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몬. 레몬 자체는 산성이나, 레몬을 태운 재가 염기성이라 염기성 식품에 속한다.
건강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높아가면서 식품의 안정성 혹은 식품의 효능 등에 대해서 궁금해하기 시작했다. 그 중에는 식품의 산성과 염기성이 인체 건강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까 하는 문제도 포함되어 있다. 이번에는 산성식품, 염기성(혹을 알칼리) 식품의 화학에 대해 생각해 보기로 하자.
인체의 혈액 혹은 체액은 각종 유기화합물 및 무기화합물이 녹아 있는 점성을 지닌 용액이다. 그런 용액의 산성 혹은 염기성 정도는 pH(수소이온농도)를 사용하여 표시한다. pH는 pH = -log[H+]로 표현되는 식에 하이드로늄 이온의 농도([H+] 혹은 [H3O+])를 대입하면 얻어지는 숫자이다. 순수한 물의 이론적인 pH는 7.0이지만 아무리 순수한 물일지라도 일단 공기 중에 노출이 되었다면 pH가 7.0보다 작다. 그것은 공기 중에 있는 이산화탄소를 포함하여 기체들이 물에 녹아서 하이드로늄 이온의 농도가 증가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100% 자연산 빗물도 대기에 있는 이산화탄소가 녹아서 탄산이 형성되므로 pH는 약 5.6정도 된다. 따라서 산성비는 pH가 5.6 보다 작은 pH를 나타내는 비를 말하는 것이다. 반면에 수산화 이온([OH-])의 농도가 하이드로늄 이온의 농도 보다 큰 용액의 pH는 7.0보다 큰 염기성이다. 볏단 혹은 나뭇가지 등을 태우고 남은 재를 우려낸 잿물 혹은 빵을 굽는데 사용되는 탄산수소소듐 분말을 녹인 용액의 pH는 7보다 크다.
우리 몸의 혈액은 완충용액이다.
혈액의 pH는 거의 중성에 가까운 7.4이며, 완충용액이다. 완충용액이란 그 용액에 산성 혹은 염기성 물질을 추가로 더 첨가해도 pH가 거의 변하지 않은 용액이다. 그러므로 pH가 2.5정도 되는 콜라를 몇 캔씩 마셔도 혈액 pH는 변함이 없으며, 마찬가지로 알칼리 수 혹은 염기성 음료를 많이 마셔도 혈액 pH는 바뀌지 않는다. 다시 말해서 살아 있는 한 혈액의 pH를 영구적으로 변경할 수 있는 방법은 세상 어디에도 없는 것이다. 같은 이유로 아무리 많은 산성 식품 혹은 염기성 식품을 먹는다 해도 혈액 pH를 변경할 수는 없다. 만약에 혈액의 pH가 7.4에서 벗어나 pH가 0.05정도만 높거나 혹은 낮아도 몸은 심각한 상태에 빠진다. 그 보다 더 차이가 나면 죽음에 이를 수 있다.
콜라는 산성이지만 콜라를 마신다고 혈액의 pH가 변하지 않는다.
식품의 산성 혹은 염기성 판단은 주로 식품을 태우고 남은 재를 분석하여 얻은 결과이다. 식품의 재에는 다양한 성분의 화학물질을 포함하고 있고, 태우는 온도에 따라서 재에 남아 있는 성분도 달라진다. 그러므로 일정한 기준 온도에서 태운 식품의 재를 가지고 용액을 만들어 pH를 측정하고, 그 결과로 산성 혹은 염기성 식품이라고 구분하고 있다.
식품을 태워 재를 만드는 일은 식품의 구성 성분인 각종 화학물질을 산소와 반응을 시키는 화학적 산화에 해당한다. 한편 섭취한 식품이 체내 대사 과정을 겪으면 그 또한 음식을 구성하는 각종 화학물질들이 산화되는 것과 같다. 대사에 필요한 산소는 호흡을 통해서 필요한 곳으로 공급된다. 그러므로 음식이 소화되는 과정과 식품 분석을 위해서 태워서 재를 만드는 과정은 모두 화학적으로 말하자면 산화에 해당된다. 그러나 산화되어 얻어지는 최종 생성물의 종류와 개수는 물론 및 산화 반응 속도도 엄연히 다르다.
일반적으로 식품의 재에 염소이온, 황산이온, 인산이온이 많이 들어 있으면 산성 식품으로, 반면에 포타슘이온, 칼슘이온, 마그네슘이온이 많이 들어 있으면 염기성 식품으로 분류하고 있다. 고온으로 태우는 과정에서 이미 많은 유기화합물들은 사라진 상태이며, 상대적으로 무기화합물들이 산화물 형태로 많이 남을 것이라 여겨진다. 그리고 분석을 위해서 물에 녹이면 남아 있는 성분들끼리 서로 중화되고 여분으로 남은 성분이 산성과 염기성을 결정 짓게 된다.
