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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북일보 >
신기료 / 신성애
삼층 요리학원에서 창밖을 내려다보면, 감영공원 한 귀퉁이 도장가게 처마 밑에 풍경처럼 신기료장수가 있다. 오늘도 담벼락을 등지고 낡은 의자에 걸터앉은 노인이 돋보기 안경너머 더운 아스팔트길을 내려다본다. 또각또각, 뚜벅뚜벅 땅을 울리며 지나가는 사람들의 발자국 소리를 들으며 신발의 상태를 가늠하는 모습이다. 널빤지에 '신발 닥음, 신발 수선' 이라고 엉성하게 쓰인 글씨에는 고삐를 놓아버린 여유로움이 묻어난다. 오전에는 햇살이 들이 비춰 적나라한 모양이 어설퍼보여도, 그늘이 반쯤 내려오면 제법 오래된 가게 티가 난다. 사람도 공구도 반지르르 세월이 묻어나는 짙은 갈색이다.
훤히 들여다보이는 그곳이 십리라도 되는 냥, 나는 흐느적거리는 걸음새로 신발을 끌며 갔다. 멀리서 볼 때는 물속 같이 고요해 보이던 노인에게는 거뭇한 반점이 얼굴을 뒤덮었다. 몇 구비를 돌아 여기까지 왔을까. 도시의 구석진 곳, 손바닥만한 자리가 우주보다 넓은 듯 바라보는 표정이 한없이 그윽하다. 탈탈 소리 내며 힘겹게 돌아가는 선풍기가 아직도 여기가 생의 한가운데임을 말해준다.
가방을 둘러멘 한 무더기의 사람들이 스치듯 지나가며 바람을 일으킨다. 모두들 무엇을 찾아 저리 바삐 움직일까. 신발소리가 경쾌한 만큼 저들의 하루도 무탈하기를 빌어본다. 매미소리 따라 삐걱대는 불협화음이 가까워지더니 어느 순간 발소리가 뚝 끊기며 그늘을 만든다. 멈춰 선 사람하나 상처 난 일상처럼 뒤축이 너덜거리는 신발을 맡겨두고, 슬리퍼를 끌며 공원으로 들어간다. 맥없이 널브러진 헐렁한 신발들은 진맥을 기다리는 사람처럼 우려와 기대가 뒤 섞여있다.
나는 노인이 눈짓으로 권하는 앉은뱅이 의자에 앉아 덜렁거리는 신발을 벗어놓는다. "본드로 하지 말고 실로 꿰매 주세요." 어줍지 않는 말투로 주문을 한다. 걸핏하면 떨어지는 신발이기에 얼렁뚱땅 붙일까봐 지레 오금을 박았다. 노인은 가볍게 고개를 주억거리더니 신발을 무릎에 올려놓고 밑바닥을 뒤집어 요리조리 살핀다. 못으로 쳐야할지 박음질을 해야 할지 고심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공구더미를 뒤적이는 갈퀴 같은 두 손이 자꾸만 떨리는 듯 더듬거린다. 수전증이 아닐까. 나는 시답잖은 눈길로 바짝 다가앉아 고치는 모습을 지켜본다. 노인은 망가진 곳을 떼어내어 본드로 붙이고 능숙한 손놀림으로 다시 한번 꼭꼭 박음질을 하고 있다. 그러고는 어린아이 엉덩이를 다루듯 신발을 엎어놓고 자근자근 두드린다. 톡-톡 신발에 부딪쳐 튀어 오르는 망치질소리가 미심쩍어하던 나를 찔끔하게 한다. 땀방울을 씻으며 매끈하게 마무리를 하는 진지한 모습에 날이 섰던 마음이 뭉그러진다. 수선을 기다리는 너저분한 신발 곁에 슬리퍼를 걸친 노인의 한쪽발이 삐죽이 나와 있다.
"돌려가면서 박아주세요. 오래오래 신을 게요."
나는 성한 신을 마저 벗어 슬그머니 일거리를 보탰다.
"저 영감이 삼십년 전에도 리어카를 끌더니 아직도 저러고 있구먼." 힘겹게 지나쳐가는 고물상의 꽁무니를 보며 노인은 처연한 듯 혼잣말을 중얼거린다.
"어르신도 오랫동안 이 일을 하셨나 봐요?" 무료해진 나는 바느질에 되살아나는 노인의 일생을 한 땀, 한 땀 끄집어낸다.
사십년을 하루같이 교회 가는 날을 빼고는 공원 근방을 옮겨 다니며 신발을 기우셨다는 노인. 육이오 때 월남하여 먹고 살기위해 시작한 일이 평생의 업이 될 줄 어찌 알았으랴. 가정도 일구었고 자녀들도 제자리를 찾아 한시름 놓았다고 일을 걷어치웠다. 길바닥 인생을 벗어나 인천으로 이사를 갔어도 집안에 편히 있을 성정이 못되었다. 일거리를 찾아다니다 교통사고를 당하고 외발에 통증까지 겹쳐지니, 노인은 괜히 자식 눈치가 보였다. 남아있는 인생을 짐짝처럼 보내자니 눈앞이 캄캄했다. 하릴없이 공원 벤치를 지키던 사람들의 멍한 눈빛이 남의 일 같지 않았다. 할일이 있어 움직거려야 살아있는 목숨이 아니던가. 노인은 불현듯이 녹 쓴 연장을 꺼내어 기름을 먹였다.
"사람이 한번 선택한 일을 버리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인가 벼. 저 고물 장이도 허리 구부러지고 늙은 것 외에는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여. 사람에게는 저마다 주어진 직분이 있다고 하더니만, 천생 신 깁는 일이 내게는 딱 인가 벼. 그걸 깨닫는데 자그마치 반 백년이 걸렸으니. 예전에는 밥벌이로 이 일을 했지만 이제는 내 목숨 인 겨." 신발을 꿰매고 있는 노인의 손길에 살가움이 묻어난다.
주둥이를 잔뜩 벌린 너덜거리는 신발은 미처 이루지 못한 욕망에 허덕이는 사람과 흡사해 보인다. 흙먼지가 들어차 자꾸만 접질리어 뒤뚱거리는 모양새가 안타까움만 더하게 한다. 아무리 먹어도 채워지지 않은 그것은 과연 무엇이기에 저리도 사람을 허기지게 할까. 노인은 엇갈리는 이상과 현실의 간극을 좁히듯 정성스럽게 접착제를 바르고 붙인다. 타협점을 찾고 제자리에 선 사람처럼 이윽고 벌어진 앞창은 하나가 되어간다.
사람들은 이따금씩 새처럼 문득 와 만신창이 신발을 맡기고는 훌쩍 지나간다. 노인은 낡고 헤진 구두의 먼지를 털어내고, 신바닥을 들여다보며 끈도 당겨보고, 벗겨진 가죽도 쓰다듬는다. 어디에 상처가 났는지, 무엇 때문에 불편한지 족집게처럼 찾아낸다. 신발을 통해 신발주인의 고단했을 삶도 읽어내며, 아무리 몰골이 험하여도 타박하는 법이 없다. 잘라내고 붙이고 상처를 보듬어서 흠결 없는 새것처럼 바꿔놓는다. 노인의 야문 손끝에서 돌멩이에 채였던 흔적도, 가시밭길에 찢기었던 상처도 감쪽같이 사라진다.
공원을 나온 사람하나가 제 신발을 찾아 신고 다시 어디론가 길을 떠난다. 길 위에 앉은 노인이 걸어가는 사람에게 위안이 되는 순간이다.
나는 튼실하게 박음질된 펑퍼짐한 신발에 군살 박힌 발을 집어넣는다. 적당히 헐거워지고 낡은 신발이 한없이 편안하다. 이제는 새로운 것보다 볼품없어도 내게 익숙한 것들이 더 소중한 나이가 된 것 같다. 망가진 신발을 수선하며 자신의 상처 난 생도 까마득히 기우는지, 몰입에 든 노인의 얼굴이 노을빛에 환하다.
<심사평> / 명진, 최정선
예선을 거친 작품은 열한 분(고현주, 김곡순, 김금아, 김정화, 김필영, 김희자, 신성애, 이정순, 정병율, 조이지, 최상근)의 응모작 26편이었다. 모두 일정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어서 읽는 재미와 고르는 어려움을 함께 겪어야 했다. 전체적으로 일상에 대한 겸허한 성찰, 가족·이웃·사회에 대한 관조, 사물·현상에 대한 진지한 사색 등의 내용을 산문 형식 속에 담는 방식도 다양하게 구사되어 있었다.
통독 끝에 다섯 편을 골랐다. '수의', '기다림의 미학', '막사발', '폭풍 속으로', '신기료' 등은 나름의 개성과 묘미를 갖춘 수준작들이었다. 소재를 주제로 구현해 가는 구성과 전개, 울림의 크기, 내용과 형식의 조화, 문장에 깃든 향취 등을 염두에 두고 이 다섯 편을 다시 읽었다.
'수의'는 꾸밈없는 문장 속에 진솔한 내용이 담겨 있으나, 작품 전체의 구성이 충분하게 세련되지 못한 것이 흠이었다. '기다림의 미학'은 안정된 문체 속에 작가의 섬세한 정서가 녹아 들어있는 잘 정돈된 작품이었지만, 전체적으로 소품에 그치고 만 아쉬움이 남았다. '막사발'은 사색의 무게가 묵직하게 느껴지고 작품의 구성과 전개도 무난하였지만, 문체감각이 평범하다고 느껴졌다.
'폭풍 속으로'와 '신기료'는 동일 작가의 작품인데도 그 성격은 매우 달랐다. 전자는 남편의 오랜 친구의 다소 신산한 지난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 화자와 남편과 그 친구 세 사람의 감정을 적절한 거리 유지 안에서 균형 있게 처리하는 솜씨가 돋보였다. 각각의 감정에 어울리도록 때로는 톡톡 튀는 문장을, 때로는 심드렁한 문장을 구사하는 감각적 문체가 그 균형의 추라고 할만하다. 후자는 만만찮은 관조와 사색의 깊이, 화자와 신기료 노인과 고물상 영감 사이의 안정된 거리 유지, 삶의 애환에 대한 작가의 진지하고도 따뜻한 시선, 그리고 군더더기 없는 향취 있는 문체 등이 고루 조화를 이루고 있는 작품으로 읽혔다.
