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가 인생을 말하다
최 화 웅
그동안 본 몇 편의 영화는 내 기억 속에 살아있다. 그 영화를 통해서 나는 내 삶의 현실과 내 인생을 돌아보는 것이다. 한 곡의 음악이 연주되기까지 거치는 과정이 내가 산다는 것과 사랑의 의미가 무엇인지 생각하게도 한다. 사람들은 처음 뜨거운 끌림으로 만나서 못 견디게 사랑하다 어느 날 갑자기 싸늘한 관계로 돌아서거나 늙고 병들어 죽게 마련이다. 갈등을 겪다 헤어져서 홀로 외로움을 겪는 삶의 길. 그러나 영화는 항상 남은 인생에서 사랑의 불씨를 되살리려는 반전을 꿈꾼다. 이해와 소통의 노력을 통해 화해하고 함께 살아가며 연주하는 성숙한 단계로 이끈다. 비로소 인생은 농익은 연주를 해나가는 것과도 같다. 탁월한 영화는 그토록 인생의 속살을 훤히 비추는지 모른다.
영화는 자연의 봄, 여름, 가을, 겨울을 품고 인간의 생로병사를 그린다. 더스틴 호프만 감독의 ‘콰르텟(Quartet)’과 야론 질버먼의 ‘마지막 4중주곡(A Late Quartet), 폴 엔드루 윌리엄스의 송포유(Song for You)와 미카엘 하네케 의 아무르(Amour)가 보다 큰 예술혼과 휴머니즘을 불러일으킨다. 이들 영화는 하나같이 고령화시대를 살아가는 이 시대에 한 가닥 희망의 감동을 던진다. 최근 영화는 삶이 얼마 남지 않은 노인들의 다양한 삶의 공간에 카메라를 비추며 가려진 시대의 리얼을 담아냈다. 아무르에서 열연한 주연여우 엠마뉘엘 루바는 어느 영화상 수상소감에서 “영화란 나누는 것이며 삶에의 영원한 초대”라고 밝혀 우리의 귀를 모으게 했다.
* 콰르텟(Quartet)
영국 런던필하모닉과 로열하모닉을 창단한 지휘자 토마스 비첨경의 이름 을 딴 비첨하우 스 (Beecham House)는 은퇴 음악가를 위한 전설적인 요양 원이다. 이곳에 세계적인 명성을 날린 오페라 가수 4인이 모이게 된다. 베 르디의 라트라비아타에 나오는 아리아 ‘축배의 노래’가 흘러나오면서 시작 하는 영화에 젊은 날 사랑의 상처를 가슴에 묻은 채 까칠하게 살아가는 일편단심 테너 레지(77), 젊은 이 못지않은 유머감각으로 분위기를 만들어 나가는 베이스 윌프(72), 가끔 정신이 오락가락하지만 소녀 같은 착함을지 닌 알토 씨씨(74), 젊은 날 레지와의 사랑에 실패한 쌀쌀맞고 콧대 높은 소 프라노 진(80)이 합류한다. 영화 전편에 푸치니 토스카의 아리아 ‘노래에 살고 사랑에 살고’ 등 주옥같은 오페라 아리아가 우리의 추억을 춤추게 하 면서 나이 들었지만 품위를 잃지 않은 음악가의 정신과 나이듦에 대한 낙 관적 품격을 통해 인생을 관조하는 삶의 여유와 예술가의 영혼을 보여준 다. 그러나 재정난에 빠진 비첨하우스를 돕기 위해 추진하는 갈라 콘서트 의 콰르텟(4부 혼성)을 위해 진의 참여를 설득하는 과정이 새롭게 사랑을 구하는 과정처럼 힘겹다. 콰르텟을 성공시킨 은퇴 음악가들은 세계의 노인 들을 향해 “당신은 삶을 즐기기에 결코 늦지 않았다.(You are never too old to live you life.)는 메시지를 전한다.
* 마지막 4중주(A Late Quartet)
창단 25주년 기념공연을 앞둔 세계적인 현악4중주단 ‘푸가’. 그들 내에서 음악적, 정신적 멘토인 첼리스트 피터가 난이도가 높은 베토벤의 현악4중 주 14번을 연습하던 중 파킨슨병 판정받으면서 단원들은 충격과 혼란에 빠진다. 한 치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완벽주의자 제1 바이올린 다니엘, 제2 바이올린 담당자 로버트와 그의 아내 비올리스트 줄리엣은 부부이면 서 스승과 제자, 친구와 연인, 10대의 불같은 사랑, 외도가 몰아친 폭풍, 부인을 잃은 노년의 그리움 등 25년 동안 숨기고 억눌러온 감정을 들어 내면서 불협화음은 극에 달해 팀이 해체될 위기를 맞는다. 그러나 그들 은 마음을 튜닝해 나가며 음악도 인생도 하모니를 이룬다. 삶과 사랑 은 영원한 갈등과 불협화음속에 있는지 모른다. 병세가 깊어진 푸가의 멘토 피터가 소개하는 칭찬하는 파블로 카잘스의 일화와 함께 인생의 마지막 악장은 재회이어야 한다는 메시지를 던져 관객들에게 큰 반향을 불러 일으킨다. 아카데미상에 빛나는 명품배우들이 빚어낸 드문 걸작이다.