한편 염기성 식품으로 분류된 식품일지라도 소변의 pH를 일시적으로 산성으로 변화시키는 식품도 드물지 않다. 앞선 설명한 것처럼 혈액의 pH는 변하지 않는다. 따라서 먹은 식품에 따라서 소변의 pH는 일시적으로 변할 수 있고, 그 정도도 대사 정도에 따라 사람마다 차이가 날 수 있다. 그러므로 식품의 재를 분석하여 산성, 염기성 분류를 하는 것은 하나의 분류 기준일 뿐이다. 그런데, 그런 분류를 하는 것이 과연 합리적이고, 과학적일까 하는 의문은 남는다. 그렇게 구분을 한 식품들이 우리의 체질을 산성 혹은 염기성으로 변화시키지 않기 때문이다.
염기성 식품이 몸에 좋을 것이라는 비과학적인 상상은 의외의 곳에서 출발한 듯싶다. 오래 전 연구 결과에 따르면 암세포는 정상세포보다 산소를 덜 사용하고, 젖산 생성을 활발히 한다고 한다. 실제로 시험관에 암세포를 넣고 산성 조건을 만들어 주었더니 암세포의 성장이 잘 되었고, 시험관의 조건을 염기성으로 변경했더니 일부 암 치료약의 효과가 더 좋다는 것이었다. 몸 안에서 암세포의 성장(혹은 고사) 조건을 찾아내는 것이 연구자들의 관심 대상일 것이며, 시험관의 연구 결과는 어디까지나 참고 사항일 뿐이다.
암 세포는 산성 조건에서 잘 자라며, 염기성 조건에서 치료가 쉽다 하나, 음식을 먹어서 혈액의 pH를 바꿀 수는 없다.
설령 시험관의 조건이 인체에까지 적용된다고 하더라도 문제가 있다. 왜냐하면 인체의 특정 부위의 pH를 음식을 섭취하여 우리가 원하는 데로 마음대로 조절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혈액의 pH와는 달리 체액의 일부는 산성 혹은 염기성을 유지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 외부로부터 침입하는 병원체 등 각종 위험물들을 제거하기 위한 우리 몸의 방어 수단으로 그렇게 된 것이다. 혈액은 거의 모든 세포 조직으로 전달되고 있다. 그러므로 산성 혹은 염기성 식품을 섭취하여 몸을 특정 부위, 특히 암세포가 자라나는 환경을 염기성으로 변경할 수 있다고 생각할 수는 없다. 더구나 특정 체액이 본래 지니고 있던 pH를 심각하게 변경했다면 이미 몸을 위험 상태에 빠뜨린 것과 다름없다.
염기성 식품으로 분류되는 것 중에는 과일, 채소, 견과류가 있다. 산성식품으로 분류되는 것 중에는 고기, 달걀, 빵 등이 포함된다. 의학 및 영양학 연구를 통해서 과일, 채소, 견과류가 건강에 도움을 주고, 암 예방에 효과적이라는 결과들이 많이 발표되었다. 그러므로 염기성 식품을 먹는 것은 건강에 이롭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렇다고 특정 염기성 식품 혹은 염기성 식품의 혼합체가 암의 위협을 줄일 수 있다거나 혹은 암을 치료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옳지 않다.
오렌지 혹은 사과는 유기산을 포함하고 있어서 먹으면 시큼한 느낌이 든다. 산성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재를 분석하면 이들은 염기성 식품으로 분류된다. 복잡한 체내 대사과정은 일단 섭취한 음식들은 각종 기본 단위로 분해되고 일차적으로 정리된다. 예를 들어서 섭취한 단백질도 일단은 각종 아미노산으로 분해되어 재조합 과정을 거쳐 우리 몸의 성분으로 변한다. 그러므로 각종 식품은 소화가 되면 각각의 성분, 양이온, 음이온, 분자로 해체되고, 다시 재조합 되어서 우리 몸에 필요한 곳곳에 공급이 되는 것이다.
채소는 염기성, 고기는 산성 식품이다. 그러나 골고루 먹는 것이 가장 좋다.
교실에서도 학생들이 수업을 열심히 듣는다고 그 내용을 모두 이해하는 것은 아니다. 학생들의 강의 흡수율에 따라 그 효과도 천차만별이다. 식품의 원천에 무관하게 우리 몸이 모든 것을 그 기본물질로 분해하고 재조합 한다 생각하면 특정 식품을 많이 먹을 것이 아니라 골고루 다양하게 섭취하는 것이 건강을 챙기기 위한 기본이다. 기본에 충실하면 사회에서든 몸에서든 손해 보는 법이 없다. 건강하기 위한 기본은 염기성 식품이든 산성식품이든 골고루 섭취하고, 몸에 맞는 적절한 운동을 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먹는 일의 기본은 아무래도 부모님들이 어릴 적에 식탁에서 늘 말씀하시는 ‘편식하지 말라’가 될 것 같다.
- 글
- 여인형 / 동국대 화학과 교수
- 호칭·직책
- 서강대학교 화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아이오와 주립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동국대 화학과 교수이다. <퀴리 부인은 무슨 비누를 썼을까?>를 썼고, <화학의 현재와 미래>를 대표 번역하였다.
첫댓글 유익한정보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