선자들은 동일 작가의 두 작품 중 어느 것을 고를 것인가 하는 좀 색다른 논의를 한 끝에, 후자를 당선작으로 결정하였다. 전자에서 발산되는 신선한 매력보다는 후자의 숙성된 향기가 수필의 성격에 더 어울린다는 판단, 또 꽁트식 내용을 수필이라는 그릇으로 담아내는 전자의 내공이 깃든 솜씨보다는 사소한 일상에서 삶의 의미를 발견해내는 후자의 미더운 시선이 더 소중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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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북 도민 일보>
< 상자 > / 문춘희
아이들과 남편이 학교로 일터로 모두 떠나고 난 아침은 세상이 텅 빈 것 같다. 상자의 내용물이 상자를 버리듯 나는 남겨졌다. 매일 아침 치러야 하는 잠시 동안의 이별이요 반복되는 일상임에도 아직도 적응하지 못하고 있다. 속을 다 비워버린 상자 같은 내 안은 언제쯤 다시 채워질 수 있을까? 아파트 안에 우두커니 앉아 있으면 마치 내가 알 수 없는 큰 상자 안에 갇힌 것만 같다. 큰 상자 안에 갇힌 작은 상자가 된 나를 들여다본다. 상자엔 아무 것도 담겨져 있지 않다. 한 때 무엇을 담았던 것인지도 생각나지 않는다. 나는 이제 아무것도 담을 수 없는 상자가 된 것일까? 책상에 앉아 멍하니 창밖을 바라본다. 막다른 골목길처럼 컴컴하고 오래 입은 옷처럼 후줄근해진 상자 속으로 을씨년스런 바람소리만 윙윙 들려온다.
얼마 전 거실이 휑한 것 같아 입구 쪽에 놓을 콘솔을 하나 샀다. 아침저녁으로 콘솔을 닦으면서 그래도 허전한 것 같아 화방에 가서 콘솔 위에 걸어 둘 그림도 한 점 구입했다. 그래도 자꾸만 집은 비어 보인다. 마음의 빈 자리 때문이지 황량한 겨울 들녘처럼 허허로웠다. 허한 빈틈을 메우기 위해 가구를 장만하고 그림을 사들여도 좀처럼 채워지지 않았다.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소리 없이 집은 커다란 상자가 되어갔다.
큰 딸아이는 중학생이 되고부터 내게 유난스럽게 툴툴거렸다. 학교생활이며 학원생활에 대해서 물어 보면 마지못해 겨우 고개만 주억거린다. 자신의 생활에 확대경을 들이대며 일일이 알려고 하지 말아 달라고 한다. 시험기간을 핑계로 제 방문을 꼭꼭 걸어 잠근 채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혼자 있기를 원했다. 막내마저 학교 수업을 마치고 곧바로 학원에 다니기 시작했다. 평소 자상한 남편도 바깥일이 힘이 드는지 말수가 더 줄어들었다. 그런 남편에게 먼저 말을 걸기가 어려웠다. 아이들도 남편도 내 곁에서 자꾸만 멀어지고 있었다. 그때부터 내 안의 상자도 조금씩 비워져 갔다.
물론 예상하지 못했던 일은 아니다. ‘품 안의 자식’이라는 말이 있듯이 때가 되면 세 아이 모두 엄마의 품을 떠날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날이 이렇게 시나브로 가까이 다가오고 있는 줄은 몰랐다. 자식들과 가정이 전부였던 엄마로서의 삶, 여자로서의 삶이 서서히 저물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식구들이 모두 떠나고 난 뒤 마음의 평안을 잃고 무연히 빈 의자처럼 앉아 있다. 쓸쓸함이 밀물처럼 스며든다. 그런 감정을 느낄 겨를도 잠시, 허전함을 접듯이 여기저기에 널브러져 있는 아이들의 옷을 개킨다. 아직 체온이 남아 있는 옷은 마치 아이들의 그림자 같다. 이 방 저 방 청소기를 돌리면서 집 안에 흐르는 적막감을 빨아들인다. 청소를 하고 나니 집 안이 더 넓어진 것 같다. ‘쉬리릭 처얼썩’ 세탁기 돌아가는 소리만이 낯선 방문자처럼 적막을 두드린다.
빈 상자 같은 아파트 거실 안쪽으로 정오의 햇살이 깊숙이 들어온다. 내 안엔 정말 아무것도 없는 것일까? 빨래를 널면서 바라보는 맞은편 아파트도 줄지어 높이 쌓은 빈 상자 같다. 남편과 아이들이 모두 떠나고 난 이후의 시간은 빈 상자들이 설거지를 하고, 빈 상자들이 어디론가 전화를 걸고, 빈 상자들이 어찌할 수 없는 쓸쓸함에 음악을 듣고 차를 마시는 시간이다. 상자들은 스스로 빈 상자가 아니라고 수다를 떨고 타인에게 위로를 받으려 하지만, 언제나 텅텅 비워진 제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사춘기 시절 나는 늘 혼자였고 외로움을 잘 타는 아이였다. 그런 내게 위안이 되어준 것은 잡동사니를 모아둔 상자를 꺼내어 보는 일이었다. 거기에는 머리핀이며 친구들한테서 선물 받은 액세서리며 혹은 두근거리면서 누군가에게 썼지만 부치지 못한 편지들이 가득 들어 있었다. 그것들을 꺼내어 보고 알지 못하는 미지의 세계로 혼자 여행을 떠나곤 했다. 상자는 기차가 되어 아프리카의 초원으로, 알프스의 설원으로 태평양의 푸른 바다로 데려가 주었다. 알라딘의 램프 같은 상자 안에 무지개 빛 꿈을 차곡차곡 담았다. 그렇게 작고 예쁜 상자는 다 어디로 간 것일까. 지금 내게는 상자가 없다. 대신 아이들과 남편의 상자로 남아있다. 이젠 예쁜 종이로 포장된 작고 앙증맞은 상자가 아닌 어머니와 아내로서의 상자가 된 모양이다.
그런데 곰곰 생각해보니 이런 상자의 삶도 꼭 쓸쓸한 것만은 아닌 듯싶다. 본래 상자는 제 안에 자신을 담는 것이 아니라 무엇인가 다른 사물을 담는 것 아니던가. 상자 자신은 구겨지고 찢기어져도 최후의 순간까지 그 속에 담긴 것들을 안전하게 지킨다. 상자는 자기만을 위해 사는 이기적인 삶이 아니라 언제나 남을 지향하는 이타적인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상자는 둥지와 같다. 둥지에서 새는 알을 낳고 품는다. 그곳은 새끼들이 푸른 창공으로 비상할 때까지 비바람과 눈보라로부터 보호막이 되어준다. 또한 상처를 닦아주며 세상을 이겨나갈 수 있는 당당한 힘을 길러주는 곳이기도 하다. 비록 어린시절 내 꿈을 키우던 상자는 다 잃어버렸지만 둥지 같은 내 안에서 아이들의 꿈은 새처럼 부화할 것이며 남편은 조금씩 자신을 성취해 나갈 것이다. 언젠가 사춘기시절의 상자가 내게 꿈을 심어준 것처럼 이제 내 스스로 상자가 되어 가족의 꿈이 되어줄 차례다. 그러기에 사춘기 시절 내 안의 상자에 꿈을 담았던 것처럼 아이들과 남편의 꿈을 담기 위해 상자의 뚜껑을 늘 열어두어야겠다.
집 안에 서서히 어둠이 덮이기 시작할 해거름, 아이들이 하나 둘 돌아오기 시작한다. 서둘러 앞치마를 두르고 부산스럽게 저녁을 준비한다. 밥솥의 추는 하얀 입김을 내뿜으며 목쉰 기적 소리를 울리고, 도마 위의 칼은 춤을 추듯 움직인다.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온 집 안을 가득 메운다. 서서히 그림자처럼 소리 없이 상자가 채워지는 듯하다. 햇살에 둥지가 따뜻해지듯 상자 안은 다시 훈훈해지기 시작했다. 나는 오래되어 품이 좀 헐렁해진 상자이긴 하지만 마음만은 넉넉한 상자였던 것이다. 언젠가는 내 키만 한 나무 상자에 빈 몸으로 누워 우주 어딘가에 안착하게 되리라. 그때까지 가족을 위해 열심히 봉사하고 헌신하는 삶을 살아야겠다.
작고 하찮은 삶이라고 생각했던 상자가 큰 의미로 다가온다. 그러고 보면 상자로서의 삶도 꽤 괜찮은 것 같다. 내일은 예쁜 상자에 머리핀이며 지갑이며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들을 담아볼까? 맞은편 아파트 창에도 하나 둘 불빛이 내걸린다. 어디선가 깔깔거리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려오고 종일 빈 상자였던 아파트들이 출렁거리면서 행복으로 가득 채워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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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사평 > / 조미애
올해 수필부문 응모작은 총 82편이었다. 원고 편수로 보면 그리 많은 것이 아니었으나 작품성은 많이 향상되었다고 본다.
일상을 그리고 있지만 일상을 일탈하여 하나의 문학작품으로 완성하고자 노력한 흔적을 볼 수 있었다.
참여한 예비 작가들은 30대 중반에서부터 60대 후반까지 다양한 연령층으로 서울, 부산, 강원도, 경상도, 전라도 등 전국에 분포하고 있었다.
몇 편을 제외하고는 글의 수준으로 보아 수필창작에 열의를 갖고 본격적으로 공부하고 있음을 짐작하게 했다. 한 편의 글에 정성을 다한 모든 분들에게 큰 박수를 보낸다.
당선작으로 문춘희 님의 ‘상자’를 선하였다. 사물을 바라보는 시선이 깊고 나를 중심으로 하지만 그 속에서 자신을 객관화하여 부드럽게 이어가는 문장의 정확성과 정교함을 우수하게 평가했다.
매우 평범한 주부의 일상을 크고 작은 상자와 견주어 빈상자로 남은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이윽고 상자는 둥지라는 등시의 전개로 작고 하찮은 삶을 다시 생각하여 소중한 의미로 깨닫게 되는 과정을 잘 이어갔다. 당선을 축하하며 더욱 정진하길 바란다.
아깝게 최종에서 탈락했지만 정경자 님의 ‘시접’도 우수한 작품이었다. 저고리의 시접을 닮은 형님을 통해 아직도 우리 사회의 큰 문제로 남아있는 종부의 삶을 전하고자 했다. 한복과 한 여성의 삶에 집중하여 전개했더라면 더 훌륭한 작품이 되었을 것이다.
오금희 님의 ‘타인의 아침’ 역시 탄탄한 문장과 무리 없는 글의 전개 등이 돋보인 작품이었다. 글 속에 드러나 있는 나를 비우고 조금 더 긴 호흡의 문장으로 이어갔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컸다.
아깝게 낙선한 분들에게는 격려의 말씀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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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일신문 >
왈바리 / 주인석
사는 일은 뚜렷한 공식도 방법도 없다. 스스로 부딪히고 깨지며 웃고 우는 가운데 버려지기도 하고 선택되기도 하여 쌓이는 것이다. 삶의 조각이 크다고 좋은 모양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작다고 쓸모없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작은 조각 하나가 인생을 무너지게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얘는 기형이라요.”
쿵 하는 소리로 기겁하는 내게 금방 해산한 사람답지 않게 싱글싱글 웃으며 말한다. 끄응 힘을 주며 일어서는 남자 엉덩이 밑에 시커먼 것이 툭 떨어진다. 여자 몸의 진통 끝에 탄생은 보았어도 남자 밑으로 뭣이 쑥 빠지는 일은 생전 처음이다.
