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2월 16일 주일대예배 설교문 / 마 21:1-22 / 예배를 개혁하라
할렐루야! 사랑하고 축복하고 존경합니다.
본문은 세 장면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먼저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데리고 백성들의 호산나(여호와여 구원하소서) 환호의 소리를 들으시면서 예루살렘 성에 입성하십니다. 둘째는 예루살렘 성안에 있는 성전, 이 예루살렘 성전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자존심입니다. 생명같이 여기고 가장 자랑스러워하는 곳입니다. 지금도 예루살렘은 세계의 눈이라고 하지요. 그러나 화려한 건물 이면에는 타락할 대로 타락해버린, 더 이상 생명의 호흡을 하지 못하고 죽어버린 예루살렘 성전을 예수님께서 직접 청소하시고 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인데 너희들이 강도의 소굴을 만들었도다라고 탄식하시는 장면입니다. 셋째는 성 밖으로 나오셔서는 열매 맺지 못한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였더니 이 나무가 말라죽어버리는 장면입니다.
백성들의 환호를 받아가며 성전으로 들어가신 예수님은 바로 우리의 예배를 받으실 주인으로, 왕으로 오신 구세주이십니다. 할렐루야!
그러나 정작 예수님을 맞이해야할 성전은 하나님보다 돈이 숭배를 받았으며, 영이 살아서 움직이기보다 육과 혼에 머물러있는 실로 무익한 곳이었습니다.
요한복음 6:63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은 영이요 생명이라
12-13절 함께 읽겠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님께서 성전을 정화하시면서 개혁하셨던 것처럼 교회는 항상 자기모순을 개혁해나가야 합니다. 이것은 주님의 뜻입니다.
오늘날 영국 성공회, 감리교회, 장로교회, 침례교회, 성결교회, 순복음교회 등 개혁교회가 나오게 된 시발점은 1517년 독일 비텐베르그성 교회에 95개조 반박문을 게시한 것에서 시작됩니다. 95개조의 주된 내용은 우리가 면죄부라고 알고 있는 면벌부에 대한 조목조목 반박이었습니다. 당시 가톨릭 교황이었던 레오10세는 성 베드로성당을 건축하기 위해 막대한 자금이 필요했는데 이를 위해 모금운동 형식으로 면벌부를 판매했던 것입니다. 교회의 건물을 짓기 위해서 죄의 용서를 빙자하여 돈으로 예수님의 십자가 구원을 사고파는 행위를 루터는 용납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루터가 95개조 논제를 통해 강조한 것은 <회개>입니다. 모든 헛된 욕망으로부터 돌이켜서(회개) 그리스도를 따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교황은 하나님께서 죄를 사하였다는 것을 선언 혹은 시인하는 이외에 어떤 죄든지 사할 힘이 없다.” “면죄증서에 의해서 자신의 구원이 확실하다고 스스로 믿는 사람은 그것을 가르치는 사람과 함께 영원히 저주를 받을 것이다.”
종교개혁의 원리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①오직 성경(sola Scriptura):교회의 전통과 교황의 칙령은 성경의 권위 아래에 있다.
②오직 그리스도(sola Christus):면벌부를 통하여 구원받는 것은 교황의 권위가 그리스도보다 높다는 말이다. 그리스도를 따르기 위해서는 교황 중심으로부터 그리스도 중심으로 돌이켜야 한다.
③오직 은혜(sola Gratia):그리스도를 따르기 위해서는 나의 공로를 드러내는 것으로부터 은혜에 대한 감사로 돌이켜야 한다.
➃오직 믿음(sola Fide):로마 가톨릭은 믿음보다 면벌부를 더 강조했다. 이는 믿음이 아닌 욕망을 추구한 것이다. 면벌부가 아닌 믿음, 욕망이 아닌 믿음이 구원을 얻는다. 믿음은 나의 욕망을 체념할 때 시작되는 것이다.
