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 단원들이 생활비를 찿으려면 수도 타카를 와야한다. 타카에만 있는 우리은행에
단원들 모두가 그 곳에만 구좌를 갖고있어 그곳에 생활비가 입금이되기때문이다.
그리고 타카에 가면 한국식품점이있어 그 곳에서 필요한 물건들을 사 갖고 와야하기 때문이다.
김치담글때 필요한 젓갈이라던지 한국 라면 이나 한국 고유식품들과 양념.
헌데 가격이 너무 비씨다. 한국의 다이소 제품 1,000 원짜리가 여기선 4천원도 간다.
그만큼 관세가 엄청나게 붙는다고한다.
나도 이때 젓갈류를 사느라 한국마트에 들렀다. 유일한 한국마트이다.
그 주위에 현지인이하는 한국상품점이 있는데 그건 이름이 서울마트이다.
한국마트의 이름은 코마트.
이 코마트에 가서 보니 내가 즐겨먹는 샘표의 백년동안 이란 흑초가 있는데 웬일인지 하나 사면
하나가 더 준다고 되있다. 점원에게 물어보니 이줄과 이줄만 그렇단다.
가만히 그 줄 것들을 보니 내용물 사용 기한이 모두 한달 이상이나 지난 것들이다.
이 상점의 주인은 식품 유효기간에 대한 감각이나 양심도 없는건지.
유효기간이 지난걸 사다 먹으라고. 그것도 두개를 한꺼먼에 뭘해서 빨리 먹나.
한국에서 이런 일이있다면 어찌될까. 발글라데쉬이니 가능한 일인거 같다.
하지만 대다수의 고객이 한국사람들인데 그들에게 유효기간 지난걸 먹으라 파는 양심이 한심하다.
타카국립대 언어스쿨의 한국어 교사로 일하는 사람이
머리를 다쳐 발을 잘 못쓴다고하여 침을 맛기를 고대하였던 사람을
게스트 하우스에 오게 해 치료를 하였다. 릭샤라는 자전거 인력거 .이걸 타고 가다가
뒤에서 CNG 라는 삼륜택시가 들이받아 떨어져 머리를 다쳤다 한다.
머리 수술 후 다리를 잘 쓰지를 못해 걷기가 불편해 한다. 팔도 불편하다하여
그쪽 경락만 침으로 하고 백회에 뜸을 하였다. 6월에 죠슈루 고향집에 온다고 그때 다시 해보기로 했다.
전기 밥솥이 없어 지난 1월에 봐둔 아주 작은 일제 밥통을 사기로 맘 먹었는데
3개월이 지난 지금 가 보니 그 제품이 없다. 재고도 없다고 한다.
생각끝에 전기밥솥보다는 압력밥솥이 나을거 같다.
한국마트에 가서 키칱아트에서 나온 2~3인용의 것을 샀다.
가격은 한국서는 2~3만원 할 텐데 여기서는 10만원이나 주고 샀다.
7천8백 타까이니 이 금액이면 방글라데쉬 여기 중고등학교 선생 초급 봉급이다.
외국것들이 이렇게 비싸니 내수 보호도 아니고 관세가 너무 높다.
내가 있는 교원대학에 컴퓨터실을 구축을 위한 사전 조사로
클라우딩 시스템을 고려하고 있는데 그걸 설치 해놓은 곳을 방문하기로 하여 갔다.
차를 타고 가는데 한참을 시골로 달려갔다.
한국사람인 최사장이 이런 전산실 설치 사업과 프로그램 개발 등을 방글라데쉬에서 하는데
한국사람들 위주로만 하고있다. 그는 또 여기에서 게스트 하우스를 한다고도 한다.
난 지난번 모자 인쇠업을 하고 솔라 설비하는 최사장네가 게스트하우스를한다하여 교포가 처음으로 하는 줄 알았더니
이 최사장에게 애기 들으니 한국교포들이 20여개나 된다하니 놀랬다. 먹고자고 빨래까지 해주고 하루 40 불이라고한다.
여기서 제일 싸게 실비로 제공한다고 한다. 또 선교사들에게는 10불을 할인도 해준다고.
여기에도 최사장이 컴퓨터를 설치 했는데 수리때문에 한사람을 내려주고 우리는 우리갈 학교로 떠났다.