정말로 머리와 몸이 한 덩어리다. 여자들의 손에서 짭짤하고 매콤한 대우를 받아야 할 것이 제 구실을 못하니 남자 엉덩이를 붙잡고 있나 보다. 말 못하는 것일지라도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건망증 심한 주인을 만나는 바람에 옹기 팔자 뒤웅박 팔자가 됐다. 뚜껑이 떨어지지 않아 벙어리 옹기가 된 것이다. 그래서 옹기 구실을 못하고 의자 신세로 살게 되었다. 옹기를 만드는 여러 과정 중에 절대 잊어버리면 안 되는 한 가지가 있단다.
처음 흙으로 빚어 그늘에 말린 그릇은 물그릇이라 한다. 건아작업을 거쳐 잿물을 입히고 환을 친다. 환을 칠 때는 난초 잎도, 학도, 자잘한 꽃무늬도 일렬로 새긴다. 신이 사람의 쌍꺼풀이나 볼우물을 그려 넣듯이. 환치기가 끝나면 마지막 강정을 한다. 이때는 건아와 달리 햇볕에서 바짝 말린다. 이때부터 이름은 날그릇으로 바뀐다.
날그릇은 가마서리가 끝나면 1천300℃의 뜨거운 불 속에서 옹기가 된다. 이때 웅심 깊고 넉넉한 옹기가 되기 위해서는 아주 작고 보잘 것 없는 왈바리의 도움이 있어야 한다. 왈바리는 가마서리 때 옹기 몸과 뚜껑 사이에 놓거나 몸과 몸을 켜켜이 쌓을 때 반드시 넣어야 하는 완두콩 크기의 돌이다. 왈바리 넣는 것을 잊어버리면 옹기끼리 붙어서 제 구실을 할 수 없는 모양이 된다.
왈바리는 옹기의 심장이 제 기능을 할 수 있게 도와 매끈하고 까무잡잡한 피부의 건강한 옹기로 탄생시킨다. 제 무게보다도 수십 배가 되는 뚜껑을 이고 나흘간 가마 속에서 참아내는 왈바리는 작아도 얼마나 다부진지 모른다.
왈바리는 원래 경상도 사투리로 말괄량이를 뜻한다. 자그마한 말괄량이 손에 커다란 옹기의 탄생이 달렸다니 신기할 따름이다. 옹기의 덩치로 보나 쓰임새로 보나 어느 하나 부족한 것이 없어 보이는데 그렇게 큰 탄생의 비밀을 가지고 있을 줄이야. 생각이 이쯤 미치자 우리 집 옹기의 흠이 떠올라 슬쩍 웃음이 난다.
내 별명은 어릴 적부터 왈바리다. 나이 차 많은 막내로 태어났으니 왈가닥일 수밖에 없었다. 늘 혼자 놀고 스스로 터득해야 했다. 그나마 큰 흉터가 없는 것이 참 다행이다 싶을 때도 있다.
모내기가 한창인 늦봄이었다. 일꾼들을 위한 잔치국수를 준비한 엄마는 커다란 가마솥에 멸치 육수를 냈다. 엄마가 고명으로 쓸 거섶을 준비하러 나간 사이 가마솥 뚜껑에 올라앉았다. 따뜻한 기운이 엉덩이를 간질거렸다.
가마솥 배꼽을 돛대처럼 잡고 엉덩이를 반쪽씩 달싹거리며 놀았다. 그러다 조금씩 흔들었다. 살짝살짝 뚜껑이 밀리면서 재미있는 뱃놀이가 되었다. 신이 난 나는 돛대를 좀 더 세게 흔들었다. 그때 그만 배가 미끄러지면서 커다란 파도에 휩쓸려 육수에 풍덩 빠지고 말았다.
국수 삶다가 애 삶을 뻔했다며 놀란 엄마, 심장이 제 박동 수를 찾기도 전에 또 일을 냈다. 싸리나무로 장난감 지게를 만들다가 나무는 가만 두고 애꿎은 손만 내리쳤다. 몸에 피가 거의 다 빠져 나갈 쯤 발견되어 또 한 번 엄마를 기겁시켰다. 그 일 때문인지 아직도 악성빈혈로 고생한다.
파리한 얼굴의 나는 약을 달고 살았다. 어느 날 뒤뜰의 감나무가 꼭 나처럼 생겨 보였다. 핼쑥한 이파리 터실터실한 줄기가 내 얼굴과 입술을 꼭 닮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감나무에게 내 약을 억지로 다 먹였다. 나중에 엄마한테 들켜 엉덩짝이 불나게 맞기도 했지만 그 후로도 해봐야 직성이 풀리는 모험심은 끝나지 않았다.
내가 머물다 간 자리는 늘 왈가닥 소리가 났는데 오빠는 조용하고 침착한 성격에 무게감까지 있다. 오빠 본보라는 말을 고린도전서 13장처럼 들으면서 자랐지만 타고난 성미를 바꾸는 것은 쉽지 않았다.
내가 자잘한 돌이라면 오빠는 옹기였고 속에 웃기 돌까지 품고 있다. 내가 어부렁하다면 오빠는 실속파다. 그래서 오빠는 실수하는 법이 없고 손해 보는 일이 없다.
집안에 일이 생기면 엄마는 내게 바리바리 전화를 한다. 그러니 내가 왈바리를 면치 못하고 사는 것은 당연하다. 일이 이쯤 되어도 오빠는 입을 꾹 다물고 말이 없다. 애가 터져 죽을 지경이 와도 오빠의 입은 열리지 않는다. 어찌 보면 무관심 같고 달리 보면 곰삭아 해결되길 기다리는 것 같기도 하다.
왈가닥 성격인 나는 일처리를 하면서 속이 1천300℃ 이상 끓어오르지만 끝날 때까지는 뚜껑을 이고 참는다. 일이 끝나고 나면 왈바리는 땅에 버려지고 모든 공은 옹기한테로 돌아간다. 옹기는 모든 걸 혼자 이루어 낸 척 장독대 중간을 차지하고 묵직하게 앉아 있다.
말괄량이가 있어 정숙한 사람이 더 참해 보이듯이 온몸을 던진 왈바리의 희생이 있어 옹기가 돋보이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왈바리 없이는 제구실을 할 수 없는 운명의 옹기이기에 비밀을 숨기듯 굳게 입을 다물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나를 왈가닥이라고 배척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칭찬할 수도 없는 오빠의 입장이 이와 같지는 않을까.
많은 사람들이 옹기 마을을 다녀간다. 옹기의 장점은 극찬하지만 옹기를 탄생시킨 왈바리의 존재를 알고 가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의자가 된 옹기를 보고서 왈바리의 존재를 알게 된 나도 이전에는 세상을 보는 눈이 뭇 사람들과 다를 바가 없었다.
어쩌면 우리 주변에도 옹기 같은 사람보다는 왈바리 같은 사람이 더 많을지도 모른다. 때론 와글거리며 우왕좌왕할 때도 있지만 그들의 소담스런 삶이 모여 따뜻한 사회가 존재한다.
왈바리를 쓸쓸히 내려다보고 있는 옹기를 보니, 삶은 크고 모양 나는 것도 좋지만 작고 못나도 최선을 다하는 것이 더 아름답게 보일 때가 있다. 왈바리 몇 조각을 주웠다. 나도 모르게 버린 내 삶의 조각들을 줍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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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사평 > / 김종욱, 허창옥(수필가)
400편에 이르는 응모작품들을 읽으면서 많은 역작들을 만난 기쁨은 실로 컸다. 특히 20대 응모자가 적지 않았다는 게 고무적이다. 그들이 지키고 열어갈 수필의 미래는 창창할 것이란 믿음이 생겼다.
본심에 오른 20편 가운데 가려 뽑아 류재홍의 ‘소반’, 사윤수의 ‘밥’, 정성희의 ‘해원’, 손길호의 ‘닭’, 주인석의 ‘왈바리’ 5편을 최종심에 올렸다. 문장, 소재와 주제의 참신성, 구성, 문학적 사유와 작품성 등 수필의 기본요소를 갖추었는가에 주목하였다. 진지한 토론과 고심 끝에 주인석의 ‘왈바리’ 를 당선작으로 뽑았다.
‘왈바리’ 를 소재로 선택한 것이 절반의 성공이라고 하겠다. 왈바리를 통해 사회를 읽어내고 삶을 통찰하는 시선이 예사롭지가 않다. 서두와 도입부는 그 의미가 명징하고 힘이 있다. 이어지는 “얘는 기형이라요.”에서 긴장의 끈을 팽팽히 당겨 읽는 이의 눈길을 잡는다. 어휘를 부려 쓰는 솜씨와 짜임새 있는 구성으로 글을 무리 없이 이끌어 갔다. 이 글의 장점은 수필의 기본에 충실하면서 문학성을 겸비하였다는 것이다. 복잡한 구조와 중첩된 서술 따위의 기교에 빠지지 않고 간결한 문장으로 차분하게 기술하여 울림이 큰 주제를 이끌어내는 데 성공하였다. 하지만 몇 군데 미흡한 표현이 눈에 띄었다. 그 점 과제로 남겨둔다.
‘밥’은 깊은 사유와 성찰, 소재의 육화, 문학적 형상화에 성공한 작품이다. 다만 글의 중간에 보인 교훈적인 서술이 아쉬웠다. 당선작과 마지막까지 겨룬 작품이라는 점을 밝혀둔다. ‘해원’ 또한 수작(秀作)이며 '소반'과 ‘닭’도 문학적 향기가 물씬 나는 작품이다. 응모하신 모든 분들의 정진을 빈다.
길은 멀다. 솜씨를 부리고 외연을 넓힐 기회는 그러므로 얼마든지 있을 터이다. 가장 중요한 덕목은 진정성을 잃지 않는 작가정신이다. 역량 있는 수필가로 성장하기를 기대하며 당선을 축하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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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양일보 >
호박 / 정경자
참으로 못 생겼다. 울퉁불퉁한 굴곡은 흘러내린 뱃살이라고나 할까, 풀숲에서 훔쳐본 촌부의 둔부라 할까.
추녀의 대명사가 아니었어도 호박은 신세대나 아이들에게 푸대접받는 신세다. 애호박이나 늙은 호박이 아무리 싱싱해도 생식(生食)할 수 없음은 채소로서의 결격사유다. 익히거나 삭혀 먹어야 하므로 아삭하게 씹히는 맛은 일찍이 포기해야 한다
채소지만 단맛이 나는 것도 못마땅할 것이다. 단맛이라고는 하나 과일의 당도에는 어림없는 싱거운 단맛이다. 별맛이 없다면 차라리 시원함으로 승부를 내던가. 화끈하게 맵기라도 하면 인사라도 들으련만. 이도저도 아니니 독특한 개성과 자극적인 맛에 익숙한 세대에겐 호박이야말로 열외일 수밖에 없다.
채소라면 마땅히 부엌이나 냉장고가 제격이겠지만 겨울철 늙은 호박의 자리는 보통 안방이나 거실이다. 꽃처럼 예쁘지도 않고 모과처럼 좋은 향도 없는 그것을 안방이나 거실에 모시는 이유는 따로 있다. 호박을 추운 데로 내몰아 푸대접을 하다간 쥐도 새도 모르게 속부터 썩어 짓무르고 만다. 덩치만 컸지 속은 여린 탓이다.