* 송포유(Song for You)
까칠하고 무뚝뚝한 할아버지 아서와 암에 걸린 아내 메리언 할머니의 이야기다. 아내의 마지막 소원을 이루기 위해 합창오디션에 도전하는 아서는 늙음이 젊음만큼 소중한 인생임을 말해준다. 주인공 아서가 합창단원들과 호흡을 맞춰가는 과정과 좌충우돌하는 연습장면은 늙어가는 자신과 우리 네 아버지, 할아버지를 보는 것 같았다. 유쾌한 웃음과 따뜻한 감동을 전 한 영화의 메시지는 우리에게 인생의 숙제를 내놓았다. 메리안이 아서를 위해 노래하는 세레나데 ‘True Colors’ 장면과 합창단원들이 투병 중인 메 리안을 위해 비오는 날 창밖에서 불러주는 ‘You are the sunshine of my life' 장면은 감동의 명장면으로 남아있다. 아름다운 음악과 함께 즐겁게 노 래하는 노인들의 표정과 몸짓이 우리를 잔잔한 감동으로 이끈다. 가족이 함께 즐기기 좋은 영화다.
* 아무르(Amour)
행복하고 평화로운 노후를 보내던 음악가 출신의 노부부 조르주와 안느의 일상을 담담하게 그린 아름답고도 통렬한 울림을 던지는 사랑이야기다. 평 범한 인생과 사랑, 죽음의 이야기를 특별하게 일러준다. 어느 날 안느가 갑자기 마비 증세를 일으키면서 그들의 삶은 하루아침에 곤두박잘 친다. 이 영화는 초반에 부부가 함께 가는 음악회를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장면 을 집안에서 풀어낸다. 노부부에게 찾아든 피할 수 없는 죽음의 현실 을 마주하며 기어이 마지막 선택을 내릴 때 숨이 막히는 무겁고 진중한 긴장 감이 폐부를 찌른다. 영화 아무르는 2001년 피아니스트로 칸영화제 심사위 원 그랑프리를 수상한 미카엘 하네케 가목의 작품이다. 2012년 칸영화제에 서 황금종려상을 2013년에는 골든글로브상과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을 수 하기도 했다. 이 영화는 우리에게 인간적으로 사는 게 무엇인지를 생각하 게 하고 우리 마음 속 깊이 들어와 피할 수 없게 만든다.
영화는 우리에게 인생을 말한다. 영화는 우리를 웃기고 울리며 이끌어간다. 그런 가운데 많은 영화들이 삶이 얼마 남지 않은 노인들의 현실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영화 전편에 흐르는 사랑과 배신, 욕망과 열정, 결핍과 고독, 위기와 혼란은 인생의 대서사시로 우리가 아름다운 화음으로 다듬고 스스로를 승화시키고 풀어 나가야할 숙제로 남는 것이다.
*
첫댓글 이번 휴가에는 영화를 한편 봐야 겠습니다. 재미있게 잘 읽고 갑니다. 국장님 감사합니다.
명금당님! 멀티플렉스보다 단관극장을 찾아보세요.
우리의 어린시절이 고스란히 살아 있을 테니까요.
그리움님 덕분에 명화를 한눈에 보고 가네요.
눈이 어두워 책을 못볼때 보는 것이 영화라고 생각했던 나의 고집이 깨지는 순간입니다.
모든 부부들의 삶이, 인생이 비슷비슷 하지만 영화의 주인공들이 만들어내는 연기와 배경음악이 멋지고 리얼하고
그래서 깊이 공감하게 되고..그리움님께서 더욱 공감할 수 있도록 글을 만들어? 주시니, 마음의 여유와 행복이 느껴집니다.
고맙습니다 항상...^^
'마지막 4중주'를 보려고 갔다가 시간대가 맞지 않아 포기했는데 꼬옥 보아야겠네요.
선생님! 좋은 영화들을 소개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더운 날씨에 건강하세요.