➄오직 하나님께만 영광(soli Deo Gloria):로마 가톨릭은 하나님만 영광을 받는 것이 아니라 교황과 교회도 영광을 받아야 한다고 가르친다. 결국 교황과 교회가 하나님보다 더 권위를 가지게 된다. 그리스도를 따르기 위해서는 나와 교회가 영광을 받으려는 욕망으로부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믿음으로 돌이켜야 한다.
ex1) 몇 십 년 전 우리나라가 부흥운동이 한창일 때 어떤 목사가 성령의 능력을 보여주려고 하는데 이것이 잘 안되고 하니까 어디 가서 기압술을 배웠습니다. 그래서 이걸 가지고 성령의 능력이라고 포장해서 다니니까 크게 돈을 벌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진짜 성령님이 가만히 계십니까? 아니지요. 조작된 능력으로 사람들 쓰러뜨려서 돈 벌었는데 문제가 생기는 것입니다. 안수를 하면 사람들이 아파서 죽겠다고 하고, 거기서 피가 솟고 해서 사람들이 고소를 해서 아주 망해버렸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그 사람의 자식까지 망해서 집안 전체가 망했답니다.
ex2) 이영돈 피디라고 알지요. 이 분이 어떤 이단이 20여명을 죽여서 사회적 문제가 되니까 이걸 자세히 취재해 가지고 TV 나오게 했습니다. 그리고 교주는 고발되어 1심에서 사형이 판결이 났답니다. 그러니까 그 이단사람들이 처단조를 만들어서 재판한 검사, 판사하고 이영돈 피디까지 모조리 죽이기로 모의하였답니다. 그래서 이영돈 피디도 경찰에 신변보호를 받았답니다. 이제 2심 재판이 벌어졌는데 글쎄 ‘무죄’, 이렇게 판결되었다는 것입니다. 아마 판사도 두려워했던 것 같습니다. 제작진들도 큰일 났습니다. 그래서 이민을 가야 하나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 교주가 무죄라고 아주 좋아서 짐 꾸리고 교도소를 나오다가 ‘콱’ 심장마비로 죽었답니다. 할렐루야!
언론에서 교회의 잘못들이 대서특필됩니다. 목회자의 돈 문제, 여자 문제 등등... 저는 이걸 보고 하나님은 살아계시다는 것을 믿습니다.
다른 종교 같으면 더 더럽고 추악한 것이 나올 것도 안 나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오늘 성전을 둘러 엎으셨던 것처럼 계속 자기 갱신을 이루고 계신 것입니다. 세계 교회사를 보면 세 가지 큰 변혁이 있었습니다. 첫 번째가 사막의 교부들의 운동입니다. A.D. 313년에 교회는 로마 황제 콘스탄틴대제에게 공인을 받습니다. 이제 기독교 로마가 된 것입니다. 무려 250여 년간 줄곧 박해를 받던 교회가 드디어 승리한 것입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 승리를 이용해 자기 사욕을 채우는 사람들이 생겼습니다. 교회와 세속권력이 결탁하여 거룩해야 할 교회가 세속화된 것입니다. 이에 뜻있는 사람들이 사막으로 들어갑니다. 원래 박해를 피하던 자리인데 이제는 스스로 그곳으로 들어가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를 나누며 생명의 “영성”을 나누어 주었고 이것이 교회를 거룩하게 지탱하는 힘이 되었습니다.
두 번째는 수도원운동입니다. 프란치스코 수도회, 도미니크 수도회, 예수회 등입니다. 중세 가톨릭교회가 부패하자 수도원운동을 통하여 가난한 사람을 돕고 기도하고 선교하는 공동체들이 생겼습니다.
세 번째는 앞에 말씀 드린 대로 개신교 운동입니다. 신적권위를 가지고 있던 로마 교황은 교회매매, 성직매매, 면벌부 등 타락할 대로 타락하고 말았습니다. 이때 마르틴 루터를 비롯하여 이후 존 칼빈의 장로교 운동, 요한웨슬리의 감리교 운동 등으로 교회를 새롭게 했던 것입니다. 이러한 개혁운동으로 오늘의 우리가 있게 되었으니 반드시 교회와 신앙은 날마다 <개혁>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성경을 읽어보면 전체가 종교개혁입니다. 마치 수레바퀴처럼 끊임없이 끊임없이 하나님을 대항하고, 사람이 하나님의 보좌에 앉으려고 하거나, 우상이 영광을 받을 때 하나님은 하나님의 사람을 통하여 개혁을 이루셨습니다. 여호사밧, 히스기야, 요시야가 3대 종교개혁 왕이고요 이 외에도 성경의 위인은 모두다 종교개혁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시대에, 그리고 우리 교회에 가장 개혁해야할 것이 무엇일까요? 무엇보다 예배입니다.