거실에 유하는 동안 호박은 홀로 결가부좌를 틀었거나 석탑으로 쌓여 면벽수행 중이다. 무슨 명상에 빠졌을까? 갈수록 각박하고 냉혹해져가는 세상에 사람들은 원래 따뜻한 심성으로 어우러졌었다고 설파하는지도 모른다. 아니, 겸손의 철학을 묵언으로 역설하는지도 모를 일이다.
끼니도 부족했던 어린 시절, 어머니가 가마솥에 호박죽 끓이시던 날은 이웃들과 정을 나누는 날이었다. 따뜻한 호박죽 한 그릇이 가면 돌아오는 그릇엔 삶은 고구마나 김장김치가 그득했다. 그때가 보통 늦가을께나 초겨울쯤이어서 쌀쌀했지만 마음만은 훈훈했었다.
해마다 봄이 되면 나는 호박씨를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곤 했다. 씨앗을 얻어가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소일거리로 농사짓는 어르신들과 시장 좌판에서 채소를 파는 아주머니들이었다.
어느 해엔 받아간 씨앗에서 호박이 열리지 않는다고 채소 파는 안강댁이 내게 푸념을 했다.
좋은 종자만 골라 손질해 준 나로선 난감한 일이었다. 곧 그 내막을 알아 본 나는 파안대소하고 말았다.
해마다 호박을 수확해서 팔던 그녀였다. 가만 생각해보니 호박만 파는 것보단 잎도 따서 파는 것이 훨씬 큰 이익이 나겠더란다.
그것이 그녀의 판단착오였음을 여름이 다 지나고서야 알 수 있었다. 호박도 맺기 전에 여린 잎을 줄기차게 따버린 탓에 그 해엔 호박이 하나도 열리지 못했다.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은 여력이 있어야 열매도 맺고 씨앗도 열린다. 잎을 생산하는데 사력을 다하고 나면 열매 생산에 쏟을 에너지는 고갈되고 만다.
요즘 세태가 그러하다. 물질은 풍족하지만 생활수준 욕구가 훨씬 높아진 탓에 자식 낳기를 꺼린다.
설사 아이를 낳는다 해도 하나만 낳아 잘 기르자는 주의다. ‘물질만능주의’는 자연의 섭리도 변질시키고 있다. 과욕은 재앙을 부를 수도 있음이다.
지난 봄, 묘목 농장주변에 호박씨를 심겠다는 남편에게도 씨앗 한줌을 내주었다.
남편은 성에 차지 않았는지 한 움큼의 씨앗을 더 덜어갔지만 수확량은 고작 애호박 두개가 전부였다. 짬을 내서 거름도 줄 것이고 호박이 맺히면 무성한 잎들도 솎아내겠다고 했지만 남편은 생업에 쫓겨 뿌린 씨앗에는 언제나 말만 보탰을 뿐이었다.
의욕만 가지고 되지 않는 것이 어디 농사뿐이겠는가. 세상에 노력 없이 저절로 맺어지는 열매는 없다. 튼튼한 움 하나를 틔우더라도 병들지 않은 씨앗에 기름진 흙, 적당한 비바람과 부지런한 농부의 손길이 척척 아귀가 맞아야 한다. 게으른 농부에게 충실한 결실을 주신다면 그것은 또 다른 게으름을 낳을 지도 모를 일이다.
조물주는 얼마나 지혜로우신가. 작고 여린 과실은 나무에 달리게 하셨고 호박이나 수박처럼 크고 무거운 열매는 덩굴에 열리게 하셨다.
작아도 밀도가 높아 단단한 결실은 땅속에 맺도록 하셨다. 만약 커다란 호박이 나무에 열린다고 가정하면 잘 익어 거두는 일도 큰 공사일 테고 농익어 저절로 떨어진 호박에 다친 사람도 부지기수 일 것이다.
단단한 감자나 고구마도 나무에 열려 낙과된다면 중상은 아니라도 사람에게 가벼운 상처쯤은 입혔을 법하다.
흥부전에 나오는 박은 사실 호박이 아니었을까? 가끔 해외토픽에 거대 호박에 관한 뉴스가 나온다. 스무 명도 넘는 흥부의 자식들이 호박구덩이에 무차별적으로 뒷거름을 주었을 것 같다. 풍부한 거름 덕분에 흥부네 텃밭에도 집채만 한 호박이 열렸을 것이다.
하얀 박이 그처럼 크게 열리는 경우도 잘 없거니와 잘 익은 호박을 쪼개어 눈을 게슴츠레 뜨고 보면 물기 머금은 누런 섬유조직은 마치 반짝이는 금붙이패물을 겹겹이 쟁여놓은 모양이다.
좌르르 쏟아지는 호박씨도 연주에 꿰어 규방처자의 목걸이나 양반 갓의 주영(珠纓)으로 늘어뜨려도 좋을 유백색 비취구슬 같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호박도 사람처럼 관상이 있다. 옹골찬 주름도 없고 핏기 없이 허연 것은 수분이 많아 장기간 견디지 못하는 부실한 것이다. 또 덩치가 커도 가벼운 것은 속빈 강정이다. 짙은 담황색에 단단한 육질, 묵직한 무게감이 있어야 알찬 속이 잘 상하지도 않는다.
과일만이 숙성의 과정을 거치는 것은 아니다. 늙은 호박도 처음 딸 때는 껍질에 설핏 파릇한 기운이 돌고 풋내가 난다. 자숙의 시간을 거쳐야 꼭지의 수분이 사라지고 무르익는다. 그제야 누런 껍질에 뽀얀 분이 나면서 단맛도 깊어진다. 늙은 호박이 시골집 대청마루에서 가을볕을 쪼이던 이유가 거기에 있다.
사람도 그러하다. 설익은 패기만 믿고 대책 없이 세상에 부딪히다간 외면당하기 십상이다. 스스로 다지고 삭히는 성찰만이 세상에 융화되고 또 감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호박만큼 인간에게 요긴하게 쓰이는 것도 드물다. 매실이 사람에게 아무리 이롭다하나 그 씨앗에 독이 있고 감자의 싹도 그러하다. 잎, 꽃, 열매, 씨앗 어느 것 없이 음식도 되고 약도 되는 것이 호박이다. 또한 사계절을 두루 섭렵하는 것이 알고 보면 호박이다. 봄이면 잎과 꽃, 계절이 바뀔 때마다 애호박, 늙은 호박, 한겨울엔 썰어 말린 호박오가리로 나물과 떡을 해 먹었다.
자신의 공을 앞세우고자 화려한 공치사가 난무하는 마당에 온몸을 바쳐 살신성인하는 호박의 음덕이 가상하다. 범상한 외모에 비범한 희생정신이 서렸음에 아직도 ‘꽃은 꽃이되 호박꽃’이라 폄하할 것인가. 지금껏 그래왔듯이 앞으로도 나는 호박씨를 이웃들에게 나누어 줄 것이다. 비록 호박씨 한줌이지만 그것이 잎과 호박으로 열려 어르신들의 소일거리가 되어도 좋고 시장에 나가 채소상의 벌이가 되어도 좋다. 이도저도 아니면 결국 우리 탕제원으로 호박 즙을 내러 와도 그만이다. 무엇보다도 호박을 닮은 넉넉한 인정이 넝쿨에 호박이 열리듯 번졌으면 좋겠다.
엽렵하고 예쁜 것이 지천이지만 투박한 호박이 더욱 정겹다. 식당이나 가게 한쪽에 늙은 호박 몇 덩이를 보기 좋게 포개놓은 집은 어쩐지 인심도 후할 것 같다. 호박 때문에 예민하게 경계하던 마음이 풀리고 느긋하게 바라보는 여유도 생긴다.
손톱만한 씨앗에서 폭염과 비바람을 이겨낸 바위만한 열매, 필시 조물주가 내려주신 들녘의 황금 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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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사평 > / 조 성 호(수필가)
전국에서 몰려온 164편 수필 원고가 모두 고루 상당한 실력에 도달해 있음을 보여준다. 원고 수도 지난해보다 40여 편이나 늘어 높은 관심을 보여주었으며, 작품도 제대로 수필 작법을 공부한 흔적들이 많이 보여 단순한 수기나 편지투가 흔하던 시절과는 다르다.
당선작으로는 ‘호박’(대구·정경자)이 단연 돋보였다. 간결하고 짜임새 있는 문장에 군더더기가 없는 내용이 읽는 이에게 호감을 주게 한다. 호박의 후덕함을 예찬하길 주저하지 않는다. 호박에 얽힌 여러 이야기들이 오래 가꾸고 관찰하고 깊은 생각을 품은 글임을 나타낸다. 삶의 지혜, 인생의 무게가 도처에 엿보인다. 호박 농사에 빗대어 오늘날의 세태를 읽을 수 있게 한다. 주변에 흔한 호박에 대한 깊은 애정이 위트와 유머를 품은 이런 작품을 빚게 했으리라.
함께 보낸 ‘피아노’도 훌륭한 작품이다. 학창시절의 단순한 회고 취미가 아니라 피아노에서 연상된 피아노를 잘 치던 친구가 성장통을 겪어내며 뒤틀렸던 성격이 소생되는 과정을 잘 이끌어냈다. 피아노가 더 이상 허영심이나 과시욕의 대상이 아님을 깨닫게한다.
당선작으로서도 손색이 없을 ‘클로버에 대한 단상’(횡성·최옥순)이 아깝게 되었다.
수능을 앞둔 자녀와 가족을 위해 찾은 산사에서 간절히 기도하며 느낀 점을 깔끔한 글솜씨로 펼쳐보였다. 정밀한 산사의 분위기에다 밤에 기도하는 모습의 클로버를 보며 참회와 염원의 소중함을 잘 담아낸다. 앞으로 좋은 수필을 쓸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등나무’(대구·임만빈)는 의사와 환자가 갈등을 겪으면서도 함께 등나무처럼 엉겨 붙어 하나의 줄기를 만드는 등나무와 같은 숙명적인 관계임을 잘 표현하고 있다. 의사란 직업인이 아니고는 이런 경험을 잘 살릴 수가 없겠다.
문학작품은 낱말과 문장으로 이뤄진다는 점을 명심하여 우리말을 좀 더 갈고 닦은 그런 작품이 출현하길 고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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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남일보 >
삶의 나무, 죽음의 나무 / 성낙향
사거리로 내려가는 길의 한쪽 어름에 공터가 있다. 그곳에는 버려진 문짝과 의자와 그것들과 마찬가지로 누군가로부터 버려진 것 같은, 별 특징도 볼품도 없이 앙상한 나무 한 그루가 있었다. 원래는 어느 집 마당의 정원수였던 것이 그 집 식구들이 떠나고 주택마저 철거되어 공터에 혼자 남은 듯했다.
겨우내 그 나무를 지나치면서 별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산으로부터도 밀려나고, 인간으로부터도 버림받은 그 나무는 내게 있어 낡아빠진 문짝이나 의자와 똑같이, 그저 그 공터에 방치된 하나의 고물이자 우중충한 정물일 뿐이었다.
