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월 23일, 연중 제 2주간 토요일 (마르코 3,2-21)
-류해욱 신부-
공동체; 메시아의 비밀
오늘은 “그때에 예수님께서 성령의 힘을 지니고 갈릴래아로 돌아가시니, 그분의 소문이 그 주변 모든 지방에 퍼졌다.” 저는 이 ‘성령의 힘’이라는 한 마디 말 때문에 작은 묵상 하나가 떠올랐습니다.
한때 번성했던 어느 대수도원이 이제는 세속화의 물결로 많은 사람들이 떠나가고 겨우 나이 든 다섯 명의 수사들만 수도원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그 수도원을 둘러싼 숲속의 작은 초막에 한 랍비가 은둔하고 있었지요. 어느 날 수도원장이 그 랍비를 찾아갔습니다. 랍비는 수도원장을 반가이 맞으며 몰락해 가는 수도원의 상황에 대해 깊은 동정을 표했습니다. "그 사정을 잘 알지요. 사람들에게서 영(靈)이 떠난 것입니다. 성령이 떠난 것이지요. 우리 마을에도 같은 일이 일어났지요. 이제는 회당을 찾는 사람들이 거의 없답니다." 수도원장과 랍비는 마음속 깊은 이야기를 나누면서 함께 성경을 읽었고 서로의 아픔을 위로하며 함께 울었습니다. "랍비님을 만난 것은 축복입니다. 저희 수도회가 다시 번성 할 수 있도록 한마디 조언해 주십시오." "제가 드릴 말씀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다만 남은 다섯 분의 수사님들 중 한 분이 바로 메시아라는 비밀을 알려드립니다."
수도원장은 랍비의 말을 수사님들에게 들려주었습니다. 그날 밤 다섯 수사님들은 아무도 잠들지 못했습니다. '우리 가운데 한 사람이 메시아라니?' '만일 그렇다면, 누구란 말인가? 수도원장을 두고 하는 말인가? 아니야. 어쩌면 토머스 수사님이 아닐까? 토머스 수사님은 빛을 지닌 분이라고 모두들 말하니까! 분명 엘리야 수사님은 아닐 거야. 그분은 성미가 괴팍하고 까다로우니까. 하지만 그분은 옳은 것에 대해선 굴하지 않는 분이니 어쩌면 그분일 수도 있어. 특별한 데라곤 없는 너무 평범한 필립보 수사님은 아니겠지. 아니야, 바로 그렇기 때문에 그 수사님일 수도 있지. 신비스럽게도 필요한 때면 항상 거기 계시는 분이시지.'
다섯 수사님들은 매일 이렇게 깊은 묵상을 하면서 메시아가 될 동료 수사님을 위해 일찍 일어나 수도원을 청소하고 나무와 꽃을 정성껏 가꾸었으며 존경 가득한 마음으로 서로를 대하였습니다. 점점 수도원의 숲은 예전의 아름다운 숲 으로 활기를 되찾아갔고 하나 둘 사람들이 다시 찾아들기 시작했습니다. 수도원은 평화로운 기운이 감돌기 시작했고 사람의 마음을 끄는 알 수 없는 기운이 흘렀습니다. 그것은 서로를 존경하는 수사님들의 향기가 수도원과 주변 숲속에 스며들고 있었기 때문이었지요. 그 기운은 사람들의 발길을 이끌어 수도원을 찾아오는 이가 늘기 시작했습니다. 수도원을 찾아왔던 몇몇 젊은이들이 나이 든 수사님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함께 살 수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이후에 는 이 수도원의 분위기에 이끌린 젊은이들이 함께 살기 위해 찾아왔습니다.
몇 년 후 수도원은 다시 예전의 활기 넘치는 곳으로 변해 있었습니다. 랍비의 소중한 말 한마디 덕분에 수도원은 빛과 영성의 중심 터전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베스트셀러 '아직도 가야 할 길'을 쓴 정신과 의사이자 심리상담가인 스캇 펙의 공동체에 관한 탁월한 저서 '평화의 북소리: 공동체로 가는 길'의 서문입니다. 타인과 더불어 사는 공동체 생활에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일깨워 주는 이 책을 미국인 친구 빌에게서 선물 받고 서문을 읽다가 '그래 바로 이거야!' 하는 깨달음에 흥분했던 기억 이 새롭습니다.
오래 전 저는 서문을 번역하여 당시 담당하고 있던 수도도회 지원자들과 함께 읽었습니다. 최근에는 수도회마다 성소자가 감소하는 실정입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중 가장 큰 이유는 서로에 대해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존경심과 사랑이 부족한 탓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 이야기는 비단 수도자들에게만 국한된 이야기는 아닐 것입니다. 우리 개개인에게 시사하는 바가 아주 큽니다. 사람과 사람이 서로에 대한 사랑과 존경심을 지닌다면 이보다 더 좋은 공동체는 없을 것입니다. 영이 거기 함께 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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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오랫동안 신부님의 말씀이 없어 신부님의 옛 강론을 찾아 올려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