창세기 22:5 이에 아브라함이 종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나귀와 함께 여기서 기다리라 내가 아이와 함께 저기 가서 예배하고 우리가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 하고
성경에서 최초로 나오는 예배라는 단어입니다. 아브라함이 자기 아들 이삭을 하나님께 바칠 때, 아브라함이 자기가 하나님께 가는 이유가 예배드리러 간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입니다. 우리도 믿음을 가지고 있는 자이기 때문에 영적으로 보자면 아브라함이 우리의 조상이 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 시대에는 성전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일러주신 지역에 가서 자신의 아들이 이삭을 바치려고 했습니다. 그곳이 모리아 산이고 그 모리아 산이 바로 예루살렘 성전이 세워진 곳이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성전은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장소라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무엇보다 예배에 승리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어느 곳에 가나 가장 먼저 제단을 쌓고 하나님께 예배를 드렸으며, 예배를 받으신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생명을 지켜주시며 그를 인도하셨습니다.
ex3) 강화도 온천 이야기 – 우물을 파려고 밭에서 예배를 드렸는데 그 예배상 밑에서 온천이 터져 나옴.
출애굽기 32:8 그들이 내가 그들에게 명령한 길을 속히 떠나 자기를 위하여 송아지를 부어 만들고 그것을 예배하며 그것에게 제물을 드리며 말하기를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 신이라 하였도다
이 말씀은 모세가 시내에서 40일 동안 하나님과 대면하여 율법을 받고 있을 때 그 밑에서 기다리던 백성들에게서 벌어지는 일이었습니다. 그들은 모세를 기다리지 못하고 금송아지를 만들고 예배하고 있었습니다. 이것이 성경에 두 번째 나오는 예배라는 단어입니다. 그런데 이 예배는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가 아니라 금송아지에게 절하는 예배였습니다. 하나님 편에서 볼 때는 예배가 사탄에게 빼앗긴 것입니다.
출애굽기 32:9-10 여호와께서 또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 백성을 보니 목이 뻣뻣한 백성이로다 / 그런즉 내가 하는 대로 두라 내가 그들에게 진노하여 그들을 진멸하고 너를 큰 나라가 되게 하리라
하나님께서 진노하셔서 그들을 진멸하겠다고 하셨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시지만 또한 진노하시는 심판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노아방주, 소돔과 고모라를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을 예배하지 않고 하나님을 떠나 우상과 물질, 자기 생각·감정·의지가 먼저였던 모든 나라 모든 세대들이 심판을 받았습니다.
여기에는 교회도 피할 수 없습니다. 창세기 4장에 가인과 아벨을 보십시오. 저들이 농사짓고 나서, 양을 키워서 제일 먼저 한 일이 하나님께 예배를 드린 것입니다. 그런데 가인이 예배에 실패했습니다. 하나님을 예배한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예배한 것이었습니다.
내가 이렇게 해서 내가 드렸는데... 왜 내 예물은 받지 않으시고 아벨의 제단만 받으시냐?
하나님께서 안 받으시면 회개하고 다시 예배드리면 됩니다. 가인은 예배를 드리지만 하나님께 예배드린 것이 아니라 내 생각, 감정, 의지 중심 즉 자기 자신을 예배하였던 것입니다. 결국 예배에 실패한 가인은 살인자가 됩니다.
교회가 타락했냐 타락하지 않았냐는 예배로 판가름 나는 것입니다. 교회가 예배중심이면 살아있는 교회가 됩니다. 그러나 예배중심이지 않으면 영이 죽어서 죽은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시는 분이시지요. 그럼 무조건 다 들어주십니까? 예배 안 드려도...?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너는 나를 예배하지도 않는데 네 기도를 내가 들어줄 것 같으냐? 그러기에 우리가 예배중심이 아니면 하나님이 도와주시지 않으니까 열매도 맺지 못하는 것입니다.
19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왜 본문에 열매 맺지 못하는 무화과나무가 나왔을까요? 교회가 교회답지 못하니까, 예배가 예배답지 못하니까 열매를 맺지 못한다는 말입니다.
성전(교회)은 뭐하는 곳이죠?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곳입니다. 하나님께 예배하기 위해서, 만민이 기도하는 집으로 하나님께서 세우신 곳입니다.
시편 132:7 우리가 그의 계신 곳으로 들어가서 그의 발등상 앞에서 엎드려 예배하리로다
우리가 기쁘게 영과 진리로 예배를 드리면 마음이 시원해지며 마음에 시온의 대로가 열리게 됩니다.
민수기 6:24-26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지니라 하라
예배 때 제사장을 통하여 주시는 이 약속의 말씀은 예배를 온전히 드린 자가 받는 하나님의 예비하신 축복입니다.
사랑하는 우리 동문교회의 예배가 갱신되고 회복되어서, 예배의 기쁨, 감격, 감동이 되살아나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우리 모두 예배에 승리해서 하나님의 기쁨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동문교회 강순욱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