어느 날 아침, 출근길에 멀리 공터 위로 낯선 것이 걸려있는 것이 보였다. 깨끗하게 빨아 넌 흰 손수건 같기도 하고, 환하게 불 밝혀진 알전구 같기도 한 것들이 공터 뒷집 먹색 슬라브 지붕을 배경으로 점점이 떠있었다. 공터 가까이 다가간 나는 한순간 탄성을 지르며 그 자리에 멈춰 섰다. 방세가 밀린 세입자처럼 늘 어딘가 불편한 자세로 서있던 그 나무가 전날 내린 비에 부풀어 오른 무수한 흰 꽃송이를 가지에 매달고 있었던 것이다.
눈부신 순백의 꽃들을 보고서야 신원을 알 수 없던 그 나무의 정체가 ‘목련’임을 알게 되었다. 마치 몇 년간 데면데면하게 지내온 동네슈퍼 주인이 사실은 잃어버린 친동생임을 알게 되었을 때의 기분, 그런 황당함 같은 걸 나무 앞에서 느꼈다.
목련이라면 항상 우리 곁에 있어 친숙한 나무다. 오랜 세월동안 수없이 보아왔기에. 누군가 나에게 목련나무를 아느냐고 물었다면, 분명 잘 안다고 대답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목련을 몰랐다. 내가 알고 있었던 것은 단지 목련나무가 피워 올린 희고 탐스런 꽃에 불과했다.
나무의 둥치나 껍질이나 잎사귀에는 제대로 눈길을 주지 않았었다. 비가 내리거나, 찬바람이 불적에 목련나무가 그것들을 견뎌내는 모습을 지켜본 적도 없이, 그저 봄날의 짧은 며칠, 발화(發火)하듯 피는 꽃송이들에 열광했을 뿐이다. 이지러진 양초 덩어리처럼 뚝뚝 꽃들이 떨어지고 그 자리에 새살 차듯 자잘한 잎이 돋아나면 나무는 차츰 시선 밖으로 물러났다가, 다른 신록들 속에 묻히게 되는 여름이 오면 그만‘이름을 알 수 없는 나무’가 돼버리곤 했다. 목련나무 본연의 모습보다 한순간의 꽃단장에만 미혹되었던 나의 부박함이 느껴져 씁쓸했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저 공터의 나무처럼, 목련이란 나무는 다른 나무들에 비해 꽃피는 것이 너무도 극적이다. 겨울동안 메마른 가지를 치켜들고 숨도 쉬지 않는 것처럼 조용히 서 있다가 다른 꽃나무들이 겨울과 봄의 모호한 날씨를 탐색하는 사이에 기습적으로 꽃을 확 피워버린다. 선수를 빼앗길까봐 두려운 듯 잎사귀도 내기 전에 꽃부터 피우고 본다. 도발적일만큼 당찬 개화에 정작 그것을 생산해낸 회색의 나무둥치와 가지들은 한낱 꽃을 위한 버팀목처럼 내 눈의 초점 밖으로 밀려났는지도 모르겠다.
열정도 의지도 없이 다만 생장할 뿐이라고 여겼던 나무의 내부에 응축되어 있던 욕망을 본다. 세상에 자신이 있음을 당당하게 밝히고자 인고하며 때를 기다려온 뜨겁고 질긴 욕망이 그 나무를 돌아보게 한다.
고대 그리스 신들이 맨 처음으로 만든 나무라 하여 ‘어머니 나무’로 불리는 참나무. 나에게는 그런 참나무로 만든 작은 밥통이 있다.
갓 지은 뜨거운 밥을 그 밥통 안에 넣어놓으면 둥글게 맞물려진 참나무 널조각들은, 시골 방 아랫목에 놋주발을 묻어두는 어머니처럼 제 가슴에 흰쌀밥을 품고서 오래도록 온기를 보존시켜준다. 온기도 온기지만 밥알마다에 은은하게 스며든 참나무 향기는 또 어떤가. 무심코 밥통의 뚜껑을 열었을 때 밥의 훈기에 우러나있던 나무의 향기가 코끝에 물씬 와 닿으면, 바흐의 무반주 첼로를 들을 때처럼 마음의 갈피마다 아늑한 울림이 인다.
향이 좋은 까닭에 옛날부터 청어나 연어를 훈연시킬 때, 질 좋은 와인을 숙성시킬 때, 수많은 나무들 중에서 참나무를 골라 사용 했다. 물론 편백나무나 향나무처럼 생살 속에 고아한 향을 가진 다른 나무도 있긴 하다. 그러나 자신은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세상에서, 낯선 방식으로, 낯선 추억을 쌓으며 자라난 연어와 포도, 그 이질적인 것들이 가진 본래의 향을 거스르지 않으면서 오히려 깊고 그윽한 풍미까지 더해주는 나무는 오로지 참나무뿐인 것을 옛사람들은 알았던 모양이다.
한겨울, 늙은 군고구마장수가 끌고 다니는 수레의 양철화덕 속에서 타닥타닥 타오르는 참나무 냄새는 고층건물로 빽빽한 도심의 거리에 일순, 이른 저녁나절의 시골 정취를 풀어놓는다. 장작 몇 개일 뿐이나, 그 향이 너무도 짙고 깊어서 양철화덕 속에는 해묵은 참나무 숲 하나가 통째 타고 있는 듯하다.
스님들의 독경처럼, 수사들의 그레고리안 성가처럼 긴 여운을 남기며 대기 속으로 사라지는 향기가 아까워, 주린 듯 그 향을 맡는다. 무엇을 태운들 저리 맑고 그윽한 향기를 풍길까. 태워도 결코 정갈한 향을 풍기지 못할 내 몸, 내 삶을 알기에 참나무 향기를 맡을 때마다 한없이 부끄러워진다.
열매를 겹겹의 껍질로 싸고도 가시까지 촘촘하게 세우는 밤나무와 달리, 산짐승들에게 순하게 도토리를 내어주고, 외부의 적들을 제거하기 위해 독소를 만들어내는 은행나무와 달리, 제 속의 영양분을 둥치에 달라붙은 버섯들과 나누어가지는 욕심 없는 나무. 소나무처럼 그악스럽게 햇빛을 긁어모으지도 않고, 꽃송이마저 잎사귀 아래로 드리우는 가식 없는 나무. 남보다 많은 겸손의 덕을 몸 안에 지니고, 남보다 적게 탐하는 일생을 살아왔기에 불길에 사루어지는 참나무의 향기는 고결할 수밖에 없는 것인가.
지난 가을, 갑작스럽게 이모님이 돌아가셨다.
세상 사람들 속에 묻혀 눈에 띄지 않게 평범하게 살아온 그 분의 삶이었건만, 나흘간의 장례식 동안만큼은 일생 받지 못한 주목을 받았다. 묵묵히 살다 느닷없이 활짝 꽃피워 세상에 제가 있었음을 알리는 목련나무처럼.
이모님은 남아서 고인을 추모하는 자들의 기억 속에서 한결같이 아름다웠다. 모두들 천사 같은 사람이었다고 했다. 사람들은 사고로 망가진 고인의 싸늘한 얼굴에 뺨을 부비며 눈물 흘렸다. 그렇게 모두들 울면서 고인의 자취를 아린마음으로 더듬었다. 관속에 누운 이모님에게서는 양철화덕 속의 참나무 같은 향기가 장례식 내내 풍겨났다.
내 삶도 사람들에게 조상되는 때가 올 것이다. 죽음을 들여다보며, 어떤 죽음을 맞을까 생각하면 어떤 삶을 살아야하는지는 분명해진다. 무심히 지나쳐온 목련과 참나무는 이모님의 별세를 통해 인생의 종결부를 되새기게 하고, 남은 삶에 대해서도 숙연해지게 하는 그런 나무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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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사평 > / 김열규 (서강대 명예교수)
귀하고 애쓰신 원고를 보내주신 여러분께 우선 경의를 표하고 싶습니다.
120 편 가까운 작품을 읽어내는 일은 힘겨운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또박 또박 한자 한자, 한 문장 한 문장 현미경 들여다보듯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기에 당선작 고르는 일은 돌 더미에서 옥을 가리는 일은 아니었습니다. 구슬 상자에서 보옥 한 알 , 고르는 것이나 진 배 없었습니다.
고르는 절차는 삼 단계를 밟아 갔습니다. 문장에 무리가 있고 문리(文理)에 어긋남이 있는 글을 우선 뒤로 물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수필은 다른 문학 장르에 비해서 ‘글의 미학’과 나란히 ‘글의 정교함’이 두드러지게 살아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일차 읽기가 끝난 다음, 열편 정도의 예비 후보 작품이 남겨졌습니다. 그것들을 고쳐 살피고 따지고는 3 편이 남겨졌습니다. 이들은 그야말로 막상막하! 호불호를 가리기는 무척 힘겨웠습니다. 그 중에서 애석하게도 ‘선소리’가 물러나게 된 것은 주제나 내용 보다는 두어 곳 문장과 문리가 드러낸 작은 흠집 때문이었습니다.
드디어 두 편이 맞겨루게 되었을 때는 실로 난감했습니다. 최후의 왕좌를 놓고 겨루게 된 것은 ‘낙엽을 위하여’와 ‘삶의 나무 , 죽음의 나무’였습니다. 오죽하면 두 편 다 당선작으로 삼을 수 없을까 하고 궁리를 했겠습니까.
우선은 발상이며 착상의 창의성을 두고 두 작품을 견주어 보았습니다. 다음으로는 글 전체의 구성이며 논리적 전개를 비교해 보았습니다. 그 결과 ‘삶의 나무, 죽음의 나무’가 상대적으로 조금 더 선자의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그 주제와 겹친 작품 구성에서 발견되는 대조법의 묘미가 좋았습니다. 그리고 부분적으로는 비유법이며 이미지의 재미가 선자의 취향이나 주관에 보다 더 가까웠던 것입니다. 성낙향님에게 삼가 기림의 말씀을 드립니다. 그러면서도 가작으로 뽑힌 , ‘낙엽을 위하여’의 유 정서님께는 우수한 수필 작가로서의 긍지를 더한층 살려 가시도록 박수를 드립니다.
응모하신 모든 분과 함께 한국 수필 문학의 내일을 축복하는 것으로 심사평을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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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주신문 >
맷돌 / 주인석
눈이 보살이다. 친정 뒷마당 응달에 측은하게 머리를 박고 있는 맷돌을 발견했다. 박박 얽은 피부에는 집 밖에 산 고생의 흔적으로 이끼가 군데군데나 있다. 음식 한 번 제대로 못 얻어먹어 그런지 아가리에는 백태처럼 흙이 끼었다.
몰골은 엉망이었지만 아랫돌과 웃돌이 껴안고 있는 모습이 왠지 사람 같아 가엾기 그지없다. 비가 올 때마다 튀어 오른 흙덩이가 곰보 자국에 붙었고 거기에서도 행복 할 수 있다고 이끼가 뿌리를 내렸다.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고 전을 폈다. 편리한 믹서기를 두고 쓸데없는 짓 한다며 어머니는 잔사설이 많았지만 그런 소리보다 내 마음이 더 앞섰다. 어머니는 구경만 하시라 큰소리치며 옛날 기억을 떠올려 남편과 나는 어설픈 두부 만들기에 들어갔다.
