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두 / 박은영
우리의 피는 얇아서
가죽이라고 말하기 부끄러웠다
비칠까 봐 커튼을 치고 살아도 속내를 들켰다
틈은 많은데
쉴 틈이 없다는 것은 조물주의 장난
우리는 섞이지 않는 체질이지만
좁아터진 방에서 꾹꾹 누르며 지냈다
프라이팬과 냄비 손잡이에 덴 날은
입술을 깨물었다
부대끼고 어우러지고 응어리지고
그러다가 터지면 알알이 쏟아지던 찌끼 같은 시비들
찢어지게 가난하다는 말은
아직 찢어지지 않은 것
찢어질 듯 불안을 안고 사는 일이었다
처녀가 아이를 배도 이상하지 않은
무덤 같은 방,
깊이 쑤셔 넣은 꿈속에서
개털과 나무젓가락과 실반지가 나왔다
온도를 잃은 이물질들
방으로 들어오는 건
사람이 아니라
짙게 밴 냄새라는 것을 알았을 때
우리의 피는 얇아서
가죽, 아니
가족이라고 말하기도 부끄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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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두는 지금도 우리가 즐겨 먹고 있는 음식이라는 점에서 우리의 전통음식처럼 느껴지지만 그 유래를 찾아보면, 밀가루로 만두 비슷한 음식을 만들어 먹은 고대 메소포타미아 문명으로부터 당시 실크로드를 타고 중국과 한반도로 전파되었다는 학설이 정설처럼 되어있다. 우리의 전통 떡이 쌀로 만들어진 것이고, 떡 속에 넣은 고물도 깨나 콩 등 단일한 품목인데 반해, 만두는 피가 얇고 그 속에 다양한 품목의 식재료가 풍성히 들어간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박은영 시인은 이러한 만두의 특성에서 ‘가족사’를 도출해 낸다. ‘만두’가 가족 공동체를 상징하는 이미지라면 ‘만두 속’은 가족 구성원을 상징한다. 그런데 가족을 하나로 묶어주는‘만두 피’는 너무 얇아서 터지기 쉽다. 시인은 어린 시절의 가난한 삶을 터지기 쉬운 만두에 비유해서 “우리의 피는 얇아서/ 가죽이라고 말하기 부끄러웠다/ 비칠까 봐 커튼을 치고 살아도 속내를 들켰다”고 진술하고 있다. 이 시의 후반부에서‘가죽’은‘가족’과 동의어임이 드러나면서, 얇은 가죽피같이 불안했던 가족의 삶이 현실화된다. 당시의 가난한 삶은“틈은 많은데/ 쉴 틈이 없”는 만두 속 같이 팍팍한 삶으로 표상된다.
화자의 어린 시절의 가난이 더욱 불편하게 느껴지는 것은 가족 구성원이 서로“섞이지 않는 체질이지만/ 좁아터진 방에서 꾹꾹 누르며” 함께 지낼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 당시 화자의 삶은“부대끼고 어우러지고 응어리지고/ 그러다가 터지면 알알이 쏟아지던 찌끼 같은 시비들”이 난무하던 삶이다. 화자는 이러한 당대의 삶을 “찢어지게 가난하다는 말은/ 아직 찢어지지 않은 것/ 찢어질 듯 불안을 안고 사는 일이었다”고 표현한다. 이것은 자칫 잘못하면 툭 터지고 해체되는 만두의 불안한 운명과도 흡사하다. 그런데 얇은 만두로 표상되는 가족의 불안은 만두 속에 잘못 들어간 “개털과 나무젓가락과 실반지”같은“온도를 잃은 이물질들”로 표상되는, 순탄하지 않은 삶으로 인해서 더욱 심화된다.
급기야 화자는‘가족 구성원’을 “사람이 아니라/ 짙게 밴 냄새”로 전락시킨다. 화자의 이러한 인식은 가족 구성원들이 서로에게 ‘냄새’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지 않다는 슬픈 현실을 반영한다. 이러한 현실은 화자로 하여금 가족을 당당히 가족이라고 말하기도 부끄러운 상태에 이르게 해준다. 이 시는 어렵지 않으면서도 화자의 가난했던 유년체험을‘만두’라는 일상적 대상을 통해 예리한 시선으로 묘파해내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한 시이다. 이유 없이 난해한 시들이 대세를 이루고 있는 우리 시단에서 이해하기 쉬운 언어로 이만한 시적 성취를 이루고 있는 시를 만나기란 쉽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