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방서예[2855]杜甫5율=官定後戱贈(관정후희정)
官定後戱贈(관정후희증) : 벼슬을 정한 뒤에
杜甫詩
不作河西尉(부작하서위): 하서위를 마다한 까닭은
凄凉爲折腰(처량위절요): 처량하게 허리 굽힐 수 없고
老夫怕趨走(노부파추주): 늙은 몸 뛰기 싫어서였노라
率府且逍遙(솔부차소요): 이제 솔부에 자리 얻어 소일하고저
耽酒須微祿(탐주수미록): 작은 봉록이나마 술 마실 수 있겠고
狂歌託聖朝(광가탁성조): 황실에 의탁하여 미친 듯 노래하리
故山歸興盡(고산귀흥진): 귀향할 즐거움 끊겼으니
回首向風飇(회수향풍표): 바람보고 시름을 날리노라
語句解釋
官定後(관정후) : 관직을 정하고 나서.
戱贈(희증) : 장난삼아 자신에게 보내는 시를 지었다.
不作河西尉(부작하서위) : 하서(河西) 현위(縣尉)의 벼슬을 받지 않았다.
당시 현위는 낮은 직분이고 윗사람에게 굽실대는
일면 백성들을 들볶아야 했다.
折腰(절요) : 허리를 구부리고 상관에게 절하다.
老夫(노부) : 두보 자신.
怕趨走(파추주) : 이리저리 뛰어다니기가 두렵다.
率府(솔부) : 우위솔부병조(右衛率府兵曹)를 가리킨다.
두보는 하서위를 마다하고 후에 우위솔부병조참군(正八品下)을 받았다.
이것은 무기고의 감독관 정도의 낮은 직분이다.
그러니 우선 봉록을 탈 수 있으니 한가하게 소요(逍遙)할 것이라 했다.
耽酒須微祿(탐주수미록) :작은 봉급이라도 있어야 술을 마실 수 잇다는 뜻.
狂歌(광가) : 남보다 다른 노래를 짓는다.
평범한 자가 보면 마쳤다고 할 만한 뛰어난 시를 짓는다는 뜻.
歸興盡(귀흥진) : 고향에 돌아가는 즐거움도 사라졌다,
끊어졌다. 즉 직장에 매여서 고향에도 못 가겠다는 뜻.
向風飇(향풍표) : 회오리바람을 향해 고개를 돌린다.
고향을 바라보며 바람에 시름을 실어 보낸다는 뜻.
補充 說明
내가 하서위(河西衛)를 마다한 것은 처량하게 남에게
허리를 굽히기가 싫어서였다.
늙은 나는 하서위가 되어 이리 뛰고 저리 달리고 하기가 싫었음으로,
그것을 마다했고 그 대신 한직인 우위솔부병조참군의 직책을 맡고
이리저리 심심풀이로 소일하고 있노라.
작은 봉급이라도 있어야 술을 마실 수가 있을 것이며,
이렇듯 성군이 다스리는 나라에 몸을 의지하여 미친 듯 노래나 읊고자 한다.
명색이 벼슬이라 직분에 매였으니,
이제는 고향에 돌아갈 재미도 볼 수가 없게 되었음으로,
오직 고향을 바라보며 회오리바람에 시름을 실어 보내고자 한다.
두보의 원래의 포부는 보람 있는 벼슬을 얻어,
임금을 보좌하고 나라에 공을 세우고자 했었다.
그러나 천보(天寶) 十四년 나이 四十四세로
그는 우위솔부병조참군이란 낮은 직분밖에는 얻지를 못했다.
이에 그는 스스로 자조(自嘲)하며 시를 지었다.
이하 동아일보=입력 2024-02-01
동아일보|오피니언
마뜩잖은 관직[이준식의 한시 한 수]〈249〉
이준식 성균관대 명예교수
하서위(河西尉)를 맡지 않은 건,
처량하게 허리를 굽혀야 하기 때문이었지.
늙은이라 분주히 오가는 게 걱정스러웠는데,
율부(率府)의 일은 그런대로 한가롭지.
술 즐기려면 적은 녹봉이나마 꼭 있어야 하고,
거리낌없이 노래하려면 이 조정에 기댈 수밖에.
고향으로 돌아갈 꿈 사그라진 지금,
고개 돌려 광풍을 마주하네.
(不作河西尉, 凄凉爲折腰. 老夫怕趨走, 率府且逍遙.
耽酒須微祿, 狂歌托聖朝. 故山歸興盡, 回首向風飇.)
―‘관직을 정한 후 재미 삼아 보내다
(관정후희증·官定後戱贈)’두보(杜甫·712∼770)
관직을 향한 두보의 집념은 절박했다. 두 차례 과거에 실패한 후 현종에게 자신의 재능을 어필하는 문장을 세 차례나 올렸고, 그마저도 여의치 않자 세도가나 그 측근에게 자신을 천거하는 시를 줄기차게 보냈다. 자기 재능을 과시함과 동시에 상대를 치켜세우는 칭송 위주로 내용을 채우려다 보니 한량없이 긴 장시가 되기 일쑤였다. 무수히 올린 자천(自薦)의 시가 주효했던지 마침내 좌상 위견소(韋見素)가 그를 하서 현위(縣尉)로 천거했다.
하나 시인은 이를 거절하고 대신 율부의 주조참군(冑曹参军) 자리를 받아들였다. 왜 그랬을까. 현위는 상관 접대하느라 굽신거려야하고 늙은 몸으로 일선에서 바삐 움직여야 하는 데 비해 주조참군은 무기고나 관아 출입문을 관리하는, ‘그런대로 한가로운’ 직책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그의 나이 마흔넷. 늙음을 내세운 건 아무래도 억지 구실인 듯하다. 백면서생의 물정 모르는 트집 같기도 하고, 요직을 얻을까 하는 높은 기대치에 대한 실망감인 듯도 싶다. 시제에 ‘재미 삼아 보내다’라고 한 건 바로 이런 복합적인 심사를 자조적으로 내뱉은 반어가 아닌가 싶다. 이런 울적함을 달래기 위해서였을까. 자학이라도 하듯 시인은 지금 광풍에 자신을 내맡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