어린 시절에 맷돌로 곡물 가는 것을 봤다. 그중에서도 콩을 갈아 만든 두부는 일품이다. 두부 맛이란 암 맷돌과 숫 맷돌의 수많은 충돌과 마찰이 만들어낸 화해의 맛이다. 부대끼며 돌아가는 맷돌에서 여유와 인정을 볼 수 있다.
어머니는 불린 콩을 맷돌 옆으로 가져다 놓는다. 큰 함지박 위에 가지 벌어진 나무를 걸치고 숫 맷돌을 놓고 숫쇠에 잘 맞추어 암 맷돌을 끼운다. 준비가 끝나면 암 맷돌의 아가리로 콩을 한 줌씩 넣고 갈기 시작한다.
맷돌을 가운데 두고 아버지와 어머니는 마주 앉아 어처구니를 잡고 돌리신다. 마치 암 맷돌과 숫 맷돌이 안고 돌듯이. 아버지와 어머니는 맷돌을 사이에 두고 무슨 이야기가 그리 많은지 여덟 식구가 먹을 콩을 다 갈 때까지 주거니 받거니 하신다. 부모님의 이야기가 도란도란거리면 맷돌은 드르륵 드르륵 장단을 맞춘다.
맷돌을 가만히 보면 아래쪽의 숫 맷돌은 고정된 상태로 앉아 있다. 숫 맷돌의 뾰족 튀어나온 숫쇠에 암 맷돌은 걸려서 빙빙 돌아간다. 맷돌과 부모님은 참 많이 닮았다. 가만히 앉아 계시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들어 주는 아버지는 아랫돌 같고 말 많고 싹싹한 어머니는 웃돌 같다.
콩을 갈면서도 주로 어머니가 이런 저런 이야기를 끄집어내면 어버지는 느긋하게 들어주는 쪽이었다. 맷돌의 아가리로 콩이 들어가 빙빙 돌면서 비벼갈아내는 것과 같다.
부모님의 맷돌은 콩만 가는 것이 아니다. 콩도 갈고 당신들의 삶도 조곤조곤 갈아 내셨다. 한해에도 수차례 곡물을 갈아 내며 당신들의 애환과 갈등도 가셨던 것이다. 딱딱한 덩어리들이 암 맷돌의 아가리를 통해 들어가면 숫 맷돌은 묵묵히 받아 주었다.
어쩌다 삶이 삐거덕거릴 때 어머니의 잔소리가 종일 계속 되어도 아버지는 가만히 받아 들이셨다. 그러다가 아가리를 통해 들어온 콩이 덜 갈리고 함지박에 빠지듯 부모님도 한 번씩 심하게 다투셨다. 그때마다 다시 콩을 주워 아가리에 담아 주는 자식들이 있었기 때문에 멈추지 않고 맷돌을 돌렸을 것이다.
넉넉하지 못한 살림에 여섯 자식을 키우면서 얼마나 갈아 낼 것이 많았을까. 말이 없는 아버지와 잔정 많아 말도 많은 어머니 사이엔 갈 것이 또 얼마나 많았을까. 물에 물 탄 듯 싱거운 아버지와 여간 짭짤하지 않은 어머니가 안고 돌아가면서 수도 없이 덜커덩거렸을 것이다.
갈기가 끝나면 가마솥에다 걸쭉한 콩 액을 넣고 푹 끓인다. 솥에서 술술 나는 구수한 냄새와 맛은 마찰이 주는 선물이고 걸쭉한 국물은 당신들이 일구어 낸 끈적끄넉한 삶의 모습인 것이다.
남편과 나는 부모님처럼 도란도란이 아니라 왁자그르르하다. 서로 잘 한다고 혼자서 어처구니를 돌리려하는 것이며 갈리기도 전에 콩을 넣어 엉멍진창이 되고 말았다. 옆에서 보다 못한 어머니가 도와서 겨우 흉내만 내는 꼴이 되고 말았다.
아직까지 우리는 이가 잘 맞지 않는 맷돌이다. 안고 같이 돌기보다는 각각 돌아가고 있다는 표현이 더 맞는 것 같다. 그러니 부대낌에서 화해로 가기보다 공회전으로 힘만 뺄 때가 더 많다. 마음을 맞추고 나면 갈아 낼 것이 지천일 게다.
날마다 머리 굵어지고 영악해져가는 아이들을 바르게 키우는 일, 위 아래로 눌린 중년의 어깨에 얹힌 짐을 함께 들어주는 일이나 각박해진 세상인심에도 따뜻하게 살아가려면 둘이 안고 돌지 않으면 안 될 일이다. 딱딱한 콩을 걸쭉한 국물로 만들어 부드러운 두부로 내기까지 마찰이라는 통과의례를 수도 없이 거쳐 왔던 부모님처럼 우리도 그러해야 하리라.
맷돌이 돌면서 마찰을 일으켜야 제 기능을 하는 것처럼 사람도 사람들끼리 가정과 사회 속에서 비비면서 살 때 사람 냄새가 나는 것이다. 그런 과정에 충돌이야 없지 않겠지만 후에 돌아보면 그것이 사람 사는 재미가 아니겠는가.
평생을 끌어안고 슬근대며 산 부모님은 아직도 갈 것이 남았을까. 아흔의 나이에도 한 번씩 톡탁거리다 화해한다. 당신들의 삶을 보면 우리네 삶이 쉽지만은 않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그 속에는 행복의 소리가 끊이질 않는다.
갈 것 없어 조용한 빈 맷돌보다 콩이 이리 튀고 저리 튀어도 날마다 드르륵거리는 맷돌이 보기에 좋다. 단번에 갈아버리는 믹스기보다 맷돌로 슬근슬근 갈아낸 것이 훨씬 구수한 맛이 난다. 우리 삶도 이와 같으리.
*
< 심사평 > / 고권일
제1회 신춘문예에 비해 수필장르는 응모자와 작품이 폭발적으로 늘었다. 뿐만 아니라 지난 해와 비견하여 작품수준도 뛰어나 영주 신춘문예에 대한 경향 각지 문학도들의 열정을 읽을 수 있었다.
예심을 거쳐 본선에 오른 작품들은 주인석의 '맷돌', 김 은정의 '하수', 안 정혜의 '초원의 세레나데', 채정순의 '양파', 윤 미애의 '풍구'등 다섯 편이었다.
모두가 자신들의 신산했던 삶의 이력에서 건져올린 소중한 의미에 문학적 여과를 가해 수필이란 이름에 걸맞는 수작들을 수확하고 있어 반갑고 행복했다.
다만 옥에 티처럼 아쉬운 점이 있다면 대부분의 작품들이 회고조에 감상에 침잠한 나머지 관조의 미학이라는 수필의 품격을 확연히 드러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적확한 어휘들에 대한 탐색이 소홀하고 문맥에 맞게 다듬어지지 않은 것들이 적지않아 여유의 미학이라는 수필 특유의 그윽한 예술적 방향을 풍기지 못한다는 것들이다.
고심 끝에 당선작으로 주 인석의 '맷돌'을 골랐다.
맷돌은 암수맷돌처럼 평생을 함께 하며 백수의 나이를 바라보는 부모님의 아름다운 세월을 담담하게 반추하며 믹서기보다 맷돌로 콩을 갈고 두부를 만드는 느림의 미학을 실천하는 삶을 지향하고 있다. 문장의 전개도 자연스럽고 어휘에 대한 고심의 흔적이 곳곳에 스며있다.
앞으로 치열한 삶에서 우러나는 감동과 효과적인 글의 얼개짜기, 그리고 어휘 하나하나에 대한 절차탁마로 우리 수필의 새로운 지평을 여는 작가가 되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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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남신문 >
주름 / 전명희
주름은 길이다. 수없는 마음들이 오고 가고 수없는 사연들이 흘러가고 흘러오는 길.
내 얼굴에도 숱한 길이 있다. 가족과 친구와 이웃과 정을 나누고 더 크고 원대한 배움을 익히며 타인과의 사랑과 이별을 겪으며 그 길은 세세 갈래로 나뉘고 다져졌다. 동경과 꿈이 배어 있고 격정과 한숨이 녹아 있고 슬픔과 울분이 스며 있다. 그중 눈가의 주름은 내 얼굴의 군소의 길 중에 가장 마음에 들지 않는 길이다. 그 길은 타인의 사연이 흘러오는 것을 일부러 막아서는 듯한 험한 둔턱을 끼고 있기 때문이다. 자연히 평범한 이웃들은 그 길을 선호하지 않을 것이다. 억세고 심술궂기까지 한 그 길에는 언제부턴가 타인의 발길이 뚝 끊긴 듯도 싶다.
화장을 잘 하지 않는 내가 그래도 그 길만은 조금 시간을 들여서 파운데이션이라도 펴 바르곤 하는데 마찬가지다. 이미 나 있는 길은 기초화장에 색조화장을 아무리 정성껏 해도 두툼한 심술의 장애물을 가려낼 길이 없이 도드라져 보인다. 외출이라도 할 양이면 거울 앞에 서는 시간이 길어진다. 아무리 해도 그 길 때문에 전체적인 인상이 좋아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여보, 나 수술할까 봐요. 눈 밑이 너무 사나워 보여서 영 신경 쓰여요.”
“생긴 대로 살지, 뭘.” 남편은 아내의 이 심각한 고민이 그저 우습고 하찮아 보이기만 하는 것일까.
눈 밑 지방을 제거하는 수술이 있다기에 혹해 있다가 마침 얼마 전 미용실에서 펼쳐본 잡지책에 수술 전과 수술 후의 비교 사진을 보니 사뭇 마음이 끌려서 넌지시 화두를 꺼내본 것인데 역시 남편의 화법은 완곡하면서도 강하다. 남편이 그러라고 해도 아마 평생 성형외과의 문을 두드릴 날은 오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말이라도 한마디 “그래? 나는 괜찮지만 그렇게 마음에 걸리면 한번 알아 봐요.” 했더라면 두고두고 뿌듯해 하지 않았을까. 뿐이랴, 남편을 자랑스러워하고 신뢰하는 마음이 그 전보다 몇 배는 두터워졌을 것이다.
하기는 나도 이 ‘말 한마디의 진정!’을 소홀히 하고 남편을 서운하게 할 때가 종종 있다. 남편의 속마음이 아내의 기탄없는 칭찬 한마디 듣고 싶어 하는 줄 뻔히 알면서도 그 한마디에 끝내 인색하여 나보다 다섯이나 많은 점잖은 남편을 삐돌이 아이처럼 만들어 버릴 때가 있었다. 입장을 바꿔 생각해보니 그동안 남편이 너그럽지 못한 아내에게 얼마나 조바심을 내고 심기가 불편했을지 짐작이 가고 많이 미안해진다.
새삼 부부지정의 밀도를 되돌아보게 하는 눈 밑의 길은 언제부터 생긴 것일까.