이 곳도 초등학교로 선교사들이 운영하는 곳이라 한다. 우리나라 선교사들이 들어와 학교 운영을 하는 곳이 많다고 한다.
건물들도 깨끗하고 해서 이런 학교에 들어오려는 아이들이 많다고.
인가가 초등학교까지만 된다 한다. 선교사업을 학교를 운영하며 하는게 상당히 효가가 있나 보다.
지나가는 길에 소시장을 지나간다. 우리나라 60년대에 소 시장이 있던 그 모습이다.
서울에는 마장동에 잇었다. 동대문 구청과 이마트 자리가 소 시장이었다가 마장동 시외뻐스터미날로 바뀌었던 곳.
그 시절을 보는거 같다. 사실 방글라데쉬에 와서 나는 내 어릴 때 추억들을 많이 접한다. 우리가 그 당시 하던 그런걸
여기서는 이제 하고 있으니 내가 타임머신을 타고 되돌아간 느낌이 들기도 한다.
이 학교가 우리가 방문하기로 한 학교이다
이 학교때문에 이 동네의 땅값도 오르고 동네가 활성화 됬다 한다.
완전 기숙학교로 운영하며 아주 집안이 어려운 아이들만 골라서 입학 시킨다 한다.
돈 있는 집 애들은 들어오고 싶어도 못 들어온다 하니 참 잘 한 규칙이다. 이런게 진짜 봉사요 사랑의 실천이다.
영어로만 수엄을 하여 애들이 영어를 곧잘 한다고.
건물도 깨끗하고 여느 현지학교와는 비교가 않될정도로 고급의 환경이다.
이 것이 메인 컴퓨터로 사용하고 다른 사람들은 모니터와 키보드만 있어 이걸 LAN 으로 연결해 사용하는 시스템이다.
메인 컴퓨터애서 거리가 멀어도 네트웟으로 연결 하니 문제가 없고
소프트웨어도 하나만 설치해서 여럿이 사용할수있으니 비용절감도 되고 운영하는데 편리하기도 하다.
이런 시스템이 방글라에서 필요한 시스템일것이다.
이 곳에서는 3개의 모니터와 키보드만 이용하여 세사람만 사용하고있다.
이런 시스템은 80년대에 회상서 사용하던 그런 시스템이다. 당시는 이런 걸
더미컴퓨터라 하여 메인 전산실에서 컴퓨터와 연결 한 모니터와 키보드만
각 개인들이 갖고 사용 하던 때가 잇었는데 다시 그 떄로 회귀하는거 같다.
이 것이 연결 네트워 장비이다. 각 모니터와 키보드를 이곳에 연결 해 사용하는 것이다.
이런 시스템이 여기서 가능 한 것은 소프트웨어를 공동으로 사용 할수있는 나라로 인정 받고있기 때문이다.
이건 모니터 뒤에 네트웍 장비를 달아 매두어 같이 일체형으로 만들어 사용하는 것을 위에서 찍은 것이다.
이 곳 전산 담당을 하고있는 전도사가 운영 상황을 보여준다.
이 곳의 사양이 구형이라 그런지 새로운 모델로 구성한다면 동영사 보는것도 더욱 빠를 것이라 한다.
이 곳을 보고 와서는 나는 죠슈루에 사는 현지인인 라자의 동서네 사업장엘 방문했다.
내가 수출 하던 자수업종의 스팡클 사업을 하고잇었다. 한국의 나의 사업 파트너인 신사장을 소개 해주고
공장을 방문 해 본 것이다. 오른쪽 가에 사람이 라자이고 가운데가 그의 동서이다.
사업 시작 6년만에 상당히 궤도에 올라갔다고 하는데 물건의 모두가 중국제품들이었다.
스팡클 기계도 내가 전에 터키에 팔았던 그런 비슷한 기계들인데
이게 모두 한국 것을 카피하여 중국업체들이 만든 것들이다.
기계에 대한 자문을 좀 해주고 금형에 대해서도 한국것들의 우수성은
마모가 적어 생산성이 높다는걸 설명 해 주었다. 한국것을 검토하겠다고.
이 사업의 맹점은 재고관리이다. 여기도 예외 없이 많은 재고를 갖고있다.
다품종이다 보니 칼라별로 많은 원판 재고가 쌓여있다. 그래도 여기는 가격변동이
요인들이 자주 생겨 갖고있으면 오른다는 이야기를 하니 참으로 다행스런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