인 열매만 생각할 때 사람의 내면을 볼 수 없고 사랑하는 일에 무심하게 됩니다. 사랑을 실천할 수 있는 내적 열매가 없고 결국 외적인 열매도 맺지 못합니다. 그 결과는 버려지고 불에 사르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되지 말아야합니다. 예수님을 통해 예수님의 인격과 내면을 닮아 나가야합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사랑을 실천하기에 힘써야합니다. 저 사람이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무엇이 필요한지 살피고 나를 내어드리는 사랑을 실천할 때 하나님이 주시는 풍성한 열매, 사랑의 열매를 맺어갈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계명을 지켜 사랑하기에 힘쓰는 사람에게 예수님이 주시는 선물이 있습니다. 우리 내면에 예수님의 기쁨이 충만하여 집니다 (11). 사람이 주는 기쁨은 잠시 잠깐이나 예수님께서 주시는 기쁨은 조건과 상관없는 기쁨, 영원히 지속되는 기쁨입니다. 이런 기쁨이 내면에 가득하여 집니다. ‘서로 사랑’하는 사람이 얻는 선물입니다. 그것이 다가 아닙니다.
14, 15절을 보십시오. “너희는 내가 명하는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라” 서로 사랑하라 하신 계명을 지킬 때 예수님께서 우리를 친구삼아 주십니다. 예수님과 친구가 된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입니까! 예수님과 친구가 되면 예수님께서 하나님께 들은 것을 다 알게 해주십니다. 하나님 나라의 비밀, 세상을 향한 구원, 불신 세상에 대한 심판과 징계, 앞으로 일어날 역사와 현재 이루어지는 일들에 대한 비밀을 다 알게 해주십니다.
창세기에 보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친구라 하시고 소돔과 고모라에 대한 심판 계획을 다 알려 주셨습니다. 소돔과 고모라를 불과 유황으로 멸하실 때, 친구로 삼으신 아브라함의 기도를 기억하시고 멸망의 성에서 롯과 그의 가족들을 등을 떠 밀어서 구원하여 주셨습니다. 친구란 이런 것입니다. 예수님과 친구가 되면 아브라함이 누린 것과 동일한 은혜를 우리가 맛볼 수 있습니다.
16, 17절을 보십시오.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열매를 맺게 하고 또 너희 열매가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라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명함은 너희로 서로 사랑하게 하려 함이라” 예수님께서는 사랑하는 제자들에게 열매가 항상 맺히기를 원하십니다. 열매 맺는 제자의 삶은 하나님의 큰 은혜이며 축복입니다. 예수님 계명대로 행하여 서로 사랑하며 사는 것 그 자체도 큰 행복입니다. 나아가 사랑이 없어서 말라가는 다른 이에게도 예수님의 사랑이 전해져서 그 생명이 살아나는 열매가 주렁주렁 맺히는 놀라운 축복을 누립니다, 서로 사랑하는 제자의 삶은 예수님께서 원하는 것이며 그렇게 살라고 예수님께서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우리가 부르심에 합당한 인생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우리를 불러 열매 맺게 하시고 서로 사랑하게 하신 예수님의 놀라운 은혜를 감사하며 찬양합니다.
저는 청년 시절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고 셀 수 없는 많은 용서와 희생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으로 저를 감당하고 사랑해주셨던 분들이 먼저 이땅을 떠나는 것과 병들어 누워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죄악 가운데 두려움과 절망 속에 살아가던 주의 종들을 쓰셔서 구원해내셨습니다. 그런데 저는 예수님의 인격을 닮는데 힘쓰지 않았고 한 사람을 이해하고 사랑하지 못하였습니다. 눈에 보이는 열매에 마음이 앞서있었습니다. 형식도 있고 열심도 있으나 내면에 예수님이 계시지 않을 때 진실한 사랑을 할 수 없고 열매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오늘 말씀은 가지인 내가 포도나무이신 예수님께 붙어서 예수님의 인격 사랑을 배우고 실천하는 삶을 살아야 함을 가르쳐주십니다. 내 안에 주님의 사랑이 흐르고 그 사랑을 실천할 때 열매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임을 믿습니다. 이를 위하여 예수님의 말씀을 묵상하며 나를 위해 십자가에 달리시고 죽기까지 감당하신 예수님의 사랑을 제 안에 채우겠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에 힘입고 서로 사랑하라 하신 말씀에 순종하여 나를 내어주는 사랑을 실천하는 주의 제자되기를 기도합니다. 사랑의 관계성을 맺고 생명이 살아나는 큰 기쁨을 맛보며 하나님게 영광돌리기를 기도합니다.
결론적으로 우리 인생은 열매 맺도록 지음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통해 우리가 열매맺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예수님 안에 거하며 아름다운 열매를 풍성히 맺으며 살기를 기도합니다. 말씀과 기도로 예수님의 사랑을 배우고 실제 삶에서 내 목숨을 내어 다른 영혼을 살펴주고 들어주고 채워주는 일을 해냐가기를 기도합니다. “적당히” “다음에”는 없습니다. 지금 내가 여기서 예수님 안에 거하며 내적으로 외적으로 풍성한 열매를 주렁주렁 맺으시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아산 UB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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