십여 년 전 장애 아동들을 돌보는 직장을 다닐 때이리라. 지금은 그 주변이 얼마나 번화하게 변했는지 모르지만 그때엔 시골 마을에서 꽤 깊숙이 들어간 산 밑에 덜렁 그 건물 하나 있었다. 주변으로 봄에는 진달래, 여름에는 보드란 자귀나무 꽃들이 지천에 흔하게 피었다. 가을에는 감나무와 밤나무가 툭툭 열매를 내던지며 우리들을 유혹하던 곳이었다. 그중 어느 가을이 문제였던 것 같다. 외출이 가능한 아이들 몇을 데리고 주변의 산을 산짐승처럼 뛰어 다녔다. 예쁜 나뭇잎도 따고 밤도 줍고 떫은 감을 따서 방안에 걸어둘 욕심으로 자꾸 깊숙이 깊숙이 아이들을 몰았다. 그날 유독 커다란 잎에 원색의 붉은색 단풍물을 들인 나무들이 많았었다. 그 색이 너무 강렬해 감히 잎을 따거나 만지지는 않았지만 그 곁을 수도 없이 스치고 지나쳤던 게 결국 화근이었다. 그날 밤부터 얼굴과 목에 붉은 빛이 돌며 좁쌀만한 돌기가 돋아 나오기 시작하더니 이내 오른쪽 볼 쪽이 벌겋게 부어올랐다. 주변에서는 병원에 다녀오라고 채근했지만 나름의 소신만 가지고 차차 괜찮아지려니 하고 말았다.
지금 생각하면 왜 그토록 어리석고 무모한 태도를 고집했는지 스스로 아연할 지경이지만 그 때로선 아마 그럴 수밖에 없었으리라. 그곳 아이들은 모두 장애아들이었다. 정신지체 1급부터 뇌성마비 1급, 증상이 가벼운 아이들도 있었지만 대부분 심각한 장애를 가진 중증 장애아들이었다. 사지가 뒤틀린 채 평생을 누워서 살아야 하는 아이도 있고 제 몸을 학대하여 하루가 멀다 하고 피를 보는 아이도 있고 눈만 끔벅끔벅 누워서 떠주는 밥을 받아먹을 힘이 없어 임의로 입을 벌리고 먹여야 되는 아이도 있었다. 고릴라 같은 큰 덩치에 문턱이고, 기둥이고 가리지 않고 꽈당, 꽈당 넘어져 머리와 얼굴이 상처로 울퉁불퉁 길이 난 채 헬멧을 쓰고 사는 아이도 있었다. 그 아이들과 함께 살면서 겨우 얼굴에 난 부종과 돌기 때문에 병원을 다닌다는 것이 왠지 아이들에게 미안하고 스스로 낯이 서지 않았던 것이다. 약국에서 바르는 약으로 며칠을 버티다 보니 그럭저럭 가라앉기는 했지만 그 때 이후 눈 밑에 이상한 주름이 생겼다. 살이 부었다가 갑자기 부기가 빠지면서 늘어진 피부가 주름으로 고정돼 버린 것이다. 그날 그 유별난 원색으로 나를 유혹했던 나무는 옻나무였음을 나중에 알았다.
눈가의 주름이 곱고 순한 사람들이 있다. 이 사람들은 웃을 때 특히 이 주름이 진가를 발휘한다. 두 눈을 중심으로 마치 은은한 꽃 두 송이가 살포시 피어나고 동시에 얼굴 전체가 하나의 화사한 꽃처럼 피어난다. 꽃 같은 고운 길로 닦이기까지 그들의 생애 또한 그렇듯 순정하고 포근하고 너그럽게 끌어안지 않았을까. 자신보다는 타인을 먼저 생각하고 가까이 있는 이웃들에게 보기만 해도 힘이 되고 아름다운 자극을 심어준 삶을 살아오지 않았을까. 눈가의 길이 순하고 섬세한 이에게는 알 수 없는 그런 믿음과 넉넉함과 고요한 포용력이 느껴진다. 그런데도 이 소중한 주름을 일부러 돈을 들여 없애려고 안달을 하는 사람을 보면 마음이 답답해진다. 현재의 자신을 부정함은 물론 애써 가꾸고 닦아온 연륜과 알뜰한 삶의 흔적까지 지우려는 어리석음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주름은 인생이다.
내가 세상에 어떤 걸음으로 걸어 나갔는지를 뚜렷이 보여주며 살아온 세월이 고스란히 묻어 있는 인생 자체다. 주름이 유독 험하고 거칠고 크고 깊숙한 사람들에게는 그 달려온 인생 또한 순탄하지 않았음이 느껴진다. 그인들 타인이 쉬어 가고 싶은 아늑하고 평탄한 길을 만들고 싶지 않았으랴. 이따금씩 쉬어가며 돌아볼 여유도 없이 숨가쁘게 달렸던 그들의 역경과 굴곡 많았던 삶에 경의를 표하며 이제라도 온유하고 다감하고 여유로운 일만 생기기를 간절히 기도할 뿐이다.
웃으면 더 밉살스럽게 일그러지는 내 눈가의 주름. 이제라도 살뜰히 보듬어 줘야겠다. 누가 보면 참 심술궂다, 밉상이다 하겠지만 한때의 순수한 소명감으로 불우한 이들과의 정을 나눴던 젊음의 흔적이 아닌가. 거울을 볼 때마다 그때의 순수한 동기를 흠모하며 현재의 나를 돌아보리라. 그때 이후 특이할 만한 주름(길)이 생기지 않았음은 더 이상 뜨겁고 진솔함이 아닌 적당 적당히 살아왔음을 의미함이 아니런가.
이제는 주름이 생기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으련다. 주름은 나 자신을 이웃에게 데려가고 이웃을 나에게로 오도록 하는 정다운 길이기 때문이다. 대신 크고 눈에 띄는 길보다는 작고 약해서 큰길에선 함부로 나다닐 수 없는 연약한 마음들이 터놓고 오갈 수 있게 가능하면 좁고 가늘고 부드러운 길을 만들리라. 그러기 위해선 지금보다 더 세밀한 마음의 정도(精圖)로 내 안을 재정비하고 지금보다 더 투명하고 정갈한 축척으로 영혼의 지도를 기록해야 하리.
거울을 보며 내 삶이 배어 있는 주름들을 본다. 어떤 의미로도 깊이와 연륜이 묻어나려면 아직 멀었다. 그것이 아닌 데에야 삶의 어떤 한가함과 나태는 물론 투정과 한숨조차 스스로 용납해서는 안 되리라.
*
< 심사평 > / 김열규· 정목일
수필은 단순히 문장을 통해 개성과 기교만을 보는 게 아니고, 인생 경지와 삶의 깨달음을 보게 된다. 인격에서 향기가 나야 문장에서 향기가 나는 법이다. 삶의 경지, 인생의 품격에 따라 수필의 수준이 달라진다.
전체적으로 삶의 주변에서 일어난 사소한 체험을 통해 작자의 상상과 인생관과 감성을 불어넣어 독자적인 세계를 창조해내고 있다.
단순한 삶의 에피소드, 일상사의 기록, 잊혀지지 않는 추억담을 담아놓으려는 데 그치지 않고 자신의 체험을 통해 인생의 발견과 의미를 부여한 작품이 낳았다. 이런 수필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당선작으로 선정한 전명희의 ‘주름’은 노쇠의 흔적으로 거부감을 보이는 ‘주름’에 대해 새로운 발견과 깨달음을 보여준 작품이다. 현대인들이 모두 얼굴 성형에 집요한 관심과 집착을 보이고 있는 실정에, ‘주름’을 통해 순리와 포옹과 편안함의 미학을 펼친 점이 돋보였다. 최보은의 ‘도둑고양이’는 고양이의 심리와 생태 관찰이 치밀하고 이를 통한 인생적 발견이 큰 공감을 갖게 한 작품이었지만, 구성이 단순하다는 점이 아쉬웠다. 이 밖에 ‘수의’ 등도 시선을 끄는 작품이었다.
응모 수필들이 삶의 집중력과 치열성을 보인 것보다 한가하고 사색적인 데에 치중한 작품들이 다수였다. 이제 수필도 사회성, 시대성, 문제성을 담은 작품들을 보여줄 때가 되었다. 당선자에게 축하를 보내며 꾸준한 정진을 당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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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일보 >
달 / 박월수
그날은 배꼽마당이 들썩거리도록 말 타기를 하고 놀았다. 배가 촐촐할 무렵 친구는 내 손을 잡고 자기 집으로 이끌었다. 친구의 어머니는 호박전을 굽고 있었다. 금방 구운 호박전은 달콤하고 고소했다. 노랗고 동그란 모양이 달을 닮았다고 생각했다. 그 달이 반달이 되고 하현달이 되고 눈썹달이 되어 내 속으로 사라졌다.
몇 개의 달을 삼켰는지 모른다. 어스름 녘이 되어 달처럼 부른 배를 안고 집으로 왔다. 달을 닮은 호박전을 먹을 때부터 아래가 이상했었다. 이제껏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싫고도 궁금한 무엇이 내 몸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구석에 숨어서 아무도 몰래 아랫도리를 내려 보았다. 낮에 먹은 호박전 빛깔이 끈끈하게 묻어 있었다. 아침이 되어 제일 먼저 살펴본 샅에서는 붉은 달빛이 흥건했다. 울컥 서러움이 밀려들었다.
뒤꼍 뚜껑 덮인 대야에서 몰래 훔쳐본 어머니의 서답이 떠올랐다. 달빛보다 더 붉은 물에 담겨있던 서답은 한 번도 앞마당 빨랫줄에서 하얗게 펄럭인 적이 없었다. 언제나 뒤꼍에 낮게 엎드려 달빛 아래서만 말랐다. 결코 다른 빨래와 함께 섞인 적 없는 그것은 어린 내 눈에도 부끄러움이었고 남에게 숨겨야 할 비밀이었다.
앉은뱅이책상 서랍 속에 꼭꼭 숨겨둔 흔적을 반나절도 안 되어 어머니께 들켰다. 어머니는 달거리가 시작된 거라고 했다. 여자라서 겪는 불편이며 부끄러움이니 참아야 한다고도 했다. 달마다 한 번씩 며칠에 걸쳐 하게 된다는 마지막 말은 울고 싶은 나를 적잖이 안심시켰다. 내 속에서 흘러나오는 붉은 달빛을 날마다 경험하며 살 수는 없다고 절망하던 참이었다. 어머니의 말이 끝나고 왜 여자는 부끄러워야 하고 숨겨야만 하는지 묻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뒤꼍의 뚜껑 덮인 대야를 생각하니 나도 그래야만 할 것 같았다. 오후 내내 반짇고리 곁에 앉아 하얀 소창을 만지작거리던 어머니는 개짐이란 걸 만들어 내게 주었다. 뒤꼍에서 몰래 훔쳐 본 어머니의 서답이랑 참 닮았었다. 내 것이 좀 작았을 뿐. 샅에 차는 물건이라 했다.
셋이나 되는 오빠들 틈에서 풀썩거리며 자란 나는 억지로 여자가 되어야했다. 달을 지날 때 마다 개짐이 지닌 부피가 부담스러워 치마를 입고 견뎌야 했으며 달거리의 아픔도 참아야 하는 줄만 알았다. 여자보다 남자가 더 많은 우리 집에서 아무 눈에도 띄지 않게 모아둔 서답을 씻느라 밤에 몰래 깨어있기도 했다. 그러면서 나는 어머니의 자궁처럼 포근한 유년의 배꼽마당과 결별했고 달을 닮은 호박전을 유난히 싫어하게 되었다. 내가 잉태의 신비를 경험하기 전까지는.
달콤 쌉싸래한 신혼의 어느 날, 여름 땡볕에 제 몸을 둥글게 말아 키운 감자를 삶았다. 오지게 잘생긴 놈을 골라 입안에 넣다가 울컥 신물이 올라왔다. 빙빙 어지럼증이 생기더니 하늘이 노랬다. 달을 본지가 언제인지 헤아려 보곤 오스스 소름이 돋았다. 내 안에서 새 생명이 움을 틔운 것이다. 세상이 다 내 것이 된 양 좋았다. 몸속의 아이가 톡톡 발길질을 하던 날은 숨이 멎을 것 같은 경이로움에 휩싸이기도 했다. 말갛게 숨 쉬던 달빛이 치마 아래로 축축하게 번지던 날 아이의 첫 울음 소릴 들었다. 서 말의 붉은 달빛을 쏟은 후에야 아이를 낳는다는 우리 어머니의 어머니, 그 어머니의 어머니처럼 나도 그만큼의 달빛을 쏟은 후 비로소 엄마가 된 것이다.
우주가 내 품에 와서 안긴 듯한 잉태와 출산의 기쁨을 가슴 뻐근하게 누려보고서야 알 게 되었다. 내게로 들어 온 달의 소중함과 내 안에서 느끼는 귀찮지만 달콤한 비밀은 건강한 여자에게만 허락된 의무이며 축복이라는 것을.
예전엔 가뭄이 심하면 붉은 혈이 선명한 여자의 개짐으로 깃발을 만들어 기우제를 지내는 풍습이 있었다. 생명의 상징인 물을 여자의 달거리로 불러오려 했다는 건 잉태의 근원이 거기에 있다고 믿은 때문이었으리라. 그런 이유로 지금껏 내가 알던 것과는 달리 여자의 달거리는 신성한 것으로 여겨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우리 조상들은 달의 정기를 받으면 여성의 생산력도 높아진다고 믿었다. 보름달이 뜨기를 기다려 '강강술래'나 '월월이청청' 같은 놀이를 여자들만 즐긴 것을 보면 말이다.
나는 이제 내가 처음 달을 보았을 때의 어머니 나이가 되었고 엉덩이에 살이 통통하게 오르고 젖무덤이 봉긋하게 부푼 딸은 그때의 내 나이가 되었다. 둥근 호박전 빛깔을 가진 달과 제 몸의 붉은 달빛도 그 아이는 보았다. 빠르게 시간이 흘러 그 아이가 우주와 소통하게 될 날을 나는 손꼽아 기다린다. 달이 가져다 준 몸의 신비를 우주를 품에 안으므로 온전히 이해하게 되는 날 비로소 그 아이도 생명의 경이로움을 온 몸으로 받들고 지켜가게 되리라.
그때쯤이면 아마 나는 달의 몰락을 경험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 시기에 겪게 된다는 끝 모를 우울과 나른함으로 힘든 날들을 맞을 수도 있다. 혹은 쓸쓸함과 불안함이 엄습해 와서 밤마다 잠 못 들고 뒤척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게서 뜨고 지던 달의 기억들이 모여 이루어진 아이와, 그 아이의 아이를 보면서 순하게 견디어 낼 것이다. 이미 오래전에 달이 준 의무와 축복을 누린 후 참다운 *완경(完經) 을 이룬 내 어머니처럼.
* 완경(完經)- 김선우의 시 제목에서 빌려옴. 폐경(閉經)
< 심사평 > / 박양근(수필가)
응모작 680여 편 중에서 정독을 거쳐 1차로 50편을 골랐다. 기성수필가들에 비해 부족함이 없는 작품들이었지만 문장력과 체험의 육화와 감동력을 기준으로 2차 심사를 거쳐 20편을 뽑았다. 3차 심사에서는 흠결이 기준이 되었다. 단락의 미흡, 결미의 미완성이나 체험의 공감력과 의미화가 부족한 글이 탈락하면서 10편이 남았다. '달', '우화(羽化)', '해원(解寃)', '순례의 길', '맨발', '청동숟가락', '소금', '유화와 묵화', '혼서(婚書)', '주름'이었다. 종심의 대상으로 윤남석의 '주름', 조재환의 '혼서', 신성애의 '우화', 그리고 박월수의 '달'이 올라왔다. '주름'과 '혼서'는 문장에서 부족함이 없으나 참신한 해석력과 내적 치열성이 상대적으로 부족하여 최종심에서 아쉽지만 제외되었다.
신성애의 '우화'는 도시의 문화생활을 누리려는 할머니의 시골탈주를 서정적으로 묘사하면서 여성주의의 확장이라는 현대성을 지닌 점에서 주목을 끈다. 박월수의 '달'은 여성의 달거리를 모성적 운명을 초월하여 원초적 생명력으로 승화시킨 작품이다. 우주의 달과 여성의 달을 병치시킨 상상력, 기가 넘치는 문장, 치밀한 구성력과 이미지 구사에서 뛰어났다.
오랜 고심 끝에 '달'을 당선작으로 최종 결정하였다. 정치한 구성력과 생명원리로 형상화한 해석력을 서정적 문체와 참신한 시각보다 높게 평가하였다. 여타 작품의 균질성도 최종심의 기준이 되었다. 당선자에게 축하를, 낙선자에게 위로를 보낸다. 3심에 오른 분들에게도 상응하는 격려를 보내면서 더욱 정진하시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첫댓글 좋은 자료 잘 읽었습니다. 주인석님은 두 곳에서 동시 당선하는 2관왕의 기염을 토하고, 박월수님의 달이 저에겐 가장 아름다운 글이어요. 중앙지의 신춘문예에는 왜 수필문학이 없을까요? 혹시 수필문학이 문학의 지위를 의심받고 있어서 그런가요? 아니면 수필문학의 척도가 제대로 정립되지 않아서일까요? 변방의 문학으로 전락한 때문일까요?
수필문학의 전범은 어떤 기준을 가졌을까요? 1. 낱말과 문장의 정확성과 문체의 간결성. 2. 사소한 것을 관찰하고 의미를 부여하려는 노력. 3. 상상력으로 승화하고 아름다움을 주어 감동과 여운과 향기를 담기가 되지 않을까요. 이 3가지 기준에서 저는 박월수님의 달에 가장 높은 점수를 주고 싶군요. 다만, 수필문학은 사색과 관조와 위안과 아름다움과 감동과 여유와 멋의 문학이기 이전에 또한 지성미, 종교성도 풍겨야 하겠지요. 시대의 문제와 아픔도 담아야 하겠지요. 신춘문예 당선자들이 여성이 대다수인점도 재미있군요. 여성은 땅의 현상들을 관찰하는 섬세함을 타고나는 같아요. 남성은 하늘적인 원리를 잘 논한다고 하지요?
신춘문예, 신인상, 추천 이런 제도는 다른 나라에는 없는 제도 같아요. 지성미 담긴 에세이(논설) 그런 글을 쓰려면 분량도 꽤 길어야 하는데, 이런 점에서 저는 신춘문예의 길이 제한(?) 같은 것은 어쩔 수 없는 규정이지만 불만이군요. ^^보리수필 우리 글벗님들! 올해에도 좋은 글 많이 쓰시고, 몸 건강하시고 마음 행복하시길 빕니다.
무울님 감사합니다. 회장님 말씀대로 박월수님의 달이 돋보입니다. 자연과 인간을 절묘하게 병치시킨 통찰력은 설득력을 높입니다. 문장도나 구성력 전체적인 예술성이 작가의 경지를 드러내요.
저도 같은 생각을 했습니다. 여성 당선자들이 대부분이더군요. 아무래도 섬세함, 파고드는 집념 편안한 문장 구사 이런 수필의 요건에 여성들이 더 생산적인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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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처음 게시(올릴)할 때, 게시판 아래에 CCL 창에서 체크표시를 해제하시면 되겠지요.
아기를 가지는 것이 우주와 소통하는 유일한 길은 아니니까, 이 글에서는 필자가 아기를 가지는 엄마로 성장하면서 발견하는 표현으로만 생각하시되 확대 해석하실 필요는 없겠지요. 남자도 여자도 아이도 흑인도 백인도 그 누구도 우주와 소통하고 사는 존재이니 말예요.
부지런하신 무울님... 고마워요. 저도 몇 작품은 보았습니다만. 한자리에서 볼 수 있으니 더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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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로만 대화하니 괜히 기분을 상하게 한 것 같아 미안합니다. ^^ 작가는 '임신을 하는 것이 우주와 소통하는 일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독자가 그렇게 해석하고, 그리고 '그렇다면' 이라고 논리를 전개해서 다시 2째 해석을 가하는 것이니까요. 작가가 여성으로서 겪는 몸의 현상을 환상이라는 동화적인 장치를 가지고 달이라는 우주적 현상과 또 소녀적부터 어머니, 그리고 삼대의 시간으로 외연을 확대해 무엇인가 신비로운 아름다움과 감동과 발견을 표현한 문학이니, 논리적 적확성보다 문학적인 발견을 통하여 느낌의 고양을 표현하는 것이 논리를 생명으로 하는 논문이나 논설과 다른 수필문학의 대표적인 특징이 아닐까요? ^^
딸 아이가 초경 직전의 어린이가 되었고 자신처럼 우주적 신비로움으로까지 몸과 생명의 신비롭고 신성함을 발견하게 되기를 소망하고 있지, 저에겐 이 대목이 임신을 해야만 우주와 소통할 수가 있다고 읽히지는 않아요. 문학이 반드시 논리에 지배당하지는 않지요. 이 글은 산문 중에도 예술인 수필일뿐이지요. 논리나 윤리를 초극하여 새로운 느낌이나 세계를 창조하는 것이 문학의 원초적이고 구극적인 본령이 아닐까요? 박월수의 이 작품에다 엄정하고 투명한 논리로 분석하면 아예 글이 될 수가 없겠지요?
호박전-달-달거리(월경)-달의 차고 이지러짐-달의 인력과 밀물과 썰물과 여성의 생리 현상-핏빛-달빛-생명의 탄생-기우제 민속과 민요-우주 현상으로 확대되어 나가는 과정과 소녀에서 어머니로 성숙해 가는 과정을 상상력과 동화적인 환상으로 전개해 나가지, 엄정한 논리나 투명한 이성으로 펼치고 있지 않아요. 그래서 이 글은 읽는 이로 하여금 느낌을 풍요롭고 부드럽게 하고 해석의 다양성과 여백의 미를 가지게 하고 있어요. 저는 이런 점에서 앞의 글들보다 더 높은 점수를 주고 싶은 것이지요. 아뭏튼 독자마다 다르게 받아들이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하니, 무울님의 이런 해석을 저도 부정하지는 않아요. 즐거운 토론 감사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